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자리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만약 진리의 조그만 첫 물방울 하나가 마치 심리적인 폭탄처럼 이토록 폭발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다면 <진리>가 폭포처럼 무너져 내릴 때 과연 우리 나라에는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그렇다,분명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그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444쪽
마음 속으로 수없이 해 보곤 하던 질문이였는데...<수용소군도>1 권을 끝내는 지점에서 만났다.
그래서 나도 상상하는 시간을 가져봤다.'진리'가 작가의 상상처럼 된다면...그러나 진리의 폭탄은 여전히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세상 시끄러워 뉴스 보는 횟수도 줄이고 있는 지금 덜컥 <수용소군도>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건 올해 초 <암병동>을 읽은 탓도 있고,코로나19가 주는 피로감을 더 센 무언가와 함께 하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작동한 탓도 있다. 그러나 막상 엄청난 두께가 주는 압박감은 또 어쩔수가 없었는데,기우였다.서문부터 에세이처럼 읽혀서 오히려 당혹스러웠다.뭐든 상상 이상이었다.체포,숙청,신문,’기관원’을 뜻하는 푸른제모에 관한 주제까지...체포를 주제로,숙청..그리고 신문을 통해 내가 알게된 다양함이라니...순간순간 논픽션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정도였다.무겁고,어두운 주제를 이렇게 속도감 나게 읽어도 되나 싶기도 하고.비로소 조금 과장된 건 아닌가 싶었던 <이반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 가 격하게 이해되었다. 수용생활을 경험한 이들은 반대로,소설이 너무 착하다고 했다던데...러시아 정치와 역사를 모르면서,수용소 생활을 어떻게 이해할까에 대한 걱정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혹은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그러니까 큰 줄기를 이해하지 못해도,<수용소군도>에 대해 할 이야기는 저마다 많이 갖게 되지 않을까..그동안 체포에 대해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했던지,기관원이란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는지를 알았다.물론 러시아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전제가 된 것 같은 기분탓일수도 있겠고.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픔에 민감하고 연약한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뒤에 남기고 온 아무 경험도 없는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 난관을 버텨 나가야 하는가
이 모든 함정과 신문관을 이겨 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겨 두고 온 따스한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미련을 갖지 말고 형무소로 들어가야 한다.형무소의 문지방을 넘어서기 전에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나의 육체는 오늘부터 나의 것이 아니다.그러나 나의 정신과 나의 양심만은 여전히 고귀하고 소중한 채 나에게 남아 있으리라"/202~203쪽
논픽션임에도 성인의 가르침이 가득 담긴 재미난 문학으로 읽혀진 건,무조건 적인 감내를 강요하지 않아서다. 누구도 체포될 수 있고,누구도 기관원이 될 수는 있는 상황이란 것이 있다.그러니 무조건적인 비방은 위험하다는 경고.이데올로기의 문제,우상을 섬기는것에 대한 위험성 경고..선과 악에 대한 작가의 시선 등이 가슴에 와 박혔다.그럼에도 살아남아,관찰 하고,그 속에서 지혜를 거둬 올리며,고통스러운 순간마다 더 고통 속으로 밀어넣지 않을수 있었던 건 수용소 생활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은 아니였을까...
수용소군도는 사실 예전에 단권으로 읽었는데, 그 뒤로 잊고 있다가 이번에 재출간된다는 광고를 보고 이게 6권이 넘는 대서사라는 걸 알게 됐다. 단권으로 읽을 때도 충격이었는데 그러한 기록을 몇천 장이 넘게 써내려간 솔제니찐 멘탈이 대단하다. 본인이 수용소 생활을 10여년 간 했으니 문학이 아니라 기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내용이다. 소련의 굴락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솔제니찐이 내 뒤통수를 거하게 갈긴 기분이다.
이 책에는 허구의 인물이나 허구의 사건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이나 지명은 모두 실제 이름 그대로 표기 되었다. 머리글자로 쓴 이름들은 그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에서이다. 만약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면 인간의 기억력이 그 이름들을 다 기억해 내는 데 모자라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은 이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총 6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11년동안의 수용소생활에 관해 방대하게 담겨져있다. 이 책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 힘듬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용소 군도』는 러시아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Isayevich Solzhenitsyn, 1918~2008)의 대표작이다.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공산 정권 체제의 허상과 폭력성, 비합리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굴라그 노동수용소의 참상을 가감 없이 폭로한다.
더불어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악함을 보여준다.
반대로 최악의 환경과 상황에서도,
웃으며 만족하며 즐길 수 있는 인간의 존엄함도 보인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저자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는 자신의 이야기이며, 동료의 이야기다.
억압받는 모두의 이야기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재 정권 하에 자행되었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가슴이 아프다. 심장이 뜨거워진다.
매우 간단히 언급되긴 하지만,
극동지방의 한국인들도 추방당했던 장면들이 나온다.
6권의 책 중 1권이다.
대서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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