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오전 10시 28분, 영광의 순간을 향해 돌진하는 위험천만 레이스에 기어이 탑승한다. 4,000원에 250주 체결. 단돈 몇 만 원이라도 시급 챙기려면 시드가 더 있어야 하지 않겠어? 3,950원에 150주를 더 담았다. 드디어 여우조연상 시상이 시작되자 호가 창은 줍는 자와 던지는 자들이 한데 뒤엉킨 아수라장이 된다.
바로 그 순간, 모두의 염원을 담은 세 글자, 그녀의 이름이 울려 퍼지고 두고두고 회자될 레전드 수상 소감이 이어졌다. 얼른 이 500주를 던지고 단돈 몇 만 원이라도 챙겨 나와야 한다. ‘Yuh-Jung Youn’이 호명되자마자 귀신같이 주가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멸된 재료의 잔 불씨로 시작된 초단타의 긴박한 현장이니 얼른 던지고 나가는 사람이 승자.
큰 욕심 안 부리고 매도가를 걸어놨는데 매도세가 훨씬 세니 지정가에 닿질 못하고 계속 퍼렇게 숫자가 내려앉는 게 아닌가. 아니, 떼돈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는 취재 겸 들어왔고(계속해서 강조해본다) 그니까 이쯤에서 먹고 나가야 하는데…? 화면을 수놓은 브래드 피트의 수려한 외모도, 위트 있고 멋들어진 역대급 수상 소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가야 해, 난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500주를 담가놨단 말이다! 이러다 묶여서 날린 돈이 한 바가지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지금은 단돈 몇 만 원에 미련을 떨 때가 아니란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 「2021 오스카 단타장 현장 취재」 중에서
바른손이앤에이는 이후로도 계속 상을 쳤다. 3,000원대가 4,000원대가 되고 곧이어 5,000원대를 돌파했다. 매일 아침 9시엔 빨간 그래프가 불기둥처럼 치솟았고 네이버 종토방엔 거의 종교 수준의 찬양과 합장이 이어졌다. 마치 영원할 것 같았다. 첫 매수 때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넣지 않은 것이 아쉬워 죽을 정도로, 10년 차 주린이 장부에 찍혀본 적 없던 수익률이 하루가 다르게 갱신됐다.
주식으로 부자 되는 기분이 이런 거려나? 자잘한 스트레스에도 초연해지고, 회사일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인지분리가 가능해졌다. 맘에 드는 남자랑 썸탈 때처럼 기분이 붕 뜨고, 아직 통장에 꽂힌 돈도 없는데 뭔가 스스로에게 보상해주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 큰 시드는 아니지만 수익률이 300% 가까이 오르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2020년 발렌타인데이, 금요일 오후 팀 회의로 여념 없던 그 순간. 그 당시 회의 분위기까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바른손이앤에이 최고점의 그날.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감독의 빛나는 커리어가 샤넬 클래식 백으로 치환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취향과 문화생활의 일환으로, 좋아하는 감독의 커리어와 그 가치에 투자한 찰나의 판단이 세 자리 수익률로 보답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2월 14일 오후 2시경에 전량매도, 수익실현을 했을 시의 가정입니다만….
--- 「봉준호 테마주와 샤넬백」 중에서
나의 첫 주식은 기아차(현재는 ‘기아’)였다. 10년 전 라떼 시절로 돌아가보자면 ‘K 시리즈’의 성공으로 기아차 주식이 한창 고공행진을 하던 때였다. 2011~2012년쯤 60,000~70,000원대를 찍던 기아차 주식이 약간의 숨 고르기에 들어갔을 시점, 주식을 샀다. 50,000원대 후반까지 내려오길래 기회구나 싶어 78주를 주워 담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주가가 떨어져 15년도 초 160,000원대에 현대차 주식 15주를 매수한다. 한창 주가가 날아가던 시점보단 확실히 하향세에 접어든 때였지만 그때의 내가 알 리 없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고 앞으로 아주 긴 시간 동안 주가는 내리막을 걸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세로 고공성장 하던 두 회사의 주식이 아래로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나름 세일가에 샀다 생각했는데 그저 장기 하락세의 초입에 들어가 물렸을 뿐이었단 걸 그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형편없던 수익률은 더 바닥을 쳤다. 코로나 쇼크로 최저점을 찍었던 작년 3월을 기점으로 기아차 주식은 21,000원, 현대차 주식은 65,000원대까지 내려갔다. -60%. 상장폐지를 걱정할 회사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마이너스였다.
코로나가 터지기 2개월 전, 근 10년을 쉬었던 주식을 공교롭게도 다시 시작했다. 그러고는 코로나와 함께 맞은 지난 가을… 어, 이 주식들이 좀 이상하다. 자꾸 오르네 이거?
--- 「진짜 10년을 묻어두었더니」 중에서
주가는 조정을 동반한다. 어느 정도 올랐다 싶으면 조정이 오고, 그러다 날아가는 날이 올 수도, 푹 꺾여 힘을 못 쓰는 때도 있다. 나 역시 버는 날이 있으면 잃는 날이 있다. 하지만 그 돈이 예전처럼 아까워 죽는다거나 잠 못 이루게 억울하진 않다. 그게 주식이니까. 내가 번 돈 역시 누군가의 수익실현 혹은 손절물량인 것이고 계속해서 장부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뒤섞일 것이다. 그런 주식의 생태계를 받아들이고 그저 이 한 몸 맡겨보는 거다. 상투를 잡았거나 크게 물려 있다 해도 이런 주식 시장의 생리를 이해한다면 길게 내다보며 때를 기다리는 게 그리 괴롭지만은 않다.
10년 전 처음 주식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가 거기에 있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는 시선. 초반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주식 자체가 원망스러웠지만 이젠 아니다. 주가는 계속 변화한다. 그 유기적인 움직임을 함께할 기업을 골라 투자하고 그 시간을 덤덤히 버티며 일상을 이어가다 보면 분명 기회는 온다. 잃은 돈을 다른 종목에서 채울 수도 있고, 만약 복구가 안 된다 해도 그 경험은 분명 다음 투자에 도움이 된다.
수익의 모양이 꼭 ‘+예수금’의 형태로만 한정된다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주식이란 하나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 어쩌면 종목 공부나 거래 전략 실습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아닐런지.
--- 「시드 키워 들어가면 왜 상투를 잡힐까?」 중에서
액면분할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카카오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비록 단 1주였지만 392,000원에 들어갔던 카카오는 거래정지 직전 558,000원대 신고가를 찍으며 40%란 어마어마한 수익률에 닿는다. 4월 셋째 주의 메모장 투두리스트엔 난생 처음으로 주식 쇼핑 스케줄이 한 줄 들어갔다. ‘4/15 카카오 액면분할 D-day’. 매수가 알람 걸어두고 틈틈이 짬을 내 주식했지, 이렇게 투두리스트에까지 적어두고 고대한 주식은 또 처음이다.
번뇌는 여기까지. 이렇게 고민한 게 억울해서라도 기필코 한번 들어가봐야겠다. 카카오 이놈들의 액면분할 빅쇼 이벤트에 등판해보기로 다짐한 것이다. 하여, 난생 처음으로 주식 개장 오픈런을 시도한다. 대망의 4월 15일, 장 시작 동시호가 주문을 걸어본 것이다. 매수가를 컨트롤할 수 없는 동시호가를 굳이 걸어볼 일은 여태 없었지만, 액면분할 첫 개장인 이날은 왠지 모를 비장함을 느꼈다. 550,000원짜리가 110,000원이 됐으니 나처럼 사고 싶은 사람이 줄을 설 것만 같고, 그럼 오픈런 정도는 예의 아닌가 싶은 거다.
하여 오전 8시 35분, 동시호가 주문을 넣는다. 우선 딱 3주만. 대망의 9시가 밝자 곧 체결 문자가 도착했다. 체결 금액은 120,500원. 말 그대로 4월 15일의 ‘시가’에 주식을 사게 된 셈이다. 처음 10분 정도는 이 선택에 강력한 확신과 자부심마저 느꼈다. 주가가 미친 듯이 치고 올라가 개장 5분 만에 130,000원대를 뚫은 것이다. 그래그래, 역시 그렇다니까. 오픈런 뛰길 역시 잘했어 하며 121,000원에 3주를 얼른 더 담았다.
--- 「나만 없어 카카오-액면분할」 중에서
꽤 오랜 기간 심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안겨준 주식이 하나 있다. 앞서 언급했던 초록뱀(047820)이다. 중간중간 익절 구간이 오기도 했다. 2,100원대를 살짝 넘었을 때 절반은 분할매도로 소소한 수익을 내기도 했다. 십 몇 만 원쯤 익절을 하고도 이상한 보상심리 때문에 나머지 절반은 매도 버튼이 쉽사리 눌리질 않았다.
영영 기회가 오지 않아 말 그대로 초록뱀에 물린 채 여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때를 기다렸다. 어지간히 신경 긁는 일이 아니었다. 주식도 현금 회전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넣고 빼고 하며 수익을 내는데, 시원하게 팔아버릴 타이밍이 도무지 오질 않는 거다. 단돈 몇 만 원이라도 탈출 시그널이 오면 치사하게 이거 먹고 나가려고 여태 버텼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반년이 흘렀다. 꾸준히 관찰한 결과 이 주식은 물이 들어와도 아주 잠깐, 나처럼 물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지 좀 오른다 싶으면 냅다 던져대는 물량이 많아 좀체 상승하질 못했다. 그 패턴이 하도 반복되다 보니 나 역시 액션을 미룬 채 관망 모드에 들어갔다. 언젠가는 이놈의 섬 탈출하고야 만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 희미한 신호탄 같은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 「물타기로 탈출하기-유상증자」 중에서
주변에 주식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매사 군더더기 없고 특히 감정 선이 심플하다는 것. 나처럼 ‘이때 더 샀어야 했는데, 좀만 묵혔다 팔았으면 재킷을 하나 사는 건데’ 하는 미련 많은 사람들은 같은 기간 같은 돈을 굴리는 데 드는 에너지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후배 하나도 생업과 주식을 병행하는 딱 요즘 세대다. 카페에서 같이 수다를 떨던 중 휴대폰 알림이 울리자 “잠시만요” 하고 틱틱 버튼을 누르더니 다시 대화로 돌아온다. “뭐 했어?” “주식 팔았어요. 오늘 드디어 좀 올랐네요.” “더 먹고 나오지, 안 아까워?” 했더니 벌었는데 뭐가 아깝냐고, 목표수익 먹었으면 자긴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온다는 거다. 아니… 나도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이 잘 안 되니까 그렇지….
자기 성향부터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주가가 좀 떨어져도 의연하게 일상을 날 수 있는 사람인지, 수익은 내가 딱 정한 만큼 먹고 나올 수 있는 성격인지, 연애만 그런 줄 알았는데 돈 앞에선 더 질척거리는 스타일인지. 주식, 그리고 돈 앞에 자기객관화를 해보면 좋겠다.
--- 「내가 주식을 할 상인가-주식 체질 판독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