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살겠다. 이렇게 마음먹은 순간부터 반려견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하는 책임도 생겨납니다. (…) 반드시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강아지들에게. 반려인이 지켜봐야만 하는 강아지들과의 작별이 그저 슬픔만 가득한 배웅으로 끝나지 않기를. 후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평온함, 나아가 행복이라는 감정까지 느끼는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런 바람을 담아 이 책을 썼습니다. 사랑스러운 반려견들과 함께하는 여러분. 이 책이 반려견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 부디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P.8~9
목숨과 연결된 선택을 할 때는 엄청난 자책감과 후회가 따라온다. 그래도 무엇을 선택하든 정답도 아니고 오답도 아니다. 언젠가 반드시 목숨은 끊어지니까. “지금, 오늘 밤, 내일 아침, 얼마나 아프지 않고 스트레스 없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죠”. 이것이 주치의의 제안이었다. 무리한 치료는 하지 않는다. 완치를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평온하게 유지하는 상태를 최우선으로 삼고 완화 케어에 전념하자. 이때 아주 부드럽게 내쉰 나쟈의 한숨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후우.”
--- P.24
마음이 차분해지는 음악과 즐거운 수다와 “정말 괜찮아”라고 주문처럼 반복하는 말들. 나는 단것을 좋아하니까 맛있는 간식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먹고 마시고 나쟈를 쓰다듬고를 반복했는데, 나쟈가 도중에 내가 먹는 슈크림을 달라고 졸랐다. “먹을래?” 크림을 손가락에 묻혀 입에 대주자 할짝할짝, 힘이 없었지만 할짝할짝. 어쩌면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 후로는 나쟈를 칭찬 지옥에 빠뜨렸다. “나쟈, 대단한데? 간이 안 좋으면서 슈크림을 먹었어! 와, 역시 대단해. 보통이 아니라니까. 기뻐라. 나쟈, 괜찮아.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 P.35
물론 다양한 대처법들이 있겠지만, 지금 나는 과보호로 보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나쟈의 자연 치유력을 최대한 끌어낼 것, 어느 정도는 나쟈에게 맡길 것, 나쟈가 기분 좋게 지낼 환경을 준비해줄 것. 이렇게 해야 나쟈가 잘 지낼 수 있다고 믿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왔다. 취권 유단견인 나쟈의 모습은 열흘가량 이어졌고, 조금씩이지만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구진탕은 결국 완치되지 않아서, 이때 처방받은 오령산도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먹여야 했다. 그래도 종기 파열 후 부활한 기적의 날부터 이후 사 년 반이라는 시간을 나쟈는 암과 함께 느긋하게 살아주었다.
--- P.80~81
노견의 사랑스러움은 각별하다. 성견 시기보다 손은 훨씬 더 많이 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고집스러워져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 하며 상대를 신경 쓰지 않으니까 주인이 심심찮게 휘둘리게 된다. 그래도 어린 강아지 시절의 귀여움과는 전혀 다른 귀여움이 매일 같이 가득하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고맙고 고마운 존재다. (…) 원래 사람에게 달라붙어서 애교를 부리는 성향이 아니어서 집에 두고 나가도 전혀 낑낑대지 않는 개였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없으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자력으로 설 수 있던 시기에는 사방에 온몸을 부딪히면서 나를 향해 쫓아왔다. 거의 누워 지내기 시작한 후로는 고개를 들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나를 굉장히 의지해주었는데, 사실은 내가 그런 나쟈에게 의지하며 위안과 도움을 받고 기운을 얻었다. 아침에, 낮에, 밤에, 숨을 쉬는 나쟈의 등을 바라보며 ‘아, 살아 있구나. 고마워. 오늘도 힘내자’ 하고 생각했다.
--- P.115~116
원고 마감날인 27일에 맞춰 나쟈는 흑색 변과 대량의 오줌을 누고 완벽하게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제는 원고가 끝나기를 그저 기다렸는데, 원고는 마감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나쟈의 예정으로는 내 원고가 끝나는 걸 지켜보고 떠나겠다는 완벽한 계획일 텐데, 원고가 끝나질 않았다. 나쟈의 짖음은 “저기요, 이제 나 한계거든요오오~” 하는 외침으로 들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려준 나쟈. 우리 집 개들은 언제나 기다리기만 한다. 이제 조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렴. 사랑스러운 나쟈. 언제나 이렇게 옆에 있어 주었다.
--- P.163
집에 바로 갈 마음이 들지 않아서 늘 조수석에 놓아둔 케이지에 유골함을 넣고, 목적지 없이 그냥 차를 운전했다. 그러다 나쟈가 좋아했던 공원에 들러 유골함과 함께 걷고, 후지산을 바라보고, 심호흡한 후에 넋을 잃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나쟈, 집에 왔어. 작은 서랍장 위를 제단으로 삼았다. 가운데에 카나리아 색 유골함을 올려놓자, 집에 도착해 있던 수많은 꽃이 나쟈를 둘러쌌다. 물과 간식과 과일을 공양하고 향을 계속 피웠다. 석양이 내리쬐어 신비로워 보이는 방 한쪽. 하지만 이 석양은 어딘지 쓸쓸했다.
--- P.197~198
나쟈를 화장했을 때는, 앞서 개들을 떠나보내면서 경험했던 것처럼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강렬한 쓸쓸함은 겪지 않았다. 오히려 나쟈가 훨씬 가까운 존재가 된 것 같았다. 펑펑 눈물을 흘리는 날도 그렇게 많지 않고 평소처럼 허둥지둥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주치의의 다정한 얼굴을 본 순간, 막아두었던 뭔가가 열린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설산에 눈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으허엉, 으아앙 하고 뭐가 뭔지 모를 감정이 대량으로 분출되었다. 나쟈는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다. 주치의는 진찰 때마다 나쟈의 온몸을 구석구석 만졌는데, 뭘 어떻게 해도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분명 내가 주치의를 믿는 것보다 나쟈가 훨씬 더 선생님을 신뢰했을 것이다. “정말 힘냈죠. 대단했어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주치의가 간결한 말로 나쟈를 칭찬해줘서 지난 십칠 년간을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 P.219~220
죽음은 모든 걸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에요.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사랑한 기억은 우리 마음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요. 지상에 있는 특별한 누군가의 행복과 사랑 가득한 추억이 바로 ‘무지개다리’를 만든답니다. 그러니 부디 작별이 주는 슬픔에만 사로잡히지 말아요. 동물들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려고 신이 보낸 아이들이에요. 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려고 왔죠. 생명의 무상함과 사랑스러움을요. 순간의 온기를 느끼는 자비로운 마음의 존엄함을요.
--- P.222
어느 집 강아지든 반드시 반려인에게 ‘추억의 보석함’을 남기고 떠납니다. 즐거웠어, 재미있었어, 맛있었어, 기뻤어, 이런 추억이 담긴 보석함이죠. 슬픈 감정이 진정된 다음에는 약간의 쓸쓸함이 찾아오겠지만, 헤어진 개와 즐거웠던 나날들에 감사하며 같이 살아서 좋았다고 웃으면서 보석함을 열어볼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랍니다. 또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개와 살고 싶고 개와 함께하는 생활을 원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떠난 개들과 함께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P.247~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