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윤리, 편협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흔들릴 때마다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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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에는 8백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짐은 그날의 사건을 떠올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 때는 대영 제국이 가장 강력했던 시절, 1천4백 톤급 증기선 파트나호가 동남아의 한 해역에서 난파선의 잔해로 추측되는 부유물과 충돌해 침몰 위기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스콜까지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파트나 호의 선장과 기관사 일행은 배와 승객들을 뒤로 한 채 다급히 구명정으로 뛰어내렸다. 평소 바다와 모험을 동경해 용감한 선원으로서의 사명을 중요시 여겼던 짐은 비겁하게 탈출을 감행하는 승무원들을 바라보며 주저했지만, 이내 아비규환이 되고 말 파트나호의 다음 순간을 상상하다 그만 절망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충동적으로 구명정에 뛰어들고 말았다. 만약 그날, 바다 속으로 영영 가라앉고 만 것이 자신의 꿈과 미래였음을 짐이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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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동양의 어느 항구에서 파트나 호 사건을 둘러싼 재판이 열린다. 방청석에서 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말로는, 도망친 다른 선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춰버린 가운데 홀로 재판정 앞에 선 짐이라는 청년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이 자초한 곤경에 빠져버린 짐은 결국 온갖 사회적 비난을 받고 선원 자격까지 박탈당하지만, 말로는 이 청년에게 묘한 연민을 느낀다. ‘직접 목격되지 않은 위험은 인간의 생각 속에서 불완전하고 막연할 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되는 것들, 이를 테면 그 어떤 위험이나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이나 이타심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불완전하고 막연한 믿음일 뿐이라는 것을 말로는 짐의 이야기 속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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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직화된 집단이 아니야. 그러니 우리는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그런 인간다움이라는 명분뿐이지.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면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거야. 강인함을 보일 기회가 전혀 없이 바다 생활을 거의 마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기회가 왔을 때는…… 아! 만약 내가…….> / 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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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자신의 도덕적 정체성이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그 마음속 정체성을 비난에서 구해 내려 끙끙거리는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이 장엄해 보이는 동시에 또한 살짝 우스꽝스럽기도 하지. 한 인습에 대한 이런 소중한 관념은 단지 게임의 법칙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무시무시하게 효과적이야. 이것이 무한한 힘을 타고난 본능을 억누를 수 있다는 생각과, 실패할 경우 받게 되는 끔찍한 벌 때문이지. / 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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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로는 사회적 무리에서 낙오된 짐이라는 한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된다. 파트나 호 사건 이후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고 살아가는 짐의 파멸과 방황, 오지의 어느 원주민 마을에 정착하게 된 이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소설 『로드 짐』은 말로라는 1인칭 화자가 짐의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되, 다른 화자들이 등장해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는 다층적인 서술 구조를 통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이상과 꿈이 좌절된 청년 짐을 입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그 속에서 독자들은 인간의 책임과 윤리, 편협에 관한 성찰을 비롯해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다가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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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승리한다는 말이 있잖아. Magna est veritas et(진실은 위대하고)……. 맞는 말이지. 하지만 진리도 기회를 얻어야 이기는 법이야. 모든 일에는 규칙이라는 게 있어. 마찬가지로 주사위를 던질 때는 어떤 법칙이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지. 하지만 고르고 세심한 균형을 유지해 주는 것은 인간의 종복인 정의가 아니라, 우연과 운명과 행운 같은, 참을성 많은 시간의 동지들이야.」 / 4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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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들은 원래가, 지나친 잔인함과 지나친 헌신이라는 어두운 오솔길에서 자신의 위대함과 힘이라는 꿈에 휩쓸려 맹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 아닐까? 그리고 결국, 진실의 추구라는 게 뭐란 말이야? / 4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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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상선단에서 일한 작가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감 있는 묘사와 흥미로운 모험담은 그 자체로 이 작품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소설 전반에 짙게 깔려 있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적 사고관은 읽기에 따라 다소 불유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당시 시대상을 탐구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인간의 존엄성, 명예, 정의, 절대적 진리 등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그 파괴적인 원소 안에 푹 잠겨야 해! ……꿈을 좇고 다시 꿈을 좇고, 그런 식으로 영원히, usque ad finem(끝까지)…….>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헤맬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작품의 특별한 여운까지 꼭 즐겨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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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짐은 1900년에 발표된 폴란드 태생 영(英) 작가 조셉 콘래드(1857~1924)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선원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다수의 해양소설을 쓴 콘래드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토대가 된 소설 <암흑의 심연>을 쓴 작가로도 유명하다. 배가 침몰하지 않아 희생자가 없었지만, 짐은 ‘과도하게’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며 갈등하고 고뇌한다. 항해사 자격이 박탈된 후 짐의 궁극적 목표는 죄책감과 수치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는 결국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과 화해한다. 로드 짐은 ‘파트나’란 선명(船名)과, ‘파투산’이란 지명(地名)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 내 의식 저편에 강렬하고도 긴 여운을 남겼다. 양심과 죄의식, 죽음, 그리고 용기 같은 것에 대해.
조지프 콘래드의 '로드 짐'입니다.
본인이 책임을 져야할 위치에 있으면서, 그러한 일을 업으로삼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맡은 바를 못하면 어떻게 될까?
본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가게 한 후, 어떻게 그의 삶이 붕괴되는지를 잘 표현해준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영영 잊을 수 없는 광경이 있는 법이지"/514쪽
여름,미메시스뮤지엄을 찾았을 때 구입한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열대야를 잊게 해 줄 책이라 생각해 골랐으나.. 어찌어찌하다 겨울 문턱에서 읽게 되었는데..작가의 생일이 12월3일이라..끌리게 된 걸까.. 그러나 시작은 소세키선생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물론 구입힐 당시에는 아무 이유가 없었지만^^)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가, 포의 소설을 읽게 되었고...콘래드의 단편을 읽고 나서야.. <로드 짐>의 작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바다이야기라서 모험에 관한 흥미를 담은 책인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 힘들었다..(세월호가 어쩔수 없이....) 영영 잊을 수 없는 광경이..있다는 말에 공감할 수 밖에. 배가 침몰하는 순간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들을 깨우지 않고 탈출한다.그런데 배는 군함에 의해 구조된다. 그러나 짐에게는 그것이 평생 도망자로 살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위험한 순간 도망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 싶어 참담했고,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짐이란 사내는 예외라고 해야 할까.. 왜 그렇게 했는지 스스로도 설명되지 않아..그는 자신을 더 고통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을까.. 서술방식이 읽기에 힘들어서 순간순간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지만..짐의 여정을 따라 가고 싶었다.잘못에 책임지지 않은 사람들과 달리..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미약한 형벌에..스스로 벌을 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짐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평범한 욕망이라는 외피 속에 정당성이라는 추상 개념을 지닌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우월감이지.그것은 천박하고 배반적인 살육 행위가 아니라 교훈이자 보복이었어(...)"/559쪽 소설의 절반은 침몰하는 배의 모습과, 자신들만 살려고 했던 모습 때문에 힘들었다면, 후반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는 기분이들어 힘들었다.욕망을 감추고 정당성을 말하고 있는 .... 고전의 바탕에 무엇이 있어서, 과거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이제는 그 답도(?)알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놀라웠다. 순간 순간 우리 인간들이 정말 사악하기만 한 존재일까..항변해 보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짐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것도 그래서는 아니였을까. "우리 인간들은 원래가 지나친 잔인함과 지나친 헌신이라는 어두운 오솔길에서 자신의 위대함과 힘이라는 꿈에 휩쓸려 맹목적으로 나가는 것 아닐까?그리고 결국 진실의 추구라는 게 뭐란 말이야?"/483쪽 짐에게 집중한 것 같으면서도 결국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에 짐은 만족하고 있을까 라는 말 보다 이제.라는 말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지 못했을 누군가에게 작가의 생각은 그래서 인상적이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 잃어버린 명예에 대해 예민하게 의식하는 것을 두고 병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580쪽 '작가의 말'부분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서 '암흑의 핵심'이 언급되었다고 해서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로드 짐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암흑과, 빛에 대한 언급이..있어 연장선으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또 했다. 읽기에 호락하지는 않을 테지만..로드짐 보다 분량면에서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에.... "짐이 날마다 자신의 마음속에 확실히 살아 있던 진실을 선언하며 자기 세계의 일들을 조정하던 그곳에 말이야. 암흑의 힘은 짐에게서 두 번씩이나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 갈 수 없었어(...)"/564쪽 <로드 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