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삶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 '철학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애초부터 철학을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필로소피아'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지혜'를 얻으며, 그렇게 얻은 지혜로 삶을 슬기롭게 살아가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삶의 지혜'를 학문적으로 승화시킨 것일뿐, 그닥 어려운 학문이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도 철학을 어렵게만 느끼는 까닭은 '못난 철학자들'이 자기들이 살면서 얻은 지혜를 '계보'로 만들고, 사상적 유사성과 차별성을 따지며 수많은 갈래로 나누는 등...하릴없는 짓거리들을 참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에픽테토스도 굳이 따지자면, '후기 스토아학파'의 사람으로 "우주만물이 자연에서 비롯되었으니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뻔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삶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가? 라는 수많은 질문에 얼렁뚱땅 대답을 하며 썰을 풀어놓았다고 이해하면서 읽어나가면 그닥 어렵지 않은 내용의 책이다.
철학이니, 스토아학파니.. 떠들어대니 대단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인간은 흙으로 빗어졌으니 흙으로 되돌아갈지어다"라는 문구와도 일맥상통면이 없지 않다. 스토아학파에서도 바로 이것과 비슷하게 우주만물이 자연에서 나왔으니 자연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자연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 이를 테면, '죽음'을 '신의 부름'으로 표현하고, 원래의 물질로 회귀한다는 표현을 즐겨썼단 말이다.
여기서 파생한 것이 바로 '자유'다. 삶이라는 것이 결국 죽음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무엇에 '종속'되어 사는 것이 더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욕망과 시기, 질투 등과 같은 것을 품고 살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결국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에 다다르는 길이다...라고 썰을 풀어놓았다.
이 책의 원래 의도는 '고대의 지혜'를 통해서 '현대인의 고뇌'를 풀어내는 열쇠를 얻어보자는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의 기획에서 비롯되었다. 비단 이런 시도는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시도되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과 같은 '고전'을 통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지혜를 얻으려고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고대나 현대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닥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솔깃한 기획이긴 하지만,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으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원문의 미로>에 갇혀서 '뒤침(번역)의 굴레'에 허덕이다가 으레 지쳐 쓰러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기획의도에는 반드시 '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쉽게 말해서 '딱딱한 고전'을 망치로 두들기든, 이빨로 씹어대든 '말랑말랑한 현대의 언어'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삶의 지혜'를 얻기 힘들다는 말이다.
또한, '과거의 지혜'를 오늘날에 맞게 '재해석'하는 기술도 필요한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돌덩이 같은 책이 되고 말 것이다. 애초에 학술서적으로 편찬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살짝 실망스럽다. <원문>을 '한국어'로 뒤쳐놓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는 적혀 있지 않다. 최소한 '현대인의 눈높이'에 딱맞는 해법은 적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전혀 의미 없지는 않다. '고대인의 지혜'를 통해서 오늘날에 알맞는 지혜로 풀어가는 숙제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정답이 꼭 하나뿐일까? 아니다. 수없이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답'이 없는 숙제란 말이다. '고대인의 지혜'를 단 하나뿐인 진리로 맹신하는 것만큼 위험한 정답이 또 있겠는가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철학은 어렵지 않다'는 진리만 깨우친다면, 누구나 쉽게 철학을 즐길 수 있다.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보는 주제인듯 하다.
그러나 아무도 섣불리 답을 해 주진 못하는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에픽테토스라는... 무려 서기55년에 태어난 스토아 철학자라고 한다.
학교 다닐때 스토아 학파-금욕주의, 에피쿠로스학파-쾌락주의 라고
고민은 1도 하지 않고 외우기만 했었는데 ㅎ 이렇게 책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ㅎ
오늘날 번역으로 예전의 책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처음엔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은근 많은 교훈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읽으면서 놀랬다.
뭔가 인생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전해주는 내용이랄까 ㅋ
(약~간 이전에 보았떤 파울로 코엘료 책 느낌 같은...ㅎ)
내가 가지고 있는것, 내가 바꾸거나 변화시킬수 있는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것들, 내가 바꿀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힘을 내서 일부러 바꾸려고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병은 몸에는 장애이지만, 의지가 방해받기를 원하지 않는 한 의지에는 장애가 아니다.
절뚝거림은 다리에는 장애이지만, 의지에는 장애가 아니다.
만사에 이렇게 생각한다면 장애는 다른 것에 해당될 뿐 네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뭔가 유체이탈 (?) 화법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 보면 또 딱히 틀린말은 아니어서 ㅎㅎ
간단 간단한 인생의 교훈들과 권면들이 담겨 있어 수천년 책이라는 거리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책이었음. ㅎ
아쉬웠던 점은 이 책은 서문이 제일 읽기 딱딱함 ㅋㅋ 거기만 넘으면 뒤에는 재미있었음 ㅎ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시리즈 2 #에픽테토스
아날로그 아르고스 시리즈 2권은 '자유'에 관한 주제로,
스토아학파 에픽테토스에게서 듣는 고대의 지혜랍니다.
기원전 4세기 말 그리스에서 생겨난 스토아철학.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틀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정치 이론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자기 수양이라는
내적 진화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시조인 제논에 따르면
자유는 현명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보통 사람들은 바보이자 노예로 규정하는데,
언뜻 엘리트주의로 지금 이해가 될 지 모르지만,
당시의 시대상에서 볼 때,
노예 여부를 '지혜'에 기준한다는 것은
계급사회 시대에서 도전적인 생각이고
오히려 깨어있는 가치였다 볼 수 있답니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자유로운 삶을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롤 전제합니다.
에픽테토스는 물질세계를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결정론적인 세계'로 보는데, 세계를 아무런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이유가 있는 '외적 자연'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저항보다는 받아들이고 적응해야한다고 봅니다.
이런 한계를 이해하는 조건에서 '인간본성'을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발휘되어 가치들을 추구하며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생각처럼, 우리는불리한 조건에서도 성공할 수 있고 유리한 조건에서도 잘 살지 못할 수 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성공적인 삶은 조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권리이자 목적인 이성적 동물로서의 인간 본성을 발휘하는 데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적으로 선호하는 것을 획득하고 자연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는 행운이 아니라, 역경을 만나든 부와 번영을만나든 "모든 일에서 이성을 결정적 원리로 삼는 것"이다. _p.31
에픽테토스 철학의 핵심은 선택이나 결정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라는 주도성이라고 보입니다.
자유의지에 대해 신의 영역이라고 보는
외부자연을 인정하는 한계를 감안하고,
본질적으로 실망이나 좌절을 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정신 상태와 인격을 가르칩니다.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을 열거하며 시작하는 <엥케이리디온>에서
에픽테토스는 세상과 나와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할지,
자기계발서와 같은 철학의 가르침을 가득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이나 인상이 떠오를 때는 항상 '이렇게 보일 뿐이지 진짜가 아냐'라고 말하라.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냐." _p.52 |
네가 어떤 물병을 좋아한다면 "난 물병이라는 것을 좋아해"라고 말하라.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바로 그 물병이 깨져도 괴롭지 않을 것이다. _p.53
만일 너의 욕망이 좌절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러한 바람은 네 능력으로 실현할 수 있다. 그러니
네 능력을 단련하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실현하거나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기 삶의 주인이다. _p.68
세세한 태도를 이야기하기보다,
가치관과 관점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계발서와 인문도서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인문도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에서는
과도한 집착이나 욕망을 덜어내고자
관계대상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삶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엥케이리디온>에서 철학적인 가르침들이
흐름을 따라 생각을 성장시키는 방식이었다면,
<대화록>에서는 엥케이리디온을 보완하는
에픽테토스의 대화체로 핵심적인 내용들을
더 수월하게 배워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좋호를 이루면서 자신에게 좋아보이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자유.신의 영역에 대해서는
비판없이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고,
본성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원하는 상태를 이루고자 자유의지를 맘껏 발휘하기.
나의 자유는 내가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통해,
괜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주도적인 삶을 이루는
고대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인문도서,
에픽테토스의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였습니다.
-나태와 태만 속에서 미적대며 자기 통제를 항상 내일로 미룬다면, 너는 자신이 아무런 발전 없이 죽을 때까지 보통 사람으로 삶을 소비할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너 자신을 나날이 발전하는 성인으로 여기고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결코 위반해서는 안 되는 규칙으로 삼아라.(p126)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수 있을까. 책 제목을 듣고 여러번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여유 없이 시간에 쫓겨 사는 삶, 더 많은걸 가지지 못해서 불평하는 마음,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은 모두 자유와는 멀어져 있다는 것의 반증이지 않을까 싶어졌다.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자유는 전적으로 자신이 욕구하고 결정하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욕구하거나 결정하지 않기에 좌절이나 실패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이들의 정신적 태도이다(p7)' 일상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들에 있어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유로워질수 있는 것,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흔들리거나 좌절하는 삶에서 벗어나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이 그가 말하는 '자유'이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의 의미를 되짚어 가며 현대의 자유의 의미에 대해 다시 이야기한다. 욕망, 주변사람들의 죽음, 장애와 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대처하며 다시 마음의 자유를 얻을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쉽지는 않지만 책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기존의 생각과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다. 그동안 얽매여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앞으로 자유롭게 살수 있을까. 묻고 대답하는 시간들을 가지며 불안한 삶에서의 자유에 대해 고민해 본다.
고대철학을 배울 당시 교과서에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를 나눠서 가르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스토아 하파는 욕구의 억제와 절제를 강조하며, 에피쿠로스 학파는 정신적인 쾌락을 갈망하며 두 학파는 대립이 뚜렸했기 때문에 주로 도덕과 철학시험의 암기로 활용되었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은 고등학교때 철학에세이관련 수많은 글들을 저술한 윤리 선생님으로부터 감사하게도 깨질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토아학파의 주장은 일반적인 억제와 절제가 아닌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함이고, 정신적인 성숙함이 결여될 경우 극한의 탐욕과 나태에 빠지게 되면 철학이 정립될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 잘 알지 못해던 스토아 학파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아날로그 출판사에서 출간한 아르고스 시리즈의 두번째인 <어떻게 자유로워질것인가?>는 노예출신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떠나는 저서입니다.
에픽테토스를 포함한 스토아 철학자들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 자체를 억누르거나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하고 싶고 사유재산을 늘리고 싶고 아프고 가난한 것을 피하는 것을 당연한 본성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 행위로 보았습니다. 단, 에픽테토스의 본서에도 나와있듯이 그들은 조절과 통제의 여부에 따라 보다 이상향적인 인간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평정심이 필요하며, 인간이 물질적 자유를 실현할 수 없더라도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조절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평점심으로 대체하며 욕구를 절제할 때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두려움 슬픔 혼란스러움은 자유의 산물이 아닌 방종과 지나친 극단의 결과물로 이뤄진것이며 이것인 결국 정신적 자유가 아닌 노예의 길로 접어든다고 본 것입니다. 일한 자유와 반대되는 노예의 길은 본서의 [대화록]에서 아주 잘 살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에픽테토스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원칙의 적용이고 둘째는 원칙에 대한 근거, 그리고 세번째는 증거를 확인하고 분석하고 토론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스토아학파 철학의 기본적인 정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싫고 있고 기나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인간이 사고하는 체계의 본질, 진리탐구와 현실적용을 위해 나아가는 방법들은 이미 스토아 학파의 철학적인 관점에서 잡혀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를 읽으면서 저는 고대 스토아철학자들과 함께 현대인들이 끝없이 고민하고 있는 공통점은 결국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정신적)노예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한 것은 결국 자신의 철학의 원칙과 근거를 세우고 그에 대해 탐욕을 억제하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안의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상대방과 비교를 하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면서 결국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인생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 철학자들과 현대인들이 경험하고 만나는 삶의 편린들이 다를지언정, 결국 불안과 혼란으로 인한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의지야 말로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정의해주는 것일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