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중학교 2학년이던 큰아이에게 조울증이 발병했습니다. 우울증과 조증이 롤러코스터처럼 반복되었는데, 가족에게는 거의 지옥처럼 느껴진 시간이었습니다. 조증일 때는 과도하게 자아가 확대되고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충만하다 못해 범람하는 그 비정상적인 에너지는 예측 불허의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7, 8년 후쯤 대학교 2학년이던 둘째에게도 조울증이 나타났습니다. 둘째 역시 조증일 때는 비정상적인 에너지가 넘쳐났는데, 심야 클럽을 가야겠다고 졸라 댔습니다. 야심한 시각에 홍대 앞 클럽을 가겠다는 작은애를 차에 태워 한강 다리를 건너가는데, 그대로 차를 몰아 강으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두 아들의 조울증 발병 이후 첫째는 정신병원을 네 번, 둘째는 열세 번 입원했습니다. 두 아이가 입원한 기간 동안 우리는 모두 합쳐 지옥을 쉰 번 정도 다녀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 「여는 글」 중에서
자녀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을 때, 보호자의 삶도 같이 무너집니다. 이런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먼저 살리려고 자기가 하던 일과 일상을 다 포기하곤 하지요. 그런데 단기간 치료에만 집중해서 병이 낫는다면 다행이지만, 조울증의 경우 완치가 어렵거든요. 당뇨나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해야 할 질병이지요. 또 자녀에게도 자율성이라는 게 있는데, 24시간 아이와 붙어 있는 상태는 오히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더 안 좋은 상황에 빠지게 만들어요. 제 경우는 그래서 열심히 유아교육 일에 계속 전념하면서 에너지를 얻고, 그 힘으로 다시 자녀를 돌봤던 것 같아요. 물론 모두 저와 같은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 얘기할 때는 무척 조심스럽죠.
--- p.46
‘나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은… 아마 모든 부모가 그렇게 느낄 거예요. 다만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붙잡고 있어야겠죠. 아이에게 미안하니까 끌려다니면 자녀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고, 치료가 채 되기도 전에 퇴원을 시키면 상태는 더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의 메시지를 어릴 때부터 충분히 주었다면 신뢰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는 아이를 컨트롤하고 통제하는 말도 권위 있게 다가갈 수 있어요. 하지만 신뢰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치료도 잘 안 되고 다른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게 되어 결국 집 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아요. 이제 바깥 세상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되는 거죠.
--- p.69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묻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라는 거예요. 교통사고가 1년에 수만 건이 일어나는데 왜 나에게는 교통사고가 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인데 왜 내 인생에 암이 찾아오면 꼭 이유가 필요한가요? 성경을 묵상하면서 ‘와이 미?’(Why me?)라는 물음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와이 낫 미?’(Why not me?)라고 물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 p.87~88
우리가 진짜 병이 안 났으면 이런 가족의 끈끈함과 이런 친밀함과 이런 깊은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지요. 물론 우리 가족이 늘 화목하기만 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어요. 다만,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은 부모인 우리를 존경한다는 점이 가족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 같아요.
여러 가지 면에서 현재 상황을 생각해 보면 여전히 미흡한 게 많고 우리 애들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제 판단에는 60~70퍼센트 회복된 상황이고, 아직은 온전한 자립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러나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이루어 가는 사역의 걸음걸음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사한 일이지요.
--- p.132~133
시스템이 구축되기까지는 치러야 할 대가나 비용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제가 계속 강조하는 거예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21년까지 4년 사이에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 수가 92퍼센트 이상 급증했다고 해요. 조기 발견이 굉장히 중요한데,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자녀의 ADHD 검사를 받아 보라고 권하면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잖아요.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고소까지 가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어요. 신경정신질환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만큼 대중적인 이해도가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 p.187
공식적인 인터뷰는 일곱 차례 진행되었고, 두 차례의 비공식 대화가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잘 들려왔습니다. 제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던 이들이, 숨소리같이 미세하게 도와 달라 말하는 소리가 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 또는 가족의 정서적·정신적 연약함 때문에 무척 힘들어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그렇듯, 인터뷰를 하는 시간은 도움이 절실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시공간이었으며, 새로운 감각이 열리는 계기였습니다.
--- 「닫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