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슬 작가님을 브런치에서 알게 되어 '새드엔딩은 없다' 책까지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고단함을 팡팡튀는 문장속에 지겹지 않도록 재미지게 구성해내는 강이슬 작가님만의 글솜씨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다양한 글을 책으로 꾸준히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작가님! 여기 팬 하나 추가요!!
서점에 들어가 아무 책이나 집어 들면 높은 확률로 우울해도 슬퍼도 아파도 괜찮다고 한다. 그런 세상이다. 우울과 슬픔과 아픔이 만연해서 유별나지 않은 세상. "사는 게 그냥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은 듣는 순간엔 위로가 되는데 막상 내가 정말로 우울하고 슬프고 아플 때는 하나도 괜찮지가 않다. 그래서 정작 힘든 날엔 그런 책을 굳이 펼치지 않는다.
사실 강이슬 작가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그녀가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부터였다. 그녀의 첫 글을 읽은 지 몇 시간 만에 다른 글들을 모두 읽어버렸고 그로부터 또 며칠 만에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브런치 글을 읽었을 때 처음 한 생각은 그녀가 터부를 깨고 있다는 것. 사는 모양새를 포장하기에 바쁜 사람들 틈에서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작가의 말에서 어떠한 생명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낼 것 같은 힘이었다.
두 번째 책 <새드엔딩은 없다>에서 작가는 말한다. 반드시 행복하고 말리라는 독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고. 행복에 집착하느라 불행을 깜빡 잊는다고. 인생이 우아하진 못할지언정 기어코 행복할 것이라고. 우리는 종종 "행복은 어디에나 있으니 먼 곳에서 찾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강이슬 작가는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행복을 항상 주변에 있으니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행복에 대한 그녀의 자세는 거의 쟁취에 가깝다. "사랑은 쟁취하는 거야!" 대신 "행복은 쟁취하는 거야!"를 외치는 작가의 말이 우울해도 괜찮다는 말보다 희망적인 건 왜일까? 힘을 내서라도 행복을 쟁취하고 싶어 지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나의 동네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 이런 일 있었다" 하고 슬픈 얘기 아픈 얘기를 다 늘어놓고는 결국 끝에 가서는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이면서도 귀한지, 그 아이러니함에 웃음을 터뜨리는 친구. 그런 그녀가 귀엽고 멋져서 계속 이런 친구를 옆에 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힘들 때마다 종종 그녀의 말을 들으러 올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겠지. 행복은 쟁취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