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RAETH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본문 발췌)라고 한다. 사실.. 난 이 책의 제목을 오랫동안 하이라이스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이라이스를 파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일 거라 멋대로 상상해왔었다. (작가님…죄송합니다...) 그러다 얼마 전 블로그 이웃 쥬디님의 리뷰에서 이 책이 말 그대로 과거를 여행하도록 도와주는 과거 여행사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고, 시간 여행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첫 페이지부터 소설은 히라이스 여행사에서 판매 중인 관광상품을 소개했다. 거기에는 ‘유년 시절’,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 ‘신혼 시절’ 등 자신의 과거를 여행하는 상품도 있고, ‘햄릿의 초연’이나 ‘칭기즈칸 즉위식’, ‘비틀스 데뷔 무대’ 같은 역사적인 순간이나 유명인을 볼 수 있는 과거 여행도 있었다. 이런 여행이 정말 가능하다면 나는 ‘언제’가 가장 그리울까 생각해 보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먹었던 따뜻한 저녁밥, 아무 걱정 없이 놀 거리만 생각하던 어린 시절, 너무나 귀여웠던 아이의 아기 시절도 떠올랐다.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순간들은 모두 그리웠고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소설 속 설정처럼 좋아하는 작가, 화가, 가수의 초연이나 전성기 때의 공연을 보고 싶기도 하다. 상상만으로도 정말 즐겁고 설레는 여행이다.
그렇다면 소설 속 과거 여행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시간대로 떠나게 될까 궁금했다. 즐거운 기억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그 순간의 기쁨을 다시 느끼고 돌아올까, 아니면 후회되던 과거로 되돌아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할까. 왠지 후자여야 소설이 재미있어질 것 같긴 한데. 흥미로운 소재의 소설은 어떤 스토리를 들려줄는지. 마치 여행을 앞두고 설레는 기분처럼 나는 소설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부터 매우 기대에 차 있었다.
소설은 각 장마다 제각각의 이유로 히라이스 여행사를 찾아온 사람들의 삶을 들려주었다. 소설은 각 고객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따로 들려주지만, 중간중간 다른 고객의 에피소드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섞여 나오기도 했다. 이는 단편처럼 느껴질 수 있던 소설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큰 줄기로 엮이게 만들었고, 소설의 재미를 더 높여주는 장치도 되어 주었다.
소설 속에는 부모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딸, 시한부 소녀의 타이타닉 여행기, 어릴 적 고아원에서 헤어진 여동생을 찾으려는 오빠 등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요양 보호사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여행사의 가장 비싼 프리미엄 상품을 구매한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음에 응어리로 남았던 시간들로 돌아가 보고 싶은 이를 보기도 하고,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미처 표현 못 했던 고마움을 표하고 오기도 한다. 타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는 그를 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습조차도 말이다. 요양 보호사의 눈에는 그저 까다롭고 비위생적이었던 이태백 할머니도 한때는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기도, 누군가의 첫사랑이기도 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젊음과 나이 듦에 대해, 후회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고, 지나온 과거 속에 내가 모른 채로 지나간 누군가의 호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여러 생각들을 떠오르게 만든 에피소드라 이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의 경우 당시엔 나쁜 일이라 여겼던 것들이 현재에 와선 도움이 되었던 일들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모든 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나의 경험은 미래의 나를 만들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과거만을 바라보며 지금을 허비하는 일은 미래에 후회할 순간을 하나 더 만들어내는 일 일뿐,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단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소설 속 과거 여행을 떠났던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얻고 돌아왔을까.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니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흥미로운 소재를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소설이었다. 완벽하게 착착 맞아떨어지는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만을 놓고 보자면 매우 괜찮은 소설이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에 흥미를 느낀다면,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이 책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HERAETH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하이라이스’로 읽었던, ‘히라이스’라는 단어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라고 한다. 과거로 여행하는 상품을 운영하는 ‘과거 여행사’의 이름으로 딱이지 싶다.
< 판매중인 상품 > * 패키지(2,500,000~2,900,000) - 유년시절, * 프리미엄(5,600,000~) - 최대 14일 + 최대 3 시절 투어 + 귀환일 지정 가능 * 테마(3,000,000~) - 후회(인기!), 성지순례, 히스토리언 * 알짜배기(2,000,000~2,200,000) - 특정 시간 도깨비 여행(초특가!), 특정 1박 2일 * 인솔자 동반(옵션 추가 350,000) - 단독 여행이 처음인 분들께 추천!
< 입장권/티켓 (가격 문의) > * 칭기즈칸 즉위식(인기!), 찰스&다이애나 세기의 결혼식(인기!), 베를린장벽 붕괴 순간, 비틀스 데뷔 무대 관람, 바벨탑 투어, 판관 포청천 재판 현장, 1600년 ‘햄릿’ 초연
< 숙박 (가격 문의) > * 1층 하녀 방(땡처리!), 진시황 아방궁, 프랑스 아를 반고흐 옆집(인기!)
< 불가사항 > A. 과거에서 귀환을 거부할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B. 악의성이 다분한 금융 조작(복권, 주식 등)은 ‘시간법 3조 2항’에 의해 위법이며, 그 외 조작(각종 성적, 공문서 등)은 ‘시간법 3조 3항’에 의해 위법입니다. C.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은 ‘시간법 1조 1항’에 의해 위법이며, 반대로 과거인을 죽이려는 행위는 ‘시간법 1조 2항’에 의해 위법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고객에게 있습니다. D. 시대적 오류를 범하는 모든 행위를 지양해주십시오. (미래누설, 정치/사회/경제적 방해 등)
* [군대시절] 상품은 판매량 하락으로 단종됐습니다. 현재 업그레이드 중입니다. * [알짜배기]를 제외한 전 상품 5% 마일리지 적립됩니다. * [투어/입장권]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됩니다. * [숙박]은 1박 이상의 여행객만 해당됩니다. (별도 추가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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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과거 여행 이전 소개되는 히라이스 과거 여행사의 상품소개를 읽고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듯 하여 자못 기대가 되었다.
[군대시절] 상품 판매량이 저조하여 단종됐다는 설명, 인솔자 동반 옵션, 거기에 마일리지 적립도 현실적이다. 실제로 어디선가 이런 상품이 운영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과거여행을 해보고 싶은데 말이다.
책에서는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과거로 향한다. 과거의 억울함이나 서로의 오해를 풀기 위해, 부모님의 결혼을 막기 위해(내가 태어나지 않아도 좋다는 각오로!), 역사 속 인물을 구하기 위해(이건 시간법 위반이지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응원하기 위해 십여년 전부터 몇 백년 전까지 그리고 우리 나라 뿐만 아닌 일본, 프랑스, 심지어 뉴욕으로 향하는 배(이 고객은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다)까지 다양한 과거 여행을 한다.
한 리서치 회사에서는 이삼십 대 여성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질문이 타임머신을 타고 당신 어머니의 젊은 시절과 마주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것이었다. 여러 대답이 나왔다. ‘엄마의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마’, 또는 ‘늦게 결혼해도 돼’, ‘삼성전자 주식부터 사’ 등.
하지만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절대 아빠랑 결혼하지 마.”
(중략)
좌우지간 나는 그냥 엄마를 막으면 된다.
엄마가 못 오게.
선을 보지 못하게.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하지 못하게.
나 따위 태어나지 않아도 좋아!
그저 엄마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으면 그걸로 되니까!
*부모님의 결혼을 막기 위한 과거 여행 <(고의적) 실수>
2003이라는 붉은 도트 숫자가 몇 초간 멈춘 후, 문이 열렸다.
(중략)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역사속 인물(앙트와네트, 장국영)의 죽음을 막기 위한 과거여행 <이승사자의 사건 파일>
허수경 : [네에-MBC 아침 만들기! 이번 코너는요.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편지 속 재미있는 사연을 읽어드리는 코너입니다! 사연이 당첨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을 보내드리고, 연말 왕중왕에서 최종 우승하신 분께는 현대 신형 자동차 엑센트! 무려 엑센트를 타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우승자가 안 나오면 내년인 1995년으로 이월될 수 있다는 점 알아두시고요.]
(중략)
허수경 : [그건 바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는 거였어요. 나중에 반드시 으리으리한 갑부가 될 거라고 장담하더군요. 정말 미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손석희 : [잠깐만요. 끼어 들어서 죄송합니다.]
허수경 : [깔깔. 얼마든지 말씀해보세요.]
손석희 [지금 삼성전자 주식이 겨우 3천 원 바라보고 있는데 갑부라뇨? 1,000주를 투자해도 겨우 3백만 원인데. 하하.]
*1994년,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 그녀의 이야기 <인생극장>
처음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과거여행’으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보다는 챕터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과 이야기에 더 중심을 두고 있어서 <달러구트 백화점>이나 <해리포터>와 같이 판타지의 느낌은 다소 덜하다. 게다가 첫 번째 이야기 <해피 크리스마스>의 소재가 제목과는 달리 무겁게 다가와 더욱 그러했던 듯 하다.
하지만 등장인물들 저마다의 과거 여행을 만날수록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어떤 상품을 구매할지 아니면 내가 ‘히라이스’에서 일한다면 어떤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할지 상상하기도 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후회를 바로잡기 위해서건, 그리운 얼굴을 다시 한 번 눈에 담기 위해서건 또는 역사 속 억울한 누군가의 상황을 해결하고싶은 마음에서건 말이다. 특히나 아픈 기억은(때로는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곱씹을 수록 그 씁쓸함이 커져 그 시간으로 갈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시간에 멈춰서 그러지 말아야 함을 알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한발짝을 떼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
이야기의 말미, ‘히라이스’ 본부 회장 조쉬 헤인즈의 종무식 연설은 어쩌면 과거를 받아들이기 보다 아쉬워하고 이로 인해 현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우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내가 책임져야할 현재를 더 충실히 살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히라이스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고객들에게 그저 장사해서 이익만 취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과거여행'을 통해 그들에게 현재의 가능성, 그리고 미래가 갖는 무한한 가치 또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후회하지 않는 완벽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A를 B로 바꾼다면 A에 없던 변수가 B의 미래는 생기기 마련이죠.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중략)
여러분, 과거를 잊으려 하지 말고, 덮으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누리십시오. 그렇다면 그 순간부터 여러분들의 현재는 훨씬 더 자유로 충만할 것입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
“왜 사람들이 ‘현재’를 아무렇게 흘려보내는지 알 것 같군. 그건 바로 누리고 있는 순간순간이 언젠가 과거가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여행이라는 것은 원래 뭔가를 얻으러도 가지만, 뭔가를 잃기도 하죠. 다 알면서 가는 거 아니겠어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평가하지 말 것.
과거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일이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도 꾸준히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게 무서워서 섣부른 행동을 하다간 시간을 돌이키고 싶은 후회만 돌아올 뿐이다. 무조건 빨리 이룬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꽃은 개화시기가 다르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과거를 돌이켜보면 온전히 모두 알았다고 자부하는 나의 과거에조차 내가 모르는 타인의 고뇌와 연민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 또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을 하고 불신을 할지언정 믿어주고 묵묵히 기다려 줄 단 한 사람을 곁에 둔 자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거 알아? 작별인사도 중요한 법이야. 그조차도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거든. 적어도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거든.”
“이거 하나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당신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걸. 힘든 일이 있거나 기대고 싶을 땐 언제든 기대도 된다는 걸 말이에요.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말고.”
고호라는 작가는 낯익다. [노비종친회]라는 독특한 제목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고호라는 이름도 독특하다. 고흐라는 화가를 연상하게 된다. 독특함으로 겸비한 작가와 이야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일지 사뭇 기대감을 미리부터 장착하게 된다.
제목 그대로 과거로 여행을 할 수 있는 히라이스라는 이름의 여행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히라이스를 통해서 신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과거로 가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이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만 해도 엄청날 거 같은데 그 이야기들을 자세히 풀어놓기보다는 간략하게 마무리 짓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래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등장을 한다. 이 중에 몇 개의 에피소드만 풀어도 드라마 한편은 뚝딱 만들어질 것도 같은데 이미 저작권이 팔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하게 되는 그러한 이야기다.
과거로 가서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는 언니의 이야기나 자신이 태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엄마아빠가 만나는 것을 막겠다는 사람의 이야기 또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겠다는 이야기는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서 마구 공감을 할 수도 있게 만들어 버린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뒤로는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만 직진하게 되어 있기에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에 더 열광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랬다면 하고 후회를 하기 때문에 더 이런 조건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때 이랬다면 지금은 어떠할까 라는 그런 생각때문에 이런 조건이 주어져 있는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것이 단 한 점의 후회도 남지 않으면 참 좋으련만 그렇게 되어지지가 않는다. 돈이 많다고 한들 성공을 했다고 한들 늘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그것이 일에 있어서도 그럴 수 있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럴수도 있고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그럴수도 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늘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를 하곤 했다. 그때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친구고 뭐고 다 때려치고 공부만 해서 이름난 대학에 갈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조금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같다. 작년 12월 초로만 가면 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새로운 인생을 아니 새롭지 않아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조금 아주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텐데 그렇다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조금의 후회는 덜어낼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참 이 책에는 난곡동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낯익다. 그래서 더 반갑다. 한국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반가울 때는 내가 아는 동네가 또는 내가 아는 건물이나 지명이 등장을 할 때다. 낯선 곳에서 한국적인 것을 발견하는 그런 반가움이랄까.
SF소설, 심리스릴러, 타임슬립. 요즘 국내소설도 무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소설이 인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일이다. 예전 범죄추리소설은 심리스릴러로 진화하고,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던 미래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SF(Science Fiction) 소설, 타임슬립 소설로 확장됐다. 양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훨씬 풍부해진 느낌이다. 소설가들의 상상력이 소재나 배경으로 나오는 우주공간, 시간개념을 잘 인지할 수 있는 듯 자유자재로 상상력의 날개를 편다. 독자들도 게임의 영향인지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작가나 독자나 과학적 지식이 크게 높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인터넷이 아닐까 독자는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3D 등 작가의 상상력을 무한으로 끌어갈 수 있는 소재가 널려(?) 있어서일 것으로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소설은 어차피 픽션인데 배경이 우주로 가든 시간을 뛰어넘든 크게 저항이 없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에 독자도 공감한다. 더욱 소설이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다만 독자가 허무맹랑하다고 저항감을 보인다면 당연히 인기를 끌지도, 유행이 되지도 않을 터이니 사회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저자와 독자의 상상력에 맡길 일이다. 이 소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도 타임슬립 소설이다. 제목처럼 과거여행을 하는 여행사가 일정한 요금을 받고 과거여행을 주선해 '캡틴', '세일러'와 함께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온다는 줄거리다. 모두 10개의 소설이 실렸으니 연작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옴니버스와는 결이 다르다. 여행사가 모두 같고, 과거로만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이라 해야 할 듯하다.
소설마다 에피소드 한 개가 있어 각각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독립적 이야기를 끌고 간다. 특별한 여행사에 과거여행을 가는 여행객도 평범하지 않다. 대부분 과거로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시절 그 곳에 가서 상황을 바꾸려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계단에 툭 떨어진 명함 한 장. 언제, 어디든 떠나고 싶다면 오늘 당장 과거로 떠날 수 있다고 말하는 여행사 명함이다. 여행을 안내하는 세일러와 고객을 쥐락펴락하는 캡틴을 만나 여행상품을 고르고, 비용을 지불하면 그것으로 과거여행 준비는 끝.
그러나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시간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강제귀환을 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행사 상품도 특별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고객들의 여행 동기도 다양하다. 엄마의 결혼을 막으려는 딸, 과거의 어떤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교수, 반백 년 전에 헤어진 동생을 만나고 싶은 오빠의 이야기까지. 이 책을 보는 순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들은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하나의 팁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며 자유롭게 여행하던 평범한 일상은 사라졌지만, 인간들은 언제나 여행을 꿈꾼다. 인간 본성이 그런 것 같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이 호기심이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다는 인류학자의 연구 분석도 있다. 이 호기심으로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해온 게 사실이다. 팍팍한 현재를 벗어나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고, 또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여행도 있고, 탐험 수준으로 미지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것은 틀림없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바로 과거여행이니 더 호기심을 자극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과거로 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가기 때문에 그 당시 그곳에서는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우리에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현재를 모두 알고 있지 않겠는가.
과거란 누군가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찬란하게 빛났던 시절이었을 수도 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갔던 모두는, 또 우리에게는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18~20세기 근현대부터 홍콩, 프랑스, 북대서양 바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대하는 자세가 바뀔 수 있다면... 이 점 또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이다. 내게 과거여행 왕복 티켓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갈까?
이 책 제목에 등장하는 낯선 단어 '히라이스(HIRAETH)'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라고 책 맨 앞부분에 밝혔다. 책 제목만 봐서는 일본어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단어다. 사실 이 여행사로 돈을 번 사람은 일본에서 재일교포라고 차별을 받는 사람임이 에필로그에서 암시된다. 그렇게 유추하다보니 핑크빛 책표지, 각 장마다 구분되는 곳에 있는 햇살무늬에도 의심이 간다. 소설에서도 일제강점기 시절로 돌아가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일본 소설이라는 유추도 지나치지 않을 터, 햇살무늬는 편집진의 실수인가, 의도인가 사뭇 의심스럽다. 물론 우리 한국사람을 비하하거나 옹졸한 사람으로 소설 속에서 표현하지 않아 지나친 억측이길 바란다.
“거기서 나오는 조명은 빛이고, 안에 하얀 가루는 소금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리고 거스른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빛과 소금처럼 필수 불가결의 요소지요. 사람들은 과거는 무조건 잊고 미래를 맹신하고자 합니다만,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때로는 과거를 통해 미래가 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미래를 위해 현재가 달라지기도 하죠. 아마 여러분들께서도 한순여 고객님께 그런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이 단체 여행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까?”(p. 320)
저자 : 고호
일꾼, 이야기꾼, 때로는 상상꾼.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재미없는 무역회사에서 평범한 밥벌이를 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의정부전국문학상에서 수상한 바 있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