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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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리뷰 총점 6.9 (17건)
분야
자연과학 >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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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간의 거짓, '기만과 자기기만'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 평점10점 | f****1 | 2013.09.30 리뷰제목
진화론이 대세다.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인간의 모든 것을 진화론으로 해석하라는 경향의 최근에 더욱 강해졌다. 예술과 심리, 그리고 인간사회의 모든 것을 해석하는 툴(tool)이 바로 진화론이다. 이정도면 가히 진화론이 대세라고 할만하다. 진화론의 적합성 여부를 떠나서 모든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는 툴로써 진화론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과학적이고
리뷰제목

진화론이 대세다.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인간의 모든 것을 진화론으로 해석하라는 경향의 최근에 더욱 강해졌다. 예술과 심리, 그리고 인간사회의 모든 것을 해석하는 툴(tool)이 바로 진화론이다. 이정도면 가히 진화론이 대세라고 할만하다. 진화론의 적합성 여부를 떠나서 모든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는 툴로써 진화론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는 이미 종교적인 견해를 버린지 오래이다. 뜬구름 잡는 식의 관념적 해석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 확실함을 부여할수 있는 진화론적 해석이 현대 모든 학문의 해석적 틀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미, 관념, 신비, 가치보다는 과학적 확실성을 통해서 손에 잡히는 이해를 가지고 있겠다는 현대적 사유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라 바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다.

 

저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진화생물학에 있어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학자이다. 이 책을 번역한 과학번역자로 유명한 이한흠 번역자도 이 책의 번역의뢰가 들어왔을 때 저자가 로버트 트리버스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수락했다고 했을 정도로 저자는 이 분야에서 일인자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위안에서만 통용되는 시대는 지났다.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모든 현상을 진화론적 설명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저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인간의 이타주의, 양육투자, 성비결정, 자기기만등의 주제를 진화론적 분석과 이론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이 책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의 주제는 바로 인간의 ‘기만과 자기기만’이다. 인간은 왜 남을 속이고 또한 자신까지 속이려고 할까. 나는 정직한 편이지만 가끔 내가 곤란한 상황이 되면 살짝 사실을 조금 비틀기도 한다. 그것을 매우 나쁜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사실을 살짝 비트는 것은 나에게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조금의 사실을 비틀고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합리화 시킴으로써 자기를 보호하기 위함이였다. 이러한 사실을 조금 확대시키면 사실을 살짝 비트는 것을 ‘기만’이라고 할 수 있고 이정도는 괜찮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을 ‘자기기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기만과 자기기만을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답변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기만과 자기기만’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남자들은 자기가 군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할 때 살짝 과장을 섞는다. 자기가 있었던 부대가 가장 힘들었다는 둥, 자기가 훈련받은 특수 훈련은 상상을 초월했다는 둥의 이야기가 그러한 종류이다. 군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좀더 과정하고 확장하므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을 크게 보이려고 하고 그러한 사실의 왜곡이 정확한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야기를 스스로도 사실은 것처럼 이야기 함으로 자신에게도 기만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이러한 ‘기만과 자기기만’에 매우 능한 사람이 있다. 좋게 말하면 언어를 도구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말로써 상대방의 생각을 기만함으로 지배권을 강화시키는 기만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사람을 과대방상증에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 사람은 언제나 말로써 자기를 커다랗게 부불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과장을 끊임없이 말하므로 상대방이 그렇게 믿도록 했다. 그리고 또 스스로가 스스로를 기만하고 속이므로 자신까지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기만과 자기기만’은 상대방을 조정하고 자기의 뜻대로 조종하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선전 기술은 나치의 정치적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러한 ‘기만과 자기기만’의 도구를 사용하는가. 인간의 지각은 외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사물과 세상의 움직임, 질서,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들, 소리와 냄새등 있는 그대로 우리의 지각은 인식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지각들을 뇌가 지각된 정보로 처리할 때 종종 왜곡되고 비튼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 속이는 자기기만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합리화해서 그것을 사실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도 속일까? 저자는 재밌는 진화론적 답을 제시한다. ‘기만과 자기기만’은 심리학적인 답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나 ‘자기 방어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공격적 본능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동물이 상대동물의 공격에 자신의 몸을 커보이게 함으로써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처럼 인간도 상대방에게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하는 과다망상을 통해서 상대방이 자신에 대한 인신을 왜곡시킴으로써 상대방을 이기고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효과는 일시적으로 그에 대한 피해는 매우 파괴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주 재밌다. 아직 확실한 이론으로 정립되지 않았고 저자도 열려있는 부분이라 앞으로 수정해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저자의 탁월한 진화생물학적 지식과 솔직한 자신의 경험이 어울어져 한편의 이야기처럼 재밌게 읽힌다.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기만과 자기기만’이 어떠한 것인지 심리적 통찰을 뛰어넘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해석학적 툴(tool)을 제공해 준다.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데 유익한 책이다.

 

이 책은 이 반직관적인 배치가 남을 조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설을 펼친다. 우리는 구경꾼에게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적인 마음이 모르게 현실을 숨긴다. 그 정보의 사본을 자아게 저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남이 그것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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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기만에 대한 광활한 탐색 평점8점 | r****g | 2013.10.30 리뷰제목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가 지은 [왜 우리는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는 내내 얼마 전 읽은 책이 자꾸 떠올랐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도착의 론도]에서 주인공인 야마모토는 작가지망생이다. 힘들게 쓴 추리소설 신인응모작을 친구에게 맞기고 분실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내면의 광기와 집착을 잘 그려냈다. 창작을 하는 야모마토의 고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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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가 지은 [왜 우리는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는 내내 얼마 전 읽은 책이 자꾸 떠올랐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도착의 론도]에서 주인공인 야마모토는 작가지망생이다. 힘들게 쓴 추리소설 신인응모작을 친구에게 맞기고 분실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내면의 광기와 집착을 잘 그려냈다. 창작을 하는 야모마토의 고통스러운 심리, 분실된 작품이 다른 사람의 수상작이 된 분노를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 반전이 펼쳐진다. 야마모토 역시 전년도 수상작을 그대로 도용한 것이었는데, 수상작을 써야한다는 강박과 집착이 읽었던 책을 자신이 창작해낸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왜 자기기만을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우리 세계의 모든 영역에 뻗어있는 기만과 자기기만의 매커니즘을 종횡무진 탐색한다. 남을 의식적으로 속이기 위한 행위인 기만은 자기기만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남을 더 잘 속이기 위해 기만은 진화해왔고, 기만에 봉사하는 자기기만은 무의식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기만의 인지적 부담을 덜고 속였다는 비난에 방어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왜곡, 편향시키고 진실을 부정, 투사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합리화하는 등의 자기 방어기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말하자면 ‘이익’을 위해서다. 그러나 생태계에서의 자기기만이 속이고, 속이는 것을 간파하면서 지능이 발달하는 진화경쟁이 이뤄내는 순기능도 있지만, 일시적 혜택을 좇다가 큰 대가를 치룰 수도 있다. 지은이가 사례로 제시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항공우주 재난과 전쟁의 역사처럼 말이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선심성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뒤, 공약을 파기하는 정치인과 그 세력의 자기기만행태는 끊임없이 뉴스거리로 오르내린다. 연일 새로운 궤변을 늘어놓고 합리화하며 자기편향을 보이는 전형적인 자기기만이다.  

  트리버스는 속는 자와 속이는 자 사이의 공진화 경쟁과 빈도 의존효과에 따라 적절히 균형이 유지되어 놀라움을 안겨주는 자연에서의 기만부터 신경생리학, 면역학, 심리학에서의 다양한 자기기만 이론을 설명하고 더욱 흥미진진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한다. 개인의 무감각과 과신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 항공사고들, 조직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향해 기만행위를 하고 조직 내의 기만을 유도한 것으로 밝혀진 항공 우주 재난, 전쟁과 종교에서의 자기기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짓 역사 서사가 그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도 관련되어있는, 위안소 운영 부정에 관한 일본의 역사 고쳐쓰기 대목에 눈길이 갔다. 일본정부는 1993년에야 비로소 위안소 운영을 인정했지만 ‘배상’은 거부했고 최근 들어 위안부가 성 노예체제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더 강해지고 있다고 대단히 정확히 서술하고 있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26일에 유엔에서‘여성과 인권’을 주제로 연설한다는 뉴스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일본각료들의 망언 퍼레이드, 이용녀 할머니의 죽음으로 57명으로 줄어든 생존 위안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을 막았다는 니콘 등의 뉴스에 분로를 금할 길 없다. 일본 뿐 아니라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부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기 위해 벌였던 원주민 학살, 학대, 질병 전파 등의 부끄러운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는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자임하는 미국이 1차 세계대전 이후이웃나라를 침략하고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독재자를 내세우고, 수많은 나라를 대리통치를 한다는 명분으로 국제적 개입과 전쟁에 집착하는 것은 이득을 챙기고 군산복합체를 성장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한 지은이는 9/11 사건이라는 가짜 구실을 내세워 석유와 경제적 자산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주둔 기지를 건설해 맹방인 이스라엘을 지원하기위해 벌인 이라크전쟁은 기만과 자기기만을 수반한 어마어마한 군사적 실책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한다.    

  책은 말한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도덕성을 과대평가하고, 과신하고, 때로 통제 착각을 하고, 스릴을 즐기는 권력자의 공격적인 자기기만의 편향이 전쟁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지능은 속이는 자를 돕기 때문에, 기만과 자기기만은  종이 영리할수록 더 자주 일어나고 나이가 같은 아이들 중에서 영리한 아이일수록 거짓말을 더 자주한다고. 트리버트는 자신이 달라지길 원하지만 바꿀 수는 없는, 더 잘하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자기기만의 역설을 전하면서 아름답고 복잡하며 아주 흥미로운 자기기만이 한편으론 몹시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또 기만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비롯해 온갖 가능성을 인식하고, 기만과 자기기만을 의식하고 더 깊이 이해하고, 맞서 싸움으로써 더 깊이 통찰할 수 있다고도 전한다. 과학자가 쓴 500여 쪽의 거대한 저작이라고 생각하면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책장을 열면 예상은 빗나간다. 내 안에서, 도처에서 벌어지는 자기기만의 흥미진진한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지은이의 여성편력에 대한 경험담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객관적 사실이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글쓰기에 집착하는 여느 과학서 저술가들과 달리 자신의 사생활을 과시하듯 노출시키는 지은이는 특이하다. 이것도 자기기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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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속여야 사는 인간, 그러다 다치고야 마는 인간 : 기만하니까, 사람이다? 평점5점 | j******2 | 2013.10.02 리뷰제목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렇다(물론 나도 포함된다). 스무 살이 넘으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아주 드물게 예외적인 인간이 있을 뿐이다.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도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나에게 유리하면 사실은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따위는 개에게나 줄 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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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렇다(물론 나도 포함된다). 스무 살이 넘으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아주 드물게 예외적인 인간이 있을 뿐이다.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도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나에게 유리하면 사실은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따위는 개에게나 줄 먹이거리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금-여기의 ‘종북’이라는 딱지다. 종북(從北)이 말 그대로, ‘조선노동당과 그 지도자의 외교 방침을 추종하는 경향’을 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냥 자신(의 정치적 견해)과 다르면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유행’이 됐다. 다른 이유는 없다. 종북의 근거나 이유를 발견해서가 아니다. 그냥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종북이라는 유행어를 갖다 붙인다. ‘듣보잡’ 변희재는 그래서 낸시 랭에게 ‘종북’이라는 레떼르를 부여했다.   

 

밑도 끝도 없는 종북놀이를 보면서 지젝의 말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믿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미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입증해줄 이유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념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품고 있는 확고부동한 무언가가 있다. 삶의 맥락에서 다져온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에 충돌하는 사실을 제시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사람은 신념을 바꾸기보다 그 신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종북이 그런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가 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경제적으로 상층으로 올라서려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수입의 불평등을 드러내는 도표를 제시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보다 당신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고 부를 가능성이 크단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마도 종북과 같은 딱지가 붙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기를 기만해서라도.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도 그것을 설명한다. 긴장이나 불안 상태로서 경험하는 심리적 모순을 가리키는 ‘인지 해리’를 통해서다.

“인지 해리를 줄이려는 욕구는 우리가 새 정보에 반응하는 양상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자신의 편향을 확인받고 싶어 하며, 행복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 들어오는 정보를 기꺼이 조작하고 무시한다. 이런 일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강하게 일어나기에 이름까지 붙여졌다. 바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것이다.… 합리화하는 성향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증거는 종종 즉각 비판, 왜곡, 배제와 맞닥뜨리고는 한다. 더 많은 해리를 겪을 필요가 없도록 하거나 견해를 바꿀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p.246) 

 

이 책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인간뿐 아니라 생명이 기만과 자기기만을 통해 진화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로버트 트리버스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도 들먹이면서 언급한다. 거칠게 말해서 인간은 속여야만 산다. 불편부당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것을 피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기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이해하기 힘드니까, 종북이라고 레떼르만 붙이면 되는 것이다. 그게 인간이고, 생명일지도 모른다. 

 

로버트는 부모-자식 갈등 문제를 연구할 때 자기기만의 단초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책에도 그것을 일부 언급했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혼내거나 매를 들면서, 혹은 사교육 등으로 내몰면서 부모들은 하나같이 외친다. “이게 다 네가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내가 잘 되려고 이러는 거니? 다 널 사랑하니까 이런 거야.” 

 

진심 묻고 싶다. 정말로? 부모도 알 것이다. 깊은 자신의 내면에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나 준비가 안 돼 있을 뿐.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 기만과 자기기만을 이용해 아이의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권력을 쥔 자의 횡포다. 그러니 권력은 자기기만의 중요한 지점이 된다. 권력은 자연 사람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사람이 달라졌다느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느니,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다. 권력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약화시킨다. 로버트는 권력이 자기기만에 작동하는 메커니즘도 언급했다.

 

“사람들에게 권력을 쥐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면, 그들은 남의 관점을 취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자신의 생각을 중심에 놓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 결과 남들이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이해할 능력이 줄어든다. 무엇보다도 권력은 남에게 무신경하게 만든다.”(p.47)

 

권력을 쥐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던 사람이 남의 관점이나 감정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줄어드는 경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목격하고 있다. 선거 전후의 정치인이 달라지는 모습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없을 때래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정성 원리를 고수하고, 남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더 쉽다는 사실은 참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기만과 자기기만이 스스로를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행위라는 것은 그만큼 인간에게 요구되는 성찰의 지점이 있음을 방증한다. 성찰하거나 자기기만을 제어하지 못할 때, 자기기만이 야기하는 엄청난 파급에 대해서도 책은 언급한다. 전쟁이나 학살 등이 그것이다. 개인 생활에서야 경우에 따라 귀여운 행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집단이나 조직, 국가적인 자기기만이 이뤄지면 인류 전체에 큰 위협이 되는 사건이 된다. 인류 문명의 발생 이후 벌어진 모든 전쟁이나 학살이 그러했고, 최근 우리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전쟁이 아니다!)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등 인류의 대비극은 집단적인 자기기만을 토대로 한다.

 

“9/11 사건이라는 가짜 구실을 내세운 그 전쟁은 석유 및 관련된 경제적 자산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둔 기지를 건설하고 맹방인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의도적인 선택에 따른 전쟁이자 공격전이었다. 물론 뻔한 거짓 핑계를 내세웠다. 훗날 이 전쟁은 기만과 자기기만을 수반한 어마어마한 군사적 실책의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학교에서 가르치게 될 것이 확실하다.”(p.406) 

 

저자는 특히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자기기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많은 종교가 지난 한 가지 결정적인 능력이 있다, 바로 독선이다.”(p.470)) 이것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뿐더러, 종교나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기만이 우리를 점점 옥죄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러온다.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같은 기만의 언어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지 않는다. 되레 실제 가르침을 소홀하게 만든다. 신성에 대한 믿음 여부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기만이 불러올 부정적인 영향이나 파국을 염려한다. 그러면서 자기기만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또한 개인적이다.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기만이 늘어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란다. 그는 자기기만으로 일련의 작은 편익들을 맛보다가 큰 코를 다친 경험을 종종 했다고 토로한다. 착각을 즐기다가 급격한 반전에 이른 경험들이다. 자기 과신에 취해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크게 대가를 치르기 전에 되돌아보고 성찰할 것. 명상, 기도, 친구와 상담자 등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기만을 통해 진화해왔다곤 하나 우리는 그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로버트는 믿는 것 같다. 그 믿음 또한 자기기만이 아니길 나도 바란다.  

 

“자기기만은 쓰라린 결말로 이어질 때가 종종 있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만이 아니라 잘못 판단한 전쟁과 경제 정책 같은 거대 사건들에도 들어맞는다. 우리는 남과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일시적인 혜택을 누릴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대가를 치른다. 나는 이것, 즉 무지의 비용은 나중에 치르는 반면, 자기기만의 혜택은 즉시 볼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일반 법칙이라고 믿는다.”(p.506)

 

다만, 이 책을 누구에게나 쉬이 권하지는 못하겠다. 띄엄띄엄 관심사에 따라 챕터별로 읽는 것은 나쁘지 않겠으나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번역이 마냥 매끄러운 느낌도 아니다. 내가 지닌 과학적 상식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중간중간 턱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썼으나 내 느낀 바대로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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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최고의 책인듯하다 그러나? 평점2점 | h******5 | 2016.03.22 리뷰제목
이한음역 최악의 번역가다. 번역이 문제다. 너무 재미있는 내용 정말 대단한 내용을 저렇게머리 아프고 앞뒤 안 맞게 번역했을까? 출판사사장님 다시 번역자 구해서 재출판해주소.이걸 번역서라고.하여간 , 내인생 에서 두번 다시 느낄수없는 화두이다. 자기기만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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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역 최악의 번역가다. 번역이 문제다. 너무 재미있는 내용 정말 대단한 내용을 저렇게
머리 아프고 앞뒤 안 맞게 번역했을까? 출판사
사장님 다시 번역자 구해서 재출판해주소.
이걸 번역서라고.
하여간 , 내인생 에서 두번 다시 느낄수없는 화두이다. 자기기만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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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자기기만 쯤이야 평점8점 | l****h | 2013.09.26 리뷰제목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다. 심리학 중에서도 사회심리학적인 접근으로 보이는데 책의 제목처럼 흥미를 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진화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살아남기 위한 의지’라고 본다.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불필요한 기관을 퇴화시키고 효과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비단 동·식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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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다. 심리학 중에서도 사회심리학적인 접근으로 보이는데 책의 제목처럼 흥미를 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진화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살아남기 위한 의지’라고 본다.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불필요한 기관을 퇴화시키고 효과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비단 동·식물 세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은 이 반직관적인 배치가 남을 조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설을 펼친다. 우리는 구경꾼에게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적인 마음이 모르게 현실을 숨긴다.” (p.3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쉽지 않은 곳이다. 호락호락 하지 않다. 예측하기 어렵고 기준을 찾기 힘들다. 고대 어느 어른이 ‘어린 것들이 문제야’ 라고 했던 프레임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역사가 되풀이되며 첨단의 발전과 함께 살아도 우리는 늘 ‘구경꾼’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에 더 가까운 해석인지 가장 적절한 형태로 적응되었다는 진화론에 가까운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늘 ‘너’와 ‘상대’ 혹은 ‘타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만약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면 재미는 없겠지만 ‘남 눈치’보는 일은 적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 옷차림, 내 말투, 내 외모를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따위의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반드시 ‘너’가 있고 ‘상대’가 있다.

그렇다면 인식하고 인지하여 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인지 살아오면서 적응해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논란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의식해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통제착각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실제보다 더 크다고 믿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 우리는 자기 행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전혀 없으므로, 우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은 무엇이든 가에 착각임에 분명하다.” (p.50)

 

<통제착각>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실제 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깜짝 놀란다. <통제착각>은 다른 심리학적 개념인 <확증편향>과 비슷한 개념인데, 실제 나의 능력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능력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이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은 늘 결과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팀이나 그룹으로 그것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심지어 군대나 가정에서도 그렇다. 이제 시작했는데 도대체 언제 마무리하고 결론을 만들어 낼까 걱정부터 앞선다. 곧 이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내린 결론이나 결과가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뒤따른다. 어쨌든 결과나 결론을 내어 놓고 난후 그것이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으레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

‘내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야.’

솔직히 그렇다. 물론, 아주 드물게 실제로 그 업무와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타 인원들 보다 곱절로 노력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지만 천성이 겸손하고 극히 수도자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일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칭찬을 다른 이에게 토스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극히 드문 케이스다.

드러내놓고 생색을 내느냐 혼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통제착각>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더 매혹적인 이유는 사회적 위치나 직장 내 계급, 조직 내 서열이 높은 사람일수록 <통제착각>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지시를 잘 해서 그래~!’, ‘내가 내 밑에 있는 부하들을 잘 선발해서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워서 떡을 먹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다.

책은 이것이 큰 착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라는 것이다. 착각이라도 혼자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을 정도로 빠진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역사적으로 지위가 낮았거나 멸시 당했으며 현재 사회적으로 종속된 처지에 있는 소수 집단은 부정적인 암묵적 자아상을 지니고, 자기보다 남-사실상 자신을 억압하는 자-을 선호한다.” (p.115)

 

이 책의 사회심리학적 접근은 내가 가지고 있던 오래된 정치적 의문에 대한 일정 부분의 답을 주기도 했다.

나는 사회안전망에 속하는 하위계층의 사람들이 오히려 수구세력과 기득권을 옹호하고 그들의 정당과 언론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콘크리트화 되어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는 지역주의의 폐해라고만 생각하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장 내 살 길이 힘들고 앞으로 5년 10년 후에도 내 연봉과 생활수준의 발전이 크게 기대되지 않음에도 부자와 재벌,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당과 정치인과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30대의 젊은 세대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여러 정치인과 언론인, 평론가와 사상가의 글과 책을 읽어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접근을 통해 일정 부분 설득이 되는 분석을 한다. ‘부정적인 암묵적 자아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종속된 집단은 그렇게 매커니즘화 된 것이다. 빽빽한 숲 속에서 솔방울 하나 찾기 힘들 듯이 구조라는 거대한 괴물에 갇혀 버린 소수 집단은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자신을 억압하는 자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접근이라 흥미롭고 실제를 놀라울 정도로 반영하고 있어 무섭다.

 

 

“우리는 남에게, 즉 남의 견해와 욕구와 행동에 대단히 민감하다. 게다가 남들은 우리를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다. 그것은 남이 우리에게 강요한 자기기만을 낳을 수 있다.” (p.111)

 

결국에는 그들의 강요로 인해 스스로 <자기기만>을 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도 돈 있는 사람들이 경제를 좀 더 잘 하지 않겠어요?’,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경제는 살리셨잖아!!’, ‘전두환 장군께서 물가 잡고 조폭 놈들 때려잡은 거 몰라!!’

멀쩡하게 기록된 역사마저도 모른 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기기만>을 낳게 되는 것이다. 무섭다 정말로.

 

 

“아이는 만2∼3세가 되면 다양한 기만을 보여주고, 기만의 명확한 징후는 생후 약6개월째에 처음 나타난다.” (p.150)

“남녀의 관계만큼 기만과 자기기만의 가능성이 풍부한 관계는 거의 없다. 유전적으로 무관한 두 사람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행위를 하기 위해 하나가 된다. 바로 섹스다.” (p.161)

 

좀 더 귀여운 형태의 <기만>도 책에서 소개된다. 아이의 경우는 주위 친구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10분만 들어도 클리어 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남녀관계에서는 무궁무진하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고 섹스를 하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기만>을 주고받는다. 연애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100% 동의할 수 있다. 아무 여자 쪽에서 <기만>이 더 많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는데 다행인 것은 남자들은 그 여자에게 빠지면 아주 간단한 형태의 <기만>에도 활짝 웃으며 속아 넘어 간다는 것이다. 눈치는 이미 저 멀리 내던져 버린다. 개그콘서트의 한 프로그램에서 보통 남자가 연애를 하면서 “왜~왜~ 사람 많아서 그래 잠시 쉬었다 갈까?”, “왜 그래~ 너무 밝아서 그래. 술 빨리 마시고 취할까?” 라고 하는 연기가 있는데 처음 보면서 배꼽을 잡았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대부분의(적어도 90%는 넘을 것이다) 남자들은 섹스가 목적일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12세 관람가인 지상파 개그프로그램에서도 다룬다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자유로워 진 것인지 모두가 한꺼번에 ‘내 얘기는 아닌데~’하며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각종 <기만>은 그들의 연애와 결혼생활에 있어 도움이 될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이다.

 

 

오늘도 나는 <자기기만>을 몇 번 했다. 기억나는 것만 세 번이다.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세계에서 <자기기만>은 필수다. 적절하게 칭찬하고 적절하게 편을 들고 적절하게 같이 뒷담화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책의 제목처럼 굳이 나 자신을 속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회현상이 그렇듯이 과도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하긴 과도한 경우가 더 많아서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갈등이 속출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내일도 그 상사 앞에서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함께 이야기하고 점심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내 스스로 <자기기만>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적응력으로 진화하지 않았다면 나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진작에 퇴화하거나 멸종한 종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을 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한 <자기기만> 쯤은 괜찮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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