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론에는 문장을 대상으로 정리한 규칙이 들어 있어요.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문장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와 같은 것을 알려 주지요. 문장은 단어들을 나열해서 만드는데, 이들 단어가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되는지에 대한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예전 국민학교,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가 보면 교실을 가로질러 빨랫줄 같은 것에 낱말 카드를 걸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아주 옛날이야기지요). 말이 되게 낱말 카드를 배열해서 문장 만들기를 배우는 것인데, 이게 바로 통사론이에요. 정말 별거 아니지요? 그러니까 ‘춘향이, 거울, 가, 을, 봅니다’라는 다섯 개의 낱말을 ‘춘향이-가-거울-을-봅니다.’나 ‘거울-을-춘향이-가-봅니다.’로 배열해야 말이 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게 통사론입니다. 통사統辭라는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단어(辭)를 줄지어(統) 놓는다는 뜻이랍니다.
---「통사론(낱말 카드 제대로 배열하기)」중에서
형태론에는 단어를 대상으로 정리한 규칙이 들어 있어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단어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를 알려 주지요. 예를 들면, ‘개나리’는 ‘개’와 ‘나리’로 조각나고, ‘개나리’는 나리와 비슷한 꽃이지만 다른 꽃이며, ‘나리’라는 단어에 ‘개’라는 말조각을 붙여서 생겨난 말이니까 파생된 단어(파생어)에 속한다는 그런 것입니다. 여기서 ‘형태’란 뜻을 가진 일정한 모양(글자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모양)을 말합니다.
그냥 글자들의 모임을 알아보자고 하지 왜 형태론이라는 어려운 말을 썼을까요? 통사론과 형태론을 단어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통사론은 단어가 문장이라는 큰물에서 다른 단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노는지를 살펴보는 것이고, 형태론은 단어 자체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종류에 속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거예요.
다시 말해, 춘향이가 방 안에서 혼자 이 옷 저 옷을 입어 보며 놀고 있는 것을 형태론에 비유한다면, 통사론은 춘향이가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향단이하고 있으면 향단이 친구가 되고, 몽룡이와 있으면 몽룡이 애인이 되고, 월매하고 있으면 딸이 되기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형태론(단어의 모양을 요리조리 뜯어보면?)」중에서
음운론에는 소리 하나하나, 즉 자음과 모음을 대상으로 정리한 규칙이 들어 있어요. 소리들의 관계는 어떤지, 소리와 소리가 만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굳이’는 [구지]로 소리 납니다. 다시 말해, /ㄱ/-/ㅜ/-/ㄷ/-/ㅣ/의 소리(글자) 배열이 [ㄱ]-[ㅜ]-[ㅈ]-[ㅣ]로 바뀌어 소리가 나는 것이에요. 이처럼 [ㄷ]이 [ㅣ]와 만나면 [ㅈ]으로 바뀌는 것과 같이 소리의 규칙적인 현상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것이 음운론입니다. 여기서 ‘음운’이란 자음이나 모음과 같은 ‘음소’와 긴소리, 짧은소리, 높은 소리, 낮은 소리와 같은 것을 나타내는 ‘운소’를 합친 말입니다.
---「음운론(소리와 소리가 부딪히면 어떤 소리가 나나?)」중에서
명쾌한 글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글에서 전달하려는 글쓴이의 생각이 무엇인지 분명해야 하고, 문장이 한 가지로만 분명하게 해석되게 써야 합니다. 이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조사를 정확하게 써야 합니다.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지녀야 할 첫째 조건을 지칠 줄 모르는 강한 정신력으로 꼽았다.
위 문장은 조금 어색하지요? 왜 그럴까요? 이 문장에서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이 꼽은 대상은 ‘정신력’입니다. 그래서 ‘정신력’에 대상임을 나타내는 목적격조사 ‘-을’을 붙여 줘야 합니다. 그리고 문장의 의미를 더해 주는 ‘첫째 조건’에는 부사어를 만들어 주는 부사격조사 ‘-으로’를 붙여 주고요.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지녀야 할 첫째 조건으로 지칠 줄 모르는 강한 정신력을 꼽았다.
어떤가요? 단지 조사만 바꾸었을 뿐인데, 무슨 말인지 처음 문장보다 분명하지요?
---「명쾌한 글의 조건」중에서
생각은 말이나 글을 통해 전달됩니다. 이때 말이나 글은 문장이라는 틀에 담겨서 표현되는데, 이 문장이라는 틀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수없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이런 문장의 틀을 문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말을 하지만 이 말들은 많아야 일이십여 개의 문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좋은 문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문형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지요. 그리고 좋은 문형을 많이 익히면 굳이 문법을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고요. 좋은 문형을 익히는 방법을 알려 줄까요?
먼저 서점에 가서 여러 사람(가능하면 유명 작가)의 단편소설이나 수필을 모아 놓은 책을 사서 죽 읽어 보세요. 막히지 않고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찾아 그 글의 작가가 누군지 확인합니다. 그다음에 그 작가가 쓴 글을 구해 열심히 읽으면 됩니다. 같은 글을 여러 번 읽어도 좋고, 그 작가가 쓴 다른 글을 돌려 가며 읽어도 좋습니다. 그냥 죽 읽어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하루에 자신이 낼 수 있는 시간만큼 이렇게 매일 하루도 빠지지 말고 100일 동안만 읽어 보세요. 그러면 그 작가가 사용하는 문형을 익힐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자신이 선택한 작가가 쓴 문형이 반드시 좋은 문형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나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형이기는 하겠지요?
---「생각을 담아내는 문형」중에서
우리말은 서술어가 문장 맨 뒤에 오지만, 영어에서는 서술어가 주어 다음에 옵니다. 서술어가 문장의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글을 독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술어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영어에서는 서술어가 앞에 오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문장 앞쪽에 놓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서술어가 뒤에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문장 뒤쪽에 놓습니다.
-글 A: 주목할 만한 사실은 춘향이가 예쁘다는 것이다.
-글 B: 춘향이가 예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글 A와 글 B에는 모두 ‘주목할 만하다.’는 것과 ‘춘향이가 예쁘다.’는 두 가지 정보가 있어요. 그런데 글 A를 보면 ‘춘향이가 예쁘다.’가 중요한 정보처럼 느껴지고, 글 B를 보면 ‘주목할 만하다.’가 중요한 정보처럼 느껴집니다. 이는 우리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객관적으로 ‘주목할 만하다.’는 정보와 ‘춘향이가 예쁘다.’는 정보 가운데 어느 정보가 더 중요한 걸까요? ‘춘향이가 예쁘다.’는 정보는 이미 알려진 정보들 가운데 하나이고, 그 여러 정보들 중에서 ‘춘향이가 예쁘다.’는 정보를 ‘주목할 만하다.’고 여긴 것은 글쓴이만의 새로운 생각입니다. 글에서 중요한 정보는 글쓴이의 새로운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주목할 만하다.’는 정보가 ‘춘향이가 예쁘다.’는 정보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앞에 있는 글에서는 글 B처럼 써야 하지, 글 A처럼 써서는 안 됩니다. 글 A처럼 쓰면 읽는 사람들이 글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글 A는 영어 번역 투 표현입니다.
---「우리 글쓰기는 영어 글쓰기랑 달라」중에서
동사로 나타낼 수 있는 서법과 형용사로 나타낼 수 있는 서법은 달라요. 동사로는 서술법, 의문법, 청유법, 명령법을 다 나타낼 수 있지만, 형용사는 서술법과 의문법만 나타낼 수 있어요.
-춘향이가 춤을 춘다. 춘향이가 예쁘다.
-춘향이가 춤을 추니? 춘향이가 예쁘니?
-춘향아, 춤을 추자! (X) 춘향아, 예쁘자!
-춘향아, 춤을 춰라! (X) 춘향아, 예뻐라!
동사가 네 가지 서법에 다 쓰일 수 있는 것은 동사가 움직임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와 움직임을 전제로 하는 청유문이나 명령문은 서로 잘 어울리니까요. 반면에, 형용사는 모습이 어떠하다는 상태만 나타낼 뿐이지 움직임은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형용사는 움직임을 전제로 하는 청유문이나 명령문을 만들지 못하지요. 동사와 형용사를 구분할 때, 청유문을 만드는 ‘-자’나 명령문을 만드는 ‘-어라’를 붙여서 말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보면 됩니다. 말이 되면 동사, 말이 안 되면 형용사이겠지요?
---「동사와 형용사의 서법」중에서
단어는 반드시 9개의 품사로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위에서 나눈 것을 바탕으로 품사의 수를 줄일 수도 있고, 늘일 수도 있어요. 9품사를 6품사로 줄여 볼까요? 명사, 대명사, 수사를 구분한 기준은 의미입니다. 의미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이지 않다고 했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객관적이지 않은 기준으로 굳이 단어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명사, 대명사, 수사는 크게 명사라는 묶음으로 묶을 수 있겠지요? 동사와 형용사도 하나로 묶을 수 있어요.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때는 전체를 구분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어떤 동사의 종류는 움직임이 없는 것 같은데 동사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다는 움직임이 없어서 형용사 같지만 청유문이나 명령문을 만들 수 있으므로 동사로 분류합니다. 동사와 형용사를 구분하지 않는 경우에는 동사와 형용사를 묶어 동사라고 부릅니다. 이때 동사는 의미를 기준으로 동작동사와 상태동사로 다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동작동사는 9품사로 품사를 구분했을 때 동사와 거의 일치하고, 상태동사는 형용사와 거의 일치합니다.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예로 들어 보면, 알다는 동사와 형용사를 구분하는 9품사로 분류할 때는 동사에 속하지만, 모두 동사로 묶는 분류방식에서는 상태동사에 속합니다. 의미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9품사가 명사, 동사, 부사, 관형사, 조사, 감탄사 이렇게 6품사가 되지요. 9품사를 12품사로 늘려 볼까요? 단어 이다는 9품사에서 조사로 분류됩니다. 이다는 이중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이다는 명사 뒤에 붙습니다. 명사 뒤에 붙는 것은 조사의 특성이에요.
그런데 이다는 동사나 형용사처럼 어미가 붙어 있기 때문에 쓰임에 따라 단어의 모습이 바뀝니다. 9품사 분류에서는 이다의 이런 두 가지 특성 중에서 명사 뒤에 붙는다는 특성에 중점을 두어 조사로 분류했지요. 그런데 만일 이다가 그 모습이 바뀐다는 데 중점을 두면 품사를 따로 분류할 수가 있어요. 이다와 아니다를 합해서 지정사라는 품사를 정하는 거지요. 지정사란 무엇인지를 지정해 주는 품사라는 뜻입니다. 벌써 품사가 하나 더 늘어났네요. 단어 있다는 9품사 분류에서 형용사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있다가 반드시 형용사의 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있다는 ‘우리 집에 있자!’, ‘네가 집에 있어라!’처럼 청유문과 명령문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돈이 있자!’, ‘너는 돈이 있어라!’처럼 청유문과 명령문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있다와 관련이 있는 없다와 계시다를 함께 묶어 존재사라는 품사를 만들 수 있지요. 존재사란 존재하는지를 나타내는 품사라는 뜻입니다.
한편, 그리고나 그러나와 같은 단어는 9품사에서 부사로 분류되지만, 문장과 문장을 접속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접속사로 따로 분류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하면 9품사인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부사, 관형사, 조사, 감탄사에 지정사, 존재사, 접속사가 덧붙어 12품사가 되는 거예요.
---「품사의 개수」중에서
우리말에서 꾸며 주는 말은 관형사와 부사가 있습니다. 둘 다 꾸밈을 받는 말 앞에서 꾸며 줍니다. ‘뭐 다 아는 걸 가지고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맞습니다. 아주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의 이런 특성 때문에 간혹 뜻하지 않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쓰기도 합니다.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은 보통 현미경으로 볼 수 없다.
위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첫 번째는 ‘바이러스는 평범한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고 특수한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두 번째는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보통이 명사이기도 하지만 부사이기도 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보통이 명사이면 옆에 ‘-의’를 붙여 관형어가 되어 뒤에 오는 명사를 꾸며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명사 옆에 붙는 ‘-의’는 생략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이 그대로 뒤에 오는 명사인 현미경을 꾸며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첫 번째로 해석됩니다. 만일 보통이 부사라면 뒤에 오는 서술어 볼 수 없다를 꾸며 줍니다.
부사는 원래 자리가 서술어 앞이지만 문장 안에서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그 앞에 있는 현미경 앞으로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두 번째로 해석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칙대로 써 주면 됩니다. 첫 번째 해석처럼 쓰려면 보통 옆에 ‘-의’를 붙여서 ‘보통의’라고 써 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보 통은 절대 부사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부사에는 ‘-의’가 붙지 않거든요.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은 보통의 현미경으로 볼 수 없다.
다음으로 두 번째 해석처럼 쓰려면 보통을 원래 자리인 서술어 앞으로 되돌려 놓으면 됩니다. 보통이 서술어 앞에 자리를 잡으면 서술어만 꾸며 주지 그 앞에 있는 명사인 현미경을 꾸며 줄 수 없게 됩니다.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은 현미경으로 보통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꾸며 주는 말은 반드시 앞에서 뒤로만 꾸며 주지 뒤에서 앞으로 꾸며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은 앞에서 뒤로 꾸며 주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