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로 쓴 산문, 와카라면 일본의 고전시. 하이쿠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서문에 두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와카란 일본 고유의 시를 말한다. 일본을 뜻하는 와和에 노래를 뜻하는 카歌를 쓴다. ... 음수율은 부드럽게 암송하기 쉬운 5·7·5·7·7자를 기본으로 한다. ..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하이쿠도 와카에서 왔다. 17세기 들어 서른 한자도 길다 하여 7·7을 떼고 5·7·5만 남긴 것이 하이쿠다."(p7-8)
와카와 하이쿠의 차이가 음수율도 있지만, 의미와 분위기도 약간 차이가 있단다. "하이쿠는 혼자의 감각에 몰입하고, 와카는 덩굴처럼 엉킨 인연에 호소한다. 하이쿠를 재치의 맛으로 읽는다면, 와카는 인정의 맛으로 읽는다고 할까. 하지만 그래 봐야 열네 음절 차이. 한두 줄 짧은 시에 만물을 바라보는 통찰을 담는다는 개념은 일맥상통한다."(p8)
저자는 일본 근현대 작품을 번역하는 작가로 디자이 오사무 전집을 시작으로 다양한 일본 명작을 옮겼다. 특히 디자이 오사무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여러 작가, 특히 와카만 800여수로 구성된 장편인 무라사키 시키부 작 <겐지 이야기>가 수차례 언급하면서 와카의 맛을 잘 소개한 에세이였다.
65편의 와카를 하나씩 서두에 제시하고 그 와카에 대한 배경 해설과 개인적인 신변잡기를 엮어서 어렵지 않게 다가갈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와카 안에 있는 시 정서 뿐만 아니라 관련된 일본 문화, 역사와 일본인의 정서, 311 동일본 지진과 같은 시대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눈여겨볼만 했다. 와카을 음미하고 찬찬히 산문을 읽으면서 시운을 되돌려 확인하는 느긋함을 즐길 수 있었다. 일본 고시가 이런 깊은 운치가 있는줄 알게 된 좋은 책이다.
와카에 나오는 일본어를 관찰하는 글이나 산문을 보다보니 이런 방식의 옛시의 소개도 멋있다. 우리 옛시 신라의 향가, 고려시대의 고려가요, 조선의 시와 시조도 소개하는 산문이 많이 출판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현대는 시를 접하기 쉽지않아 시 정서세계에서 멀어져 음미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이든 자주 접해야 하지만 시집을 가지고 천천히 읽을 여유가 사라지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마무리,
일본 극작가의 유명한 명언 하나가 책을 덮을 때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건 왜 그럴까?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구절로 일상생활에서 상기하면 좋을 것 같아 톱픽으로 꼽아보았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미있게(이노우에 히사시)"(p56)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산문집이다. 산문은 읽는 것보다도 쓰는 게 더 재밌다고 여겨서 그런 걸까. 애초에 나는 시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하긴 했지만 굳이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이 책을 읽으려 한 이유는, 일본의 고전 시인 와카를 바탕으로 쓴 산문집이기 때문이었다. 일본 시를 한 번도 읽어본 적 없기도 했고, 일본어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고독을 만끽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겠다.
그래요 산들산들, 그래요 산들산들. '그래요(そうよ 소우요)'와 '산들산들(そよそよ 소요소요)'은 발음이 비슷해서 이 와카의 원문 '소요そよ'는 그 두 가지 뜻을 모두 나타낸다. 소우요, 소요소요, 그래요, 산들산들,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날마다 고독한 날, 57p
일본어로 쓰인 와카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산문들이 실린 이 책은 중간중간에 동음이의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나는 원래부터 언어유희나 발음이 비슷한 단어로 글을 쓰는 걸 참 좋아하는데, 동음이의어의 미학을 일본어로써 느껴보는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조금 행복했다. 고독함을 만끽하기 위해 읽은 책인데, 어쩌다가 행복을 채워버렸다. 고독이야말로 행복인 것일까.
일본어로 언어言의 잎사귀葉 '고토바言葉'는 말을 뜻한다. 인간이 한 그루의 나무라고 할 때 거기에 달리는 잎사귀가 말, 말, 말이라는 뜻이리라.
날마다 고독한 날, 15p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일본 노래를 해석하려 했었던 때가 떠오른다.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때는 그 노래를 너무 해석하고 싶었어서 어두운 새벽이 밝아질 때까지 그 노래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근데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단어가 바로 인용구에 있는 '고토바'다. 당시에는 말씀 언言자는 알았으나, 잎 엽葉자는 몰랐기에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를 한참 고민하고 사전을 뒤졌다. 그래서 결국 새벽이 다 밝아져서야 해석을 끝낼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 나의 '고토바'는 저때의 기억과 세월이 합쳐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지만, 그 단어를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나는 14살의 새벽에 나의 '말'을 배우기 위한 발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모국어와 외국어를 배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아직도 나의 '고토바'는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독하고 아름다운 산문집이다. 공허한 마음을 와카와 산문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느낀 주관적인 견해를 정리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번역가가 쓴 산문집을 좋아한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을 해서 그런지, 관점이 기발하고 사고방식이 유연하다는 인상이 있다. 좋아하는 번역가의 산문집 목록에 이 책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정수윤의 산문집 <날마다 고독한 날>이다. 번역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해서 확인해보니 <장서의 괴로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읽는 인간> 등을 번역한 분이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를 쓴 작가 와카타케 치사코의 집에 초대받아 다녀온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좋아하는 작품의 후일담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일본의 고유한 시 형태인 '와카'를 주제로 한다. 와카 한 편에 저자가 쓴 산문 한 편이 연결되는 식이다. 와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오래된 시와 한국인 번역가의 글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지켜보는 재미를 느낄 것이고, 와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와카의 세계를 경험하고 와카를 음미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할 것이다. 나는 후자인데, 한국에서도 흥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이 천 년 전 '오노노 코마치'라는 여자 시인이 쓴 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대 그리다 까무룩 잠든 탓에 나타났을까. 꿈인 줄 알았다면 깨지 않았을 것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느 날 이 와카를 읽고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몰랐다면 아쉬웠을 이야기. 알고 나니 <너의 이름은>이 더욱 깊이 있는 작품으로 느껴진다.
책에는 저자가 이십 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 간 이야기, 유학 생활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번역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이야기, 번역가가 된 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한 이야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와카도 좋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좋아서, 오래오래 간직하며 생각날 때마다 들춰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