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0년을 살고있는 아파트이지만 올해처럼 열심히 마당에 있는 식물들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같다. 일정한 장소에 있는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겨우내 갈색의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던 나무에 연두색 싹이 나기 시작하고 꽃이 피면서 봄을 알리고, 무성한 초록색 잎들은 여름이 깊어감을 느끼게 했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어느새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다음 해를 위한 열매를 맺었다. 푸르렀던 잎들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추운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변화가 참으로 신비롭기만하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변화를 거쳐가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나무, 꽃의 삶에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꽃 이야기라는 부제가 시선을 끌었다. 인간과 함께 살아나가는 꽃이 문학, 예술, 신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되었다.
조부모님은 1930년대 묘목장을 시작했었고, 아버지의 직업때문에 여러 곳을 옮겨다니면서 살았지만 항상 초록공간을 만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꽃과 정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레 식물과 가까워질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스노드롭, 프림로즈, 수선화, 블루벨, 데이지, 엘더플라워, 장미, 폭스글러브, 라벤더, 질리플라워, 피나무 꽃, 엉겅퀴, 해바라기, 양귀비, 유령난초, 총 15가지 꽃 이야기를 담고있었는데, 각 장을 시작할 때 그려진 꽃은 남편의 작품이라고 했다.
지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고 무성한 식물은 잔디 애호가들에게는 골칫거리다. 마치 꽃들이 작심하고 밤마다 작고 동그란 머리 위로 흰 시트를 끌어당겨 덮고는 다음 날 아침 상쾌하게 일어나 대혼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튿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꽃들은 더 커지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작은 스쿼시 라켓처럼 활짝 펴진 잎은 마치 한번 겨뤄보자고 장난을 치는 것 같지만 티 없이 단정한 잔디 정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무질서한 잡초 동맹의 거친 게릴라 조직일 뿐이다.-p 98
봄이 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꽃 데이지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한 이 글을 읽으면서 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골칫덩어리일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데이지는 자기 일을 묵묵히 할 뿐이겠지. 저자는 이렇듯 재미있는 시선으로 꽃의 특성을 들려주고 있었다.
꽃을 이야기할 때 장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흔한 것이 장미랄 수도 있겠지만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봐도 봐도 아름다운 꽃이 장미아닐까?
장미는 야생으로 자라든 세심하게 재배되든 품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장미'를 떠올리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래도 장미는 여저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시에 상징적 의미가 가득한 꽃이다. 너무 의미가 많다보니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의구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p 128
저자는 움베르트 에코가 자신의 소설 제목을 '장미의 이름'이라고 한 이유가 "장미는 의미가 워낙 풍부하고 상징적인 형상이어서 이제 아무 의미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장미의 이름'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의미를 알고싶어서라도 읽어봐야할 것 같았다. 장미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는데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A부터 시작하는 장미 알파벳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더니, '앨리스 Alice는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고로 시작해서 ,제퍼린 드 루앵 Ze을 처음 만난 것은 내 옛 이웃을 통해서였다. (중략) 진분홍 장미들은 해마다 그녀를 기념하며 말없이 피어난다.' 로 장미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 안에는 장미를 이야기하는 문학작품, 새로이 태어난 교배종, 다이애나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노래했던 엘튼 존의 음악, 셰익스피어 극의 등장인물이 오베론, 장미 도상으로 튜더 왕조를 홍보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야기등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식용으로, 약으로 여러 쓰임을 가지고 있는 꽃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당장이라도 꽃을 따러 가고싶은 마음이 들만큼) 그중 그림을 통해 블루벨의 쓰임새를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20년에 걸친 잉글랜드-스페인 전쟁을 끝낸 1604년 서머싯 하우스 회담 장면을 그린 그림 속 남자들이 착용하고 있는 러프의 빳빳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블루벨 알뿌리 들어있는 끈적이는 물질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런 쓰임이 있는 블루벨의 학명은 히아친토이데스 논 스크립타 Hyacinthoides non scripta 라고 하는데, 이 학명은 히아킨토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을 사랑한 아폴론 신화에서 나왔다고 했다. 수선화, 해바라기,양귀비등에 대한 신화도 들을 수 있었는데, 신화와 꽃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유럽 여행 중에 내 눈을 사로잡았던 풍경 중 하나가 양귀비 들판이었다. 붉디 붉은 꽃들이 지천에 늘어서있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이 책에 실린 모네, 고흐, 클림트의 양귀비 들판또한 아름답기만 했다. 저자는 양귀비가 가지고 있는 중독성으로 인해 일어났던 여러 폐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내 마음을 건드렸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후에 양귀비를 본다면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 있는 젊은 병사들도 함께 떠올리게 될 것같다.
제1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양귀비의 의미가 더 넓어졌다. 수백만 청년들의 목숨을 빼앗은 전쟁이 끝나자 양귀비는 설명할 길 없이 짧은 삶,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은 젊은 남자들의 이미지가 되었다.-p 262
저자는 문학 작품에서 잠깐 피었다 지는 이 꽃이 너무 빨리 눈을 감은 어린 청년들과도 연결되었던 예로써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이야기했는데, 최근에 읽었던 부분이라 <아이네이스>를 펼쳐보았다.
그러자 에우뤼알루스가 죽어 나뒹굴며 아름다운 사지 위로 피가 흘러내렸고, 목덜미는 어깨 위로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은 자줏빛 꽃이 쟁기날에 잘려 나가며 시들어지거나, 아니면 양귀비꽃들이 소나기의 무게를 이기지못해 목덜미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일 때와도 같았다.
< 도서출판 숲, 아이네이스 중에서>
작가들이 작품에서 꽃을 이야기할 때는 그 꽃의 특성을 십분 이해하고 있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할 때 자신있게 쓸 수 있는 것일테다. 저자는 꽃들이 등장하는 많은 문학 작품을 언급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시선을 따라 작품 속으로 들어가 꽃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꽃의 의미 또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식물학 박사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 교수였다.
낭만주의 문학 (특히 윌리엄 워즈워스, 제인 오스틴, 로버트 번스, 존 키츠, 존 클레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문학, 현대 시, 환경 인문학, 자연에 관한 글, 문학과 시각예술등을 연구하다. 학술서와 논문 외에도 신문과 문예잡지, 미술책, BBC라디오 3의 <에세이 The Essay>시리즈와 자연 에세이 선집에도 글을 썼다. 저서로는 <길고 긴 나무의 삶>과 <제인 오스틴의 짧은 일대기>가 있다. (앞날개)
그러고보니 <길고 긴 나무의 삶>이 서평단 이벤트에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쭈루룩 미끄러졌는데 이 책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자신의 전공과 어릴때부터 꽃과 함께 했던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나온 책이었다. 문학, 예술,식물 다방면에 박학다식한 저자의 글들은 당연히 깊이도 있었지만 유쾌했다. 각 장을 시작할때 있는 사실적인 꽃 그림도 예뻤고, 많지는 않았지만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차차 높아져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을 읽는 순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꽃들은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선물로,
결혼식에서 신부를 돋보이게 하는 부케로,
죽은자와 무덤까지 동행하는 화환으로,
애도자를 위로하는 추모의 꽃으로,
꽃들은 특별한 의식의 의미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의 경로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리고 중대한 사건이 기억과 앨범으로 자리 잡은 뒤에는 사라지기 위해 호출된다.- p16
이 책의 원제는 <The Brief Life of Flowers> 였다. 이러한 꽃의 삶을 두고 이런 번역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사라지는 그 외형적인 모습만을 생각했던 것일까?
ps
'한편 꽃이 일찍 피었다 진 장미 덤불들은 굶주린 새들에게 붉고 동그란 장미 열매를 내준다'는 문장을 읽고는 장미 열매가 있었나 궁금했는데, 오늘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울타리에 있는 장미를 보다가 열매를 발견했다. 아직 꽃도 피어있고, 열매도 있고. 이 책을 읽은 후라 한참동안 열매에 시선이 머물렀다.
< 2020. 10.9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제철을 만난 국화나 코스모스 같은 가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철지난 꽃들은 진즉 시들었지만 잎마저도 하나 둘 떨어지고 줄기나 가지도 이제 다음해를 기약하는 듯 시들어간다. 꽃이 지고 시들면서 그 꽃들은 잊혀지지만 내년 봄이 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철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이 일어난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젊어서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산이나 들에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것은 그 순간일 뿐, 나에게 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아내가 가꾸는 많은 화분이 있었지만 무슨 꽃과 나무가 있는지, 언제 피는지 관심 밖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서 감정이 메말랐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난 주위의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자위했다. 물론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꽃을 심고 가꾼다. 시간이 되면 시든 가지들이 생기를 되찾고 잎이 피어나면서 꽃 봉우리가 맺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삶의 치열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히 엄숙해지곤 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러다보니 전에는 관심밖에 있었던 꽃에 관한 책에도 눈길이 간다.
처음 [덧없는 꽃의 삶]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꽃의 삶을 살펴보면서 인간의 삶을 생각해보는 인생론 비슷한 책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꽃 이야기’란 부제가 달려있긴 했지만 ‘덧없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열다섯 가지 꽃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꽃들은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본 듯했지만, 야생화임에도 대부분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기 힘들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정원에서나 만날 수 있기에 새로운 꽃을 배워간다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주위에서 보아온 꽃들, 영국 곳곳에서 봄이 되면 만날 수 있는 들꽃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때로는 신화 속 이야기를 빌어서, 때로는 시인들의 시를 통해서 저자가 들려주는 꽃의 이야기는 우리를 신화 속 혹은 시인의 삶속으로 안내한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꽃이 주는 의미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열다섯 가지의 꽃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꽃은 내가 잘 알고 있거나 혹은 집 마당에 심어져 있는 수선화, 장미, 보리수, 양귀비, 해바라기 등이었다. 바닥을 기는 꽃 잔디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오르는 수선화의 노랗고 하얀 꽃들과 선명한 색상을 자랑하는 양귀비는 봄이 되면 기다려지는 풍경의 하나이다. 그러가하면 여름이 시작되면서 피기 시작하는 장미는 다채로운 색채배열을 만들어내면서 보는 눈을 호강시켜 주기도 한다. 흰색, 빛바랜 노란색, 호박색, 핏물 같은 선홍색, 주홍색, 어둡다 못해 검은색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어두운 주홍색 등... 특히 아침의 기온이 쌀쌀하기만 한 요즘 ‘늦게 피는 장미들은 가을 습기와 서리에 굴하지 않고 투명한 거미줄과 더불어 서늘한 아름다움을 내다 건다’는 저자의 말을 실감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꽃을 보면서 꽃들은 놀라움을 실어 나른다고 감탄한다. 해마다 똑같은 장소에 피어난다고 해도 꽃들은 실제로 새롭게 피기 때문에 놀랍기는 마찬가지이며, 꽃은 위태롭게 존재하지만 또 변함없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늘 꽃과 함께 했다. 또한 꽃들의 삶은 어느 순간에 피어나고 또 한순간에 지는 것을 보면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은 그보다 부활과 계절의 싱그러움을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문학에서 꽃은 가장 오래된 이미지이자 깊은 감정을 나타낼 때가 많고, 영원한 계절의 순환을 표현하면서 꽃의 신화는 끊임없이 변신하는 것도 꽃의 덧없음과는 관계가 멀지 싶다. 그렇게 볼 때 비록 원제가 ‘The Brief Life of Flowers’이지만 '덧없다'대신 다른 단어로 번역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유년시절부터 들판 곳곳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을 보고 자랐다고 저자.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들판에서 사라지는 꽃들도 있고, 관리된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프림로즈나 엉겅퀴처럼 필요하지 않은 들꽃들을 잡초 취급하지만, 저자는 이런 들꽃이야말로 풍요로운 생태다양성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들은 단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꽃의 이름을 짓고, 또 필요에 의해 그 꽃들을 잡초라 부를 뿐이다. 길을 가다보면 들꽃들이 사라지고 미관용으로 키워진 꽃들이 똑같은 머리들을 맞대고 있다. 그렇지만 들과 산에는 아직도 많은 야생화들이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어떤 들꽃이 피었는지 오늘은 한번쯤 들이나 산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봄꽃이 한창일 때 꽃에 관한 흥미로운 책을 읽었습니다. 꽃의 계절이 지나고 보니 제목의 의미가 실감이 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피오나 스태퍼드가 쓴 <덧없는 꽃의 삶>입니다. ‘덧없는’이란 수식어가 부정적이다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꽃의 속성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덧없어 보이지 않습니다.
저자는 ‘나는 이파리와 꽃잎으로 내 삶의 마디마디를 가늠할 수 있다.(9쪽)’라는 문장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공군에서 근무한 듯, 아버지를 따라 공군기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고도 했습니다. 이사를 자주 다녔기에 새 정원은 탐험의 대상이었다고도 했습니다. 꽃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정원을 넘어 주변 풍경을 이루는 들꽃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꽃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인 것처럼 저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꽃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끌어옵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시인 존 드링크워터(John Drinkwater)가 자서전에 적은 대목을 끌어오면서, “그는 어떤 장소가 스스로를 덜 ‘내세우는 것처럼 보일수록 우리를 더 깊이 사로잡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며 기억할 많한 곳이 된다’고 언급했다(15쪽)”라고 설명한 부분입니다. 언젠가는 저의 경관기행에서도 인용해볼까 합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꽃과의 인연을 설명한 저자는 ‘이 책은 꽃에 자기 삶을 헌신했던 여러 세대의 사람들에 바치는 헌사다(22-23쪽)’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스노드롭, 프림로즈, 수선화, 블루벨, 데이지, 엘더플라워, 장미, 폭스글로브, 라벤더, 질리플라워, 피나무 꽃, 엉겅퀴, 해바라기, 양귀비, 유령난초 등 15종의 꽃을 이 책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부제처럼 다양한 시, 소설, 신화는 물론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끌어와 글을 풍성하게 장식합니다.
특히 호수지방에 살던 워즈워스의 시에 등장하는 수선화가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강력한 치유효과가 있다는 점을 설파하는가 하면, 수선화의 알뿌리에서 추출한 갈란타민이 아세틸콜린 분해효소를 억제한다는 의학적 성과까지 인용합니다. 다만 아세틸콜린 분해효소가 혈관성 치매가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사용되며 혈관성 치매의 치료에도 사용된다는 점을 착각했던 듯합니다. 아마도 혈관성 치매의 치료제로 사용된다는 부분은 혈관성 치매환자의 상당수가 알츠하이머병과 동반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룬 15종류의 꽃은 아마도 영국의 정원 혹은 산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선화, 데이지, 장미, 라벤더, 엉겅퀴, 해바라기, 양귀비 등 절반 정도 아는 꽃이고 나머지는 생소한 꽃입니다. 양귀비라고는 했지만, 유럽의 산하에서 들꽃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개양귀비에 대한 이야기가 비중을 더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양귀비로 꽃밭을 일군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유럽을 여행하면서, 특히 스톤헨지로 들어가는 벌판을 온통 뒤덮은 개양귀비와 남프랑스의 벌판을 달리면서 개양귀비로 뒤덮인 벌판을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존 러스킨에게 개양귀비(Papaver rhoeas)는 꽃 중의 꽃으로, 햇빛처럼 숨김없고 ‘내부 비밀’이나 ‘조잡함’이 없는 꽃이었다(247쪽)”라고 합니다. 저자는 “비단과 불꽃”의 꽃, “천국의 제단에서 떨어진 타오르는 석탄처럼 멀리 있는 들풀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사방으로 완벽한 테두리를 지닌 진홍컵”같은 이 꽃에는 ‘평범한’ 것이라곤 없었다.(247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대개 한 점의 미술품을 소개한 다른 꽃과는 달리 양귀비에서는 클로드의 모네의 <양귀비 들판, 1873>, 반 고흐의 <양귀비 들판, 1890>, 구스타프 클림트의 <양귀비 들판, 1907> 등을 비롯하여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축복받은 베아트리체, 1864-1870> 등 넉 점의 미술품을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문학작품도 여럿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양귀비와 쥐를 소개하는 독일 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아이작 로젠버그의 <참호의 새벽>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매서운 바람도 잦아들고 얼어붙은 땅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뿜어내며 따스한 봄기운을 몰고 온다. 뒤란에 서 있는 밤나무 아래에는 수선화가 자라고 있어 봄이면 노란 빛깔의 꽃들로 사위를 밝히며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었다. 나이 들어 얻은 병으로 걸음이 느린 할머니는 봄이면 수선화를 보고 싶다며 함께 가보자며 나선다. 할머니를 부축해 뒤란으로 가는 길이 몇 차례나 계속 될는지 가늠키는 어렵지만 할머니는 시절 따라 피었단 지는 꽃들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듬해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났고 가족은 아랫마을로 이사를 내려와 수선화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손녀를 아끼고 좋아했던 할머니 무덤가에는 수선화를 심어 저 세상에서도 노란 빛으로 눈인사하며 지냈으면 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빛깔을 드러내며 향기를 뿜는 꽃들이 있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유기적 생명체에게 고운 눈길을 보낸다. 봄의 첫 신호로 여겨지는 스노드롭 꽃무리, 그 옆에 피어나는 수선화, 부활절과 관련된 프림로즈는 봄기운을 흠씬 전한다. 연못가 수선화 한 송이로만 남게 된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청년의 허영을 상징한다. 화가는 아름다운 에코를 그려넣어 그녀가 나르키소스의 관심을 끌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수선화 육종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수백의 교배종과 재배종은 분화되어 품종이 다양해져 계절을 달리해 풍성한 수선화를 볼 수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초여름으로 들어설 때, 장미 넝쿨은 노랑, 분홍, 하양 꽃으로 피어나 잔가지와 함께 정원에 놀라운 자태를 선물한다. 겹겹이 깊어져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을 홀리는 장미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상징물로도 가치를 지닌다. 아름다움을 빨리 거두어가는 장미의 습성은 플로리분다 품종 개량을 촉진해 고혹적인 순간을 오래 즐기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였다. 다양한 꽃말을 지닌 장미는 사랑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 만큼 직관을 성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 유지하는 데 이미지의 중요성을 간파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보석으로 만든 장미 목걸이를 선택해 새로운 튜더 로즈를 왕권강화에 이용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는 라벤더는 여러 시대에 걸쳐 저항의 상징으로 적응력 좋은 식물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라벤더는 건조한 날씨와 뜨거운 태양 아래 선명한 색깔로 물들어 매력을 더하고, 다양한 형태로 온갖 질병에 처방될 정도로 치유 능력이 뛰어나다. 피나무 꽃은 꿀의 공급원으로 여겨질 정도로 독특한 향기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독일에서는 금지된 사랑과도 연결되어 있다니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가 있다. 한여름 숲을 찾아 걷다보면 잔가시를 달고 서 있는 보랏빛 엉겅퀴를 흔히 볼 수 있다. 자기 땅을 빼앗으려는 것들에 끈질기게 저항하며 자기 땅을 집요하게 지키는 엉겅퀴는 황폐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오래된 귀족 가문들을 상징하는 엉겅퀴는 귀한 생명으로 가치를 지닌다.
태양이 가장 밝은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는 뜨거운 여름 열정의 표상으로 자리한다. 태양을 바라보며 동에서 서로 천천히 회전하는 습성 때문에 해바라기는 정절과 기독교적 헌신의 상징으로 변해왔다. 빈센트 반 고흐는 프로방스지방에서 진노랑으로 빛나는 해바라기 들판을 보고 ‘해바라기’연작을 낳아 고흐의 사후 대표작으로 남았다. 초록 들판을 진홍빛으로 점점이 수놓인 양귀비는 잠깐 피었다 진다. 수면을 돕고 통증을 완화하는 긍정성을 띠는 양귀비는 아편의 고통을 낳기도 하여 중독성을 경고한다.
자연의 변화와 함께해온 저자는 가족과 함께 정원의 식물들을 돌보며 삶을 가꿔왔다. 꽃을 좋아하는 가족들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꽃병, 단지 등을 챙겨 다채로운 식물들과 함께하며 꽃들이 실어 나르는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봉오리를 맺고 터뜨려 활짝 피었다 스러져 땅으로 사라지는 꽃들은 생명의 순환을 일깨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아름다운 꽃들도 머지않아 떨어지고 우리 역시 쇠한 기운으로 지내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덧없음에 갇힐 수 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들을 보며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길가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깃든 생태의 의미를 발견하며 꽃들의 잔치에 나서 활기를 찾길 바라며 마음은 라벤더 밭으로 향한다.
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21
《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강경이 옮김
클
2020.9.15.
꽃들은 놀라움을 실어나른다. 해마다 꼭 같은 장소에 피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15쪽)
꽃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지만 자연의 부활과 싱그러운 성장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19쪽)
《덧없는 꽃의 삶》(피오나 스태퍼드/강경이 옮김, 클, 2020)을 읽다가 아무래도 아리송해서 영어 이름을 살피니 “The Brief Life of Flowers”라고 한다. 그래, 그렇지. 글쓴님은 꽃살이가 ‘덧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글쓴님은 그저 꽃을 바라보며 ‘짧아’ 보이지만 막상 ‘안 짧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책이름에 ‘덧없다’란 말을 붙이니 마치 꽃이란 얼마나 뜻없고 값없이 그냥그냥 지나가는가 하고 느낄밖에 없다. ‘덧없다’는 아무 자리에나 안 쓴다. 한자말로 치자면 ‘허송세월’이 덧없는 셈이다. 꽃 한 송이가 아무 뜻이 없이 필까? 우리들은 아무 뜻이 없이 이 별에 태어났다가 떠나는가? 아니다. 모든 꽃은 즐겁게 꿈꾸다가 즐겁게 피어나서 즐겁게 진다. 얼핏 보면 봄여름가을겨울 한 해로 마치는 듯하지만, 웬만한 꽃은 여러해살이일 뿐 아니라, 나무 못잖게 오래 살기도 한다. 줄기나 잎은 시들어도 뿌리는 안 시들기 때문이다. 겨울에 말라죽은 듯한 풀로 보이더라도 봄에 줄기가 새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 ‘덧없이 지낸 풀’이 아니라, 즐겁게 꿈꾸며 겨울에 쉬었다가 봄에 일어나는 살림이다. 책이름 하나로 줄거리가 확 달리 퍼진다. 옮김말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면 어떨까? 무엇보다도 꽃이라는 숨결을 차분히 찬찬히 차곡차곡 헤아리면 어떨까? 씨톨을 사람들이 함부로 건드려서 꽃가게에서 돈으로 사고팔아 길거리에 잔뜩 심는, 그런 겉치레 꽃이라면 ‘덧없다’고 할 터이나, 들꽃이며 풀꽃이며 숲꽃이며 골목꽃이며 밭꽃이며 마당꽃이 덧없을 일이란 아예 없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