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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저/황가한 역
3265. 우혜림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 한겨레출판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머신의 전원을 켜는 일이다. 진한 커피 한 잔과 밤새 참았던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나면 여지없이 하루가 시작된다. 2019년 12월 중순 즈음인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상륙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커피와 담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지난 반년간 변화가 생겼다면 매일매일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검색하며 잠을 깬다는 것이다. 2002년 발생한 사스는 9개월 만에 종식되었고, 2015년 발생한 메르스도 8개월 만에 종식되었는데 어쩐지 이놈에 코로나19는 이제 종식이 되려나 하는 희망을 품을 즈음에 더 기승이다. 성격이 예민한 편에 속하는 나에게 - 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 아침은 대단히 중요하다. 시작이 망가지면 하루가 망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내가 맞는 아침은 매일이 슬프다. 세상에 좋은 소식을 누군가가 말끔히 비워버린 것만 같다.
책을 다 읽고 보도자료에 실린 저자의 정보를 보았다. 우혜림. 홍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2010년 원더걸스에 합류했다. 이후에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을 집필했다. TV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라 가수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얼굴은 구분하지 못한다. 원더걸스라는 걸그룹 역시 이름을 모를 리 없지만 우혜림이라는 이름도 얼굴도 낯설다. 책을 모두 읽고서도 만약 이런 시기가 아니라면 이 책을 내가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즐기는 에세이는 상당히 묵직한 편인데다 워낙 ‘위로’를 주제로 쓴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삭막하게 변해버린 ‘지금’을 중화시키는 작은 노력 정도로 해두겠다.
인류가 죽고 사는 문제 앞에 어떤 이들은 대체 얼마나 득을 보기에 질서를 망가트리고 거짓을 일삼으며 방종하는지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뉴스를 검색해보면 종종 폭력적인 사람마저 눈에 띄고, 개인의 이기주의가 도를 넘어 집단 이기주의가 되어간다.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위로’ 받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의 짐이 무거울 뿐이다. 타인의 방종을 보며 내가 폭력적이 되는 것이 싫어, 말하자면 선한 영향을 받기 위해 오래간만에 아름다운 언어를 마주한 것이다. 일종의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본디 가요라는 것도 시에 가락을 붙인 것이니 그것도 언어가 아닌가. 대중가요를 직업으로 삼던 어떤 이가 이제는 통번역도 하고 글도 쓴다니 그러한 감성은 어떤가 궁금했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는 형식이라는 것이 없다. 어떤 글은 짧은 메모와 같고, 어떤 글은 시처럼 읽힌다. 또 어떤 글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산문 같다. 그러니 정해진 형식이라는 것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그가 쓴 모든 글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쓰였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하루에 꼭 한 번쯤 미소 지으며 잠시간 한숨이라도 돌릴 수 있게, 딱 그만큼의 아름다운 언어로 쓰인 글이다.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저자가 얼마나 선하고 맑은 마음을 가졌는지 알 것 같다.
아이돌에서 통번역가라는 새로운 길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힘차게 찾아나가는 저자를 평소에도 응원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선 작가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선 우혜림 작가를 더더욱 응원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따뜻한 문장들이 마음을 선하게 가득 채운다.
사랑스럽고 달콤한 문장들로 시작해(1부) 삶에 커다란 응원이 되는 문장들이 이어진다(2부)
작가 본인의 이야기도 있지만, 누가 읽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픈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2부에는 하루하루 분투하며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듯한 위로와 응원의 말들이 가득하다.
저자가 얼마나 선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맑고 선한 사람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마음이 투명해지는 것만 같다.
♡ 본문 중에서 ♡
당신을 만나고 알게 됐어요. 침묵이 불편한 게 아니라는 걸. 그 어떤 것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거라는 걸. 당신과 함께할 때면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 것처럼 녹신녹신해져요.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아요. 억지로 말을 이어야겠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않아요.
사랑은 상대의 습관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상대의 보폭에 맞춰 내 바람을 실현하는 것. 오직 서로의 앞에서 평등하고 홀로 선 존재가 되어 고유하고 건강하게 존재하도록 도와주는 것. 지배하거나 종속시키려 하지 않는 것.
너는 어떨지 모르겠어. 나는 너를 좋아하고부터 많은 걸 전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는데, 너도 그런지. 이제 끝이구나, 하는 지점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긴장 속에서 “뭐 일단 해보자!” 하며 가뿐히 뛰어들게 되는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머와 명랑함으로 여유로울 수 있고, 같이 만나기로 한 날에는 늦지 않기 위해 일에 몰입하게 되는지 말이야. 오후의 라떼도 잊을 정도로. 나는 이런데, 너는 어때?
세월이 지나 서로 너무 익숙해져서, 관계가 당연시되어도. 서로에 대해 무감각해질 때에도. 당신의 사사로운 기쁨과 아픔에만은 더욱 민감해지고 싶어요. ‘나’를 조금씩 더 내려놓고 그 자리에 ‘당신’을 놓고 싶어요. 당신에 대한 아주 작은 것까지도 소중한 지식으로 쌓아서 나의 사랑을 더욱 더 위대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바라던 ‘인생의 해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고, 삶이 조금씩 저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있어요. 저는 언제나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랐고, 순간순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갈 뿐이죠. 어떠한 길을 택하고, 견디기로 하고 그러다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게 삶인 것 같아요. 모든 선택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당시에 내 마음을 감동시킨 선택이라면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불완전하지만 조금 더 행복할 선택을 하는 것. 그렇게 나는 열심히 헤엄치는 중입니다.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을 때에도 나는 당신을 기억할게요. 아무도 당신의 노력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에도 나는 당신의 수고를 헤아릴게요. 당신의 하루가 달력의 한 숫자로 지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당신의 소소한 성취를 기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