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어느 가을, 1도 관심 없던 한 아이돌 그룹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촛불집회 이후 정치에 꽂혀 늘 시사방송만 보고, 유튜브 영상도 시사 관련 채널만 구독하던 나였기에 어느 순간부터 BTS의 영상을 보고 있는 내가 당황스러웠다. 자아분열하듯 ‘이러면 안 돼’와 ‘좋은 걸 어떡해’ 사이를 오가다 극장에서 상영한 콘서트 실황을 보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들의 매력에 두손두발 번쩍 들며 항복 선언을 했다. 그리고 행복한 덕질 생활에 두발을 푸욱 기꺼이 담궜다. 사실 처음에 잠깐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연예인은 어차피 100프로 진심을 보여줄 수 없는 직업인일 뿐이고, 언젠가 나도 환상이 깨져 실망하는 날이 올 테지,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즐겨보자 하는 마음이었달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there is no way out! 입덕은 내 마음이었지만 탈덕은 불가능했다. 알면 알수록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들의 관계가, 그들의 음악으로 말하는 것이 다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일관성이 있어서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입만 벌리면 찬양을 일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난 이제 자기계발서 따위 안 읽어. BTS가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훌륭하거든. 그들은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책이야.” (주접은 여기까지... ㅎ)
팬이 된지 어언 3년째에 접어들었는데 왜 아직 질리지 않는지, 아니 실망은커녕 매번 “어쩜 이래, 이 아이들은”을 외치며 놀라고, 새삼 반하게 되는 건지 친구와 흥분하며 나누던 이야기들을 저자는 연구 자료를 근거로 굉장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이 책 『BTS 길 위에서』를 통해 들려준다. 감히 ‘늦덕 아미 필독서’이자 ‘아미 속성 코스’라고 정의하고 싶을 정도로 BTS가 왜 인기가 있는지, 그들이 무엇이 다르며 지금의 놀라운 성공과 팬덤의 지지는 어떻게 가능한 건지를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왜 팬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점점 더 매료될 수밖에 없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트랜스미디어’라는 개념으로 이들의 서사를 설명한 3장의 내용이었다. 팬이 되고 가장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이 대부분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표면적으로 독립적인 듯하지만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홍석경 교수는 이런 걸 ‘트랜스미디어’라고 명명하며, BTS 트랜스미디어의 경우 세 가지 층위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층위는 BTS 세계관으로서의 서사, 두 번째 층위는 BTS 그룹과 멤버들의 서사, 세 번째 층위는 자연인으로서의 서사인데,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첫 번째 서사만 작동했다면 아마도 BTS는 지금과 같은 엄청난 팬덤을 갖지 못했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멤버들 간에 보여주는 끈끈한 관계성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동기부여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에 감동하고, 그들이 평소 느끼고 말하는 감정과 고민이 음악을 통해서 다 드러나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진심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런 것이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층위의 서사인 것이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사에서 아무리 이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열심히 전략을 짜도 절대 따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진정성에 기반한 서사가 아닐까.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독보적일 수밖에 없을 이유이기도 하고.
세대론과 계급론으로 읽는 BTS 현상과 대안적 남성성의 관점으로 그들의 인기를 분석한 것도 상당히 공감이 갔는데, 처음 그들의 이름에 ‘방탄’을 넣은 것이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들이 가야할 운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BTS, 앞으로 더더더 응원하고 지지할 테다!
안 그래도 흘러넘치는 나의 팬심에 자부심을 빵빵하게 불어넣어준 한 권의 책! 아미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ㅎ
- BTS가 걸어온 길을 수놓은 이런 에피소드들은 유튜브, VLIVE, 정식 다큐 필름 등을 통해 팬들에게 끊임없이 전달된다. 데뷔 이후 어느 시점부터든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관찰자는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고’, ‘멤버들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이 함께 길을 걸으며 만든 이야기는 그것이 끊임없이 현실로부터 목격되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으로 관찰자들에게 다가온다. (152~153쪽)
- 세계화의 빠른 진전 속에서 인종과 젠더 문제는 갈수록 복잡하게 얽혀가고, BTS는 동아시아 남성으로서 기존의 지배적인 인종과 젠더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등장했다. 결국 BTS의 성공은, 빅히트도 멤버들도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운명을 이들에게 만들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BTS가 길을 나설 때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운명의 전개 속에서 이들에게 새로운 목표와 의무가 주어졌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분투해야만 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애초에 청년들에게 쏟아지는 몰이해와 비판에 맞서 싸운다는 의미로 지어진 그룹명 방탄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BTS로 바뀌었더라도 이들은 여전히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종과 젠더에 대한 편견과 싸워야 하는 히어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264쪽)
BTS는 어떻게 케이팝을 넘어 세계인을 움직였을까?
문화적, 산업적, 사회적, 미디어적 관점의 전방위 분석
대중문화 현상에서 사회적 역동성과 의미를 쫓는 연구자로서의 객관적 시선으로 문화산업의 아이콘으
로 세계적으로 부상한 방탄소년단을 분석한다. 실제로 우리 집에도 그들의 데뷔 시기부터 아미의 일원
으로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올해 성년을 맞은 우리 집 그녀가 있다.
실제로 그녀의 아미 행보를 꾸준히 지켜봐 온 엄마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방탄소년단이 데뷔하던 시기 우리 집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엄마 눈에는 늘 아기 같은 그녀에게
어느 날 장난삼아 운전하는 차안 뒷좌석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 : 너는 사랑이 뭔줄 알아? (마침 라디오에서 사랑타령을 하고 있길래 순전히 막던진 질문^^;;)
우리 그녀 :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까지 사랑하는 게 사랑이야.
엄마 : '........' (그렇게 빨리 대답할 줄이야. ㅋㅋ)
우리 그녀 : 김남준이 그랬어
엄마 : 김남준이 누구야? (진짜 누구냐 정말 궁금했음)
우리 그녀 : 랩몬스터 (그때 RM은 랩몬스터라고 불렸었다.)
그렇게 내게 방탄소년단은 우리 그녀가 처음으로 덕질을 시작한 아이돌 그룹으로 인식되었다.
케이팝, 아이돌이라고 하면 일찍부터 훈련된 인형 같은 청소년 그룹으로 인식되던 것이 사실이다.
어린 나이부터 퍼포먼스를 앞세우고, 비주얼적인 면을 강조하며(개중에는 물론 실력으로 승부하는
이들도 분명 있음은 인정한다. ) 만들어진 엔터테이너라고 인식됐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돌 그룹과 팬덤은 공감하는 애정을 기본 에너지 삼아 상호 신뢰하는 집단과 스타가 맺는 사심없는
관계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그룹을 위해 음원차트를 상위권에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그 결과에 기뻐할 스타를 상상하며 덩달아 행복해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책에서는 트랜스미디어로서 방탄소년단이 기존의 케이팝 그룹들과의 다른 행보들을 분석하고 소개한다.
실제로 오랜 시간 아이가 아미로서의 활동을 지켜본 엄마 입장에서도 어렴풋하게만 느껴왔던 부분들이
퍼즐 맞추듯 와닿는 부분들이 많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문화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수용자를 넘어
문화 산물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민주적 환경을 마련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개인이 바로 영상 생산
자가 되게 해 주었고, 영상 가공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들에 대한 접근도 비교적 쉬워진 영향도 있다.
SNS의 발달과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다른 신비주의와는 다른 노선인 활발한 소통 과정에서 생각과
고민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방탄소년단과 팬텀은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해나가는 기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화된 지구의 로컬에서 태어난 방탄소년단은 동시대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 속에서 때로는 방탄이
되기도 하고, 탄환이 되기도 하면서 케이팝과 함께 세계와 소통하는 행보를 넓혀나가고 있다.
전 세계적인 팬텀 아미의 증가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적극적으로 습득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많은 나라들에 한국어 강좌가 인기를 끌고, 적극적인 아미들의 소통은 이를 더욱
확산하는 데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BTS의 노래는 대부분의 팝 음악과 다르게 러브스토리보다 사회적인 이슈와 세대가 공감할 만한 보편적
고뇌를 담고 있다.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고 많은 팬텀의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그 메시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앨범 제작 과정부터 직접적인 경험에 기초하고 강력한 자기애를 메시지에 전달하는
이들의 음악은 청년들을 넘어 중년 팬들까지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청년층에게 위로를 준다면 중장년 팬들은 이들로부터 삶의 활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고 답한다.
실제로 이들의 선한 영향력을 반증한 BTS의 유엔 연설은 긍정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으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남겼다. (아~ 자랑스럽고 대견한 청년들 ^^)
실제로 아이는 BTS 콘서트에 가기 전 소소한 선물들을 준비한다. 콘서트를 기다리며 아미들은 그 공간
에서 서로 나눔을 하고, 공연장 옆자리에서 처음 만난 아미들에게 소소하게 준비한 선물들을 나누곤
하는 문화를 이어간다. 평소에 좋아하는 스타의 공연을 보는 것만큼이나 그 경험들에서 또 다른 관계를
배워가는 아이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아이돌스타 그룹으로 많은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이들의 어록이 소개된 페이지는
다 익숙하게 아이로부터 간접적으로 듣거나 아미인 아이의 언저리에서 봐왔던 문구들이다.
새삼 익숙했던 이 문구들을 읽는데 괜히 울컥해지는 건 또 왜인지. ^^;;한창 사춘기였고, 또 엄마로서는
아이의 팬덤 활동이 살짝 불만스러운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바르게 잘 성장한 아이에게 부모와는 또
다른 부분의 선한 영향력을 준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래서 느껴지는 만감이라고
해야겠다.
실제 인생이라는 길을 가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떤 일들이 기다리는지
방향과 목표를 알지 못한다. 오히려 길 위에서 하는 일들과 주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며 방향과 목표를 알게 된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작은 변방의 나라에서 그런 실천을 이어가고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BTS 그들을
응원한다. 더불어 그들의 동반자 아미들도 더불어 성장하며 서로의 좋은 이웃으로 함께 하길 바란다.
진정한 소통의 바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그들이 자랑스러운 이유이다.
이젠 요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오래된 BTS 열풍에 뒤늦게라도 접근하고자 구매하였습니다. 홍석경 교수님의 글이나 논문은 간간히 읽어 읽기에는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트랜스미디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 BTS 세계관에 대한 설명으로 BTS를 이해하고, BTS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사람들 (대개 ARMY 얘기이긴 하나, 빅히트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잠깐 등장합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왜 그런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BTS에 큰 관심이 없던터라 개개인의 서사를 담고 있다는 노래 얘기가 나올때는 공감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노래는 듣다보면 가사에, 그 배경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니 BTS에 관심있으신 분들에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