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이어서 일어나면 이상할 것 같다. 안 좋은 일은 그렇게 잇달아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우연일 뿐이겠지. 료스케는 함께 일하고 사귀는 지에를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한테 소개했다. 그때는 괜찮았지만, 얼마 뒤 지에가 사라졌다.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는데, 아버지보다 먼저 어머니가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있는 외할머니를 만나러 간 날 료스케는 집에 온다. 그날 료스케는 아버지 서재 옷장문이 조금 열린 걸 보고 그 안을 본다. 아버지가 옷장문을 제대로 닫지 않다니.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 소설도 없었겠구나. 옷장 안에는 상자가 있었다. 아버지 몰래 그런 걸 보는 건 좀 그랬지만 료스케는 상자를 열어본다. 거기에는 오래된 여성 핸드백이 있었다. 그 안에는 종이와 머리카락이 있었다. 종이에는 미사코라 쓰여 있었다. 어머니 이름이 미사코지만 료스케는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료스케는 어릴 때 폐렴으로 병원에 오래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료스케는 어머니가 바뀌었다고 느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다니.
상자 밑에는 서류 봉투가 있고 그 안에는 공책이 네 권 있었다. 그런 거 보면 읽어보고 싶을까. 그러고 보니 그건 비밀 상자나 판도라 상자 같기도 하구나. 료스케는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까지 공책 첫번째 것을 읽었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고백 같은 게 쓰여 있었다. 그건 그리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과 사람을 죽인 기록이었다. 자신한테는 유리고코로가 없다는 걸 알았는데, 사람을 죽이면 유리고코로가 생겼다. 하지만 이 유리고코로는 잘못 들은 거였다. 요리도코로라는 말을, 요리도코로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거다. 어릴 때는 그런 거 별로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어릴 때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 글을 쓴 사람과는 달랐겠지. 그 사람은 감정이 없었다. 그게 혹하고 상관있을까. 그 사람은 어릴 때 머리 뒤에 혹이 있었는데.
공책에 글을 쓴 사람은 누구고 료스케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바뀐 건 정말일지. 어머니가 바뀌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여겨야 하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른이 아이 하나 속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까. 나도 네다섯살 때 일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걸 기억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료스케는 결혼하기로 한 지에가 사라진 일과 공책이 마음 쓰였다. 첫번째 것밖에 못 봐서. 료스케는 동생 요헤이한테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외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 요헤이도 함께 갔다. 료스케는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는 요헤이 전화를 받고 부모님 집에 가서 두번째 공책을 읽었다. 세번째를 읽는데 동생이 연락해서 세번째 것은 가지고 가기로 했다. 다음에 집에 갔을 때는 공책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알아챈 거겠지. 료스케는 아버지가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네번째 공책을 보여달라고 한다. 이제와서 숨길 수는 없겠지. 아버지는 순순히 네번째 공책을 료스케한테 건넨다.
난 이 책 처음 봤는데 왜 뒷부분은 한번 본 것 같은지. 내가 책을 보다 넘겨봐설지도. 그때 내가 본 글이 무의식에 남아서 그 부분 볼 때 한번 본 듯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책을 보다가 다음이 알고 싶어도 넘겨 보면 안 되는데.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본 부분 때문에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았을지도. 책을 보다가 어렴풋이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맞았다. 지금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말을 하기도 하는데, 여기 나온 사람은 뭘까. 사이코패스라 해도 사람을 죽이지 않게 되기도 할 거다. 예전에 없던 마음이 아이를 낳거나 아이가 생기면 조금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도. 여기 나온 사람은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몇해 전에 이 책이 나왔을 때는 못 봤는데, 이번에 다시 나오고 봤구나. 그때는 유리고코로에서 유리가 백합인가 했다. 이번에 책 보면서 요리도코로가 아닌가 했다. 이건 앞에서 말했구나. 여기 나온 사람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산 어머니 마음은 어땠을지. 가끔 나도 어쩐지 사는 게 덧없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느끼는 거겠다. 나한테 마음의 안식처가 있는지 없는지 이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산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책을 보면서. 내 마음의 안식처는 책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