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티비 외화시리즈 <환상특급>을 참 좋아했었다. (나는 재방송으로만 보았는데, 일정이 정해진 방송이 아니어서 어쩌다 티비에 나오는 것을 발견하면 엄청 기뻐하며 열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너무 재미있게 보았는데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유의 이상하고 기묘한 분위기, 무서운 듯 무섭진 않은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지금은 그때 보았던 에피소드들의 내용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두근두근 하며 보았던 기억과 매우 재미있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나에겐 특별한 단어가 된 ‘환상특급’을 책 소개글에서 발견하고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한번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참고로, 이 소설은 2013년 <오픈>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이번에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수정 보완하여 재출간한 것이라고 함.)
이 소설은 낯선 사람에게 정체모를 흰 상자를 받게 되면서 시작되는 사건들의 이야기다. 같은 상자를 받게 된 각각의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단편 하나 하나에 담아 들려준다. 그래서 차례에 나와있는 제목들은 모두 ‘그의 상자’, ‘꼬마의상자’, ‘호랑이의 상자’, ‘엄마의 상자’ 이런 식이다. 같은 상자를 받아들었지만 누가 받게 되었나, 소원이 무엇이었나에 따라 각각의 이야기가 주는 분위기도 전혀 달랐다.
주인공들이 받게 되는 상자는 언뜻 보면 흰 종이상자이지만, 자세히 보면 대리석 같은 광택이 나는 재질로 되어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상자의 한쪽 면에는 작은 글씨로 ‘OPEN’이라고 쓰여있다. 상자를 건네 준 검은 양복의 남자는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있죠, 그렇죠?” 라는 묘한 질문 아닌 질문과 함께 이 상자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말한다. 대신에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남자. 그리고 상자를 받아 든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빌었던 소원들. 이상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약간은 으스스하기도 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이 소설은 한국 전래동화에서 영향을 받아 쓴 이야기들이 많아서 소설을 읽으면 뭔가 익숙한듯 새롭고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속에는 ‘선녀와 나무꾼’, ‘은혜 갚은 호랑이’, ‘우렁각시’, ‘해님 달님’ 등이 녹아 있다. 비현실적인 신기한 이야기 속을 걷고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끝이 나도 머릿속에는 재미있는 공상들이 마구 떠다니게 된다.
어느 날 내가 이 ‘흰 상자’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마음에 품고 다녔던 소원은 뭐였더라?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더 행복해질까
환상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는 단편들을 읽으며 시간순삭을 경험하고 싶다면, 한국식 환상소설은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행운을 빕니다>를 한 번 읽어 보길 바란다.
이 글은 ‘책과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만 보고서는 서평단에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이하고 오묘한 광택이 흐르는 하얀 종이 상자.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소원일까, 욕망일까, 선물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까?
때로는 동화처럼, 드라마처럼, 영화처럼 펼쳐지는 상자 이야기.
상자가 속삭인 순간, 당신의 진짜 속마음과 마주해보기를."
이 문구가 내 마음을 끌었고, 신청했고, 당첨됐고, 받았다.
장편인줄 알았는데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들이다.
좀 늦은 시간에 책을 펼쳤는데...
뭐지? 갑자기 어린시절 읽었던 SF 소설이 떠올랐다.
미래에는 벽지 대신 홀로그램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벽에 나타내는데 그것의 냄새, 소리, 바람 등도 다 느껴진다.
아이들이 사자가 있는 초원을 켜 놓았는데 부모가 그걸 못 하게 하자 아이들이 부모를 그 사자들의 먹이로 줘 버렸던가 하는 이야기.
중학생 때 읽어서 가물가물하기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레이 브래드버리의 <벽 속의 아프리카>란다.
작가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더니, 느낌이 정말 비슷하다.
무려 37년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오르다니 말이다.
어쨌든,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째 호랑이의 상자와 세 번째 꼬마의 상자까지 단숨에 읽었다.
남량특집이었다가 개그였다가 호러였다가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머지 7개의 이야기도 순식간에 읽었다.
대체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다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선녀와 나무꾼, 우렁각시, 해님 달님 등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는데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이런 창작물이 나온다니 참 놀랍고 대단하다.
교사는 보이는 모든 것을 수업과 연결짓는데 작가는 모든 이야기가 자기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나보다.
첫번째 그의 상자에서는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고, 그의 아들을 데려갔다.상자의 그 잔인함에, 나머지 상자들은 어떤 소원을 들어주고 무엇을 대가로 가져가는지에 집중했다.
정신을 차리고 살게 해 달라는 호랑이의 상자, 강도가 든 집에 부모님이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빈 꼬마의 상자,너무나 심심해 동네방네 장난을 치고 돌아다니는 엄마의 상자, 삶을 연장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서야 죽은 아내에게 못 해준 것들이 눈에 밟히는 노인의 상자, 내 대신 회사 가고 귀찮은 일 하는 아바타가 생겨버린 두 사람의 상자, 죽은 아내를 한 번만 더 만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빈 아내의 상자처럼 그 대가가 없는 상자도 있었고, 아들을 죽여 본인이 원하는 핵무기를 사용하는 아들의 상자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 상자도 있었다.
그럼 대체 상자는 뭘까?
욕망이면 대가를 치르고 단순한 소원이면 대가를 안 치르는건가?
욕망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근거는?
아님, 그냥 단순히 소원을 이뤄주는 상자이고, 대가를 치르고 안 치르고는 그 사람의 운인가?
어떤 이야기는 꿈처럼, 어떤 이야기는 SF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줄기차게 드는 생각은 나는 이런 상자가 생기면 어떻게 할까였다.
내 간절한 소원은 건강이지만 그 대가가 나의 가족처럼 소중한 것이라면???
아... 나는 건강하지 않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내 가족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소원을 빌 필요가 없구나...
소원은 그것이 이루어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비는 것 아닌가.
이 책은 우리에게 지금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건강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것처럼, 각자 주어진 것들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라고 말이다.
소원상자 같은 것 얼씬도 못하게 최선을 다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나의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 배우고 느끼라고 말이다.
행복이란게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이다.
만약 소원 상자에 넣어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 치우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흰 상자를 건넨다면 받으시겠습니까? 의심 많은 저로선 별로 달갑지 않은 제안이라서 거절할 것 같습니다. 김이환 작가의 연작 소설 <행운을 빕니다>는 작은 흰 상자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담겨있습니다. 섬뜩한 이야기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코가 찡한 이야기 등으로 가득해서 다음 장이 자꾸만 기대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책은 2013년에 출간한 <오픈>이라는 작품을 현시대에 맞게 수정, 보완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김이환 작가님의 <절망의 구>, <양말 줍는 소년>을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작품 또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독립된 완결 구조를 갖는 연작 소설이기 때문에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자'라는 연결성을 갖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이상한 상자와 엮이면서 판타지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상자는 인물들에게 좋은 일을 경험하게 하는가 하면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만약 주인공처럼 내가 흰 상자를 받았다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상상해보았는데 저 역시도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작품 <아내의 상자>에서는 앞서 등장한 모든 이야기들을 언급하며 저자의 의도를 친절히 알려줍니다. 말미에는 차분한 반전을 선보여서 놓쳤던 단서들을 조합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단편 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렸던 작품은 <노인의 상자>였습니다. 심장마비로 죽기 전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목숨을 연장하려 하는 노인의 이야기인데 말미에 등장한 반전도 반전이지만 이생에 미련이 남은 노인의 심정이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주변 지인들 중에 병마와 싸우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크게 감정 이입이 되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습니다.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서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족과 지인들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모르겠어, 인생을 정리하고 싶은 건지, 더 살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이러다가는 그냥 미쳐서 죽을 것 같아.
하루하루가 값진 걸 알면서도 정작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
_242p
이 책은 독자들에게 묵직한 교훈을 안기기도 하고 콩트처럼 유쾌함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소재를 한국 전래 동화에서 얻었다고 하니 작품들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음 상자는 어떻게 등장할까?',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정체는 뭘까?'등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환상특급'처럼 짧은 스토리에 신선한 상상력이 동반된 작품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듭니다. 코로나로 지쳐있을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재미를 안겨주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겨울밤 따뜻한 아랫목에서 귤 까먹으며 읽기 좋은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를 통해 흰 상자 속에 숨은 의미를 찾으며 익숙했던 일상이 환상으로 변하는 경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