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말이야. 꿈의 파편은 사람들이 꿈을 꾸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힘들어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파편 조각들이지.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 꿈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단다. 기억의 파편은 사람들의 기억을 평생 간직할 수 없거든.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거대한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게 될 거야. 흔히들 인간은 평생 두뇌의 1퍼센트만 사용한다고 하지? 99퍼센트를 안 쓰는 게 아니란다. 1퍼센트로 사용한 모든 두뇌의 데이터를 가공하고, 세척하고, 분류하고, 청소하고 그러면서 어떤 기억들은 뇌세포와 함께 동반 소멸하게끔 되어 있지. 그러다 보니 1퍼센트를 사용하지만 99퍼센트는 1퍼센트 사용의 뒷감당을 하면서 인간은 평생 뇌를 사용하는 것이란다. 기억의 파편 박스는 이런 과정에서 나오는 기억의 파편들을 담아 놓은 상자지. 물론 기억의 파편은 꿈의 파편과 달리 아픈 기억, 소중한 기억, 기쁜 기억, 잊고 싶은 기억, 보고 싶은 기억 등등 그 조각의 형태가 너무나 다양하여 분류하기가 힘들지. 어떤 기억은 꿈으로 재활용되기도 하고 말이야.”
--- pp.22~23
마드모아젤 보테가는 책상 위에 올려진 신제품인 아트 오브 굿라이프 콜렉션을 바라보면서 전화를 끊었다. 한정판 5,000개를 만들기 위해 압구정 한 지역 전체의 50~60대 여성의 2주간의 금융기억의 파편을 수집하여 인트레치아토를 만드는 데 가죽꼬임의 컬래버레이션 재료로 사용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창의적이지만 무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특별 주문 제작하는 5,000개의 기억가방은 인생을 바꿔줘야 하는 수많은 사연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선물하는 케어링링 그룹의 역작이다. 금수저 마님들의 금융기억의 파편을 모아서 흙수저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고, 직장에서 성공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집안을 일으키고, 효도하고, 사랑하고 다시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든 성공소스를 담아 50년 기한의 시간소스와 함께 묶어서 주인과 연결시켜주는 이번 아트 오브 굿라이프 콜렉션은 기획 자체부터 신선했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기억 파편들이 젊은이들에게서 많이 나오는 시대에 마치 청량한 바람과 같은 삶의 훈풍을 실어다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 pp.40~41
몇십 년 전부터 인간은 본인의 나쁜 식습관과 활동습관, 유해환경의 노출, 공기와 물의 오염 등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들이 가진 방어체계인 면역세포를 약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서 뇌의 생태 환경이 나빠지면서 마이크로글리아족이 더욱 사냥하기 좋은 상태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기억사냥물을 뉴클레아스 기억저장위원회에 고철 팔듯이 팔아서 버는 교역량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서는 과거 인류에게서 보지 못한 엄청난 양의 정신 호르몬 분비물질과 스트레스라는 신종 교란 신호가 나오는 추세이다. 이는 마이크로글리아족의 사냥 신호를 자극하여 더욱더 빈번하고 강한 사냥 강도를 가지고 인간의 시냅스를 공격하게 만든다. 이때 사냥하면서 쳐내는 시냅스 가지들로 인해 사람들은 인지기능 감퇴, 알츠하이머, 우울증 등 다양한 뇌 관련 질환을 앓게 된다. 이 모든 게 마이크로글리아족의 활동 결과물에 따른 후유증인 것인데 인간은 아직도 이 비밀을 모르고 살고 있다
--- pp.66~67
“박사님, 쉽게 생각해 보세요. 내 몸속에 원치 않은 유리 파편이 들어왔는데 혈관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이 녀석은 자꾸 변하면서 날카로워지고 혈관을 찔러요. 여기저기 상처가 나겠죠. 그러다 혈관 내 어느 거름망에 걸리면 한꺼번에 모여들어서 혈관을 막아서 터트려 버려요. 이러한 구조를 가진 프리온 단백질이 뇌의 인지질과 구석구석에 쌓여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뇌가 스펀지가 되겠죠. 기억의 파편들은 연속성을 다 잃고 조각조각 끊어질 것이고 전송되는 기억도 불량화가 될 것입니다. 원인은 인간들의 몸에 들어가는 무언가 인풋되는 것에 프리온 단백질이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현지조사팀이 있는 곳으로 가서 생활환경을 같이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는 박사님이 주신 자료와 이 내용을 정리해서 뉴클레아스 심해기억저장위원회에 보고하고 즉시 박사님과 현장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 p.126
“앞으로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더 돌려 봐야 하겠지만 창조자 위원회는 우주생성의 대명제를 항상 준수하도록 저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주에는 대질서가 있고 대질서 안에서 지구는 다양한 종의 생명이 공존하는 행성입니다. 우주 안에 살아있는 몇 안 되는 행성이기도 합니다. 지구의 대명제는 지구 자체가 행성으로서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지구상의 지배종족인 인간이 멸종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주의 대질서를 유지할 의무가 있고 뉴클레아스 심해기억저장위원회는 표면적으로 기억전송을 담당하고 다음 생명의 기초기억 데이터를 생성하는 역할을 하지만 숨겨진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지구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균형과 대질서의 유지입니다.”
--- p.170
“이 부분이 인간의 뇌 중앙에 위치한 해마(Hippocampus)입니다. 인간들은 모든 기억을 뇌를 전송체로 이용하여 뉴클레아스 심해기억저장소로 전송하지만 딱 한 번 겪은 일회적 기억은 전송하지 않고 해마에 저장해 둡니다. 저희의 이번 임무는 각 나라별로 존재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천이 되는 다섯 가지 탄생 신물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현재 급속하게 자기 분화를 해 나가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여 각 나라별, 인종별로 스스로 독립분화를 이루는 단계까지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코로나바이러스를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여러 종으로 분화한 후에 세력을 넓힌 다음 지배종이 되기 위해 다른 숙주들을 감염시키는 영역확장에 돌입하게 되는 지배종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물론 전쟁터는 인간들의 몸이겠지요. 지금 숙주로 사용해서 분화하고 있으니까요.”
--- p.287
“저희가 뉴클레아스 심해기억저장위원회에서 받은 요청은 소금호수 안에 흩어져 있는 원시시대부터 고생대까지 박테리아의 유전자 표본에 대한 분석 코드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박테리아의 탄생에 관한 추적을 통해 원시 박테리아의 최초 유전자 염기서열 데이터 코드가 필요하다고 이해했는데요.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미대륙 중에서도 이곳 유타주에 남아 있는 수많은 원시시대부터 고생대의 표본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들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찾는 유전자 코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탄생에 관련한 다양한 바이러스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내서 그 유전자 코드를 통한 코로나바이러스 집단에 대한 명령코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내용은 제가 드리는 이 기억 이식 에스프레소 캡슐을 콜라에 부어서 한 번 드셔 보시면 모든 정보가 이식될 것입니다.”
--- p.369
**뉴클레아스 심해기억저장위원회 특별위원회의 명령**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마드모아젤 보테가는 즉시 폼페이 유적(Pompeii Archaeological Site)으로 떠나서 코로나족과의 대타협을 위해 준비하는 다섯 가지 탄생 신물의 세 번째 단서를 확보하십시오. 단서는 화산 폭발로 굳어 버린 폼페이의 유적 안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유전 코드입니다. 폼페이의 유적까지 안내는 내일 아침 9시에 중앙역 광장의 허츠 렌터카(Hertz Rent a Car) 데스크에 가면 접촉자가 기다릴 것입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지난번 도산대로에서 일어난 ‘아트 오브 굿 라이프 콜렉션’을 통한 강남 지역의 금융 기억을 통째로 전송하여 젊은 흙수저 친구들을 도와준 무단 행동에 대한 벌점을 지울 것입니다. 이상”
--- p.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