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를 구하기 위한 참고로서 도시의 어원을 생각해 보자. 도(都)의 오랜 의미는 성벽으로 둘러싸여진 읍(큰 촌락)을 의미하며, 동일 발음인 도(堵)는 성벽을 의미한다. 『사기(史記, 사마천, BC 91년 완성)』 진(秦) 본기(本紀)에서 도(都)는 제왕이 살고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여진 큰 읍을 의미한다.
도시(都市)라는 단어의 문헌상 최고(最古)기록은 『한서(漢書, 반고, 82년 경)』의 식화지(食貨志) 상(上)에 나오는데 도(都)는 황제의 주거지로 문무 양관이 주재하는 곳으로 정치중심지라는 것을 의미하며, 시(市)는 시장으로서 상품거래의 장소를 의미한다. 요컨대 도시는 정치와 행정,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도시라는 단어에는 도시가 수행하는 기능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도시를 의미하는 영어 Urban의 어원은 라틴어 urbs, urbis에서 파생되었다. 역시 방어 및 공격수단으로서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취락을 의미하며 중심 건물은 사원과 궁전이다. 그러나 나일강 유역의 도시들은 성벽이 없는 무방비 도시이다. 이는 산지와 사막에 둘러싸인 자연조건에 의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파라오에 대한 종교적 신앙과 자발적 지지를 기초로 통일지배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컨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의 의미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대규모의 취락으로서 정치·행정·상업의 중심지임을 암시하고 있다.
도시의 지리학적 정의
도시는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시간에 따른 변화도 많기 때문에 간단히 정의내리기는 용이하지 않다. 그래도 많은 지리학자가 도시를 정의하려 시도했으므로 대다수의 지리학자가 받아들이고 있는 정의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수의 인구가 좁은 면적에 밀집하여 인구밀도가 높고, 연속적인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둘째, 농업·임업·수산업 등의 1차 산업 종사자 비율이 낮고 제조업·상업·서비스업 등 제 2차·제 3차 산업의 종사자 비율이 높다. 즉 도시민은 대부분 다양한 비농업적 활동을 하고 있다. 셋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행정·경제·교육·문화의 중심 역할을 한다.
이 정의는 지리학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지리학은 종합학문으로서 다른 학문들에서 제시되는 많은 정보와 지식을 필요로 하고, 지리학 역시 다른 학문에 활용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지리학은 도시나 도시지역을 연구하는 인문지리학의 한 분야로서, 도시 내에서 전개되는 경제활동, 인간사회의 사회적·문화적 특징, 그리고 정치적 권력관계에 의한 입지적 측면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지리학 외에 도시공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는 사회학·경제학·정치학·역사학·생태학·인류학·고고학·심리학 등 전통적인 학문분야와 도시계획학·건축학·조경학·부동산학·도시공학 등 응용학문분야도 적지 않다. 그만큼 도시가 갖는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도시의 기준
도시의 성격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데다 각 국가별로 도시의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표 1.1), 또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도시의 정의를 내리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가 5만 명 이상이며, 2·3차의 도시적 산업종사자율이 50% 이상인 지역을 시로 규정한다. 인구가 2만 명 이상이고 2·3차의 도시적 산업종사자율이 40% 이상인 지역을 읍으로 규정했다. 1995년 이후 이 기준을 충족하는 시와 인구 2만이상의 읍 2개 이상이고 인구가 5만 이상인 군을 통합하여 인구가 15만인 지역을 도농복합시(도농통합시)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시와 지리적 시
도시는 행정시와 지리적 시로 구별할 수 있다. 도시의 행정구역 경계로 결정되는 고정된 시역을 행정시라 하며, 행정구역 내 모든 면적은 행정시역이다. 통계청이나 도시연감 등에서 볼 수 있는 도시와 관련한 자료는 모두 행정시에 기반한 자료이다. 행정구역 내에서도 건물과 도로 등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시가지화된 지역을 지리적 시라고 한다. 행정시의 경계와 지리적 시의 경계는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행정시의 경계가 지리적 시보다 훨씬 넓기도 하고, 그 반대로 지리적 시가 행정시를 넘어 확대된 경우도 있다.
한국의 행정시는 산과 하천 등의 지형에 의해 경계가 정해졌기 때문에 행정시가 지리적 시보다 월등히 크다. 이렇게 실제의 도시영역이라 할 수 있는 지리적 시보다 행정경계가 크기 때문에 과대경계 도시라고 한다. 반면 미국과 같이 평탄한 지형이 넓게 펼쳐지는 곳에서는 교통로의 발달과 함께 행정경계를 넘어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행정시보다 지리적 시가 더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과소경계도시라 한다. 과소경계 도시의 경우, 특정 행정시 바깥쪽 교외에 사는 주민이라 하더라도 생계유지를 위한 직장은 해당 행정시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부담해야 할 여러 가지 세금은 다른 행정구역에 내게 되므로 해당 행정시의 세금누수가 증가하게 된다.
행정시 내부에서는 혼잡에 따른 서비스의 개선이나 재개발 부담으로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세원으로 기능할 경제력 있는 중산층은 교외로 빠져나가고 열악한 계층이 도시내부에 많이 남아 재정악화가 가속화되면서 도시파산을 선언하는 도시가 미국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지리적 시가 확대됨에 따라 인접지역을 합병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경우 이것은 인접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으면 불가능하다.
행정동과 법정동
행정시의 안에는 하위 조직인 수십 개의 동(洞)으로 구분되어 있다. 동에는 행정동과 법정동이 있다. 주민의 행정업무를 보는 동사무소가 있는 동을 행정동이라 하며, 예부터 존재했던 마을 이름은 법정동으로 남아있다. 하나의 행정동에 여러 개의 법정동이 포함되기도 하고, 하나의 법정동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여러 개의 행정동으로 나뉘기도 한다. 하나의 동 인구가 3만 이상이 되거나 급격한 인구 증가가 예상되는 동은 분동하여 1동·2동·3동 등으로 나뉘는 것이다.
한 동사무소가 관리할 수 있는 주민의 수가 대략 3만 이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광주의 경우 2021년 현재 행정동 97개, 법정동은 202개이다. 법정동은 개수가 변하지 않지만 행정동은 끊임없이 합동 또는 분동되면서 개수가 바뀌어 왔다. 광주의 경우 도심부의 공동화로 도심부의 여러 행정동이 합동되어 도심부는 행정동의 개수가 줄었고, 외곽에서는 택지개발로 인구가 늘면서 분동으로 인해 1동, 2동 등 행정동의 개수가 늘어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도시 연구를 하는데 있어 필요한 자료의 대부분은 행정동 차원에서 수집되어 정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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