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기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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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1

리뷰 총점 9.5 (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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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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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불가능한일이 가능해질 때 평점10점 | a*****e | 2007.04.15 리뷰제목
맑스의 『자본Ⅰ』권 「본원적 축적에 대하여」장(章)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지를 서술한 유명한 장이다. 인간이 특정한 조건아래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과정, 그것은 자기 토지에서 멀쩡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서 생존수단을 강탈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으로 몰아갔던 역사였고,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 국가적인 폭력을 동원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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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자본Ⅰ』권 「본원적 축적에 대하여」장(章)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지를 서술한 유명한 장이다. 인간이 특정한 조건아래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과정, 그것은 자기 토지에서 멀쩡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서 생존수단을 강탈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으로 몰아갔던 역사였고,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 국가적인 폭력을 동원한 역사였으며, 그렇게 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본주의체제에 적합한 노동자로 만드는 역사였다. 자본이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리라.
20세기의 사상가 아렌트는 반듯해 보이는 평면의 굴곡과 주름을 통해, 특정한 조건에서 전체주의가 발생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우리는 화폐경제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정당화하여 그것이 발생했던 당시의 조건을 이해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체주의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너무나도 크게 벗어나버려 이해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그것이 발생한 조건을 살피지 않는다.
한 인종의 완전한 말살을 목표로 하여 전례 없는 피해자수를 기록한 전체주의 앞에서 그것을 자세히 응시하지 못한 사람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된 비극으로서만 회상할 때 전체주의는 재현될 우려가 있다. 특히 인간이 자신의 이해력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빨리 잊으려는 경향을 갖는 한 더욱 그렇다.
그래서였을까, 아렌트 자신도 이러한 전체주의의 특성 때문에 사건을 인과론적으로 결정화시키는 것을 피하고 있다. 가령 삼별초의 항쟁조차 근대민족국가수호의 시금석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오늘날 역사의 현실이라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마저 정당화시킨다면 그것 자체가 역사를 왜곡하고 오도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녀가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지반으로 ‘반유대주의’, ‘제국주의’를 들었을 때, 그것만이 전체주의를 결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들이 전체주의로 결정화 되는 과정을 말하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끈 전체주의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가.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은 다른 사회 집단과는 다른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특수한 집단으로 존속하였다. 하지만 법 앞에서의 평등에 기초한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계급 제도의 불평등에 기반한 새로운 물결 속에서, ‘계급’이 아닌 ‘집단’으로 존재한 유대인들은 점차 사회와 연결된 끊을 놓아간다.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었을 뿐, 국민국가로의 통합과정에는 하나의 장애물이자,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로서 여겨진다. 인종청소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아울러 제국주의와 함께 처음 등장한 ‘팽창’의 개념은 새로운 정치구조를 가져왔다. 화폐와 같이 단일화된 척도에 모든 것이 비교 가능해짐에 따라 더 이상 질적인 차이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양(量)으로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기에 무한한 증식만이 유일한 목표가 된 것이다.
정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지역적이고 제한되어 있으며 그래서 예견이 가능했던 기존의 국가들은, 무제한적인 권력 추구를 꿈꾸게 된다. 이러한 원대한 목표 속에서 개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질적이고 다양한 정치공동체들은 팽창의 장애물로서 제거되며, 개인의 특수한 현실 역시 하찮은 것으로 오그라들거나 팽창의 흐름 속으로 가라앉아버리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들이 세계와 고립될 때, 전체주의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세계와 관계를 맺지 않는 고독한 인간이라는 것. 한편은 기존의 상식적인 세계로부터 뿌리 뽑혀 무용지물이 되어 피해자로서 살해되고, 다른 한편은 가족이나 친구와의 유대감 없는 외로움에 집단적인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전체주의 운동에 투신한다. 공동체적 관계를 상실한 인간이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과정은 의외로 담담하다. 특히 미래가 암담하게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승리와 성공 자체를 장담하는 전체주의는 그만큼 쉽게 위안이 된다.

 

공동체의 상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했다. 그런데 세네카가 이 말을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is)’라고 번역했고, 아퀴나스는 두 말이 같다고 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것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인은 ‘폴리스(polis)’와 ‘오이코스(oikos)’로 나눠서 생활했는데, 폴리스에서는 공적인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정치가 이뤄지는 영역이었던 반면, 오이코스는 생존에 필요한 살림살이의 영역이었다. 물론 폴리스의 영역에 사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것은 비난받을만한 행동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두 개념을 헷갈리는 것은 자유인과 노예를 혼돈 하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근대사회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경제학이 국가의 최고 학문이 되며, 공적인 것으로 발휘되던 정치 또한 사적인 사건들과 섞이게 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생존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통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상실하게 된다. 개개인 스스로가 ‘주도’하고 ‘시작’하던 삶이 아닌, 사회에서 정해준 길을 따르는 수동적인 인간으로의 변화. 이처럼 존재의 이유와 근거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행위의 권리를 박탈당했고, 의사를 밝힐 권리를 빼앗겼다.
노예가 인간이 아닌 것은 자유를 빼앗겨서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예는 주인과의 관계라도 맺었음을 미뤄볼 때,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빼앗긴 대중의 무리는 노예보다 못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쓸모없어지는 상황이 만들어 졌을 때, 인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전적인 작업이 수행될 때, 비로소 전체주의는 태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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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기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책 평점8점 | b****l | 2009.08.04 리뷰제목
영어 제목은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이다. 이 중 기원 (= origins) 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어느 학자가 자신의 저서에 '기원'이라는 단어를 당당하게 쓸 수가 있을까. 브루스 커밍스의 역작 중 하나인 '한국 전쟁의 기원'의 영어 제목도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다. 정치적/사상적 제약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어느 누구라도 한국 근대사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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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은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이다. 이 중 기원 (= origins) 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어느 학자가 자신의 저서에 '기원'이라는 단어를 당당하게 쓸 수가 있을까. 브루스 커밍스의 역작 중 하나인 '한국 전쟁의 기원'의 영어 제목도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다. 정치적/사상적 제약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어느 누구라도 한국 근대사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글을 쓰기는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많이 아쉽다" 라고 할만큼 한국지성에 의한 '한국전쟁의 기원'은 커밍스에 많이 신세를 지고 있다. '기원'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커밍스가 쓴 이 책은. 마찬가지다.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찬찬히 읽다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기원'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나찌치하의 유대인 문제에 관한 글들은 많이 있고,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이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유대인 문제를 취급한 것들이 주종이고 일상사 혹은 종교/문화적 관점에서 다룬 글들도 적지 않다. 다 나름대로의 시대적/환경적 적실성을 확보하고 있기에 문제 이해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아렌트의 이 책을 읽어 보면 여지껏의 문제의식이나 취급범위가 일부분이어서 전체 숲을 보기에는 부족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인종주의/종족주의/제국주의 등이 팽배하던 시절의 유럽 근대사속에서, 전체주의가 어떻게 태동/성장을 했고 결국 그 전체주의로 부터 유대인종의 말살이라는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는지 아렌트는 아주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결국 모든 현상뒤에는 기원이라고 할만한 오랜 내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 내력의 처음을 잘 살펴서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 그리고 사회과학과 철학이 결코 분리된 학문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늘 전체주의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등이 머리에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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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전체주의와 대한민국 평점10점 | k*****7 | 2010.09.15 리뷰제목
"나치와 볼셰비키는 과잉 인구 문제, 경제적으로 불필요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를 잃은 대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신속한 처방을 제시한 자신들의 말살 공장이 경고이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유혹도 된다고 확신한다. 전체주의의 해결책은 강한 유혹의 형태로 전체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생존할 것이다. 즉 인간다운 방식으로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고통을 완화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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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 볼셰비키는 과잉 인구 문제, 경제적으로 불필요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를 잃은 대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신속한 처방을 제시한 자신들의 말살 공장이 경고이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유혹도 된다고 확신한다. 전체주의의 해결책은 강한 유혹의 형태로 전체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생존할 것이다. 즉 인간다운 방식으로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고통을 완화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일 때면 언제나 나타날 강한 유혹의 형태로 생존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이 책을 탈고했을 때 한반도는 전쟁 중이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완벽한' 전체주의 국가가 될 북한을 이 책은 다루지못하고 있는데, 그가 분단 후 김일성이라는 '독재자'를 위시해 정상적 사고 능력을 상실한 대중들의 북한 사회를 보았다면 볼셰비키, 나치와 더불어 틀림없이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꽤 많은 지면을 할애했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전체의 단일(One Man)화. 그 곳에선 '단 한 사람'의 의지가 전체의 의지가 되어야 하고 그 사람의 생각(사상)에 반하는 것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반동분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며 죽음은 추억으로도 간직될 수 없게 '증발'시켜버린다. 이건 나치와 볼셰비키, 북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40년 전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고 지금도 한국은 부분적으로 전체주의 국가이다. 

 

그 때 대한민국 국민의 의지는 박정희라는 '단 한 사람'의 의지였다. 그의 '반공 사상'에 반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들여 '제거'했고, '증발'시켰다. '제거'와 '증발' 작업의 핵심이었던 중앙정보부는 전체주의 국가 존립에 필수요소인 '비밀경찰' 집단이었고, '5.18 학살'로 전체주의적 폭력을 극단적으로 표출한 전두환의 '삼청교육대' 역시 전체주의 국가에 없어서는 안될 '강제 수용소'의 전형이었다. 

 

반공 사상은 지금도 '국가보안법'을 명분으로 '국교(國敎)'로서 군림하고있고 대중들은 '국가'의 이름을 건 큼직큼직한 스포츠 대회가 있을 때면 북한에 버금가는 일사불란함으로 너나없이 전체주의적 조직력을 과시한다. 그것은 알게모르게 행해진 일방적 사상 주입에 이은 모순된 행동 양식으로 보인다. 가령 그렇게 싫은 '빨갱이'들의 하나된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 2002년 월드컵 응원 모습은 한국의 부분적 전체주의 양상의 가장 뚜렷한 증거였던 것이다.

 

몰리기 좋아하고 쏠리기 즐기는 한국인들은 그러나 파시스트 군사 독재의 유령이 여전히 실존으로 추억되고있는 자신들의 나라가 전체주의적임을 완강히 부인한다. 아마도 그것은 전체주의가 부분적인만큼 부분적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있는 탓일게다. 그들은 그것들을 완전히 누린다 생각하고있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독점 대기업의 '돈'과 수구 정치 집단의 '권력'에 의해 쉽게 유린되는 대한민국 헌법의 민망한 권위가 부분적 전체주의 성향의 확대와 정착에 기여하고있음이며, 어디서든 떳떳하게 "나는 공산당"이라고 외칠 수 없음이다.

 

다양해보이지만 획일적이고 자유로워보이지만 제한받고 억압되는 곳. 바로 대한민국이며 그 곳에서 다시 (군사) 독재 정권이, 그곳에 처음으로 '완벽한' 전체주의 체제가 들어서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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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전체주의의 기원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w******1 | 2018.04.30 리뷰제목
전체주의의 기원. 제목을 보고 2차세계대전과 관련한 정치 철학과 사상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산 책.   책을 읽으면서 많이 데였다. 일단 문체 자체가 상당히 형이상학적이라 독해가 100% 완전히 되지 않는다. 내 독해력이 문제라고 하기에는 독서량을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못 읽는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 요소는 대중이라는 '잉여존재'의
리뷰제목

  전체주의의 기원. 제목을 보고 2차세계대전과 관련한 정치 철학과 사상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산 책.

 

 책을 읽으면서 많이 데였다. 일단 문체 자체가 상당히 형이상학적이라 독해가 100% 완전히 되지 않는다. 내 독해력이 문제라고 하기에는 독서량을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못 읽는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 요소는 대중이라는 '잉여존재'의 출현이다. 전체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대중들은 정당, 조합과 같은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사회를 떠다니는데, 절망과 증오로 가득찬 개인들은 전체주의 운동의 구성원들로 돌변한다.

 

  대중을 동원한 전체주의의 운동이 성공한 것은 민주주의의 환상 종말을 야기했다. 하나, 대다수 국민은 공공 업무에 능동적으로 참가하며 특정 정당에 동조한다는 환상. 둘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중립파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국가의 정치적 활동에 있어 불분명한 배경을 이룬다는 환상. 이런 환상과는 반대로 정치적 기획의 성공은 불분명하고 무관심한 대중적 암묵적 동의, 관용에 의거한다. 

 

  한나 아렌트는 '탄생'을 의미하는 '시작'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용문으로 끝을 맺으며, 무모한 낙관주의도 불별없는 절망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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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전체주의의 기원 1 평점10점 | p********1 | 2024.05.01 리뷰제목
한길사에서 출간한 한나 아렌트작가님의 전체주의의 기원 1권의 리뷰입니다. 다 읽고 쓰는 리뷰라 스포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대학 간 딸의 대학교 교재네요. 대충 읽어보니 아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요즘 수능국어 많이 어렵던데 수능국어를 풀 실력이라면 집중만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읽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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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에서 출간한 한나 아렌트작가님의 전체주의의 기원 1권의 리뷰입니다. 다 읽고 쓰는 리뷰라 스포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대학 간 딸의 대학교 교재네요. 대충 읽어보니 아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요즘 수능국어 많이 어렵던데 수능국어를 풀 실력이라면 집중만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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