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위한 정신적, 물질적 기본기는 부모님으로부터 일정 정도 도움을 받아 준비했어야 한다. S에게 생계를 유지하려면 핸드폰 요금 정도의 비상금은 반드시 준비하라고 누군가는 알려줬어야 한다. 부모든 사회든 그 누군가는 말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어머니까지 돌봐야 했던 S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S의 잘못이 아니라고, 단지 준비가 안 된 것뿐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 p.15
“카드 내역서를 보니까 화요일과 목요일엔 돈을 안 쓰네요. 그날은 새벽부터 직장인반 수업이 있고 오후엔 유치부 수업이 있거든요. 저녁엔 영어 학원에 가요. 일주일 중에서 가장 바쁜 날들이죠. 결국 바빠서 돈 쓸 시간이 없는 거네요. 그렇다면 금요일엔 아무래도 전에 관뒀던 개인교습을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그리고 수업 끝나고 편의점을 자주 가는데 제가 2+1에 좀약한 편이에요. 엄마랑 저랑 둘밖에 없는데…… 2+1을 사면 덤으로 뭔가를 얻는 기분이라 필요하지도 않은데 사게 돼요. 생각보다 편의점 지출이 많네요. 참, 저 지난번에 언니랑 만나고 나서 충동구매로 사놨던 옷이랑 가방들 중고 숍에 팔아서 이번 달 생활비는 마련해 놨어요. 집에 안 쓰는 코펠이랑 소형가전도 아파트 중고장터에 올려서 3만원 받았어요. 다음에는‘당근마켓’도 이용해 보려고요.”
--- p.21
지금처럼 냉장고가 고장 나는 위기의 순간이 발생했을 때 H를 지켜줄 첫 번째 저축통장으로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을 선택했다. 1,000원이라는 소액으로 시작하는 적금 상품이다. 1년 적금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6개월만 저축을 해보는 상품이기도 하다. 1,0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1만원 중 금액을 선택하면 매주 같은 금액만큼 증액하여 26주간 저축하는 시스템이다. 로그인 할 때 공인인증서 입력도 필요 없이 패턴 하나로 로그인이 가능하다. 여유가 있다면 추가납입도 가능하다. 출금 후 잔액이 10만 원 이상이면 긴급출금도 2회 가능하다.
--- p.41
나는 H를 만난 후부터 정비소의 콘셉트와 타깃층을 고민했다. 가끔 자동차 정기검진이나 세차를 하러 갈 때 여성으로서 느꼈던 불편했던 경험들이 생각났다. 남자들이 가득한 정비소에 여자 혼자 들어가기 불편했던 점, 그리고 자동차에 대해남자보다 지식이 부족해서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H에게 자동차 정비소를 여성들을 위한 콘셉트로 창업하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정비소에 가면 앉아 있기가 불편하다’, ‘차를 마시면서 내 차가 고쳐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싶다’는 등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나는 차가 고쳐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그럴 환경이 되지 않아 주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렸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H는 정비소와 커피숍을 동시에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 이상 H에게서 냉장고 살 돈이 없어 생존의 위협을 받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p.45~46
앞으로는 SNS에 올리는 글이나 연결된 친구, 생활습관도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구글 출신 빅데이터 전문가들과 금융사의 대출 전문가들이 창업한 미국의 ‘제스트파이낸스(ZestFinance)’와 같은 대출 회사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시장에서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비금융정보인 동호회 활동, 인터넷 접속 시간, SNS 포스팅 주제 등 7만여 개의 변수를 분석해 개인의 신용도를 재평가한다. 기존 시용 점수보다 40퍼센트 이상 상향 평가되고, 평가 시간도1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정보들이중요 데이터로 평가될 것이다. 평소 간편 결제 시스템을 주로 이용하는 K에겐 비금융정보도 신용등급을 지키기 위한 관리대상이다.
--- p.72~73
Q는 만날 때마다 ‘일해서 뭐하나?’, ‘살아서 뭐하나?’라는 부정적인 말들을 자주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를 5포 세대, 여기에 더해 희망과 꿈까지 포기한 세대를 7포 세대, 다 포기한 세대를 N포 세대라고 부른다. 그나마 경제 활동을 포기하지 않은 Q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Q는 매사에 부정적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제 불행을 잊어보려고 더 불행한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서 봤어요. 영상 주인공들이 나보다 더 비참하게 살아가는 걸 보면서 위안을 받았죠. 뉴스도 부정적인 뉴스가 더 눈에 띄더라고요. 자연재해, 전쟁, 정치 부패, 노사문제, 부당해고, 독거사, 미성년자 문제 등이요. SNS에서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사귀었지만 부정적인 정보도 공유하며, 저도 같이 부정적으로 변해갔어요. 이제는 ‘일해서 뭐하나?’가 아니라, ‘살아서 뭐하나? 다 포기하고 죽고 싶다.’라는 불행한 생각까지 들 정도예요.”
---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