수학적 태도는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왜?’라고 물으며 스스로 답을 만들고 정당화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런 태도는 수학 학습을 통해 길러집니다.
잘하는 아이라도 수학에서 반드시 만점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면 수학을 친구로 느끼기가 힘들 것입니다. 100점에 매달리는 대신 95점만 맞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라고 하면 어떨까요? 책을 보든, 멍하니 앉아 하늘을 보면서 공상을 즐기든, 무엇이든 맘대로 하라고 말입니다. 그 시간들은 상투적 의미의 ‘공부’가 아닌 또 다른 의미의 ‘공부’가 될 것입니다.
아이가 질문을 하면 되도록 끝까지 받아주세요. 부모가 번번이 “모르겠다.”며 다른 대화로 훌쩍 넘어가면, 아이에게는 그 문제를 깊게 생각할 기회가 사라집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의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이 깊어집니다. 깊은 곳까지 생각의 꼬리를 늘어뜨릴 줄 알아야 생각도 깊어지고 문제도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양하게 생각해 볼 여유를 갖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존재는 누구보다 부모입니다.
아이가 살아오면서 한 다양한 체험과 이 과정에서의 사고 경험은 나무로 친다면 토양의 영양분인 셈입니다. 영양분이 많은 토양에서 자라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지요. 생각할 소재가 될만한 경험을 별로 안 하는 것은 토양에 양분이 거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토양은 척박한데 예쁜 꽃을 피우고 토실토실한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일상생활은 금광과 같은 교육적 기회입니다. 식탁 정리, 음식 담기, 컵에 우유 따르기 등을 아이가 직접 하도록 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활에 참여시키는 것이 사실은 ‘지능’을 높이는 것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수학은 생활 속에 있습니다. 생활에 널려 있는 풍부한 수학적 소재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이 아이의 실력을 기름지게 합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생활 경험과 사고 경험은 고학년이 되면서 점차 빛을 발합니다.
수학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 수학을 가르치는 본래 목적입니다. 수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이 자라고 생각의 폭이 넓어집니다. 수학은 생각을 키우는 나무입니다.
아이가 푸는 것이 ‘수학’ 문제라면, 부모나 교사가 풀어야 하는 것은 ‘아이’라는 문제입니다. 아이가 수학 문제를 술술 풀어내는 것처럼 어떻게 해야 아이와 관련된 사안들을 부드럽고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지도하는 방법적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믿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믿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아이를 닦달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하게 하려고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틈을 주는 게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신감은 심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 아이에게 자신감이 있는 부모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습니다. 그게 자신감이죠. 아이도 그걸 느낍니다. 스스로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아이는 새로운 수학적 개념을 배울 때에도 어렵겠다거나 불필요하다는 편견 없이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수학 학습을 통해 길러집니다.
스스로 하는 자발성은 참 귀하고 중요한 능력입니다. 자발성을 키우는 것은 “네가 스스로 하려는 노력을 좀 해라!” 하고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 작은 일부터 아이가 결정하도록 놔두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일찍부터 부모의 손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부모가 약간 지쳐도 자율적으로 잘해나갑니다.
수학 머리가 수학적인 사고의 이성적 측면을 뜻한다면, 수학의 마음은 수학적 사고의 정서적 측면을 뜻합니다. 요즘은 정서도 지능이라고 하지요.
수학적 사고에 비판적 사고도 들어있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보다는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가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합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합니다.
배움에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그것을 배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배울 이유가 필요합니다. 수학은 생활에 널려 있기 때문에(수학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숫자도 없고 도형도 없고 패턴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아이가 생활에 참여를 많이 했다면 수학을 배울 이유를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학을 내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 자신의 성장을 바랍니다. 수학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고, 수학이 나를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면 적극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초중고 12년간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인 ‘학교 수학’은 12년 동안의 학습을 통해 최소한의 체계적 사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학교 수학은 우리 모두의 ‘교양과목’입니다. 사고력이 좋은 아이들을 위한 과목이 아니라, 평범한 모든 아이가 문화인으로서 아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과목이라는 것입니다.
수학은 아이가 살아가면서 때때로 마주하는 곤란한 문제 상황(계산이나 논리가 필요한 경우) 앞에서 어쩔 줄 모를 때면 짠-하고 나타나 “이 문제는 이런 이런 과정으로 해결하면 돼.”라고 귀띔해주는 유익한 친구입니다. 수학이 좀 어려워도, 보이지 않게 항상 자기 곁에 있고 자신을 도와준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 수학은 든든한 친구입니다. 혼잣말하며 이런저런 상상에 빠져 있을 때에도 쓱- 나타나 말대꾸도 해 주고 맞장구를 쳐 주기도 하는 다정한 친구입니다. 함께 신나는 게임도 하고, 숨바꼭질 같은 퀴즈도 풉니다. 용감하고 다정한 수학이 언제나 자신을 지켜준다는 믿음은 아이 마음속 불안을 잠재워 줍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면,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수학의 마음이 아이 안에 있으니까요. 수학이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수학은 우리를 도와줍니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각종 문제들 앞에서 겁내지 않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과 태도를 기르는 것이 우리가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