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 벌린은 평생 18군데의 다른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나 많은 집에서 살면서 (집을 옮겨 다니면서) 느낀 집과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쓴 에세이와 지인에게 보낸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이 에세이를 모두 끝맺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었다.
"나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수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어요. (...) 나는 항상 찾고 있어요. (...) 집을 찾고 있어요." - 서문 중
특별한 점은 루시아 벌린의 부모님 사진부터 그녀의 갓난 아기 때 사진, 어린이 때, 청소년 시절 때의 사진, 성인이 된 루시아의 사진, 결혼식 사진,아이 엄마로서의 사진들과 그녀가 살았던 집에 대한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이 있어 실제 존재했던 한 여성 작가의 삶이라는 게 증명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중단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평범하지 못한 그녀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짧게 요약하자면, 그녀는 10살에 척추옆굽음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았고, 결혼은 세 번이나 했으며, 알코올 중독에 걸렸고,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혼자 길러 냈으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글을 써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전보다 더 많은 글을 썼다. 거의 매일 밤,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 가족이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 어머니는 부엌 식탁에서 버번 한 잔을 벗 삼아 밤늦도록 글을 쓰곤 했다.' - 아들 제프 벌린의 말
세 명의 남편은 공교롭게도(?) 예술가 쪽 사람들이었다. 조각가, 피아니스트, 재즈 뮤지션... 남편들의 직업때문이었을까?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방랑하듯이 살아간 그녀의 삶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았을까 예상해보지만, 내 예상은 거기에 100분의 1도 못 될만큼 힘든 삶이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넷이나 되는데, 모두 자신이 양육권을 가지고 부양하며 살며서도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려고 했던 것 같다. 산과 들, 숲, 바다 등 자연과 가까이 살고, 뉴욕에서 살 때는 미술과, 도서관 들을 아이들과 자주 다녔다.
한편으로는 또다른 단편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레이먼드 카버 또한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단편 작가를 엄청 썼다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가 인상 깊었던 점은 집에서는 아이들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어 차 안에서 단편들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자신이 살았던 집에 대한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것 또한 대단했다. 그만큼 집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만사가 평안해요. 그다지 긴장되지 않은 생활이죠. 사실은 행복해요. 모든 일이 잘 돌아가서 행복한 건 아니고 인생의 굴곡진 곳, 공포의 안과 밖, 그곳이 어디든 갈 데까지 다 가봤기 때문에 그래요.' - p147, 돈 부부에게 보낸 편지 중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녀의 단편집 '청소부 매뉴얼', '내 인생은 열린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삶을 알고 나서 그녀의 소설들을 읽으면 그 소설들이 더욱 좋아질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끝내지 못한 이 에세이의 나머지 부분들을 그 소설들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흑백 사진에서 컬러 사진으로 바뀌는 게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그리고 척추굽음증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게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