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부모라면, 자녀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왔을 것이다.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또 어떤 것을 배우게 하든 그건 모두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잘 생각해보면! 오롯이 자식을 위한 행동이었나? 아이에게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세뇌하듯 가르친 이유가 사실은 돈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렇다! 말도 안 된다. 소설 속 이야기니까.
위는 김동식 작가의 열 번째 소설집 <밸런스 게임> 중 “돈 나오는 버튼을 누를 것인가”를 읽고 든 생각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부모에게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받고 19살이 된 어느 날, 주인공 김남우는 정신을 잃고 낯선 곳에서 깨어나 다짜고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버튼을 누르고 돈 100만원을 받아가라는 게 아닌가. 김남우가 버튼을 누르면 어떤 사람이 죽게 되고, 그는 돈을 받아가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버튼을 김남우는 누를 수가 없었다. 철저한 도덕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남우가 버튼을 누르지 않자 주겠다는 돈의 액수가 자꾸 올라갔다. 백만원에서 시작해 천만원, 1억까지 가더니 결국 20억에서 그는 유혹에 흔들리고 만다. 버튼을 누르고 돈가방을 받아 밖으로 나오니 부모가 기다리고 있었고 싱글벙글 좋아하는 게 아닌가.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아 나왔는데 부모가 잘했다고 하질 않나, 100억까지 올릴 수 있었는데 아깝다며 아쉬워하기까지! 주위에는 고작 천만원 받고 버튼 눌렀다며 혼나는 아이까지 있었다.
김남우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돈 때문에 자신에게 도덕교육을 시킨 거였다고? 돈을 벌기 위해 길러진 거라고? 김남우의 질문에 부모는 한 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아무렴 어때?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다 도덕적으로 성장하면 그걸로 좋은 거 아니야?”
도대체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도덕적으로 키운 게 맞는지? 결과적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다 좋다는 건지
이 소설을 읽고 너무 비약이다, 소설이니까 극적인 연출을 한 거겠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끌고 간 건 인정한다. 소설 주제가 돈이면 다 된다고 여기는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제보다 부모들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이 소설로 포문을 열었다. 자, 현실을 살펴보자. 부모들이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자식 공부시키는 이유가 뭔가? 자식이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와 취직 좋은 데 해서 돈 많이 벌고 떵떵 거리며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아닌가? 그렇게 모든 걸 바쳐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다. 서울대 보낸 부모, 전문직 가진 누구누구의 부모로 불리고 싶은 것이다. 우쭐해지고 싶고 자식 잘 키웠단 칭찬도 받고 싶다.
“어림도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자녀교육 시키는 부모가 어딨나? 그리고 그게 어째서 부모를 위한 건가? 다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
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자식과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눠보라! “엄마는 나를 왜 공부시켜요?”라는 질문에 당연히 널 위해서라는 답이 나오는지! 그렇게 부모 자식 모두 힘들게 공부해서 자식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면 결과적으로 좋은 거 아니냐며 반문하게 된다면 이 소설에서 부모가 마지막에 한 대답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작가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관에 의문을 던진다. 돈 많이 벌게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들 가르치는 건지? 자신을 위해서인지? 물어본다. 작가는 이번 책 <밸런스 게임>에서 선택게임 같은 설정을 많이 두었다. 돈과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 주인공을 내몰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의 주특기인 딜레마 상황이고, 늘 그렇듯 만약에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상해보게 만든다. 처음에 인용한 소설 “돈 나오는 버튼을 누를 것인가”를 비롯 부모들에게 선택 상황을 준 소설이 여러 편 있는데 모두 내가 부모라면 저럴까? 치를 떨게 만드는 스토리였다.
“그녀는 아들을 죽였는가, 죽이지 않았는가”에서 놀이공원 대관람차 추락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는 보상금 7억을 받을지, 30억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 역시 돈이다. 애고 어른이고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꿋꿋했던 도덕심은 내팽겨치고, 자식이고 친구고 다 필요 없다. “엄마가 먼저, 아빠가 먼저”는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이혼문제까지 뭐든지 내기를 거는 부모의 이야기다. 그 내기란 말 배우기를 시작한 자식이 엄마, 아빠 중에 먼저 말하게 되면 불린 그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 아이 앞에서 나 엄마라고, 나 아빠라고, 계속 외친다. 그러다 셋째 아이에게도 내기를 거는 상황이 벌어진다. 서로 아이를 붙잡고 말을 가르치는데 이번엔 엄마가 아빠를, 아빠가 엄마를 가르친다. 상대를 먼저 부르도록 하는 그들의 내기 조건이 무엇이었을까? 물론 반전이 있으며 황당하다. 그러나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 뉴스가 수시로 나오는 걸 보면, 실제로 소설 같은 황당 사례가 있을 것만 같다.
“사라져라”에는 두 소설가가 등장하는데 그저 경쟁관계에 있는 소설가 이야기일 줄 알았더니 여기에도 부모가 나오고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나온다. “죽은 딸이 살아 있다는 메일”에서도 부모의 조건에 대해 묻는다. 좋은 유전자를 받고 태어난 아기를 납치해서 키우면 훌륭한 아이로 자랄거라 예상했으나 그 아이는 자라면서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더니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 역시 부모의 조건에 대해서 묻는 것이며 유전이냐 환경이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겠냐며 계속 물어왔다. 나는 그의 소설을 대부분 다 읽었다. 이번에 같이 출간된 <문어>는 못 읽었지만... 이 책 <밸런스 게임>에서는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자식을 위한다는 당신들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가?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면 환경이 어떻든 모범생으로 자랄 수 있다고, 진짜 그렇다고 믿는가? 자식의 죽음을 돈으로 흥정할 수 있나?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책은 부모들이 읽으면 뜨끔할 것이다. 책과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돌아보면 더욱 그럴 것이고, 부모로서의 민낯을 직면할 때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간과 사회, 미디어, 자본주의 등을 소재로 우리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부모의 조건이라는 주제에 관통하는 소설들을 꼽아봤다. 다른 독자들은 자신이 어떤 것을 화두로 삼느냐에 따라 22편의 소설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동식 작가는 2018년 첫 소설집 <회색인간>을 시작으로 이번 <밸런스 게임>이 열 번째이며 3년 동안 거의 900여 편의 소설을 썼다. 그동안 그의 소설은 극과극의 평가를 받아왔다. 문학적이지 않다는 비판과 너무 재미있다는 평가까지, 그 재미에 푹 빠진 독자들은 청소년들이다. 전국의 중, 고등학교에서 초청하고 싶은 작가 1순위라고 하니 학생들에게 그의 소설이 인기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극단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소설을 써온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여전히 소설 쓰는 게 재미있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 실타래가 끊어지지 않길 바라본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