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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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리뷰 총점 9.6 (87건)
분야
예술 대중문화 >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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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 미술사 - 기무라 다이지 평점9점 | g*******7 | 2021.01.22 리뷰제목
'미술'이란 정치나 종교와 달리 가장 무난한 이야깃거리이자 한 나라의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문 교양이다. 사람들은 흔히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감성'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지만,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 p. 11 中에서 -    미술은 '보는' 것이 아
리뷰제목

 

 


 '미술'이란 정치나 종교와 달리 가장 무난한 이야깃거리이자 한 나라의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문 교양이다. 사람들은 흔히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감성'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지만,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 p. 11 中에서 -


 

 미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예술이라는 말과 함께 저자는 미술작품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성과 기법에 못지 않게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작품과 연관된 당시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다면 보는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 미술사]는 기존의 책들이 예술가 또는 예술작품의 내면에 포함된 의미를 다루던 것과는 달리 아예 당시의 역사가 미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다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는 것도 미술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너무나 많아서 자칫하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할 수 있기에 역사가 미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만하다.

 

 흔히 유럽의 미술은 종교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성모 마리아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경의 내용들은 서양 미술에서 단골 주제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등장하기 이전인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대부분 인간 또는 신화가 주요 미술의 대상이었다. 또한 성상 숭배를 금지하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원칙대로 하면 그리스도교도 우상 숭배를 금하였기 때문에 유럽에서종교미술은 성립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와 로마 이후에 종교미술이 유럽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당시 문명 후진국이었던 알프스 북쪽이 유럽 지역에서는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성경을 그림으로 구현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성경'은 곧 종교미술의 확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게르만족에 의하여 로마가 멸망한 이후 여전히 비잔틴 제국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던 동로마와는 달리 서로마 지역은 대부분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들이 장악한 상황이기에 교회에서는 더욱 그러한 미술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11세기 이후에 등장한 '로마네스크 양식''고딕 미술'을 떠올려보자. 기존에는 건물 내부의 '반원아치'와 두껍고 견고한 구조로 인하여 거의 창을 낼 수 없는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정의하였으며, 뽀죡한 첨탑이 두드러진 것으로 '고딕 미술'을 구분하였다. 단지 모양 또는 건축 기법으로 이러한 양식을 이해하기란 솔직히 쉽지 않다. 전문가 또는 그러한 양식의 많은 건축물을 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구분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순히 기법에 대한 정의만 아는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 양식을 잉태하게 된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러한 양식이 왜 등장하였는지 또 그 차이점과 의의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로마네스크 조각은 신앙심을 자극할 수 있게 오싹하면서도 과장된 조각상이 많았다. 이는 당시 글자를 거의 읽지 못했던 대중들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전하기 위하여 사실적인 표현보다 생생한 약동감과 상상력으로 가득 찬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소 둔탁한 느낌의 '로마네스크 양식'과는 달리 세련된 느낌의 '고딕 양식'은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로마네스크 양식'이 지방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립하였다면, '고딕 미술'은 도시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로마네스크 양식'은 시기적으로 당시 유럽 지역을 거의 통합하였던 프랑크 제국의 붕괴와 함께 혼란한 상황이 야기된 상황에서 지방에 세워진 수도원을 중심으로 등장하였지만, '고딕 미술'은 제국의 붕괴 이후 점점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하는 상황에서 농업 개혁과 상인, 기술자의 대거 등장함에 따라 등장하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왕권 확대를 실행하기 위하여 국왕의 추종자들이 지배하는 지역의 건축 특징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것을 국왕이 직접 다스리지 않은 지역에도 전파함으로써 국왕의 권리와 권력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는데, 이를 위하여 '고딕 양식'이 등장한 것이다. '고딕 양식'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12세기의 '생 드니 대성당'이 프랑스 국왕에 의하여 추진되었는데, 이 양식은 압도적인 높이와 내부의 거대한 기둥, 첨두아치,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심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국왕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보면서 우리는 대부분 그 시대에 그러한 건축물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대단하게 여기지만, 정작 '고딕 양식'은 훗날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을 경멸하는 의미로서 '야만인(고트족 : 게르만족 일파)의 양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니 그 시대의 미술 양식을 바라보는 관점과 평가가 시대에 따라 상이함을 알 수 있다.

 

 이후 유럽에는 '르네상스'가 펼쳐진다. 보통 '르네상스'라고 한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비롯한 수많은 에술가의 작품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책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미(美)가 14세기 유럽에 다시 소환되었는지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지방 수도원에서 점진적으로 도시로 발전하던 중세 유럽의 상황은 11~12세기 지중해 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상업이 더욱 번성하면서 대도시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그러한 흐름이 포착되었는데, 이러한 상업적인 번영과 함께 14세기 이탈리아의 지식인들은 라틴어 및 그리스의 학문과 문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에서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신화가 작품의 주제로 등장하고 '인간'의 지위 향상과 인간 존중이 부각된 것도 이러한 역사적인 변화와 인문학의 발달이 그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에 유럽의 대변혁을 가져온 사건은 바로 종교개혁이다. 비록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종교전쟁까지 발발하게 되었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과연 종교미술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신교가 장악한 곳에서는 '성상파괴운동'이 재현되면서 종교미술은 위축되기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내부적인 개혁을 표방한 가톨릭에서는 종교미술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이어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종교미술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미술 표현의 경우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묘사와 고상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논의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종교미술은 과거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탈피하여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즉, 종교미술에 엄격한 태도를 보이며 부정적이었던 프로테스탄트에 비하여 가톨릭은 오히려 미술의 힘에 더욱 기대려 했던 것이다. 이는 로마 제국과 프랑크 제국이 붕괴된 상황에서 미술로 종교심을 강화하려고 했던 움직임과 유사하지만, 과거에 비하여 시민 의식이 성장하며 그 반대급부인 신교가 등장하였다는 점에서는 종교미술에 변화가 수반되어야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바로크 미술'은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종교미술의 맥락을 잇는 양식으로 등장하였다. 이전의 종교미술과 달리 사람의 감정과 감각에 호소하는 표현이 훨씬 도드라진 이 양식은 개인의 감정과 신앙심에 호소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바로크 미술'의 특징은 당시 유럽의 절대주의 왕정을 추구하던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절대주의의 상징으로도 자리잡게 된다. 그 경외의 대상이 종교일 수도 있지만, 왕권으로도 활용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동안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집중한 나머지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1648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왕립회화조각아카데미'는 이 시대의 예술적 흐름과 특징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당시 프랑스는 오늘날의 이미지와는 달리 예술 후진국이었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예술의 대국이었던 이탈리아에 비하여 17세기 초에 파리는 예술의 규범은 전무했고, 루브르 박물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왕립아카데미가 설립됨에 따라 에술의 규범이 하나씩 자리잡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미술가의 지위 향상을 가져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앙시앵 래짐'이라 불리우는 프랑스의 구체제의 모순은 확고한 신분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신분제 사회에서 미술가는 당시 장인 계급에 속하여 육체노동자로 분류되었다. 육체노동자라는 사회적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프랑스에서 화가와 조각가는 사회 지도층과 동떨어진 존재였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하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왕립아카데미의 설립과 함께 예술가에 대한 대우가 바뀌면서 프랑스는 점점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하게 되었다. 훗날 왕립아카데미의 전통이 프랑스 에술의 변화와 혁신을 억누르는 문제도 있었지만, 이 단체의 설립으로 예술가의 지위의 향상과 사회적 인식의 재고를 가져왔기 때문에 미술의 발전이 뛰어난 개인의 재능에 의한 걸작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대관식]은 직접 그림을 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머릿 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림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 원정을 위하여 한니발 이후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알프스를 넘는 과정에서 백마를 탄 나폴레옹의 역동적인 포즈와 로마 교황이 아닌 자신이 직접 황후 조제핀에게 왕관을 수여하는 모습은 나폴레옹을 영웅이자 황제로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와 함께 황실의 수석 화가로 프랑스 미술을 좌우하였다.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는 마치 황제가 된 나폴레옹을 로마 공화정의 이성과 윤리관을 이상향으로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폴레옹 역시 미술품 자체보다 선전 미술의 파급력을 정확히 꿰뚫어본 권력자였기에 자크 루이 다비드와 죽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와는 달리 실제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 노새를 타고 추위에 부들부들 떨던 나폴레옹의 그림이 더 사실적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는 나폴레옹과 그의 제국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는 정치가 미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으며 또 이 시기의 그림을 어떤 관점으로 읽어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미술에서 '인상파'는 널리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반항아'의 이미지의 상징이었다. 인상파가 등장한 프랑스 파리에서는 미술 아카데미의 주도로 여전히 '귀족적' 색체가 강하였기 때문에 '부르주아적'인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인상파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배척을 당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등장한다. 인상파의 본고장인 파리에서는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이들의 작품이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미국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유럽에서 인상파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는 고정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유럽에 비하여 미국은 미술에 대한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문화적인 열등감을 인상파를 비롯한 유럽의 전위미술로 극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경제적인 성공은 인상파의 작품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 놓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모네가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미국에서의 수요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애초 유럽에 대한 예술의 열등감을 경제적인 부로 따라잡은 이러한 흐름은 그 시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늘말 유명 미술관과 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 미술사]는 역사를 통하여 읽는 미술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에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미술을 느끼는 것이 어려웠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하여 미술에 대한 거시적인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면 왜 특정 시기에 특정 에술가가 등장하여 특정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다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술을 '감성'으로 보고 느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이성'으로 읽는 예술이 곧 미술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미술의 감상에 대한 기존의 통념과는 다소 다른 것 같지만, 앞서 언급한 각 시대의 독특한 미술 양식의 탄생 과정을 살펴본다면 저자의 '읽는' 미술의 관점에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와 방대한 그들의 작품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추천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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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개관하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i*****n | 2020.12.16 리뷰제목
이 책에는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라는 부제가 첨부되어 있다. 저자는 '미술사는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자 서양 사회에서는 중요한 공통 인식, 의사소통의 도구로 기능한다'고 논하면서 이 책의 저술 동기를 밝히고 있다. 아마도 저자가 접하는 이들이 대체로 기업체 경영자나 임원들에 집중되다 보니, 그들과의 대화에서 이러한 주제가 주로 채택되었던 것을 환기하면서 이러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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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라는 부제가 첨부되어 있다. 저자는 '미술사는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자 서양 사회에서는 중요한 공통 인식, 의사소통의 도구로 기능한다'고 논하면서 이 책의 저술 동기를 밝히고 있다. 아마도 저자가 접하는 이들이 대체로 기업체 경영자나 임원들에 집중되다 보니, 그들과의 대화에서 이러한 주제가 주로 채택되었던 것을 환기하면서 이러한 성격의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따로 미술사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상황이 자주 마련되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모든 예술사가 그렇듯이, 서양 미술사는 서양의 역사와 그 궤적을 함께 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서양의 역사를 토대로 미술사의 성쇠가 어떻게 변해왔고, 그 흐름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정신사는 그리스 신화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이 책의 1부는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로부터 기독교가 서양문화에 정착하는 과정의 미술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 중심의 세계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제목을 통해서, 서양 미술사 초기의 특징과 변화를 조망하고 있다. 서양의 중세는 흔히 종교와 권력의 결탁으로 인해 예술에서는 암흑기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특히 이 시기의 종교미술이 지닌 특색을 조명하고 있다.

 

'문예부흥'이라고 번역되는 14세기의 르네상스는 미술사에서도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틴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2부의 '회화에 나타난 유렵 도시의 경제발전'이라는 제목이 이 시기 미술의 특징을 요약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스와 로마를 기원으로 하는 이탈리아 미술이 서양 예술의 본류에 해당한다면, 점차 유럽의 북쪽으로 이동하는 문화의 기운이 프랑스에서 꽃을 피웠다고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북유럽으로까지 기운이 확장되었고, 이탈리안 반도의 북쪽에 자리 잡은 베네치아는 교역이 활발한 도시로 당대 예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종교개혁으로 인해 중세의 종교미술과는 다른 새로운 종교미술이 '반종교개혁'의 이름으로 싹트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가 미술 대국으로 올라서다'라는 3부에서는 17세기 이후 서양 예술의 중심으로 각광을 받은 프랑스 미술을 정치적 격변과 함께 결부시켜 조명하고 있다. 절대왕정의 몰락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나폴레옹의 등장 등 프랑스의 정치사와 미술사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절대왕정의 위상을 대변하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성립과 그에 기반하여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태양왕 이라 불리던 루이 14세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온화한 기풍의 로코코예술의 등장, 그리고 황제 나폴레옹의 선전수단으로 활용되었던 신고전주의와 이에 대한 반동으로 표출된 낭만주의등의 예술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미술사의 흐름을 '근대 사회는 어떻게 문화를 변화시켰을까?'라는 제목을 통해서 다루고 있다. 프랑스 중심의 예술사가 높이 평가를 받던 시대, '문화 후진국'으로서의 영국은 뒤늦게 예술에 대한 관심을 카우면서 대륙과는 다른 경향의 흐름을 드러내고 잇다고 파악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출발한 인상주의 미술은 당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현대 미술의 장에서 오히려 인기를 얻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20세기를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형성된 미국이 예술사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세하게 되는 저간의 흐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비록 개괄적으로 서양미술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서양의 역사는 물론 미술사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왔고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조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이 저자가 추구한 '상식으로서의 서양미술사'라는 취지에 적합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앞으로 서양 미술사에서 거론되는 작품들을 대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책의 관점이 나의 미술에 대한 상식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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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 눈에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j*****3 | 2020.12.15 리뷰제목
들어가는 글에서  " 미술사는 글로벌 리더의 '공통언어'다. "라고 말했다. 미술사는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자 서양사회에서는 중요한 공통 인식, 의사 소통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고,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글로벌 리더는 미술사를 교양으로 익히고 있었다는데, 저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서양에서 생각하는 '미술'이란 정치나 종교와 달리 가장 무난한 이야깃거리이자 한 나라
리뷰제목

 

  들어가는 글에서  " 미술사는 글로벌 리더의 '공통언어'다. "라고 말했다. 미술사는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자 서양사회에서는 중요한 공통 인식, 의사 소통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고,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글로벌 리더는 미술사를 교양으로 익히고 있었다는데, 저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서양에서 생각하는 '미술'이란 정치나 종교와 달리 가장 무난한 이야깃거리이자 한 나라의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문 교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감성'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지만,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p 11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으로 일본의 미술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같다. 현대는 글로벌 사회이기 때문에 '나는 동양인이니까 서양미술은 몰라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가장 무난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으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고, 지식을 넓히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비지니스 엘리트로서 미술사에 대해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까지는 힘들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더 많은 이들이 미술사와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약 2500년 동안의 서양미술사 중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한 권에 담았다. 미술 작품의 단순 설명이 아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시대적 사건, 문화, 가치관 등 '교양'으로서의 미술사를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소개하려고 한다 '고 집필동기를 밝히고 있었다. 저자는 어떤 매력적인 이야기들로 미술사에 한 걸음 더 가깝게 해줄 지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가 보았다. 총 4부로 이루어져있었다.

  

제 1부 '신'중심의 세계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리스미술, 로마 미술, 종교미술과 로마네스크 미술, 고딕미술을 다루고 있었는데, 자주 만나지 못한 부분이어서 집중해서 읽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름다운 남자의 나체는 신도 기뻐하신다'는 발상에서 아름다운 몸, 주로 남성미를 추구하는 그리스 조각이 발전했다. 기원전 600년 전부터 기원전 480년까지 이어진 흔히 고졸기라고도 부르는 시기에 '아르카익' 양식이 탄생했다. 이 시대 조각상의 특징은 직립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으로 이집트 미술과 달리 지지대가 없는 독립상이다. 인체 조각상은 신전에 바치기 위해 제작된 소년 도는 청년을 의미하는 쿠로스와 소녀를 의미하는 코레로 나눌 수 있다. 기원전 480년부터 기원전 323년에 걸쳐 나타나는 고전시대는 균형잡힌 비대칭 구도를 살려 생명력이 넘치는 몸을 표현했고, 고전시대는 서양미술의 규범, 본보기가 되는 서양미술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전시대 조각상의 표정이 무덤덤해 보이는 것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삼가야한다'는 그리스인의 가치관이 작품에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의 결과로 그리스문화가 세계에 전파되었고, 오리엔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문화 (기원전 323~ 기원전 30년)의 탄생으로 미술양식은 변모했다. 그리스 본래의 이상주의보다는 개성을 강조한 사실주의로 바뀌면서 조각상도 신에게 바치는 봉납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이자 예술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기원전 146년부터 그리스를 지배한 로마제국은 건축,예술등 다방면에서 그리스 문명을 계승했고, 로마 신전 건축에 그리스 양식을 곁들이고,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여 그리스 미술을 상품화시켰고, 대리석으로 수많은 복제품을 제작했다. 그리스 미술은 로마로 계승되어 서양미술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로마 제국으로 발전하기 전 융성했던 에트루리아 문화를 기원전 509년 무렵 공화정을 수립하면서 흡수했는데,  청동제 금속공예와 테라코타 기술등을 받아들였고,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과 함께 로마 미술의 원천이 되었다. 로마미술의 특징으로는 사실성이 강한 '초상조각'과 '대규모 공공 건축'을 들 수 있다. 콜로세움, 공공 욕탕인 테르마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판테온 등을 통해 로마 건축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스 건축의 영향을 받은 도리스,이오니아, 코린트 양식과 로마시대에 형성된 토스카나 양식, 콤퍼짓 양식이 고전적인 서양건축의 필수 요소로 서양의 절대적인 미적양식으로 계승되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는 공인되었고, 392년에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제정되었다. 이렇게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성경을 그림으로 구현하는 일이 필요했고, '눈으로 보는 성경'의 역할에 충실한 종교미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수도원이나 교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양식이 '로마네스크 미술'이었다. 대략 11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전후까지 나타낸 건축,미술을 지칭했다. 로마네스크 조각의 특징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실적인 표현보다 이해하기 쉬운 표현, 생생한 약동감과 상상력으로 가득 찬 환상적인 묘사가 두드러졌다. 11세기 이후에는 순례지 여행이 성행했고, 성유물 숭배가 강해지면서 성물이 보관된 성당의 건축이 활발해졌고, 그로인해 도시가 발전하고 종교미술도 세련되어졌다. 로마테스크 양식과는 다른 '고딕 미술'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10세기 이후 프랑스 수호성인인 '생 드니'를 기린 생드니 성당은 프랑스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교회이자 고딕 양식의 출발점으로 꼽혔다. 국왕의 추종자들이 지배하는 지역의 건축양식을 고딕양식으로 통합하고 왕이 직접 다스리지 않는 지역에도 전파함으로써 왕권강화라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건축양식이었다. 고딕양식의 건축 형태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발달할 수 있었는데, 이는 빛을 효과적으로 더 아름답게 그려냈다. 빛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신'을 상징하며, 고딕 건축에서는 시각적으로 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딕 대성당 건설 경쟁은 14세기에 시들해지면서 회화분야에서는 14세기말부터 15세기 초에 유럽 북부 지역의 전통과 이탈리아의 전통이 융합된 '국제 고딕 양식'이 퍼져나간다. 국제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필사본으로, 랭부르 형제의 '베리 공의 매우 호화로운 시도서' 가 있엇다. 프랑스에서 고딕 미술이 발전되었지만 15세기에는 도시 경제가 발전한 부르고뉴 공국과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제 2부 회화에 나타난 유럽 도시의 경제발전

 르네상스, 북유럽 르네상스, 베네치아 미술, 바로크,네덜란드 미술

 

  도시 경제가 발전한 이탈리아에서는 라틴어 및 그 원천이 되는 그리스의 학문과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신화가 작품의 주제로 등장했다. '인간'의 지위 향상과 인간존중, 인간 중심의 시선이 드러나게 되었다. 다방면으로 재능을 갖춘 이들은 예술가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대표적이다. 1517년 종교 개혁, 1527년 '로마 대약탈'사건의 영향으로 르네상스는 막을 내리고,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는 화가나 조각가가 자기만의 특정한 방식을 추구한 '매너리즘 미술'이 발전했다.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은 부르고뉴 공국 지배하의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회화예술인 '네덜란드 (또는 플랑드르 ) 회화'를 지칭한다. 특징은 '현실'을 중시한 시민의 인식이 반영되었다는 것, 현실성은 사실성이 높은 실내 묘사로 이어져 상징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베네치아는 무역을 통해 번영을 도모하고 십자군 전쟁 이후 중개 무역의 최고 중심지가 되었지만 동로마 제국의 멸망과 대항해시대로 인해 국력과 경제는 쇠퇴했지만 16세기 베네치아 미술은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거듭되는 경기 침체로 암흑시대를 맞이했지만, 18세기 영국의 '그랜드 투어'로 인해 두 번째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베네치아 경치에 다양한 드라마를 곁들인 '베두타'라는 풍경 그림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어 발전하게 되었다.

 

 

 

 

 1517년 카톨릭을 비판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프로테스탄트는 종교미술을 부정했지만 카톨릭에서는 종교미술은 우상 숭배 계명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술의 힘에 더욱 더 기대려고 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크 미술이었다. 목적은 신의 영광과 교회의 승리를 시각적으로 널리 알리고 전파하는데 있었다. 혁신적이면서 도발적인 카라바조가 있었고, 고전적인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우아하면서도 색채감이 풍부한 종교화를 그렸던 볼로냐파가 있었다. 바로크 예술을 완성한 예술가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였다. 플랑드르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이는 루벤스였다.

 

 

 

  스페인령이었던 네덜란드는 1648년 독립을 했고, 국제무역도시로 발전한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경제력을 갖춘 시민계급이 미술을 이끌었다. 풍속화, 풍경화가 인기를 끌었고 정물화에 상징과 은유를 담았다.

 

제3부  프랑스가 미술 대국으로 올라서다.

프랑스 고전주의,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17세기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으로 프랑스 고전주의 발전했다. 1648년 '왕립회화조각아카데미'를 설립해서 국왕과 국가의 업적을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려했다. 미술가 지휘 향상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화가는 푸생이었는데 그의 회화이론은 감각에 호소하는 색채가 아닌, 지성과 이성에 호소할 수 있는 형태와 질서에 기초한 안정된 구도를 중시했다.

 

 

 

  절대왕정에 대한 반동, 궁정사회가 여성 취향으로 바뀌는 변화의 과정에서 이성보다는 자연에 충실한 색야말로 만인에게 매력적인 요소라고 믿는 루벤스파에 의해 로코코 회화가 등장했다. 바토, 프랑수아 부셰,프라고나르가 있었다.그들의 그림은 경쾌하고,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웠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제의 수석화가 다비드가 프랑스 미술을 주도했다. 다비드의 작품은 색채를 배제하고 균형잡힌 구도와 명확한 소묘로 완성해낸 조각과 같은 인물상으로 라파엘로, 니콜라 푸생로 통하는 회화예술이 고전주의를 떠올리게 했는데 이로써 '신고전주의'가 탄생했다.

 

 로마 공화정의 이성과 윤리관을 이상향으로 삼은 혁명주의자들에게도, 자신을 고대 로마의 황제와 동일시하며 제정 정군을 고취하려는 나폴레옹에게도 메시지가 또렷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규범으로 하는 다비드의 신고전주의야말로 예술 양식으로 안성맞춤이었다.  -p 180

 

  동시에 낭만주의가 등장을 했는데, 이들은 동시대의 사건을 역사적인 주제로 삼았다. 신고전주의자였던 다비드,앵그르와 낭만주의자였던 제리코, 들라크루아가 다뤘던 주제, 표현 방식, 그들의 작품들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 4부 근대사회는 어떻게 문화를 변화시켰을까?

사실주의, 영국미술, 바르비종파, 인상주의, 현대미술

 

  프랑스 혁명후 프랑스는 변화를 거듭했고, 나폴레옹 3세의 제 2공화정 지지한 공화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표방했다. 쿠르베의 주제의 근대화는 인상주의로 계승 발전되었고,'현대미술=경계를 허문다'는 방정식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면서 오늘날 미술계까지 이어지고 이다. 마네는 형식면에서는 회화의 평면성, 내용면에서는 근대도시의 풍속을 기록했다. 쿠르베는 있는 현실을 그대로, 마네는 프랑스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영국미술의 영향은 서양미술사에서는 미미한데 이유는 '영국 국교회'의 성립과 영국 예술가의 부재로 보았다. 18세기에야 영국화가들이 등장했다. 가장 발전한 부분은 초상화였는데, 왕족과 귀족의 나라 궁정사회였기에 수요가 높았다. 특히, 엘리자베스 1세의 신격화를 위해 초상화의 권위를 활용했다. 영국 화가가 등장하기 전 플랑드르 화가 반 다이크, 독일의 한스 홀바인이 주로 활동했다. 영국 미술계 최초의 거장이자 영국 회화의 창시자인 윌리엄 호가스는'컨버세이션 피스'라는 소모임 초상화를 그렸고,  판화가로 유명했다. 대륙의 고전주의 를 본보기로 삼은 조슈아 레이놀즈,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화풍을 연출해서 로코코 화가로 일컬어지는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영국식 초상화를 완성했다. 프랑스 출신이면서 로마에서 주로 활동한 클로드 로랭은 역사화의 주제를 풍경에 버무림으로써 격조 높은 '이상적 풍경화'로 불리면 풍경화의 고전이 되었는데, 로랭의 이 풍경화들이 영국 정원 양식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의 인구 증가와 함께 도시인의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풍경화가 발달하게 되었는데,존 컨스터블과 윌리엄 터너가 대표적이었다. 역사화가 지배하는 고전주의 예술이 아닌 시각적 기쁨을 선사하는 심미안을 추구한 라파엘 전파의 예술 운동이 발달하기도 했다.

 

 

 

 19세기 도시화 시대에 바르비종에 모여 현실적이면서도 평범한 풍경을 사실적으로 혹은 주관적으로 그렸던 화가들의 모임이 바르비종파였다. 밀레가 대표적인데 그의 그림은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회화의 위엄을 깍아내린다 하여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비난을 받았는데 오히려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바르비종파는 인상파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채를 그리고, 화가 자신이 받은 인상에 충실하고자 했다. 살롱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와는 거리가 먼 그들은  마네를 중심으로 교류가 활발했다. 파리의 미술상 폴 뒤랑 뤼엘이 뉴욕에서 이상주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호평을 얻으면서 미국에서 인상주의가 대세로 떠올랐다.

 

  마지막 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현대 미술의 세계라는 제목이었지만, 19세기 말에 경제적인 발전, 20세기 세계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에서의 부호들의 미술 컬렉션, 미술관 문화등을 언급했지 실질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해서 언급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아마, 아직 역사를 써가고 있는 중이어서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첫째는 미술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담은 책은 많이 읽었지만 미술사 전체를 아우르는 책은 그다지 읽지 못한 내게 약 2500년동안의 미술사에 대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은 정말 흥미로웠다. 고대 그리스 미술로부터 시작해서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대장정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그 다음은 어떤 미술사가 펼쳐질까 궁금해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미술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 두가지겠느냐마는 종교개혁, 산업 혁명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미술사의 지도를 바꾸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두 번째는 그 시기에 활동한 주요한 예술가들의 마인드에 대해서 듣고, 그들의 예술 작품들을 통해 작품이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담아 시대를 반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언급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수록되어 있어서 풍부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리뷰에는 담지 못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너무 너무 많았다. 저자가 집필동기로 밝혔던 교양으로서의 미술사를 배우기에는 정말 좋았던 책이었다. 방대한 양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했기에 관심 있는 분야로 범위를 넓혀나가면 좋을듯하다.

 

  미술이란 분야는 접근하기에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중을 위한 교양서부터 전문서적까지 다양한 책들이 나와 있고,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수준 높은 강연을 들을 수도 있고, 전시회도 다수 열리고 있으니 관심만 있다면 거리는 충분히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작품을 볼 때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그림의 구조적 특성, 여러가지 배경등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감상이 중요하냐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게 된다. 그림이 가진 이야기를 많이 읽어낼 수 있을 때 내가 느끼는 감동도 커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기위해서도 그림에 대한 배경 지식을 쌓는 노력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저자는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림은 역사, 문화, 시대를 품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단 보고, 그림이 가진 이야기들을 읽어내고, 그림이 나에게만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라고.

 

 

YES 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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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양미술사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20.12.15 리뷰제목
서양미술사기무라 다이지/황소연소소의 책/2020.11.27.sanbaram   요즘은 미술품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동서양 미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양미술을 만나기가 쉽다. 그만큼 서양미술이 우리 생활에 넓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서양미술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서양미술사>는 서양미술의
리뷰제목

서양미술사

기무라 다이지/황소연

소소의 책/2020.11.27.

sanbaram

 

요즘은 미술품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동서양 미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양미술을 만나기가 쉽다. 그만큼 서양미술이 우리 생활에 넓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서양미술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서양미술사는 서양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다. 저자 기무라 다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영국 런던의 소더비 미술교육원에서 전문가 양성을 위한 예술품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 <미녀들의 초상화가 들려주는 욕망의 세계사>, <루브르에서 배우는 미술 교육>, <시대를 말하는 명화들>, <명화를 읽는 법등이 있다.

 

서양미술사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고대 신화시대로부터 기독교가 정착되기까지 미술이 발달해온 과정을 그리스와 로마 미술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2부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르네상스가 발현한 도시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3부는 유럽 문화의 변방이었던 프랑스가 국력을 바탕으로 미술의 중심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왕과 귀족을 위한 예술에서 부르주아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4부에서는 산업혁명으로 급부상한 신흥국 미국이 인상파나 낭만파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대두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서양미술사가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크게 받는 이유는 미술이란 정치나 종교와 달리 가장 무난한 이야깃거리이자 한 나라의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문 교양이기 때문이다.(p.11)”라고 하는 서양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한나라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같은 말이라 생각할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동시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효과적으로 더 아름답게 그려냈다. ‘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을 상징하며, 고딕 건축에서는 시각적으로 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p.64)”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광체는 당시 교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신의 신비로 다가왔던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조토 디 본도네가 그린 스크로베니예배당의 프레스코 벽화들은 회화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인물상이나 역동적인 몸짓과 극적인 감정 묘사는 전통적인 종교화와는 전혀 다른, 실체가 있는 인간성을 표현했다. 또한 레오나르보다 서른 살 연하이자 미켈란젤로보다 여덟 살 어린 라파엘로는 구도나 명암법 등 두 명의 선배가 탄생시킨 양식이나 기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서 완성시켰다. 그리고 라파엘로의 양식은 이후 서양 회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고 한다.

 

브르헐이 남긴 작품들의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하면 16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읽어낼 수 있다. 신 중심의 서재에서 종교미술과 고딕 건축이 발달했듯이, 어느 시대든 예술은 당시의 사회상을 오롯이 반영하게 마련이다.(p.100)” 바로크 미술을 감상해보면 이전의 종교미술보다 보는 사람의 감정과 감각에 호소하는 표현이 훨씬 도드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 중심의 신교와 달리 가톨릭교회는 글을 모르는 대다수의 신도에게 신의 기적을 알리고 신의 존재를 믿도록 이끌기 위해 개인의 감정과 신앙심에 호소하는 미술이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인 숭배를 꺼리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에서는 수많은 성인의 그림을 주문하기도 했다. 집단 초상화는 네덜란드에서 발달한 가장 특색 있는 회화 장르로 꼽힌다. 가톨릭의 경우 이런 사회단체에서 주로 제단화를 기부했지만, 프로테스탄트 교의를 중시했던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집단 초상화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집단 초상화는 개인 저택이 아닌, 그들이 속한 단체의 강당이나 회의실 등 공적인 공간을 장식했다.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도 나폴레옹의 권력을 도드라지게 나타낸 인상적인 작품이다.(p.183)” 이는 1804122,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대관식을 주제로 삼은 대작으로, 로마 교황 앞에서 황제 나폴레옹이 왕후 조세핀에게 관을 수여하는 장면이다. 원칙대로라면 로마 교황이 외국으로 직접 찾아와 대관식을 집전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로마 교황을 파리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권력을 알릴 수 있는 세기의 이벤트를 다비드에게 그림으로 기록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미술품이 정치적 도구로 빈번히 사용되기도 했다.

 

“‘올랭피아라는 이름 자체가 그 당시 매춘부의 통칭으로 통했고, 배경에 등장하는 흑인 하녀가 들고 있는 꽃다발은 올랭피아의 고객이 건넨 선물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또한 벗겨져 있는 신발은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의미한다.(p.208)”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비너스의 발밑에는 순종을 상징하는 강아지가 드러누워 있었는데, 마네는 강아지 대신 꼬리를 곧추세운 고양이로 남성의 성기를 암시했다. 이처럼 마네는 근대 도시의 풍속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인간의 고독과 타락, 그리고 인간조차도 쉽게 상품화하는 근대사회의 그늘과 인생의 단편을 묘사했다. 급성장한 대도시 파리의 뒷골목에 배춘 여성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분명 존재했다. 마네는 화려한 근대 사회의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어두운 현실을 파리지앵답게 세련된 풍류로 포착함으로써 덧없는 한순간을 영원의 순간으로 화폭에 기록했다.

 

인상파는 빛나는 자연의 찰나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섞지 않고 색체분할 기법을 구사했다.(p.242)” 색채분할 기법이란 아주 가느다란 붓질로 나열한 두 가지 색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서로 섞여 있는 것 같다는, 인간의 시각 혼합 또는 망막 혼합이라고 일컬어지는 과학적인 현상을 이용한 기법이다. 즉 팔레트에서 물감을 석지 않고 따로따로 캔버스 위에 나열한 것이다. 색채 분할법을 도입함으로써 자연의 밝기를 잃지 않을뿐더러 화가가 관찰한,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자연의 빛과 색체의 이동을 화면에 찍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인상파의 작품은 당시 비현실적인 만큼 눈부시게 밝고 붓질이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졌다. 이같은 색채 분할을 통해 마네가 방향성을 제시한,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근대 회화의 정의는 더욱 확고해지고, 본격적인 근대미술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한다.

 

미국의 미술관 문화를 적극 후원하는 이가 바로 미국의 부호들이다. 유럽의 주요 미술관이 왕족과 귀족의 컬렉션을 주축으로 삼고 있다면, 미국은 건국 이래 순수한 부르주아 사회이기에 미술관 건립도 대재벌을 비롯한 미국의 부호들이 담당했다.(p.256)” 이를테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모건 가문, 록펠러 가문, 헥스터 가문, 그리고 리먼 사태로 유명한 리먼 가문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이같은 미술관의 특징에는 미국이 학력 사회라는 측면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귀족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작위가 아닌 학력과 학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학벌 중시와는 성격이 다른, 학력 중심 사회인 셈이다. 따라서 미국 미술계의 겨우 교양주의나 권위주의가 강하고, 심지어 대재벌도 미술사가나 전문 지식을 갖춘 미술상들의 추천으로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의 묘미를 한 가지 더 꼽는다면, 미술 이야기에 앞서 서양 역사를 촌철살인으로 정리한 각 장의 첫머리 부분이다.(p.267)”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서양미술사의 맥을 짚기 위해 저자가 녹여낸 간명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과정에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통찰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는 것이다. 2,500년 동안의 서양미술사를 개괄하며 각 시대별로 미술의 정수를 소개해 주는 이 책을 통해, 미술에 초보자라도 교양으로서의 서양미술사를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 되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걱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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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양미술사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23.01.24 리뷰제목
서양미술사 기무라 다이지/황소연 소소의 책/2020.11.27.   요즘은 미술품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동서양 미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양미술을 만나기가 쉽다. 그만큼 서양미술이 우리 생활에 넓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서양미술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서양미술사>는 서양미술의 흐
리뷰제목

서양미술사

기무라 다이지/황소연

소소의 책/2020.11.27.

 

요즘은 미술품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동서양 미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양미술을 만나기가 쉽다. 그만큼 서양미술이 우리 생활에 넓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서양미술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서양미술사는 서양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다. 저자 기무라 다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영국 런던의 소더비 미술교육원에서 전문가 양성을 위한 예술품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 <미녀들의 초상화가 들려주는 욕망의 세계사>, <루브르에서 배우는 미술 교육>, <시대를 말하는 명화들>, <명화를 읽는 법등이 있다.

 

서양미술사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고대 신화시대로부터 기독교가 정착되기까지 미술이 발달해온 과정을 그리스와 로마 미술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2부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르네상스가 발현한 도시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3부는 유럽 문화의 변방이었던 프랑스가 국력을 바탕으로 미술의 중심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왕과 귀족을 위한 예술에서 부르주아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4부에서는 산업혁명으로 급부상한 신흥국 미국이 인상파나 낭만파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대두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서양미술사가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크게 받는 이유는 미술이란 정치나 종교와 달리 가장 무난한 이야깃거리이자 한 나라의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문 교양이기 때문이다.(p.11)”라고 하는 서양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한나라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같은 말이라 생각할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동시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효과적으로 더 아름답게 그려냈다. ‘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을 상징하며, 고딕 건축에서는 시각적으로 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p.64)”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광체는 당시 교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신의 신비로 다가왔던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조토 디 본도네가 그린 스크로베니예배당의 프레스코 벽화들은 회화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인물상이나 역동적인 몸짓과 극적인 감정 묘사는 전통적인 종교화와는 전혀 다른, 실체가 있는 인간성을 표현했다. 또한 레오나르보다 서른 살 연하이자 미켈란젤로보다 여덟 살 어린 라파엘로는 구도나 명암법 등 두 명의 선배가 탄생시킨 양식이나 기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서 완성시켰다. 그리고 라파엘로의 양식은 이후 서양 회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고 한다.

 

브르헐이 남긴 작품들의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하면 16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읽어낼 수 있다. 신 중심의 서재에서 종교미술과 고딕 건축이 발달했듯이, 어느 시대든 예술은 당시의 사회상을 오롯이 반영하게 마련이다.(p.100)” 바로크 미술을 감상해보면 이전의 종교미술보다 보는 사람의 감정과 감각에 호소하는 표현이 훨씬 도드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 중심의 신교와 달리 가톨릭교회는 글을 모르는 대다수의 신도에게 신의 기적을 알리고 신의 존재를 믿도록 이끌기 위해 개인의 감정과 신앙심에 호소하는 미술이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인 숭배를 꺼리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에서는 수많은 성인의 그림을 주문하기도 했다. 집단 초상화는 네덜란드에서 발달한 가장 특색 있는 회화 장르로 꼽힌다. 가톨릭의 경우 이런 사회단체에서 주로 제단화를 기부했지만, 프로테스탄트 교의를 중시했던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집단 초상화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집단 초상화는 개인 저택이 아닌, 그들이 속한 단체의 강당이나 회의실 등 공적인 공간을 장식했다.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도 나폴레옹의 권력을 도드라지게 나타낸 인상적인 작품이다.(p.183)” 이는 1804122,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대관식을 주제로 삼은 대작으로, 로마 교황 앞에서 황제 나폴레옹이 왕후 조세핀에게 관을 수여하는 장면이다. 원칙대로라면 로마 교황이 외국으로 직접 찾아와 대관식을 집전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로마 교황을 파리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권력을 알릴 수 있는 세기의 이벤트를 다비드에게 그림으로 기록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미술품이 정치적 도구로 빈번히 사용되기도 했다.

 

“‘올랭피아라는 이름 자체가 그 당시 매춘부의 통칭으로 통했고, 배경에 등장하는 흑인 하녀가 들고 있는 꽃다발은 올랭피아의 고객이 건넨 선물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또한 벗겨져 있는 신발은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의미한다.(p.208)”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비너스의 발밑에는 순종을 상징하는 강아지가 드러누워 있었는데, 마네는 강아지 대신 꼬리를 곧추세운 고양이로 남성의 성기를 암시했다. 이처럼 마네는 근대 도시의 풍속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인간의 고독과 타락, 그리고 인간조차도 쉽게 상품화하는 근대사회의 그늘과 인생의 단편을 묘사했다. 급성장한 대도시 파리의 뒷골목에 배춘 여성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분명 존재했다. 마네는 화려한 근대 사회의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어두운 현실을 파리지앵답게 세련된 풍류로 포착함으로써 덧없는 한순간을 영원의 순간으로 화폭에 기록했다.

 

인상파는 빛나는 자연의 찰나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섞지 않고 색체분할 기법을 구사했다.(p.242)” 색채분할 기법이란 아주 가느다란 붓질로 나열한 두 가지 색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서로 섞여 있는 것 같다는, 인간의 시각 혼합 또는 망막 혼합이라고 일컬어지는 과학적인 현상을 이용한 기법이다. 즉 팔레트에서 물감을 석지 않고 따로따로 캔버스 위에 나열한 것이다. 색채 분할법을 도입함으로써 자연의 밝기를 잃지 않을뿐더러 화가가 관찰한,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자연의 빛과 색체의 이동을 화면에 찍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인상파의 작품은 당시 비현실적인 만큼 눈부시게 밝고 붓질이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졌다. 이같은 색채 분할을 통해 마네가 방향성을 제시한,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근대 회화의 정의는 더욱 확고해지고, 본격적인 근대미술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한다.

 

미국의 미술관 문화를 적극 후원하는 이가 바로 미국의 부호들이다. 유럽의 주요 미술관이 왕족과 귀족의 컬렉션을 주축으로 삼고 있다면, 미국은 건국 이래 순수한 부르주아 사회이기에 미술관 건립도 대재벌을 비롯한 미국의 부호들이 담당했다.(p.256)” 이를테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모건 가문, 록펠러 가문, 헥스터 가문, 그리고 리먼 사태로 유명한 리먼 가문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이같은 미술관의 특징에는 미국이 학력 사회라는 측면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귀족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작위가 아닌 학력과 학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학벌 중시와는 성격이 다른, 학력 중심 사회인 셈이다. 따라서 미국 미술계의 겨우 교양주의나 권위주의가 강하고, 심지어 대재벌도 미술사가나 전문 지식을 갖춘 미술상들의 추천으로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의 묘미를 한 가지 더 꼽는다면, 미술 이야기에 앞서 서양 역사를 촌철살인으로 정리한 각 장의 첫머리 부분이다.(p.267)”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서양미술사의 맥을 짚기 위해 저자가 녹여낸 간명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과정에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통찰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는 것이다. 2,500년 동안의 서양미술사를 개괄하며 각 시대별로 미술의 정수를 소개해 주는 이 책을 통해, 미술에 초보자라도 교양으로서의 서양미술사를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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