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공책 네모 칸에 글씨를 쓸 때 자를 대고 썼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고 어머니한테
혼나기도 했다. 나도 자를 대고 쓰고 싶지 않지만
당시에는 내 마음이 용납을 못했다.
또 한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데, 텔레비전 위에
인형이나 물건이 종종 놓여 있는 경우가 있었다.
간혹 물건이 제 위치에 놓여있지 않거나
약간 비뚤어져 있는 경우가 있었다. 내 형제들은
전혀 상관없이 계속 방송에 몰두했지만 유독
나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물건의 위치가
바르지 않으면 계속 그게 신경 쓰였고 불편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바른 위치에
놓은 후에야 편안하게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 행동들을 하지는 않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면서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나의 저런 행동들이
강박증의 한 형태일 수 있구나!’ 함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하는 반응이 있을 거다.
‘어, 그거 내 얘기 아냐?’
이 책은 저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1998년 귀국한 후에 서울대학교병원 강박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만났던
환자들과의 경험을 나누고자 책을 출간하게 됐다.
먼저 저자는 1장에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강박
증세들에 대해서 8개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①생명을 위협하는 다이어트 강박증.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마치 전 국민이 다이어트 교(敎)라는 신흥 종교의 신자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신봉하고 있다. 신봉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종교인들보다 훨씬 더 자주 자신의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에 옮긴다는 점에서 다이어트교 신자들은 그 믿음이 매우 독실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p.26).
②성형수술을 아무리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신체이형증. 이 사람은 성형수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술 후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③강박증이 의심되는 쇼핑광
④인터넷으로 날개 단 섹스 중독증
⑤한 여인에게 광적으로 집착했던 세바스찬의
사랑 강박증
⑥의사 쇼핑에 나선 건강 염려증
⑦개인과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도박 중독증
⑧비교적 어렸을 때 나타나는 강박 증세로서
머리털 뽑기와 틱 장애
특히 마지막 여덟 번째 틱 장애 중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런 내용이 있다.
“틱 장애는 대개 18세 이전에 시작되며 어린아이들에게
많다. 어느 정도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참을 수 있다.
대개 눈을 깜빡이거나 코를 씰룩거리기도 하고 어깨를
움칫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점프를 하기도 한다.
음성 틱으로는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기침을
자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하여 ‘
음음’ 소리를 내기도 한다.”(p.67-68).
실제로 내 8세 막내아들이 요즘에 ‘음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틱 장애의 한 유형임을 알게 됐고, 어제 이 글을 가족 앞에서 읽어주면서 막내가
고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또한 우리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 코를 들여 마시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것도 한 유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2장에서는 진료실에 찾아온 여러 강박증 환자들의
상담 사례를 말하는데, 대표적인 강박증세로
<청결 압박 행동>을 지적한다.
특히 요즘 코로나로 인해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폭 증가 추세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나도 포함되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가 찝찝하다.
공중 화장실 문의 손잡이를 만지기가 겁난다.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아예 만지지 않는다.
외출하면 화장실 근처만 지나가도 온몸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서 집 외의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참았다가
집에 와서야 볼일을 해결한다.
외출하고 오면 비누로 30분 이상 손을 씻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오랜 시간 샤워를 해서 균을 씻어내야
안심을 한다.
외부인의 방문을 꺼리고,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이
다녀가면 그가 머문 자리를 모두 소독하는가 하면,
카펫까지 세탁을 해야 불안감이 줄어든다.
영국의 한 여대생은 강박 증상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씻어서 피부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한 감염증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 사건으로 그 학생의
부모가 기소됐는데, 이유는 딸을 방치하고
치료받도록 하지 않았다는 것.
항상 너무 무신경으로 살아도 문제지만,
과해도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상으로 <확인 강박 행동>이다.
의심이 생기면서 이에 따른 확인 행동이다.
예를 들어 문을 잠갔는지, 가스는 끄고 나왔는지,
수도는 잠그고 나왔는지 의심이 되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행동이다. 확인하는 순간에는
안심하지만 돌아서면 또 다시 의심이 들고
불안해지다 보니 일상이 깨진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강박 증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씻고 또 씻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저자는 강박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에게 장애를 가져오는 10번 째 질환이며,
우울증, 약물 중독, 공포증에 이어 오늘날 4번째로
흔한 정신질환이지만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뇌의 딸꾹질.”(p.14).
저자는 병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한다.
결국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주변의 환경보다
나 자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강박증이다.
“아직도 많은 환자가 강박증이 생긴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범죄자로 여기기도 한다. 강박증 환자가 너무나 쉽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p.110).
그러나 저자는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유독 백안시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리는 것이 현실이란다.
마지막으로 ‘남자 친구를 걱정하는 여자’가
저자에게 보낸 글의 일부이다.
“가장 심각한 건 제 주위에 나이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남자만 있으면 항상 예민해진다는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생겨도 옆에 남자가 있으면 절대로 앉아서는 안 되고, 사람이 많은 곳이라 남자랑 조금만 스치고 지나가도 난리가 납니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면서 제 주위에 남자가
있으면 예민해지며 저 보고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어딜 가든 절 항상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걸 알고,
많이 힘들어 합니다. 저도 지치고 힘이 들어
몇 번이고 헤어지자고 했지만, 그때마다
그 사람은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은 절대
변화할 수 없다면서 절위해서라도 빨리 고치겠다며
힘겹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p.177)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은 마치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이 책은 누구나 한 번 쯤은 읽어서 혹시 나와 내 가족의 행동은 포함이 되지 않은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