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상상을 초월한 임상옥의 미친 짓에 기가 질렸고, 두 번째로는 천하의 활인초(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풀)를 태워 버리는 것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그런 다음에야 장삿속이 드러났다. ‘임상옥의 인삼을 못 사면 올 일 년 동안 중국엔 인삼이 없다.’ 중국 상인들은 임상옥에게 뛰어들었다.
“임 대인, 왜 이러시오? 이 천하 명약이 재가 되면….”
“천하 명약이라도 명약을 몰라보는 사람에게는 안 팔겠소.”
“우리가 인삼을 몰라봤다니요. 어서 불을 끄도록 이르시오!”
“당신들에게는 안 팔겠소.”
“값은 얼마든지 내리다! 어서 불이나 끄시오.”
이렇게 해서 임상옥과 북경 장사꾼들의 싸움은 쉽게 승부가 나고 말았다.
---「임상옥, 인삼으로 한 시대를 평정한 무역왕」중에서
백 과부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이튿날부터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대개 청상이 되면 시름을 잊기 위해 일을 했고 잡념과 설움을 떨쳐 버리려고 땀을 흘렸다. 그래야 기나긴 독수공방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평양 변두리인 제 집 앞뒤 마당에 봉숭아 씨를 뿌려 모종을 하고 꽃이 핀 뒤 씨를 받아 닷새 만에 열리는 장에다 내다 팔았다. 질동이를 머리에 이고 음식점을 돌며 뜨물 찌꺼기를 거두어 돼지를 길렀고 남는 음식 찌꺼기는 다른 집에 팔아 돈을 모았다. 틈나는 대로 삯바느질, 콩나물 기르기 등 품삯을 준다면 아무리 궂은일이라도 마다 않고 일을 했다. 백 과부는 돈 되는 것은 무엇이나 내다 팔았고 장날이 돌아올 적에는 무명베 한 필을 짤 만큼의 목화를 사 왔다.
그날 밤에 씨아로 목화씨를 발라내어선 기름을 짜서 팔았다. 이튿날 새벽부터 이 무명을 물레로 실을 뽑아, 이틀 뒤면 베 한 필 길이로 날아 겻불을 피우고 베를 매었다. 그날 밤부터 베틀에 얹어 하루 밤낮을 뚝딱거려 쉬지 않고 베를 짜면 한 필의 무명이 되었다. 다음 장날 이 무명을 내다 팔고 또 목화를 사오고 나머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한 푼 두 푼 엽전이 모이면 항아리에 담아 부엌에 묻었고 이것이 모여 목돈이 되고 이 돈꿰미가 남몰래 늘어 가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이러구러 지내는 동안 백 과부의 나이 서른 살이 넘었고, 근검절약 10여 년 모은 돈으로 그녀는 평양 근교의 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흉년이 들거나 멀리 외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토지는 헐값으로 살 수 있었기에 그의 재산은 몇 해 만에 거부 소리를 들을 만큼 불어났다. 백 과부는 실상 알부자가 되었건만 그가 먹고 입는 자봉(自奉)은 예대로 형편없었다.
---「백선행, 꾸밈없는 과부의 끊임없는 선행」중에서
최남은 실망하지 않았다. 남이 보기에는 계속 ‘괴짜짓’만 하면서도 대금을 노리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이번에 시도한 것은 ‘10전 균일시(十錢均一市)’라는 새로운 상술이었다. 10전 균일시는 그때 미국에서 막 탄생해서 인기를 끌고 있던 ‘10cent store’의 방법을 재빨리 수입해서 시도한 것이다. 즉 온갖 ‘10전짜리 상품’만 늘어놓고 파는 것으로 그야말로 싼 상품을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이었다.
조선 사람이야 항상 가난하다. 더구나 식민지 수탈정책에 따라 생계가 점점 쪼들리고 일용품을 생산하던 공장들이 점차 군수품으로 전환해 가는 시기였다. 싸야 한다, 값이 싸야 잘 팔린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수준은 최남의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관습적이고 보수적인 데가 있어서 습관화된 일상성을 깨기가 쉽지 않다.
---「최남, 두 발 앞선 신기술의 귀재」중에서
최부잣집은 19세기 조정의 부패와 일본에 의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덩달아 무너져 갔다. 11대 최부자 최현식은 활빈당에 의해 최부잣집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최부잣집의 도움을 받았던 농민과 거지들이 스스로 말하지 않고도 활빈당을 물리쳐 줬으며, 무사히 이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12대 최부자 최준(崔浚)은 한일병합조약이 되면서, 최준은 일제강점기에도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세워 안희제(安熙濟)와 운영하며 임시정부 재정부장을 맡아 독립운동 자금줄 역할을 했으며, 그 증거 문서들이 2018년 고택 광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엔 전 재산을 모두 털어 대구대학(현재의 영남대학교)과 계림학숙을 세웠다. 이로써 최부잣집은 12대 300년의 역사를 이어오다 막을 내렸다.
---「경주 최부자, 12대를 거쳐 300년을 이어온 부의 비밀」중에서
우리는 부자를 말할 때 흔히 못된 졸부를 떠올리게 된다. 갑자기 투기나 나쁜 짓으로 돈을 모아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품격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인간 같지도 않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정한 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주위를 두루 살필 줄 아는 최부자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쉽다.
절대 흉년에는 재산을 늘이지 말라, 찾아오는 과객은 후하게 대접하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모으지 말라 등은 아무나 실천할 수 없는 원칙을 담은 최부자의 철학이다. 따라서 대대로 내려오는 최부잣집의 육훈과 육연은 단순한 부의 기술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을 다지는 원칙으로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품격을 지키는 농축된 지혜다. 자기 대의 자신만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이 대대로 오랫동안 부자를 유지하도록 가훈을 만들어 전승하게 했던 진정한 부자의 아름다운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경주 최부자, 12대를 거쳐 300년을 이어온 부의 비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