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마주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비로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결국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동안 또 다른 생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삶이 있다면 죽음도 있고, 죽음이 있다면 삶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양면성을 매일 경험한다.
프랭클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힘들고 불안하더라도 수용소를 나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꿈과 계획이 있다면, 그 상황이 아무리 시궁창 같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와 명예를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인가, 아니면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인가?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 p.20,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게 한 단 하나의 원동력」 중에서
《장자》에는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데, 대표로 제18편 〈지락〉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느 날 장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빈 해골을 발견했다. 깡마르고 마른 해골은 형체만 있을 뿐이었다. 장자가 말채찍으로 해골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삶을 탐하다가 도리를 잃어 이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나라를 망친 일로 도끼로 처형을 당해 이렇게 된 것인가? (중략) 아니면 나이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가?”
장자는 약간 미친 사람처럼 해골과 대화를 한 후 그 해골을 베고 잠들었다. 그런데 해골이 꿈에 나타났다.
“죽으면 군주도 없고 신하도 없고 사계절도 없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머무르니, 왕의 즐거움도 이를 넘어설 수 없네.”
“만약 그대의 몸을 살아나게 하고 뼈와 살과 피부를 만들어 부모와 처자식과 친구들에게 돌아가게 한다면 그렇겠는가?”
“내가 어찌 (저승에서) 왕 노릇 하는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속세의 고통을 갖겠는가?”
--- p.126-127, 「장자가 해골과 대화하며 깨달은 것」 중에서
장자는 아내가 죽자, 그의 장례식에서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을 본 절친한 친구인 혜자가 말했다. “자네 자식을 키우고 함께 늙어간 아내가 죽었는데 곡은 안하고 오히려 노래를 부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친구가 이렇게 질책을 하자 장자는 이렇게 답변을 했다.
“그렇지 않네. 처음엔 나라고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태어나기 이전을 생각해 보면 본래 삶이 없었고, 형체도 없고, 기(氣)도 없었네. 황홀한 것 사이에 섞이고 변해서 기가 있게 되었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있게 되었다네. 지금 또 아내가 변해서 죽음에 이른 것이네.”
그러면서 그는 이 모든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운행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면 당연히 마음이 아프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비록 겉으로는 초연한 척했지만, 장자의 마음도 찢어지게 아팠다. 처음에 장자도 ‘아독하능무개연(我獨何能無槪然)’, 즉 나 홀로 어찌 슬픈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인정했다. 개(槪)는 보통 ‘대개’할 때 쓰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개탄하다’라고 할 때 쓰이는 단어다.
--- p.207, 「장자는 왜 아내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렀을까?」 중에서
소크라테스가 남긴 수많은 명언 중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떠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니다. 나는 죽기 위해서 떠나고 당신은 살기 위해서 떠날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것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서 살고,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가장 중요한 완결점임에 틀림없다. 살아 있다는 것이 꼭 인생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삶은 중요하지만, 그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헛되이 낭비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나중에 죽음을맞이하더라도 후회와 회한, 걱정과 원망이 가득한 채로 조용히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써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켰고, 수많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안겼다. 그는 죽음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고발한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에 관심을 쏟지 않아서 전혀 쓸모없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쓸모가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착각하지 말라고 이들을(아테네 시민) 꾸짖어 주세요”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엄격하게 법의 잣대를 들이댄 것처럼, 후대에도 사람들이 ‘미덕’보다는 ‘재물’에 더 눈독을 들인다면 이를 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자신의 철학을 전달함으로서 그는 떳떳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 p.255-256, 「소크라테스가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말해 준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