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마다 이른바 ‘유럽중심주의’와 ‘서구 문명’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토록 광범위한 부분을 아울러야 했던 터라 서사를 유럽 고유의 경계선 너머까지 확장하기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슬람, 식민주의, 유럽의 해외영토처럼 유럽의 역사에 딸린 주제들이 매우 막중한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실만큼은 시의적절하게 드러냈다. 동유럽의 정세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부각했다. 맥락에 들어맞는 경우, 유럽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친 주된 테마 속에 동유럽의 이야기도 함께 넣었다.
---「서문 8쪽」중에서
에우로페는 애초 호기심을 갖지 말아야 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에우로페의 호기심은 새 문명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종국에 이 문명은 그녀의 이름을 따 그 영역을 반도 전체로 퍼져나가게 된다.
---「에우로페의 전설 23쪽」중에서
‘유럽(Europe)’은 비교적 근대에 생겨난 착상이다. 이것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에 일어난 복잡한 지적 과정을 거치면 원래 있던 ‘기독교왕국(Christendom)’이라는 개념을 서서히 대체해갔다. 하지만 그 결정적 시점은 수 세대의 종교적 갈등을 거친 다음인 1700년대 전후 수십 년이었다.
---「서론 33쪽」중에서
그렇기는 해도 물리적 특성 면에서 유럽이라는 곳간에는 처음부터 갖가지 장점이 그득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지형, 기후, 지질, 동물상 動物相, fauna의 요소가 잘 맞물려 아늑한 환경이 조성됐으며, 이 점은 유럽의 발달을 이해하고자 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다.
---「1장 90쪽」중에서
그런데 300∼400년밖에 걸리지 않아 그리스는 인간의 노고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숨 막힐 만큼 놀라운 성취를 이룩해냈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는, 유럽사에서 이렇게나 역동적인 에너지가 분출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는, 분명,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 발전해나간 곳은 아니었다. 화르르 불붙듯 순식간에 일어난 곳이 그리스다.
---「2장 150쪽」중에서
확실한 것은, 거의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로마인의 이 ‘영토욕’을 제쳐두고는 이른바 로마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로마인들이 당대에 가장 신경을 쓴 부분도 조직화, 자원개발, 영토 방어였다. 아무래도 라티움이라는 비옥한 평원지대에서 출발한 것이 땅을 위주로 한 정착 생활, 사유재산, 경제, 행정, 나아가 땅에 기반을 둔 사회를 만들어내는 로마인의 습관과 기술력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3장 209∼210쪽」중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등장하고 약 4세기가 흐른 끝에 드디어 유럽이라는 실체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이때는 유럽 반도의 이런저런 민족이 저마다 영구히 눌러살 고향땅을 찾으려 힘겨운 노정에 오른 바로 그 시기였다. 이슬람교가 주변을 마치 차벽처럼 에워싼 가운데 ‘기독교왕국’은 형성됐고, 끝끝내 남아 있는 로마의 땅도 이 공동체 안에서는 이제 수많은 주권국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아직 이 공동체에 “유럽”이라는 말을 쓴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유럽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것만은 거의 기정사실로 보아도 거의 틀림이 없다.
---「4장 378쪽」중에서
메디움 아이붐(medium aevum) 곧 “중세(the Middle Age)”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독실한 기독교도들로,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당대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끼어 있다는 뜻에서 그런 말을 썼다. 이 말이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된 것은 훨씬 후대에 들어서였다. 르네상스 시대 학자들은 15세기에 접어들며, 고대가 쇠락하고 자신들 시대에 고전문화가 부흥하는 중간 시기를 “중세”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5장 393쪽」중에서
이와 같은 상황인 만큼, 이때를 두고 중세의 땅거미가 점점 내려앉기 시작했다는 식의 비유를 쓰는 것은 가급적 삼가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한다. 그보다는 당대인들로서는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위기가 장기간 지속된 시기로 보는 편이 아마도 더 정확할 것이다. 언젠간 새벽이 밝아온다는 인식 같은 것은 없었다. 중세 후기의 유럽인들은 과연 여러 의미에서 전염병이 낳은 자식들이라 할 만했다.
---「6장 506쪽」중에서
중세 후기에는 삶에 대한 체념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도 기독교왕국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이제 고령에 접어든 비잔티움제국은 영토의 많은 부분이 떨어져나간 채 그 나머지만 애처롭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은 다른 지역들을 이끌기는커녕, 자국 안에서 막강한 힘을 떨치는 신민들조차 제어하지 못했다. 교황권은 수렁에라도 빠진 듯 다른 정치세력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봉건적 특수주의는 점차 도를 더해, 이제는 도시며 군주들이 각자도생하려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형국이었다. 당시 세상을 지배한 것은 도적떼, 미신, 그리고 전염병이었다.
---「6장 505쪽」중에서
그렇다고 해도 귀가 얇은 독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세상 역시 점괘, 점성술, 기적, 주술, 마술, 민간요법, 유령, 길흉, 요정을 믿은 세상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어쨌거나 ‘근대 초기(Early Modern Period)’에는 근대적 색채가 그렇게까지 짙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전에 없던 신선한 씨앗들이 당대에 새로 뿌려진 것은 맞지만, 그것은 뒤에 이어질 계몽주의보다는 앞서 있었던 중세주의와 더 많은 공통점이 있었을 공산이 크다.
---「7장 612쪽」중에서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라는 명칭은 이 말이 순진한 발상에서 지어졌다는 인상을 풍긴다. 당대의 숱한 유럽의 지식인들이 인간의 다른 기능들은 모조리 제쳐두고 다 같이 단 한 가지의 기능?즉 이성?에만 그토록 무게를 두었다는 사실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별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그 순진성이 도를 지나쳐 추락하는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끔찍한 혁명기라는 형태로 찾아온 이 추락은 이성의 시대가 종국에는 맞닥뜨릴 수밖에 없던 현실이었다고.
---「8장 755쪽」중에서
프랑스혁명으로 말미암아 유럽은 그때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어느 때보다 심원하고 또 도무지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위기로 인한 혼란과 전쟁 그리고 어지러운 혁신들을 수습하는 데 유럽은 꼬박 30년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 파리를 진앙으로 한 이 위기의 충격파는 유럽 대륙의 가장 후미진 곳에까지 구석구석 미쳤다. 포르투갈 해안에서 러시아의 오지까지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에서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충격파가 들이닥쳤고, 그 충격파를 뒤따라 흰색과 청색의 군 제복에 빨간색 모표가 달린 모자를 쓴 병사들이 들어와 ‘자유, 평등, 우애’를 입에 올렸다.
---「9장 886쪽」중에서
세기의 유럽과 관련해서는 과거 알려진 어떤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돌아가는 역동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을 뒤흔든 힘(첨단기술의 힘, 경제적 힘, 문화적 힘, 대륙 간의 힘)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을 만큼 강력했다. 당대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상징들도 기관차, 가스시설, 전기발전기 등 유럽에서 만들어져 나온 엔진들이었다.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 힘 역시 그 자체의 좋은 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와 같은 의식은 ‘적자생존’ 원칙이 주로 표명된 진화에 대한 일반 대중의 견해에서도, 혹은 가장 강한 계층이 승리함을 강조한 역사적 유물론에서도, 초인 숭배에서도, 혹은 제국주의의 이론과 그 실행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10장 985쪽」중에서
20세기 유럽은 그 누구보다 악랄한 야만족이라도 깜짝 놀라게 했을 만큼의 대단한 야만성의 그림자가 뒤덮고 있었다. 건설적 변화의 방편들이 이전에 알려진 모든 것을 능가했을 때, 유럽인들은 그 모든 과거의 격변보다 더 많은 인간을 살상한 일련의 분쟁 속으로 빠져들었다. 특히 1914∼1918년과 1939∼1945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었으며 지구 구석구석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들 전쟁의 주된 구심점이 유럽에 있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1장 1155쪽」중에서
유럽은 가까운 장래에 온전하게 통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지난 수 세대보다는 덜 분할될 가능성도 분명 있기는 하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내준다면, 유럽을 가르고 있는 물리적·심리적 장벽은 살아 있는 기억 속의 그 어느 때보다 덜 가혹한 모습일 것이다. 에우로페가 등에 올라탄다. “미풍에 옷자락을 나부끼며.”
---「12장 1456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