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존주의자 선언 : 우리는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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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존주의자 선언 : 우리는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리뷰 총점 8.1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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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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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싫은 것은 싫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i*****n | 2021.05.25 리뷰제목
예민함의 다른 이름은 섬세함이라는 것을 종종 잊는다. 싫은 것을 싫다 말하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자주 망각한다.세상 만사 모든 일은 말해야 알아듣고, 보여줘야 이해하고, 거부해야 변화한다는 것을 한다는 것을 이 책이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드러내는 것은 사실 꽤 힘든 일이지만, 안락하게 누워 베게에 눈물을 적시느니 땀 흘리며 웃는 쪽
리뷰제목
예민함의 다른 이름은 섬세함이라는 것을 종종 잊는다.
싫은 것을 싫다 말하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자주 망각한다.
세상 만사 모든 일은 말해야 알아듣고, 보여줘야 이해하고, 거부해야 변화한다는 것을 한다는 것을 이 책이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드러내는 것은 사실 꽤 힘든 일이지만, 안락하게 누워 베게에 눈물을 적시느니 땀 흘리며 웃는 쪽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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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싫존주의자 선언 리뷰입니다. 평점10점 | d***6 | 2021.04.01 리뷰제목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요즘 세상에 느끼는 불만과 불편함을 좀 더 정갈하게 카테고리화 시킬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런게 불편했는지, 내가 왜 남보다 조금더 예민하고 타인들을 답답해했는지 작가 사과집과 깊은 공감을 하며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정보화 시대, 넘쳐흐르는 미디어의 시대에서 다양성이 왜곡된 방향으로
리뷰제목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요즘 세상에 느끼는 불만과 불편함을 좀 더 정갈하게 카테고리화 시킬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런게 불편했는지, 내가 왜 남보다 조금더 예민하고 타인들을 답답해했는지 작가 사과집과 깊은 공감을 하며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정보화 시대, 넘쳐흐르는 미디어의 시대에서 다양성이 왜곡된 방향으로 전시되는 경향이 있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길 바람과 달리 정상성과 미학적 아름다움이 편향되어가고 그것을 기반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흑백적 사고가 난무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사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끔, 혹은 매일 겪는 불편함을 주제삼아 이야기한다. 한번 쯤 겪어봤을 일,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남일 같을 수도 있지만 어떠한 집단은 늘 겪는 불편한 해프닝들.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있고 각 챕터마다 다양한 수필들이 엮여있다. 

챕터는 개인에서 사회로 점차 발전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1장 싫존주의자 선언

작가가 회사생활, 그동안의 여러 경험속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싫존주의를 실천하려고 하는지 기록해놨다. 타인을 대하는 법, 악습을 중간자로써 끊는 용기, 호칭의 불편함 등 사회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일들 중 개인의 실천으로 변화가 가능한 방법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또한 흙수저 고백, 소변 연대등 있어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일들도 다룬다.

2장 정의로운 예민함이 필요한 순간

사회에 녹아있는 관습중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끼거나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뤘다. 수직적인 문화와 과잉친절, 개인의 입체성을 지우는 얕은 정보의 습득 등, 익숙해지면 그만이지만 변화가 필요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3장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산다

사회에서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다른 라이프스타일에 작가는 본인이 "백색소음이 되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화제가 되는 이야기들, 다이어트, 디지털 노마드, 구독서비스 등 작가가 각각의 토픽에서 느낀 점 혹은 본인의 사용방법과 사회의 은연한 요구들에 어떻게 합의를 보았는지 설명한다. 

4장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한 걸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중 개인의 범주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 실천 가능한 주제들을 다뤘다.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라 읽는 내내 앞의 글들보다 생각이 많아지는 챕터였다. 

4장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존엄에 대한 이야기다. 나 또한 어떠한 사고가 났을 때 뚫어져라 쳐다본다던지 하나의 퍼포먼스 취급하듯 둘러쌓여 구경하는 것에 대한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작가는 간질이라는 예를 들었지만 나는 조금 더 일상생활에서 느낄 때도 많다.  카페나 규모가 큰 실내에서 큰소리가 났을때 모두가 그 곳을 동시에 응시하는 것에도 상당한 공포를 느낄 정도다. 공포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불편하다는 말이 더 알맞다. 예를들면 카페에서 큰소리가 나면 높은 확률로 예상가능한 사고다. 물건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거나 튕기는 소리, 사람이 내는 큰소리 등 정말 불이 나거나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날 희박한 확률을 알면서도 모두가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볼 때가 많다. 나 또한 그러한 행동이 결국 그 일에 연루된 사람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본인이 '정상'이고 평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일회성 주목이라 생각보다 무디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노약자나 장애인인 경우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범이라는 기준을 벗어난 사람의 일상적인 흐름을 깨는 행동은 더 큰 선입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저런 불편함을 내가 왜 느끼는지 설명할 방법을 몰랐었다. 그러한 생각이 결국 타인을 존중하는,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되는 일이라고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 4장에서 이야기하는 타인을 존중하는 일은 집단이 더 중요시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작가는 나아가 수족관, 채식등 동물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게 아니고 실천가능한 범주 내에서 유연하게 사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내용 외의 구성

책이 손바닥보다 조금 크다. 가볍고 작아서 들고다니면서 읽기 좋은 사이즈다. 색상도 표지에는 핑크가 들어갔지만 속지에는 베이지색으로 통일되어있어 깔끔하다.

 

정갈한 글씨체가 글을 차분하게 읽히게 한다. 또 에세이 끝장에 간간히 큰 폰트로 에세이 인용구가 들어가있다. 신기하게도 내가 여운이 남거나 인상깊다고 생각한 문구들로 되어있다. 

 




중간중간 작가가 언급하는 책들의 발췌문도 들어가있다. 이러한 구성이 책을 다채롭다고 느끼게 해주고 발췌된 원작들을 추후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마치며...

작가가 글에서 언급하는 좋은 칼럼의 정의에 들어맞게 이 책 또한 독자가 조금이라도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작가의 생각이 단순히 생각 혹은 분노로 그치는 것이 아닌 글쓰기의 자원이 되어 '사고방식에 좋은 영향'을 주는 글로 전환돼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에세이 형식의 책이다 보니 내용의 흐름이 끊길 걱정도 없고 짧게 생각의 환기를 주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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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 사회에 던지는 빅씽! 싫존주의자 선언 평점8점 | y*******1 | 2021.04.02 리뷰제목
이 <싫존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은 '사과집'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의 에세이이다.   제목에서 나오는 '싫존주의자'라는 말의 뜻은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인데 '싫어하는 것도 존중해달라.'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즉, 지은이는 "내가 싫어하는 거 좀 존중해달라."고 말을 하는, 할말은 하자는 주의자라는 걸 알 수가 있다.   필명 역시 작가가 만든 단어인데, '사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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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존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은 '사과집'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의 에세이이다.

 

제목에서 나오는 '싫존주의자'라는 말의 뜻은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인데 '싫어하는 것도 존중해달라.'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즉, 지은이는 "내가 싫어하는 거 좀 존중해달라."고 말을 하는, 할말은 하자는 주의자라는 걸 알 수가 있다.

 

필명 역시 작가가 만든 단어인데,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기'의 준말이라고 한다. 작명 센스가 좋은 것 같다. 나 역시 필명이 있는데, 매번 성에 안 차서 여러 번 고치곤 했었다. 특별한 의미를 담은 멋진 작명인 듯싶어 나 역시 내 필명과 닉네임을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재 쓰고 있는 닉네임인 '호두인형'은 나에 대한 특성을 잘 드러내는 닉네임인지라 퍽 마음에 든다. 이대로 '호두인형'에서는 되도록 고치지 않고 오래 오래 사용해볼 작정이다.

 


 


 

하여튼, 표지에 I hate라는 영어가 대문짝만 하게 써 있어서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안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리 부담스럽거나 느끼하지 않았다. 담백하면서 간결한 인상을 주는 에세이이고, 점차로 작가의 마음에 감정 이입하며 공감도가 더해진다.

 

나는 나의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보다 더 깨어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 허세가 아닌 속이 찬 사람으로 가는 방향에 이정표가 되어주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어떤 계기들로 인하여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 불편함의 정체에 대해 스스로 자세히 탐구를 해보았고, 나아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강의 등을 들으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하는 가치관을 정립하였다. 그에 따라 더 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하여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살아가기로 한 참이었다.

 

페미니즘이나 차별주의자, 혐오 사회 등의 단어를 누구라도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어에서 성큼 나와 깊이 생각해보며 이것들이 왜 문제인지, 우리 사회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식으로 접목시켜야 할지를 고민해보는 작업은 거의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급변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무한 경쟁의 사회인지라 인성 교육이나 차별 교육, 평등 교육 등이 왜 중요한지,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야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아 왔다. 아마 관련한 커리큘럼이 제대로 갖춰진 학교도 없으리라.

 

그런 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은 피폐해져가고, 서로 양극으로 나뉘어 다투게 되는데, 왜 다투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무작정 혐오하기까지 이르렀다. 경제 발전과 기술 혁신에 반비례한 인성 교육의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는 하지만 맥없이 부유해 살아갔던 한 성인이기에, 갈수록 강팍해져가고 경색돼 가는 사회에 혼란만 느끼며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소극적으로 살아오기만 했다. 괜한 분란을 조장하느니 그저 다수에 편승하며 살아가는 게 쉬운 일 아니겠는가. 더욱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는 데만도 벅찼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과집 작가는 그러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고, 조금이라도 참여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맞서 싸우자고, 자신처럼 싫존주의자들이 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혹자는 '프로 불편러'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그녀는 사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나라를, 이 사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망가져 있는 상태들을 고쳐서 바로 잡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까닭으로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과연 애정이 넘치는 행보이지 않은가.

 

화가 나는 것도 관심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게다. 아끼는 마음이 아예 없고 무관심하면 굳이 꼬집어 말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자신과 상관 없는 일이라 치부해버리면 불편하지도 않을테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따듯한 사람이다. 심장이 뜨겁게 파닥파닥 고동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비겁하게 나 하나만 살자고 생각했나 보다.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든 말든 내 밥그릇 하나를 챙기기 바빴으니까. 이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졌고 마음이 아팠다.

 

사랑을 받지 못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내가 사랑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뒤로 갈수록 용기를 얻었다. 딱 '사과집 작가처럼 살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살만하고 아름다운 사회라는 데에 확신이 점점 더 생긴 것이다.

 

덕분에 나도 적극적으로 살자고 다짐을 하게 됐다. 내가 상처받을까 하는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지 않고, 상처 받을지라도 말하자는 용기가 생겨났다. 그래야만 변화가 있고 미래가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다양한 의견들이 다채롭게 빛이 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단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가 너무도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러 많은 전문가 분들도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다수와 다른 소수 의견이 되지 않으려는 분위기 때문에 유머가 사라진 사회라는 말도 있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주류라는 하나의 의견에 우르르 따라가는 분위기로 흐르는 듯싶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사회인데, 이상하게도 주류와 비주류로 편을 가르고, 타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끝내는 파벌로 나누고 있는 것 같다. 기실 완벽한 사회는 없겠으나 함께 노력할 수는 있다고 본다. 물론 나 하나 바뀐다고 해서 사회가 갑자기 확 혁신되지는 않겠으나 조금 더 유연하고 다정해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 <싫존주의자 선언>은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고, 더욱 깨어있기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책 읽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몇 년 전 충격적인 책 한 권을 읽었는데, 그 책 이후로 게을러져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공부를 진행하지 않았었다.

 

변명하자면, 앞서 말했듯 우리 사회에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나 기관이 별로 없다. 솔직히 깨달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이 책 한 권을 다(多)독하는 데만 그치면 크게 발전하지 못 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앎에도 뭔가 다른 것들에 바빠 "공부해야지."하고 계속 결심만 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페미니즘이나 인종 차별, 그에 앞서는 갖은 종류의 차별, 편견, 혐오 표현 등에 관해 심층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장점 또한도 많은 게 사실이다. 명백히 좋은 점도 존재한다. 아직 여전히 사람들이 정도 많고 따듯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나마 계층 간의 이동도 원활한 나라라는 걸 안다. 알지만, 조금만 노력해도 훨씬 더 좋아질 가능성이 분명하기에 욕심을 내고 싶다.

 

나처럼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저자 사과집 역시도 그런 의도로 이 책을 썼을 터이다. 다같이 조금씩만 더 노력해도 이 사회가 아름다워지리란 걸 알았기에 말이다. 유토피아와 같은 나라는 다른 데에 있지 않고, 내가 몸 담은 이 나라를 유토피아로 만들려는 노력을 더불어 같이 했으면 좋겠다.

 

나는 현재 성인이라는 연령층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무척 똑똑하다는 건 알지만 국영수 공부 외에는 인성적인 부분의 공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몹시 쉬이 차별하고 혐오한다는 걸 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무작정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걸,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수긍할테다.)

 

예를 들면 다문화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특히 동남아나 흑인계) 금방 미워하거나 차별을 한다. 물론 진실로 아닌 사람도 있겠으나, 위에서 말한 이유로 대부분은 차별적이다. 경직되어 있는 사회라 유머도 사라지고 다름을 잘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로 인하여 차별도 쉽게 하는 듯하다고 느꼈다.

 

현재 다문화 가정이 무척 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외국인들의 인구도 100만명이라는데(불법 체류도 더러 있고, 급속도로 더 느는 추세라 정확한 수치는 더 높을 듯), 우리는 온정적인 시선을 좀 더 가질 필요가 있고 차별이라는 게 뭔지를 제대로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갖고 혐오해서는 안 된다.

 

뿐만아니라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무조건 이상한 사상에 물들었다고 보며 '꼴페미'니 '메갈'이니 욕하는 버릇도 고쳐야 한다. 욕을 할 거면, 페미니즘이란 게 정확히 뭔지나 공부하고서 욕을 하자. 게다가 호칭도 죄다 '충' 자를 붙여서 자신과 다른 듯싶은 사람들은 벌레로 보며 혐오하는 표현 역시 자제를 해야한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혐오 사회이고, 콘크리트처럼 딱딱히 굳어버린 사회라는 방증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 표현을 한다는 불편한 진실.

 

우습지 않은가. 요새 미국 내에서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시위도 하고 유명인들이 반대하는 의견도 수없이 내고 있는데. 그것도 차별적인 시선에서 파생되는 범죄 아니겠는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풍기는 이미지가 본인들과 다르니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함부로 한다니. 대부분은 황인종인 한국 내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 인종을 배척하고 싫어한다면 그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는 폐쇄적으로 될 뿐이겠다. 폐쇄적인 데에 따르는 문제는 상상초월이라는 걸 이미 역사를 통해 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치로 인해 조선은 발전이 늦어졌고, 물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그 애국심들은 인정하지만 결국에는 부작용이 생기고야 말았다. 우리끼리 살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먼저 개방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 측에게 식민 지배를 받게 됐으니 실로 막대한 부작용 아닌가.

 

그러니 유연한 사고 방식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봐도 무방하리라. 현 시점에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가다간 종국에는 이 땅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 경계하자.

 

* * *

 

 

p38. 함부로 미안해하거나 감사해하는 것은 내 의미 전달을 방해할 뿐이다. "유감이네요." 혹은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미사여구 없이,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때로는 더 중요하다.

p123. "넌 언제나 좌절하는 순간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거야."

p135. 알랭 드 보통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내가 가는 길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길의 끝에서 알게 될 때다."라고 말했다. ... (중략)...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실패하는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살기좋은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게 됐으면 좋겠다.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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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싫존주의자 선언 평점7점 | w*******0 | 2021.03.27 리뷰제목
대표사진 삭제 -서론 싫존주의자는 이름과 같이 싫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난 이 단어 하나로 내가 읽을 책임을 확신했다. 최근 나를 정체화하는 과정을 많이 겪었다. 성별이나 그런 것 말고 내 존재를 함축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명랑한 염세주의자라는 말을 선택했고 그 것에 살을 붙이고 있었다.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이 세상은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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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싫존주의자는 이름과 같이 싫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난 이 단어 하나로 내가 읽을 책임을 확신했다. 최근 나를 정체화하는 과정을 많이 겪었다. 성별이나 그런 것 말고 내 존재를 함축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명랑한 염세주의자라는 말을 선택했고 그 것에 살을 붙이고 있었다.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이 세상은 좋아하는 것에 말하는 것은 따스하고 온화하다.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일은 말하는 것 자체로 타겟이 되거나 불편한 사람이 된다. 이 지점에서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싫어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이 책은 나와 이 세대의 사람들이 분명히 겪고 있는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정리하고 있다.

 

-싫존주의자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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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가 맘에 들어 목차를 따라 감상을 남기려 한다. )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있다. "내가 비중산층 아시안 여성이라서 부조리에 대해 공감하고 알아가려고 하는 것 아닐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록 인간은 정말 이기적이고 자신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느낀다. 학교에서 스치듯 혐오와 부조리, 차별에 대해서 배우지만 우리는 부족한 이해를 가지고 자란다. 그래서 친절한 차별을 행하고 나는 차별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가 받은 부조리만 상처받는다. 처음 내가 싫다고 말하게 된 것은 내 상처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지금의 내가 말할 때는 그것보다 아직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인지하도록 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정의로운 예민함이 필요한 순간

학생 때 정말 학생*여성 혐오적인 교사가 있었다. 교사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쿨페미의 시초에 걸쳐있어서 더욱 그 행동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 명확했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는 소위 말 잘듣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학교였다.나와 몇 친구들이 대자보를 붙이려고 했지만 진학에 불이익을 얻을까봐 접었던 기억이 있다. 싫존주의자를 선언하는 이들은 이 비슷한 일들을 경험한 상태에서 자란 사람들일 것이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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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 수록 저자가 말하는 싫존주의는 염세주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고 느꼈다. 내가 염세주의에 공감한 것이 바로 저 말과 같은 포인트다. 염세주의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조이지만 확실히 이해한다면 염세주의만큼 사랑을 많이 가진 학문이 없다. 세상을 긍정하는 이들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많다. 세상만사 잘 돌아간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발언들도 모두 정+의 어떤 것이라 생각해서, 어쨌든 세상은 나아간다고 생각해서 가끔(자주) 무례하고 무책임하다. 나는 그것이 불편해졌다. 세상을 사랑하기에 이 세상에 있는 불편들이 관찰되었고 그것을 말해야만 했다. 염세주의는 그런 것들을 말하는 학문이다. 세상은 좋게만, 발전으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모순과 비이성, 부정으로 이뤄져있다고. 그것에 의한 무기력과 불행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근대 사회는 이성의 이론으로 나아갔다. 산업화, 과학중심주의는 그를 더 공고히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 이 시대에 태어난 mz세대는 알게되었다. 세상은 이성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래서 휴머니즘과 인문학 열풍이 일었다. 우리는 싫다고 "말해야 할" 세대였던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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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토록 작은 것에 필요를 느끼고 성장을 한다. 싫존주의자들은 변화를 원한다. 싫어하는 것들이 없어지고 바뀌길 바란다. 그 방식은 완벽하고 탄탄하게 이뤄지기 보다 사소하고 소박하게 시작된다. 그것이 끝까지 작은 지 나중엔 크고 대단할 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떤 형태로도 변화한다. 그것이 이 사조(?)의 본질이다.


 

-좋은게 좋은거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저 말이 내겐 기능론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무책임하게 들린다. 분명 어떤 삶의 순간에는 저 말과 같은 태도가 내게 필요하다. 하지만 내겐 의구심이 드는 말이다.

엄마가 내게 나는 네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길 바라는 데 넌 그렇지 않은 것 같아-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울었다. 내가 친구에게서 들은 싫었던 말이 -너는 그렇게 살려면 힘들겠다. -되게 신경쓸 게 많네. 엄마는 이렇게 무지의 태도로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나에게는 같은 말이었다. 세상에 그물이 이렇게 촘촘하게 있고, 심지어 엉켜있는데 그 사이에 내가 바람이면 나는 편하겠지. 바람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내 사고는 엄마의 잔여물이었다.

나는 이제 바람이 아니다. 나는 그물을 끊고 끌고다니는 물살이고, 돌맹이였다. 나는 싫다는 말을 하지 않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산들바람이 되지 못했다. 나는 기여이 싫다고 말했고 불편하게 만들었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 상황은 그리 만들었지만 그때 내가 던진 싫다는 돌맹이가 물길을 바꾸고, 파동을 일으킨다. 나는 분명 튀긴 물에 젖기도 하겠지만 내가 있는 곳만이라도 바뀐다.

 

-우리는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최근 클럽하우스를 이용하며 모더레이팅할 일이 있었다. 모더는 스피커의 말을 점검하기도 한다. 분노의 순간에도 분노로 인한 여파 혐오는 없는 지 점검하고, 단어의 사용이 적절하지 않았는 지 점검한다. 나는 당장 1년 전만 하더라도 그 발언들은 내뱉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책을 읽거나 타인의 발언을 통해 내 발언을 부끄러워한 경험이 있다. 또 내 부적절한 발언에 다른 분이 곧장 정정한 적도 있다. 그 기억들로 오늘은 내가 타인에게 그 과정을 행했을 뿐이었다. 그 스쳐가는 순간에 해당하는 대상이 없더라도 우리는 그를 답습한다. 그 발언을 한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 함께 수정하며 기억하자는 뜻이다.


이 책은 사소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여러 상황 속 싫은 것들이 모여 싫존주의를 형성한다. 이 전부를 겪지 않더라도 하나 이상의 상황에 놓여진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상황들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 나아가지 않더라도 다만 이 상황만을 바꾸고 싶다. 이 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명확함을 얻을 것 같다. 모두의 싫존주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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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하기 항상 애매한 띠지는 책갈피로!


진짜 바쁜 와중에 적어 두서가 없다. 필히 추후 문맥을 다듬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많이 공감하고 좋아함은 느껴지리라 믿는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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