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싫존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은 '사과집'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의 에세이이다.
제목에서 나오는 '싫존주의자'라는 말의 뜻은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인데 '싫어하는 것도 존중해달라.'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즉, 지은이는 "내가 싫어하는 거 좀 존중해달라."고 말을 하는, 할말은 하자는 주의자라는 걸 알 수가 있다.
필명 역시 작가가 만든 단어인데,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기'의 준말이라고 한다. 작명 센스가 좋은 것 같다. 나 역시 필명이 있는데, 매번 성에 안 차서 여러 번 고치곤 했었다. 특별한 의미를 담은 멋진 작명인 듯싶어 나 역시 내 필명과 닉네임을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재 쓰고 있는 닉네임인 '호두인형'은 나에 대한 특성을 잘 드러내는 닉네임인지라 퍽 마음에 든다. 이대로 '호두인형'에서는 되도록 고치지 않고 오래 오래 사용해볼 작정이다.
하여튼, 표지에 I hate라는 영어가 대문짝만 하게 써 있어서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안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리 부담스럽거나 느끼하지 않았다. 담백하면서 간결한 인상을 주는 에세이이고, 점차로 작가의 마음에 감정 이입하며 공감도가 더해진다.
나는 나의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보다 더 깨어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 허세가 아닌 속이 찬 사람으로 가는 방향에 이정표가 되어주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어떤 계기들로 인하여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 불편함의 정체에 대해 스스로 자세히 탐구를 해보았고, 나아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강의 등을 들으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하는 가치관을 정립하였다. 그에 따라 더 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하여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살아가기로 한 참이었다.
페미니즘이나 차별주의자, 혐오 사회 등의 단어를 누구라도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어에서 성큼 나와 깊이 생각해보며 이것들이 왜 문제인지, 우리 사회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식으로 접목시켜야 할지를 고민해보는 작업은 거의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급변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무한 경쟁의 사회인지라 인성 교육이나 차별 교육, 평등 교육 등이 왜 중요한지,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야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아 왔다. 아마 관련한 커리큘럼이 제대로 갖춰진 학교도 없으리라.
그런 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은 피폐해져가고, 서로 양극으로 나뉘어 다투게 되는데, 왜 다투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무작정 혐오하기까지 이르렀다. 경제 발전과 기술 혁신에 반비례한 인성 교육의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는 하지만 맥없이 부유해 살아갔던 한 성인이기에, 갈수록 강팍해져가고 경색돼 가는 사회에 혼란만 느끼며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소극적으로 살아오기만 했다. 괜한 분란을 조장하느니 그저 다수에 편승하며 살아가는 게 쉬운 일 아니겠는가. 더욱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는 데만도 벅찼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과집 작가는 그러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고, 조금이라도 참여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맞서 싸우자고, 자신처럼 싫존주의자들이 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혹자는 '프로 불편러'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그녀는 사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나라를, 이 사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망가져 있는 상태들을 고쳐서 바로 잡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까닭으로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과연 애정이 넘치는 행보이지 않은가.
화가 나는 것도 관심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게다. 아끼는 마음이 아예 없고 무관심하면 굳이 꼬집어 말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자신과 상관 없는 일이라 치부해버리면 불편하지도 않을테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따듯한 사람이다. 심장이 뜨겁게 파닥파닥 고동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비겁하게 나 하나만 살자고 생각했나 보다.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든 말든 내 밥그릇 하나를 챙기기 바빴으니까. 이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졌고 마음이 아팠다.
사랑을 받지 못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내가 사랑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뒤로 갈수록 용기를 얻었다. 딱 '사과집 작가처럼 살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살만하고 아름다운 사회라는 데에 확신이 점점 더 생긴 것이다.
덕분에 나도 적극적으로 살자고 다짐을 하게 됐다. 내가 상처받을까 하는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지 않고, 상처 받을지라도 말하자는 용기가 생겨났다. 그래야만 변화가 있고 미래가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다양한 의견들이 다채롭게 빛이 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단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가 너무도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러 많은 전문가 분들도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다수와 다른 소수 의견이 되지 않으려는 분위기 때문에 유머가 사라진 사회라는 말도 있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주류라는 하나의 의견에 우르르 따라가는 분위기로 흐르는 듯싶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사회인데, 이상하게도 주류와 비주류로 편을 가르고, 타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끝내는 파벌로 나누고 있는 것 같다. 기실 완벽한 사회는 없겠으나 함께 노력할 수는 있다고 본다. 물론 나 하나 바뀐다고 해서 사회가 갑자기 확 혁신되지는 않겠으나 조금 더 유연하고 다정해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 <싫존주의자 선언>은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고, 더욱 깨어있기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책 읽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몇 년 전 충격적인 책 한 권을 읽었는데, 그 책 이후로 게을러져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공부를 진행하지 않았었다.
변명하자면, 앞서 말했듯 우리 사회에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나 기관이 별로 없다. 솔직히 깨달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이 책 한 권을 다(多)독하는 데만 그치면 크게 발전하지 못 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앎에도 뭔가 다른 것들에 바빠 "공부해야지."하고 계속 결심만 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페미니즘이나 인종 차별, 그에 앞서는 갖은 종류의 차별, 편견, 혐오 표현 등에 관해 심층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장점 또한도 많은 게 사실이다. 명백히 좋은 점도 존재한다. 아직 여전히 사람들이 정도 많고 따듯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나마 계층 간의 이동도 원활한 나라라는 걸 안다. 알지만, 조금만 노력해도 훨씬 더 좋아질 가능성이 분명하기에 욕심을 내고 싶다.
나처럼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저자 사과집 역시도 그런 의도로 이 책을 썼을 터이다. 다같이 조금씩만 더 노력해도 이 사회가 아름다워지리란 걸 알았기에 말이다. 유토피아와 같은 나라는 다른 데에 있지 않고, 내가 몸 담은 이 나라를 유토피아로 만들려는 노력을 더불어 같이 했으면 좋겠다.
나는 현재 성인이라는 연령층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무척 똑똑하다는 건 알지만 국영수 공부 외에는 인성적인 부분의 공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몹시 쉬이 차별하고 혐오한다는 걸 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무작정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걸,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수긍할테다.)
예를 들면 다문화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특히 동남아나 흑인계) 금방 미워하거나 차별을 한다. 물론 진실로 아닌 사람도 있겠으나, 위에서 말한 이유로 대부분은 차별적이다. 경직되어 있는 사회라 유머도 사라지고 다름을 잘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로 인하여 차별도 쉽게 하는 듯하다고 느꼈다.
현재 다문화 가정이 무척 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외국인들의 인구도 100만명이라는데(불법 체류도 더러 있고, 급속도로 더 느는 추세라 정확한 수치는 더 높을 듯), 우리는 온정적인 시선을 좀 더 가질 필요가 있고 차별이라는 게 뭔지를 제대로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갖고 혐오해서는 안 된다.
뿐만아니라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무조건 이상한 사상에 물들었다고 보며 '꼴페미'니 '메갈'이니 욕하는 버릇도 고쳐야 한다. 욕을 할 거면, 페미니즘이란 게 정확히 뭔지나 공부하고서 욕을 하자. 게다가 호칭도 죄다 '충' 자를 붙여서 자신과 다른 듯싶은 사람들은 벌레로 보며 혐오하는 표현 역시 자제를 해야한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혐오 사회이고, 콘크리트처럼 딱딱히 굳어버린 사회라는 방증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 표현을 한다는 불편한 진실.
우습지 않은가. 요새 미국 내에서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시위도 하고 유명인들이 반대하는 의견도 수없이 내고 있는데. 그것도 차별적인 시선에서 파생되는 범죄 아니겠는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풍기는 이미지가 본인들과 다르니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함부로 한다니. 대부분은 황인종인 한국 내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 인종을 배척하고 싫어한다면 그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는 폐쇄적으로 될 뿐이겠다. 폐쇄적인 데에 따르는 문제는 상상초월이라는 걸 이미 역사를 통해 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치로 인해 조선은 발전이 늦어졌고, 물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그 애국심들은 인정하지만 결국에는 부작용이 생기고야 말았다. 우리끼리 살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먼저 개방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 측에게 식민 지배를 받게 됐으니 실로 막대한 부작용 아닌가.
그러니 유연한 사고 방식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봐도 무방하리라. 현 시점에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가다간 종국에는 이 땅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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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함부로 미안해하거나 감사해하는 것은 내 의미 전달을 방해할 뿐이다. "유감이네요." 혹은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미사여구 없이,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때로는 더 중요하다.
p123. "넌 언제나 좌절하는 순간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거야."
p135. 알랭 드 보통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내가 가는 길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길의 끝에서 알게 될 때다."라고 말했다. ... (중략)...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실패하는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살기좋은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게 됐으면 좋겠다. 추천하는 바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