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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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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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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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Think 5. '해석'을 즐겨라, 오직 당신만의 해석이 기억에 남을 뿐이니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z******8 | 2023.07.14 리뷰제목
카는 말했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가 끊임없이 나누는 대화'라고 말이다. 이는 역사적 진실을 '사료, 그 자체'로 바라보던 랑케의 주장과는 달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역사적 진실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물론, 역사적 평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허나 '역사적 서술'은 역사가마다 다를 수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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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는 말했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가 끊임없이 나누는 대화'라고 말이다. 이는 역사적 진실을 '사료, 그 자체'로 바라보던 랑케의 주장과는 달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역사적 진실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물론, 역사적 평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허나 '역사적 서술'은 역사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객관적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사료'를 근거로 삼아 철저한 실증적 검토를 통해 서술해야겠지만, 그마저도 '사람'이 내린 평가인 까닭에 얼마쯤은 '주관'이 섞일 수밖에 없다. 때에 따라서는 '편견'이 담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역사는 '단 한 사람의 평가'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서도 여러 역사가들의 '주관적인 해석'을 포용하다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고, '타당한 해석'으로 모아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모아진 '역사적 해석'을 수많은 역사가들이 어느 정도 '인정'하고, '검증'해나가다 보면 어느 정도 '해석의 객관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더욱더 타당한 해석'이 등장하게 되면 그간의 '역사적 해석'은 보편성을 잃게 되고, '또 다른 해석'으로 귀결되어, 또다시 여러 역사가들이 인정과 검증을 받게 되어 '객관적인 역사적 해석'에 다다를 것이다.

 

  이처럼 '해석'은 역사의 고인물을 걸러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비단 역사에서만 '해석'이 중요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거의 모든 학문에서 '해석'은 중요하게 다루며 '고정불변인 정답'은 없다고 인정하는 바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문학박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의 '문학해석'만이 정답인 것이 아니라 그저 대중적인 '일반독자'의 해석일지라도 '설득력'과 '타당성'을 갖추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해석'으로 인정을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의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은 끊임없이 '해석' 받고 있다.

 

  여기 이 책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에는 <데미안>, <젊은 베르터의 고통>, <672번째 밤의 동화>, <변신>, <시골의사> 등 '독일문학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다. 물론 '서가명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책이라서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홍진호 교수'의 해석이 수록되어 있기에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철한 주석이 담겨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미 위에 열거한 책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서울대 교수의 해석'을 읽으면서도 어딘가 미심 쩍거나 그닥 공감이 가지 않은 해석도 읽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서울대 교수'와 '일반 독자' 사이의 간극이다. 문학작품 해석의 재미는 바로 그 '간극'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둘 사이의 간극'이 발생하게 된 까닭을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를 느낄 수만 있다면 '문학작품'을 즐길 준비가 이미 충만한 독자인 것이다.

 

  이 책은 교수님의 해석답게 여러 '문학사조'와 '장르분석' 등에 따른 이야기들이 솔솔한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헤세의 <데미안>을 해석하면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끌여들여 독일 청소년들이 <데미안>을 읽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까닭을 설명하면서, 왜 '고전문학'이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지 해석하였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에서는 괴테의 소설들이 '발전소설(성장소설)의 전형으로 독일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언급하면서, 그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 효과(모방자살)'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 '계몽주의'와 '질풍노도'로 풀어내었다.

 

  이밖에도 우리에게 덜 유명한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를 설명하면서 '유미주의'라는 문학사조를 '음식사진'에 비유하며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음식'이라는 본질은 먹어서 소화시켜야 비로소 우리에게 이로운 것인데, 음식 자체는 '먹음'이라는 행동으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버리고 말게 된다. 이처럼 '아름다움'이란 본질도 그렇다는 것이다. 유미주의는 예술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둔 까닭에 오로지 '예술, 아름다움, 그 잡채'를 지향하게 되는데, 예술이나 아름다움은 시간, 상황, 유행, 또는 그밖의 변수들에 의해 변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까닭에 끝내는 '무한한 존재'인 죽음을 찬미하게 되고 만다. 샤르트르는 '인생이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고 말했단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리는 열차를 탔다면서 살아있는 동안에 '선택'이라도 잘해서 유의미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지만, 결국 종착지는 '죽음'인 까닭에 염세주의적인 미학에 심취할 수밖에 없단다. 유미주의는 바로 이런 경향에 영향을 받아 유행을 했고 말이다.

 

  반면에 카프카의 소설은 '정답은 없다, 오직 해석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라는 총평을 남겼다. 실제로 카프카의 소설들은 무수히 많은 해석을 남겼지만 어느 것 하나 '정답'이라고 할만 한 것을 내놓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변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아픔이라고 소개했지만, 정설은 아니니 '또 다른 해석'으로 즐겨보시라 하였고, <시골의사>는 더더욱 수수께끼 같은 소설이라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선보였지만, 독자들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시라면서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였다.

 

  그렇다면 '고전문학'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이 책에 '귀띔'이 담겨 있긴 하지만, 곧이 곧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서울대 교수님이 '이런 식'으로 고전문학을 해석하시니 '나름, 공식화'하여 다른 고전문학도 그 '공식'에 대입해서 풀어내는 재미도 솔솔할 것이 틀림없다. 허나 공식에 대입해서 '그럴 듯한 풀이'를 해내는 것으로 만족할 필요는 없다. 공식에 기대어 '명석한 풀이'를 해보았으면 '자기만의 경험'이란 필터로 한 번쯤 걸어내어 보길 권한다. 그래야 '나만의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 좋은 문구를 '베껴쓰고' '옮겨적는' 일을 곧잘 한다. 그리고 누군가 '그 책' 읽어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베껴 쓴 '유명한 문구'를 읊어대며 자랑하기 일쑤다. 헌데 그렇게 유명한 문구를 아무런 '해석'도 없이 그저 읊어대는 것만으로 좋은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앵무새'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느냔 말이다. 차라리 '나의 생각'으로 고전명작을 걸러낸 뒤에 '나만의 생각'으로 거듭난 문구를 말해보는 것은 어떠냔 말이다.

 

  무릇 '진정한 독서'란 이런 것이다. 작품해석도 마찬가지다. 권위 있는 사람의 '해석'은 그저 참고만 하면 그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나의 생각'으로 거듭나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고전명작'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유명한 문학작품을 읽었는데도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까닭은 바로 이런 작업을 하지 않고 그저 '남의 생각'을 외우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문학사조니 장르분석이니 하는 것도 '그 당시의 유행'을 참고해서 '나름의 해석'을 내놓은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때는 맞는 해석일지라도 지금은 틀린 해석도 부지기수다. 물론 '훌륭한 해석'은 오래도록 공감을 얻는 것일테지만, 결국엔 '달라진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해석'하길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해석 자체를 즐기다보면 저절로 '문학감상의 실력'도 쑥쑥 오르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즐기면서 해석한 것이 유행을 타면 '문학사조'로 여러 사람들의 공신력을 얻게 되니, 혹시 모르지 않느냔 말이다. 지금 당신의 '해석'이 훗날 '문예사조'로 발돋움할런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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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가명당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by 홍진호 평점10점 | d******7 | 2021.03.07 리뷰제목
-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18, 19세기 유럽에서 명작으로 인정받았던 문학작품들은 당대 유럽의 사회문화적 맥락 상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선행지식없이 서양 고전문학을 필독서로 읽어야만 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가혹한 형벌과 진배없다. 스마트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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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

 

 

18, 19세기 유럽에서 명작으로 인정받았던 문학작품들은 당대 유럽의 사회문화적 맥락 상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선행지식없이 서양 고전문학을 필독서로 읽어야만 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가혹한 형벌과 진배없다. 스마트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만으로 도움을 주는 자료도 많지만, 과거 학창시절엔 아무런 사전정보없이 종이에 가득한 활자만 꾸역꾸역 읽어야만 했던 고통스러움만 자리잡는다. 의미 파악조차 안 되니 재미는 없고, 명작이라니 감동받은 척(?) 해야 하는 독후감 일색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과거의 나처럼 서양 고전문학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홍진호 교수가 독일문학 해석을 위해 나섰다.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서울대학교 교양강의 《독일명작의 이해》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 중 네 명의 독일 작가가 쓴 다섯 편의 작품들을 통해 독일문학을 재미있게 읽고 올바르게 감상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소개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생애는 물론 작가의 다른 작품들, 시대를 관통하는 -ism, 맥락을 같이 하는 동종의, 또는 전혀 다른 작품들도 함께 소개해 이해를 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문학작품들, 특히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것들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32

 

 

헤르만 헤세 <데미안>

발전소설(성장소설)로 이해되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그 전형이 만들어진 이후 독일 소설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 소설 형식이다. 19세기 후반,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붕괴되면서 인간을 자연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데미안은 전통적인 종교적 세계관과 인간관, 가치체계가 힘을 잃은 시대에 모든 것이 불확실한 외부가 아닌 우리 자신의 내면 안에서 그 중심을 찾으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 다른 위치에 서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따르는 한, 올바른 길을 찾고자 하는 한, 결국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어요. p7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터의 고통,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일어 실제 발음을 외래어로 표기했을 때 '베르테르'가 아닌 '베르터'이고, '슬픔'이 아닌 '고통'이 맞으니 제목의 오류다. 국내 독일 번역자가 적어서 영어와 일본어 번역을 거쳐 우리말로 옮겨진데서 온 오류다.

 

 

독일문학에서 고전주의는 절대적으로 괴테에 의해 규정된다. 이 소설 발표 직후 베르터를 따라 남성들이 자살했는데,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사회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부르고 있다. 짝사랑으로 인해 자살로 고조되는 베르터의 내적 상황과 감정 변화라는 핵심 이면에는, 당시 시민계급과 귀족계급 간의 갈등, 계몽주의 문예사조에 대척되는 반계몽주의적 질풍노도 문학을 이끈 대표작이다.

 

 

후고 폰 호프만스탈 <672번째 밤의 동화>

저자가 소개한 도서 중 유일하게 읽지 않은 책이다. 책 본문에서 '반드시 먼저 읽어보라'고 하여, 구입해서 읽을 생각이었는데 국내에는 아직 번역본이 없는 듯하다.

 

 

19세기 후반에 발표한 '다윈의 진화론'은 독일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듯하다. 이는 수백 년 동안 믿어왔던 기독교적 근간을 흔들었고, 인간을 다른 생물들처럼 자연현상으로 인식시키며 예술과 문학의 주요 테마로 성과 에로틱이 급부상했다.

 

 

유미주의적 삶을 위해 집을 나섰던 상인의 아들이 삶의 한복판으로 나갔다가 급기야 목숨을 잃고 마는 이야기인데 이는 유미주의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름다운 삶은 살아가지 않는 동안에만 가능하며, 절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아름다운 삶의 결말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삶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그 그림자는 유미주의적 멜랑콜리의 근원이 된다. p234-235

 

 

프란츠 카프카 <변신>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비극적인 삶은, 리얼리즘 경향이 정점에 도달한 자연주의 시대 직후에 발표된 점에서 충격적이다. 주인공 잠자는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족을 부양해 왔으나 벌레로 변신하면서 노동력을 상실했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를 극단적으로 반영한다. 사람이 벌레로 변신한다는 것은 자연법칙을 파괴하는 초현실적 사건으로서 환상문학 범주 안에 들어선다. 하지만 전통적인 환상문학과는 뭔가 다른 카프카적 환상이다.

 

 

프란츠 카프카 <시골의사>

참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눈보라 치는 밤에 한 시골의사가 위급한 환자에게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지도 않던 말을 타고 아픈 소년의 집을 방문해 진찰하고 우여곡절 끝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도망치는 것으로 끝맺는 개연성이라곤 1도 없는 이야기이다. 초자연적 사건이 없는 환상문학의 최고봉이라는 데 있어 저자와 뜻을 같이 한다. 하지만 카프카의 개연성 없는 사건들의 연속인 줄거리가 오히려 많은 연구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흥미진진한 해석들을 동반했다.

 

 

독일어에 '카프카에스크'라는 단어가 있다. '카프카 같은'이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자 부사다. 굳이 의미를 설명하자면 '기괴하고,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정도가 될 텐데, 카프카의 작품들이 그 어떤 기존 단어로도 설명할 길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고, 통용된 단어일 것이다. p289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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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평점10점 | g*****3 | 2021.03.02 리뷰제목
"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그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도록 해주는 것이 계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이 생각에 대한 답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찾은게 아닌 알게 되었다. 익히 들었던 말은 인간의 희노애락이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과감히 드러내고 사색하게 만드는 것이라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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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그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도록 해주는 것이 계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이 생각에 대한 답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찾은게 아닌 알게 되었다. 익히 들었던 말은 인간의 희노애락이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과감히 드러내고 사색하게 만드는 것이라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전을 읽기 전 그 작품의 배경과 왜 저자가 그 글을 쓰게 되었는지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른다면 아무리 좋은 고전이라도 현재 자신이 아는 선에서 이해하니 결론은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오늘 읽은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서가명강 시리즈 15번째 도서다. 작년부터 고전을 조금씩 읽기 시작하니 이 시리즈를 보고 먼저 반해버렸다. 

 

저자는 총 네 명의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한다. 세 명은 익히 들었던 인물이나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듣는 작가로 호프 만스탈이다. 그의 저서로는 [672번째 밤의 동화] 단편을 소개하는데 이 책을 소개하는 저자 역시 이 작품에 대해 난해함을 표현하고 끝까지 읽어도 왜 이런 제목이 나온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소설에 대해서는 아름답다고 했다. 음, 무엇이지? 간략한 내용은 부자인 한 남자가 자신의 하인의 누명을 풀어주려다 말에 치어 죽는다 인데...단순이 이 글로 봐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 여기서 저자는 작품에 대해 유미주의(아름다움에서 삶과 예술의 가치는 찾는 것)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프로이트의 심리학까지 거론이 된다. 만약 이런 설명이 없다면 읽는 내내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고민을 꽤나 했을 것이다. 또한 낯선 이유는 호프 만스탈의 작품은 대부분 희곡으로 번역하게 되면 작품의 매력이 그만큼 사라진다. 그렇기에 국내에서 번역본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난해한 작품을 쓴 인물이 또 있으니 바로 '프란츠 카프카'다. 최근 단편집을 읽으면서 고생께나 했었는데 역시나 저자의 설명에서도 카프카의 작품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한 작품에 대해 대부분 어떤 해석이 나오나 카프카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1915년에 발표된 [변신]은 독일이 산업 혁명의 결과로 오히려 지금보다 더 현대적으로 발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알듯이 이 책의 텃 시작은 주인공이 눈을 뜨니 자신이 벌레로 변한 모습에서 시작이 된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남자가 벌레로 변하면서 가족들에게 서서히 외면을 당하는 모습에 안타까웠다. 여기서 작가는 인간에게 노동의 상실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변신]이 환상문학으로써 현실세계를 떼어놓으면서 현실세계의 모습을 가져왔는데 이는 초현실적 상징을 사용하여 현실세계의 모습을 더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외에 헤세의 데미안,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설명한다. 데미안은 너무나도 익히 들었고 영상매체를 통해서도 만났다. 저자는 여기서 헤세가 데미안을 썼던 그 시대가 세계대전으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세계관이 변하면서 부모의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을 찾지 못한 시기로 즉, 유럽의 '사춘기'라고 표현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것이 힘들고 중요함을 [데미안]를 통해 길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젊은 베르터의 고통]의 괴테에 대해 설명한다. 제목부터가 뭔가가 다른데 원래 이 제목이 맞다고 한다. 이유는 외래어 표기법이 만들기 전에 일본식 표기와 영어 번역의 영향으로 현재 알고 있는 [젊은 베르테의 슬픔]이 되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나 익히 들었다. 사랑 때문에 결국 죽는 것인데 왜 이 책이 당시나 현재에도 사람들이 찾는 것일까? 

 

짧은 페이지나 [젊은 베르터의 고통]에는 당시 신분의 차별과 자연주의와 계몽주의를 보여주었다.또한 당시 종이책은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쪼개서 인쇄를 했기에 작가는 짧은 문장을 음미해서 읽을만큼 내용의 깊이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문장 뒤에 숨겨진 사회문제와 인간의 고뇌를 넣었고 독자를 이를 찾으면서 읽어야 했다. 여기서 대립되는 두 인물 베르터와 짝사랑 하는 여인의 약혼자 알베르트, 즉 자연주의와 계몽주의의 모습을 두 남자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자살을 긍정으로 보는 베르터... 자살로 소설은 끝이 나지만 비극이라고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든다. 베르터에게 있어 감정은 억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절망적인 감정 역시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도서인 [젊은 베르터의 고통] 단순히, 연애소설로만 치부한다면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고전은 그래서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읽을 수록 무엇인가를 알아가니 말이다. 음, 다음 서가명강 시리즈는 어떤 내용으로 출간이 될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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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가명강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독일 문학의 매력 평점10점 | b*********0 | 2021.03.09 리뷰제목
작년부터 헤밍웨이, 카뮈, 샬럿 브론테, 헤세 등의 문학작품들을 조금씩 읽기 시작해서 이번 달까지 총 12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전까지는 고전문학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한 달에 한 권씩 읽었더니 벌써 12권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작품을 읽으면서 매력적인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신선한 감정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방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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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헤밍웨이, 카뮈, 샬럿 브론테, 헤세 등의 문학작품들을 조금씩 읽기 시작해서 이번 달까지 총 12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전까지는 고전문학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한 달에 한 권씩 읽었더니 벌써 12권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작품을 읽으면서 매력적인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신선한 감정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를 배웠습니다. 흔히들 고전 읽기는 인문학적 소양을 다지는데 탁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동의하는 바이며 고전 읽기는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침이자 필수적인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혼자 고전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이 생기기도 하고 때론 정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한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고전은 말 그대로 아주 먼 옛날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고 문학적 배경지식 없이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도 상당합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도움 없이 고전을 스스로 깊이 알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쓴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우며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고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이 책은 현직 서울대 교수의 강의를 바탕으로 제작된 책으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 중 15번째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성격이 다른 4개의 유명한 독일문학을 소개하며 문학적 가치를 좇는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 등의 작품들을 심도 있게 파고들어 작품이 가진 세계관을 다각도로 관찰합니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작품이 가진 의미는 물론이고 관련된 사실들까지 낱낱이 알려줘서 흥미진진했습니다. 

 


 

 

<데미안>에서는 헤세가 살았던 시대,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독일 사회의 모습과 싱클레어의 성장이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은 잘못 번역된 원제 이야기와 주인공 베르터의 자살을 따라 한 남성들 때문에 괴테가 2판에 자살하지 말라는 글을 추가한 이야기, 사랑 이면에 담긴 사상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소외된 인간의 내면을 다룬 <변신>는 환상문학을 알게 했고 해석하기 어려운 <시골의사>는 프로이트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보도록 했습니다. 독일문학은 난해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학에 숨겨진 묘미를 찾을 수 있었고 작품을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4개의 소설 중 호프만슈탈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해서 스포가 될 것 같아 나중에 읽을 생각입니다. 

 

 


 

 

서가명강 시리즈 중 유성호 법의학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와 최영기 수학교육과 교수의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을 이미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 책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읽었던 고전 작품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포인트를 콕콕 집어주고 있어서 역시 기대한 것보다도 훨씬 유익했고 읽었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마치 해설집 같아서 먼저 작품들을 읽은 후에 읽어야 이해와 감동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고전 읽기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고전 문학을 이 책으로 함께 시작한다면 올바르고 유익한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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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평점10점 | r***2 | 2021.03.05 리뷰제목
제목부터가 시선을 잡아끌게 하는데 특히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부제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 더구나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믿고 읽는 서가명강 시리즈여서 부담없이 덥석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다. 그 이유는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문학의 고전 작품을 최근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
리뷰제목

제목부터가 시선을 잡아끌게 하는데 특히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부제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 더구나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믿고 읽는 서가명강 시리즈여서 부담없이 덥석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다. 그 이유는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문학의 고전 작품을 최근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작품들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지만 - 사실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는 이 책에서 처음 들어봤는데 번역서를 찾아보니 이 강의가 있을즈음에 번역된 책이 출판된 것 같았다. 아무튼 - 처음 들어본 작가와 작품이고 다른 작품들은 분명 오래전에 한번쯤은 읽었었지만 서정적인 감상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그냥 읽어보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읽고 감동해도 좋다! 고전을 즐기는 가장 특별한 방법"이라는 문구에 제대로 홀려서 무작정 전진을 했던 것인데 사실 문학작품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어도 별 차이는 없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데미안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또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을 함께 동원하여 작품을 해석해보고, 처음 읽을 때 해독할 수 없었던 내용을 하나씩 알게 되어갈 때 느끼는 즐거움은 무척 크다. 최종적으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보이고,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될때 느끼는 기쁨은 정서적 감동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울림이 큰 즐거움이다"(162)

 

정서적 혹은 감정적 경험으로 읽는 고전을 언급하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언급되고 있는데 나 역시 이 시에 담겨있는 의미를 모르면서 감성적인 시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2차세계대전 나치의 집권기에 쓰여졌고 나치에 저항하던 동료들은 목숨을 잃었지만 혼자 살아남은 그 감정을 표현해낸 것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그의 시가 처음의 느낌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을 읽는다면 알 수 있는 정서를 그 시를 처음접하는 외국인들은 잘 모를 것이라는 걸 떠올린다면 딱 이해가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사실 문학작품에서 제주의 4.3이나 광주 5.18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나는 그 시대와 정치적인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학속에 담겨있는 은유를 알고 이해하며 문장속에 담겨있는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지만 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조카는 명확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 역시 청소년시절에 읽었던 데미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한탄할 필요는 없지않을까. 대신 아는만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새롭게 데미안, 젊은 베르터의 고통, 변신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마 카프카의 작품은 성인이 되고 읽어 그 간극이 크지 않지만 성장소설로, 사랑소설로만 알고 있었던 작품들에 대해서는 다시 읽어보면 그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글은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새로운 읽기, 여러 의미에서의 새로운 읽기와 더불어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카프카는 특별하다. 그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동감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미지를 기괴한 이야기로 형상화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의 해석, 하나의 이해로 고정시킬 수 없다. 카프카는 있는 그대로, 기이하고 이해가 불가능한 방식 그대로 읽고 즐겨야 한다. 이 경우, 해석은 즐거움을 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카프카는 우리에게 새로운 읽기의 방식을 요구한다"(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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