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임기 5년 동안(2007~20012) 저출산 명목의 예산은 약 38조 원이었다. 이것도 이전 정부에 비해(11조 원) 3배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5년(2017~2021) 동안에 뿌려진 돈은 약 150조원으로 무려 4배 이상 가까이 폭증했다. 2021년에는 한 해에만 43조 원이 집행되었다. 이는 1, 2차 저출산 기본계획(2006~2015) 기간이었던 10년 동안 집행된 금액 37조 원을 단 1년 만에 넘어선 규모다. 그야말로 예산 폭탄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0.84라는 사상 최저의 출산율로 나타났다. 과거 정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예산을 투입했던 문재인 정부가 출산율로는 역대급으로 가장 낮았다.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오히려 출산율 저하 현상이 더 심화된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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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할수록 즉, 선진국이 될수록 저출산 현상은 매우 뚜렷해진다. 따라서 저출산 현상은 부정적 요인으로 발생할 만한 필연적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빈곤이 만연했던 사회일수록 고출산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저출산은 긍정 요인에서 기인한 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저출산이 문제 상황으로 떠오르자, 그동안 많이 개선되어 왔던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상들이 느닷없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설명되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특히 출산이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성 불평등 문제를 거론하는 페미니즘 진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들이 제기하는 불만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저출산의 이유로 등장한다. 이런 경향은 해가 거듭될수록 그 위세는 더욱 거세지다 못해 이제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기본 목표가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아예 성평등으로 전환될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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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박가사, 육아는 사실인가? OECD는 무보수 근로(가사일) 시간만 따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 근로 시간을 같이 나란히 조사한다. 그리고 이 둘을 합친 남녀 간 총근로시간을 함께 산출한다. 가사시간을 포함한 한국 남성의 의 총근로시간은 468시간으로 OECD 대부분 국가의 남성 근로 시간보다 길다. 한국의 남녀 간 총근로시간은 불과 16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이는 OECD 평균 26분보다도 10분 짧은 것이다. 더욱이 무보수 근로(가사) 시간에는 쇼핑, 자원봉사 같은 일도 포함된다. 남자 임금 근로 시간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같은 근로 시간이라 하더라도 남자의 근로 강도는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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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2000년도 합계출산율 1.5명으로 바닥을 쳤지만, 10년 후인 2010년 1.98명으로 드라마틱한 출산율 반등을 이뤘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20년 현재 출산율은 다시 1.66명으로 주저앉았다. 노르웨이 또한 마찬가지다. 2009년 1.9명을 넘어선 합계출산율은 2020년 1.48명으로 곤두박질쳤다. 핀란드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2010년 1.87명을 기록했지만, 2019년 1.35명으로 추락했다. 북유럽 국가들의 출산복지 정책에 어떤 변화도 없었으나,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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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로 시간과 출산율 간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려면 이를 입증할 경험적 증거를 제시해야겠지만, 그런 자료는 전혀 없다. 한국의 연간근로 시간은 1990년 2,677시간에서 꾸준히 하락하여 2021년 현재 1,908시간으로 약 30년간 무려 700시간이 넘게 줄어들었다. 2011~2017년 한국의 주당 근로 시간은 4.5% 감소했는데, OECD 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주당 52시간 근로제가 법제화가 된 이후로 근로 시간은 한층 더 적어질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근로 시간은 꾸준히 감소해 왔고, 같은 기간 출산율도 최대 폭으로 떨어졌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근로 시간이 짧아질수록 출산율은 하락한다고 주장해야 맞지 않을까? 정부· 언론· 학계가 출산율 저하 원인에 대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진단하는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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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자들이 소득이 증가함에도 출산율이 높지 않게 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양육에 있어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전략을 사용함에 따라 자녀의 보육과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많이 늘어났다.
②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으로 인해, 자녀를 양육하는 데서 오는 보람과 기쁨 못지않게 여성 자신의 자아실현과 여가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이 높아졌으며, 여성의 소득이 증가할수록 기회비용이 늘어남에 따라 아이를 덜 가지게 된다.
③ 페미니즘 영향으로 여성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어 양육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하락하였다.
④ 보육에 대한 남성의 책임이 강화되면서, 남편들도 자녀 출산에 소극성을 띠게 되었다.
⑤ 도시 생활이 보편화되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자녀의 부양에 노후를 기대할 수 없는 부모들은 출산을 최소화하는 대신 자신들 미래에 대비하는 데 더 많은 투자를 기울이려고 한다.
자녀를 적게 출산하려는 원인이 이처럼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중첩되어 작용한다면, 보육료 절감 정책이 왜 출산율 제고에 별반 효용이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정을 투입하면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흡사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제품을 얻는다는 사고방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런 막가파식 출산 정책으로 인해 출산율 제고에는 전혀 효과 없이 재정만 탕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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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산율 저하를 불러오는 두 번째 원인인 미혼 현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현재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바로 이 미혼 인구가 급증한 것이 가장 결정적 원인이기도 하다. 미혼 현상의 심각성은 수치가 극명히 보여준다. 2020년 기준으로 30대 남성은 50.8%, 여성은 33.6%가 미혼이다. 이는 1990년 30대 남성 9.5%, 여성 4.1%였던데 비해 무려 각각 5배에서 8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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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이 적은 남성의 혼인율 감소는 갈수록 그 양상이 심각해진다. 2008년만 하더라도 소득 하위 10% 남성의 절반 이상인 57%가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지난 2018년도에는 20%로 급감했다. 그야말로 남성들은 ‘유전결혼, 무전미혼’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되어 버렸다. 대학 진학률에 있어서 이제 여성은 남성을 넘어선 지 오래다. 2005년도 대학 진학률에서 남자 73.2%, 여자 73.6%로 남녀 진학률이 역전된 이후로 남녀 간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져, 2021년도에는 남자의 76.8%, 여자는 81.6%가 대학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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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한 여성은 최소한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지위의 남성을 배우자로 찾기 마련이다. 앞서 설명한 상승혼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과 학벌에서 자신들이 차지한 비중만큼 선호하는 남성의 비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남성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므로, 상위 남성의 선택 범위는 더 넓고 다양해진다. 결국 상층의 여성일수록 선택할 남성은 더욱 구하기 어려운 반면, 상층의 남성은 선택할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앞서 소개한 조사에서 드러나듯이 여성은 미혼 연령이 높아지더라도 배우자의 경제적 조건에 대한 태도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미혼 여성의 경우 자신의 기대치에 맞는 배우자를 찾지 못할 경우에 눈을 낮추기보다는 차라리 혼인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 p. 112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 질문을 할 수 있다. 여성의 상승혼 본성이 보편적이며, 여성의 고학력화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일반적 현상이라면, 왜 한국에서는 미혼 현상이 더 유별나게 높은가?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질이 작용하게 된다.
--- p.112
한국의 전통 사회는 쌀농사에서 비롯된 집단주의와 위계, 위신 문화가 유달리 발달된 사회였다. 조선은 이런 위계, 위신 문화가 정점에 달한 사회로서 엄격한 상하 구분 하에 가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위신을 내세우는 양반의 정신세계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현대 시기에 들어서도 양반의 정신문화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개화기 때부터 해방 후 농지개혁까지 국민들 대다수는 양반 정체성 획득에 열성이었으며, 문화적 신분으로서 양반의 지위를 얻었다. 양반 신분 감각은 재산, 직업, 학력 등으로 전환되었을 뿐, 위계와 위신을 병적으로 추구하는 양반의 정신세계는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발현되는 극단적 물질주의는 극단적 위신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한국의 경제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물질에 대한 집착이 좀체 완화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배우자 선택이 지위재 구매 양상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한국 사회의 특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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