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보는 미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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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보는 미국사

아메리칸 시티, 혁신과 투쟁의 연대기

리뷰 총점 9.3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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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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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시로 보는 미국사 - 박진빈 평점10점 | g*******7 | 2016.07.09 리뷰제목
오늘날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른 미국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775년의 미국 독립을 기점으로 한다면 대략 2백 여년이 지난 그들의 역사는 다른 강대국들에 비교한다면 짧은 역사이지만, 그러한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2차세계대전 이후 여전히 초강대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역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으로 미국의 역사를 다루기에는 오늘날
리뷰제목

 오늘날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른 미국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775년의 미국 독립을 기점으로 한다면 대략 2백 여년이 지난 그들의 역사는 다른 강대국들에 비교한다면 짧은 역사이지만, 그러한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2차세계대전 이후 여전히 초강대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역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으로 미국의 역사를 다루기에는 오늘날 그들이 발휘하고 있는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기존에도 시대순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미국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많았는데, 박진빈 저자의 <도시로 보는 미국사>역시 기존의 역사서와는 달리 도시를 중심으로 미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끄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미국의 한개 주는 어쩌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러한 주들이 모여서 연방을 이루면서 미국을 형성하고 있으며, 최근 텍사스가 분리를 주장하는 기사들을 접한다면 우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미국은 다양한 국가들의 역사를 하나로 아우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도시로 보는 미국사>에서 등장하는 도시들은 대부분 주도(州都)로서 우리에게는 서울과 같은 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도시를 통한 미국사에 대한 접근은 탁월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인종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는 그들의 상황은 도시 단위로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미국을 세분화하여 들여다볼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준 미국에 대해서 우리의 인식은 그저 강한 나라로만 보여진다. 심지어 광복과 6. 25 전쟁에서 우리가 현재까지 대한민국으로 남을 수 있는데 크게 기여한 나라가 미국이다보니 우리에게는 크게만 느껴지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그러한 거대한 미국을 도시라는 단위로 나누어 그 본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해주고 있다. 그래서, 첫번째로 언급한 도시가 바로 필라델피아라는 것은 도시로서 미국사를 다루려는 저자의 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적인 수도는 워싱턴이었지만, 독립운동 당시 독립과 관련된 모든 상징이 바로 필라델피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필라델피아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독립운동의 요람에서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이 책은 그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필라델피아는 애초에 여러 면에서 도시로서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어찌보면 점점 쇠퇴해져가는 모습과 그것을 막아보고자 하는 역사로 설명되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이라는 도시들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쇠퇴해져가는 필라델피아의 모습을 외국 출생자의 변화라는 데이터와 함께 만국 박람회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필라델피아가 그리 익숙한 도시는 아니기에 저자의 이러한 설명은 미국 도시 역사의 전형적인 흐름으로 각인되는 느낌을 보여준다. 


 뒤이어 등장하는 시카고나 세인트루이스 역시 이러한 도시의 흥망성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뉴요커라는 아이콘을 양상하는 뉴욕이라든지 헐리우드로 대변되는 LA의 모습에 심취하여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모습을 이들 도시에서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필라델피아는 물론이고 시카고와 세인트루이스의 상황을 드려다보면 마치 한 나라의 역사를 압축하여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보여준다. 흑인들의 이동으로 인하여 급속하게 인구가 팽창하면서 발전한 시카고와 올림픽을 치를 정도로 발전되었던 세인트루이스가 인종 대립과 도심지 재개발의 실패로 인하여 점점 후퇴하는 듯한 그들의 역사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모습에 가려진 도시 이면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스엔젤레스 역시 헐리우드라는 아이콘을 가지고 있지만, 태생이 물이 부족한 지역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나 또한 로스엔젤레스를 짧게 여행해본 적이 있어서 그러한 점은 전혀 알지 못하였기에 더욱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로스엔젤레스를 만들기 위하여 강으로부터 대규모 수로 공사를 통하여 물을 확보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각종 비리는 로스엔젤레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마치 계획 도시처럼 설계된 로스엔젤레스의 엄청난 구역의 주거 공간은 자동차라는 수단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점도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다인종이 거주하는 이 도시에 일본을 비롯한 이민족에 대한 차별 정책의 어두운 역사도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인종 차별은 특히나 흑백의 대립과 원주민에 대한 차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애틀랜타는 바로 그러한 흑백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남부의 대다수 도시에서 나타났던 흑백에 대한 명확한 차별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점점 교외로 자신만의 거주지를 형성하고 있는 백인들의 모습에서 흑인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도시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중심부는 흑인들이 거주하면서 점점 슬럼화되고 있으며, 반대로 교외는 부를 축적한 백인들이 그들만의 거주지를 만들어가면서 새롭게 발전하는 양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도시 교외의 발전은 겉으로는 특별한 흑백의 대립의 양상을 드러내지 않는 애틀랜타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왜 도시를 통하여 미국사를 보여주고 있는 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앨커트래즈 역시 원주민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멀리 섬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더 락>이라는 영화의 이미지 또는 알 카포네가 복역했던 악명 높은 감옥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섬에 대하여 저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1969년의 원주민의 점거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앨커트래즈의 감옥이 폐쇄되면서 방치되고 있던 이 섬은 원주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기 위하여 1969년 수백명이 점거하여 그들만의 도시로 선포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불법점거라는 명목으로 결국 해산되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의 원주민에 대한 정책과 관심이 새롭게 정비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이처럼 미국의 다양한 도시들을 통하여 미국사를 보여준다. 뉴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점점 쇠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강대국이라는 커튼에 가려진 미국 내부의 문제점을 도시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인종간의 대립이 등장하고 있기에 오늘날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쇠락해져가는 도시를 다시 발전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 역시 하나의 국가가 발전을 위하여 많은 정책을 취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딱딱한 기존의 관점에서 미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여행하듯 도시를 통하여 미시적인 관점에서 미국을 드려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책세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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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6-34] 도시를 매개로 보는 미국의 역사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w******f | 2016.07.28 리뷰제목
19세기 말 필라델피아 – 우애의 도시에서 갈등과 분열의 도시로 우애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필라델피아는 “한때 미국 독립운동의 중심지이자 미합중국의 임시 수도였고, 미국 최대의 생산도시였다.1)” 그러나 19C 후반에 이르면 “한때 누렸던 미국 제1의 도시라는 지위는 인구와 경제력에서 필라델피아를 능가한 뉴욕에 빼앗긴 지 오래였고, 뉴욕과의 격차는 남북전쟁기에 더
리뷰제목

19세기 말 필라델피아 우애의 도시에서 갈등과 분열의 도시로

 

우애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필라델피아는 “한때 미국 독립운동의 중심지이자 미합중국의 임시 수도였고, 미국 최대의 생산도시였다.1)” 그러나 19C 후반에 이르면 “한때 누렸던 미국 제1의 도시라는 지위는 인구와 경제력에서 필라델피아를 능가한 뉴욕에 빼앗긴 지 오래였고, 뉴욕과의 격차는 남북전쟁기에 더욱 심해졌다. 정치의 중심은 새로운 수도인 위싱턴DC로 옮겨 갔고, 필라델피아가 가지고 있던 ‘혁명의 발생지’라는 역사성은 미국인들에게서 이미 희미해져 갔다.2)

게다가 유대인과 이탈리아인이라는 이질적 존재의 대량 유입은 기존 거주민에게 위기로 다가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라델피아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당장의 미봉(彌縫)과 겉포장에 주력한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876년 만국박람회를 유치하여 ‘역사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발전과 재통합이라는 이상을 실현시키려고 했다. , 공원 도로 건설을 통해 도시 정비 및 미화를 꾀하여 ‘계획도시’로서의 입지를 확보하려고 했다. 그러나 만국박람회는 흑인과 여성과의 갈등을, 공원 도로 건설은 빈민 및 저소득층과의 갈등을 노출시켰을 뿐이다. 겉포장으로 모든 것을 가리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 20세기 초 시카고 미국 성장 과정의 표본 

                                          

     19세기 말 시카고는 서부의 프런티어를 상징하는, 신흥 대도시였다. 이는 1840 4,470명의 인구를 가진 소도시에서 1890년에는 100만을 넘는 미국 제2의 도시로 급격하게 성장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시카고가 동유럽과 북유럽 출신 이주 노동자들의 주요 정착지이자, 노예 해방으로 대이동한 신흑인(new negro)들의 주요 목적지로 떠오르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분명 시카고는 이들 신흑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계급적 상승을 꿈꾸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흑인들에게는 할당된 게토(ghetto)내에서만 남부에서보다 더 큰 자유와 평화가 허용되었다.

 

때문에) 시카고에 도착한 흑인들은 자신들이 꿈에 부풀어 찾아온 곳이 흑백 평등의 세상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시카고 역시 ‘(인종적으로) 분리된 사회(segregated society)’였던 것이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이 존재했고,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인종 분리의 경계선이 존재했다.3)

이런 ‘예의 바른 인종주의’ 정책 하에서 결국 흑백간의 갈등은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신흑인의 자아 정체성 발전과 이를 바탕으로 한 보다 평등한 사회에의 요구였다.

두 번째는 시카고 노조와 흑인 간의 갈등이었다. 백인 노조는 흑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편협함을 보이고 흑인 노동자들은 과거의 경험에 매몰되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 탓이다.4)

결국 자본가-노동자 계급간의 갈등을 흑인 노동자-백인 노조간의 갈등으로 치환시키는 정책은 1919년 시카고 인종폭동으로 폭발하였다.

 

 

20세기 중반 로스앤젤레스 인종의 용광로가 아닌 백인의 요새화된 도시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로스앤젤레스는 사막에 세워진 도시이다. 따라서 백인 기준으로 물이 부족한 메마른 땅은 버려졌다.

하지만, 일본 농촌의 중산층이 주축인 일본계 이주민은 그런 땅을 오직 끈기와 근면함으로 가꾸어 비옥하게 만들어 부()를 일구어 갔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농장을 일구고 농업을 장악하는 일본인들에게 위협을 느낀 중산층과 하층 백인들은 일본인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게 되었다. 일본인이 인종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러한 증오심을 부채질했다.5)

 

태평양 전쟁이라는 불씨는 이들의 증오심을 정.... 휘두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를 활용하여 “1942년에 공포된 ‘대통령령 9066호’에 의해 일본계 미국인은 적국 일본과 내통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적으로 규정되어 포로수용소 형태의 시설에 가두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1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이 집과 일터를 잃고 수용소에 갇혔는데, 그 중 무려 62퍼센트가 이미 미국에 귀화하거나 미국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이었다.

(덕분에) 일본인 밀집 지역이었던 ‘리틀 도쿄’는 하루아침에 떠나야 했던 주민들을 따라 지도상에서 사라지다시피 했고, (이는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일본계 미국인의 공간적 삭제를 초래하고 말았다.6)

 

이러한 공간적 자유 박탈은 일본계 이주자에게만 벌어지지 않았다. 1939년 새로운 여객 터미널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차이나타운을, 1940년 해군 훈련소를 건설한다는 이유로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거주하던 차베스 러빈(Chaverz Ravine) 지역의 상당 부분을 밀어냈다.

이렇게 “아시아계와 맥시코계 로스앤젤레스 주민들이 계속되는 편견과 정부 및 경찰의 편파적 태도로 인해 공간적 자유를 박탈당하는 동안 또 다른 로스앤젤레스 주민들은 자신만의 구역을 공고화하는데 몰두했다.7)

여기에는 로스앤젤레스가 자동차 중심의 도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 , 이미 고속도로를 통해 공간적으로 분리된 부자들의 공간을 엄청난 비용을 들여 사설 경비업체를 고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성()을 쌓은 것이다.

 

덕분에 로스앤젤레스는 아시아계, 멕시코계, 흑인으로 이루어진 가난한 주변부와 소수의 부유한 백인에 살고 있는 요새로 구성된 새로운 중세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1950년대 세인트루이스  도시 재개발의 나쁜 예

 

세인트루이스는 20세기 초반까지 중부의 공업 및 상업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지만, 대공황 이후 산업이 남부 및 외국으로 이주하면서 녹슨 구역(rust belt)’으로 일컬어지게 된 대표적인 도시8)”다. 이에 따라 부유한 백인 주민들은 교외로 이탈하고, 공동화가 된 도심지에 가난한 흑인 주민들이 유입하는 도시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낙후된 지역인 술라드와 드소토-카의 슬럼을 철거하고 공공 주택을 건설하는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드소토-카 지구의 슬럼을 철거하고 건설된 프루잇-아이고 공동 주택은 세인트루이스의악몽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첫 번째는 세인트루이스가 인종 분리가 가장 심한 도시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굳이 흑인 주거지를 없애고 그 자리에 세운 인종 통합형 아파트에 입주할 백인이 없었다.

두 번째로는 빈민에게 양질의 환경을 제공하면 생활이 개선되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라고 생각한 민간 개혁 세력이다. 이들은 흑인을 게토(ghetto)에 몰아놓고 흑인의 삶을 개선하는 모순된 정책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가지고 상의하달(上意下達) 식으로 공공 주택 건설을 밀어붙였다. 이들은 굳이 공공 주택을 건설하지 않고 백인이 버리고 간 슬럼에 흑인을 수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지 않았다.

세 번째로는 너무 저렴한 비용으로 공공 주택을 건설하려고 한 연방정부다. 덕분에 예산부족으로 부실공사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계획되어 있던 상가 건물이나 기타 편의 시설이 지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공동 주택의 유지 관리를 위한 비용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에 건물이 급격히 노후화될 수 밖에 없었다.

네 번째로는 프루잇-아이고 공공주택에 정부의 도움 없이는 자립할 수 없는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명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자포자기하여 절도, 강도, 강간,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도덕적 타락 상태에 빠져들었다

 

반면 당시 철거되지 않은 술라드는 “1980년대에 보수를 거쳐 역사 문화구역으로 재탄생했고, 지금은 세인트루이스의 문화 관광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9)

 

 

1969년 앨카트래즈 섬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미국 원주민의 존재감 과시

 

흔히 인디언으로 알려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동물원 원숭이처럼 보호구역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원시인이나 알코올 중독자 아니면 초월자나 현자라는 양극화된 모습으로 대중문화를 통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타자화(他者化)되었다.

이처럼 편견과 박탈감에 시달리던 원주민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앨커트래즈 섬을 점거하여 자신들만의 도시로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이것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는 격이다.

 

그러나 막상 앨커트래즈 섬 불법 점거에 성공하자 점거를 주도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의 통제와 지원금의 처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지도부는 분쟁을, 모여든 원주민은 음주, 마약, 폭력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결국 지도부는 흩어지고, 자치질서는 엉망이 되어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자 연방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아직 그들은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 준비가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3.1 운동이 실패해도 의미가 있는 것처럼 앨커트래즈 섬 불법 점거도 고향에서 강제로 뿌리 뽑힌 원주민이 무기력함을 떨쳐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워싱턴DC  기억, 추모와 애도의 공간 조성

 

워싱턴DC(이하 워싱턴’)는 처음부터 수도다. 여기에 통일의 지도자로서의 워싱턴을 기리는 워싱턴 기념비(1884)와 민권 운동의 상징적 장소가 된 링컨 기념관(1922)이 세워지면서 기억의 공간이 조성되었다. 여기에 베트남전쟁 전몰 군인 기념비(1982), 한국전쟁 참전군 기념 공간(1995), 2차 세계대전 기념관(2004)라는 추모와 애도의 공간이 곁들여 졌다.

이렇게 워싱턴은 국가 통합의 질서를 바로잡는 공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워싱턴은 바로 그 통합 국가, 하나의 국가에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소수 집단들의 시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10)

이러한 수도로서의 정체성이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으로 존속될 수 있는 백신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1970년대 이후 뉴욕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뉴욕은 도시 공간의 역사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도시 공간이 계급적으로 독점되는 현상이다. 역사적인 동네가 낙후한 건물을 철거하거나 개조하는 방식으로 재개발에 들어간다. 그러면 부동산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원래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 주민들은 떠나고 그 대신 경제력을 갖춘 새로운 인구가 그 동네에 들어와 살게 된다. 그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주변의 낙후 지역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오늘날 뉴욕을 비롯한 세계의 대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11)

 

한국에서도 예술가의 작은 공방이나 개성 있는 독립점포들이 모여 가로수길, 홍대앞, 대학로 등에 상권을 형성했다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기존 상인들이 상권에서 내몰리고, 그 자리에 대기업형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서면서 몰개성한 상업공간으로 바뀌는 일이 허다했다.

다만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미국의 것과 달리 비주류 문화를 가장 급진적이고 위험한 요소는 제거한 상태로 주류 문화에 수용해버리는, 일종의 문화적 정체성 사들이기 현상12)보다는 부동산의 가치 상승에만 더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1) 박진빈, <도시로 보는 미국사>, (책세상, 2016), p. 25

2) 박진빈, 앞의 책, pp. 29~30

3) 박진빈, 앞의 책, p. 71

4) 박진빈, 앞의 책, p. 79

5) 박진빈, 앞의 책, p. 108

6) 박진빈, 앞의 책, pp. 111~113

7) 박진빈, 앞의 책, p. 117

8) 박진빈, 앞의 책, p. 158

9) 박진빈, 앞의 책, p. 179

10) 박진빈, 앞의 책, p. 234

11) 박진빈, 앞의 책, p. 243

12) 박진빈, 앞의 책, 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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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차별과 편견의 역사 평점8점 | g******1 | 2016.07.08 리뷰제목
도시들이 가진 역사는 길지 않지만 그래도 미국 내에서 굵직한 도시들은 각 도시마다 환경과 개성에 있어 차이가 있다보니, 크게 한 가지 주제로 묶여 있지 않고 각 도시별 특성에 따라 주제가 달라진다. 특정 도시는, 도시 계획 쪽에 치중한 역사가, 또 다른 도시는 무차별한 유색인종 차별의 역사가 다른 도시는 한 때의 산업 중심 도시로서의 영광을 뒤로한채 천천히 망해간 역사가 기
리뷰제목

도시들이 가진 역사는 길지 않지만 그래도 미국 내에서 굵직한 도시들은 각 도시마다 환경과 개성에 있어 차이가 있다보니, 크게 한 가지 주제로 묶여 있지 않고 각 도시별 특성에 따라 주제가 달라진다. 특정 도시는, 도시 계획 쪽에 치중한 역사가, 또 다른 도시는 무차별한 유색인종 차별의 역사가 다른 도시는 한 때의 산업 중심 도시로서의 영광을 뒤로한채 천천히 망해간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이방인으로서 어떤 도시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먼저 주목한다. 도시의 풍경은 무엇보다도 구획되거나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리와 그 거리 사이의 건물들, 멀리 보이는 랜드마크가 지배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사람을 본다. 사람들의 모습 사람의 차림새, 그 사람들이 반대로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나서, 만일 자유여행이거나 방문이라면 도시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잘한 도시의 디테일들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아마도 도시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란 그 마지막 디테일일 것이다. 


세계 어느 도시나 우리에게 길거리에서 가장 먼저 (친근하게도) 눈에 띄는 것은 스타벅스 커피숍이나 바디숍, 맥도널드 같은 다국적 기업의 체인점일 것이다. 그것들이 친근한 것은 그 샵들이 우리에게 친절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골목 상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다국적 기업들이 전통과 특색이 가미된 전통적 1인 샵들을 몰아낸 것이 단지 그 어느나라에게도 뒤질세라 친세계화의 궁극을 달려, 친기업적 친자본적 생리에 닳고 닳아 무감각해져버린 대한민국의 일은 아니라서, 그것이 세계적인 일이라서 안도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일 게다. 


책은 미국의 대표적 8개의 도시의 역사를 다루는데, 비교적 100~200년 사이에 일어난  핵심적이고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미국이란 사회,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속에서 현재 인류가 걷고 있는 사회적 공간에 대해 비판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나라와 정권이 바뀌었어도 도시 공간 자체가 오래된 역사를 가지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침략 이후 인디안들을 몰아내고 그 땅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기에, 도시라는 사회 문화적 공간 속에 긴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그들이 나무를 베고, 숲을 태워 경작을 하고, 소떼들을 죽이고 도시를 만들기 전에도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은 그렇게 태고적부터 존재하던 공간이었을 터인데, 패자는 역사마저 없었던 것처럼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혀지고 지워지고 사라지고 없다. 


독립전쟁 이전에도 꾸준히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의 유입이 있었겠지만, 미국 각 대도시의 참된 역사는 미국이 자유와 해방의 정신 아래 독립했을 때부터 말하는 듯하다. 그 자유와 해방의 정신 아래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편견과 차별과, 편파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살아왔는지를 환시시켜준다. 미국의 화려함을 한눈에 확인시켜주는 대도시들. 그 공간들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 흑역사로 요악된다. 흑인 및 유색 인종에 대한 폭력과 박해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고 부동산 투기와 특혜 정경 유착을 통해 소수 특권층의 새로운 귀족 계급을 양산해 낸 역사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드림이 펼쳐지는 이민자들의 천국처럼 여겨지는 로스앤제레스를 먼저 보자. 사막의 한 가운데 건설된(1905~1913) 로스앤젤레스는 경제 급성장 시기에 인구가 늘자, 544킬로미터나 떨어진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서 물을 끌어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산업화를 가속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때 시장과 주변인물들은 도수관 건설과 관련된 지역에서 부동산 투기를 했고, 도수관 덕분에 현재가지도 이 도시의 물리적 경제적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산업을 끌어모았고, 구엘리트들이 없는 이 지역에서 그들은 그렇게 만든 검은 돈으로 유력가문을 형성하였다. 겉으로 보이기에 평온해 보이는 로스앤젤레스의 문제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라는 것이다. 부동산 이해집단과 개발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공세에 도시는 대부분의 대도시가 수직으로 높이 솟은 마천루들을 갖는 데 반해 한도 끝도 없이 수평으로 확장했고, 교외 지역의 밀집 주거 단지 건설된다. 자가 자동차 위주의 계획도시이다보니 대중교통은 미비하다. 고속도로를 따라 형성된 쾌적한 교외 지역으로 자동차를 가진 백인 위주의 중산층은 탈출했고 도시에는 빈민만 남았다.


"이 길(기적의 마일)은 철저히 자동차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 심지어 거리의 간판과 건물 등은 시속 30마일로 달려가면서 볼 때 가장 잘 식별되었다."


뉴욕은 도시 공간의 역사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런던 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유입하면서 기존 거주자들인 노동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 붙인 용어였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는 흔하고 흔한 현상인데, 낙후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유색인종, 예술가 집단, 이민자들)을 정책적으로 교묘히 내쫓고 재개발하거나 건물을 수리하여, 그 곳에 있던 이민족의 정서나 혹은 급진적 예술가적인 정체성의 일부들을 흡수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흔하디 흔한 재개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더 속상한 것은 그들이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 곳의 독특한 분위기를 부동산과 관광 산업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 빈민과 노숙자들을 도시의 중심에서 내쫓는 현상은 1994년 줄리아니 시장의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알려진 불관용정책과 관계가 있다. 그들으니 도시빈민과 노숙자들을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로 보지 않고, 도시 공간의 약탈자로 보는 것이다. 버려져있다시피한 할렘이 시정부보증을 담보로 투자가 시작된 때도 1990~1998년 미국의 경제활황기였다. 낙후되고 허름한 거리들은 오래된 상태로 그대로 있다는 이유로 옛정취와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할렘에 정체성을 부여했던 사람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고, 전국,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 상점으로 교체되고,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물론 부동산 투기자들이다. 그보다 전 로어이스트사이드의 한 버려지다시피한 싸구려 임대 아파트는 어떤 부동산 투자자가 경매에서 2500달러에 낙찰되었는데, 약 10년뒤 개보수 후 총 86세대, 세대당 120만 달러 팔렸다(이런 건 좀 부럽).


반대로 낙후된 상태의 공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공간의 흑백 분리라는 문제를 유발한다. 세인트루이스의 푸루잇 아이고를 전에 정지돈의 단편집에서 읽고 인터넷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역시 같은 시나리오. 백인들이 빠져나간 한 마을이 공동화되면서 범죄가 끊이지 않자, 임대주택을 지었는데, 애초 엉터리로 지은 것,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아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도 망가지기 일쑤. 그곳에 사는 흑인들은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많았고, 자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관리가 너무 엉망이어서 점점 더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콤은 게을러 빠진 흑인들 잘못이라고 사람들 탓을 했다는데, 우리나라 주요 보수 일간지들이 보이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입주자들을 계속 속였고, 입주자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입주자들도 있었다는 것.


아틀란타와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다른 남부지방의 많은 도시들의 경우 도시에는 가난한 흑인들이 살고, 중산층 이상의 백인 부자들은 잘 정비된 고속도로를 끼고 외각으로 나가 사는데, 그렇게 된 시나리오는 이렇다. 도시에 산업이 발달하면 흑인들(혹은 유색인들)이 인구집단을 형성하고, 1950년대까지만 해도 백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흑인들이 이사오면 보이콧했다. 집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하고, 그 부동산을 파는 부동산 사무실을 불지르는 등의 과격한 분리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유색인들이 한둘이라도 들어오면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고 백인들은 집을 팔고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 외곽의 부유한 주택지 개발을 위해 주정부는 혈세들을 펑펑 쏟아 고속도로를 정비하고 각종 편의 시설을 지어대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운 주변도시가 형성되면, 이제는 그 자신들이 버리고 왔던 주도시를 위해 세금을 내고 싶지 않으니 도시를 분리해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많은 도시들 중 8개 도시들만 다루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환경에서 생긴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역사를 가졌을 거다. 미국의 역사는 차별과 편견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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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미국 여덟 도시의 성장과 모순에 관한 이야기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n*****m | 2018.03.07 리뷰제목
제목을 ‘도시로 보는 미국사’라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미국 ‘도시사(史)’다. 그리고 그 도시사도 미국의 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덟 개의 도시를 대상으로 한다. 물론 그 여덟 개의 도시는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이고, 도시의 역사를 통해서 미국이 어떻게 성장해 왔고, 어떤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 ‘미국사’라고 붙인 제목이 아주 과장된 것만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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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도시로 보는 미국사라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미국 도시사()’. 그리고 그 도시사도 미국의 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덟 개의 도시를 대상으로 한다. 물론 그 여덟 개의 도시는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이고, 도시의 역사를 통해서 미국이 어떻게 성장해 왔고, 어떤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 미국사라고 붙인 제목이 아주 과장된 것만은 아니긴 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덟 개의 도시는 다음과 같다. 미국 독립 당시 수도 역할을 했던 필라델피아, 흑인 대이동의 목적지가 되었던 시카고, 자연의 혜택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면서 다인종 사회를 형성한 로스엔젤레스, 독립 전쟁 이후 다시 남부의 중심이 된 애틀랜타, 도심지 재개발의 악몽을 경험한 세인트루이스, 흑인들이 자신들만의 도시를 세우겠다면 18개월 동안 점거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섬 앨커트레즈, 기념과 기억의 공간이 된 워싱턴 DC, 언제나 미국의 중심이었던 뉴욕. 앨커드레즈 섬을 도시라고 볼 수는 없으니 여덟 개의 도시라는 표현은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여하튼 이 여덟 도시, 혹은 공간을 통해서 미국이라는 사회가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왔거나, 혹은 모순을 증폭시켜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본 도시는 시카고,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이렇게 네 곳이다.)

 

책에서 중심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저자의 전공이 그렇듯 도심과 교외 개발과 관련 있는 주택 정책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고, 그것과 관련해서 도시에서 인종과 계급 간의 모순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극명한 예는 1969년 흑인들의 앨커트레즈 섬 점거인데, 사실 나는 이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를 여러 차례 갔어도, 그 때마다 Fisherman’s warf에서 그 섬을 봤어도, 그리고 한번은 그 곁을 스쳐 갔어도 그런 역사는 몰랐었다. 또한 각 도시마다 흑인, 혹은 라틴계의 저항이 있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 알고 있던 얘기가 아니다. 최근에 벌어진, 이른바 폭동이라고 명명된 몇몇 사건들은 알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도시들은 그런 문제를 겪어 왔으며, 그 해결책으로 인종분리라는 치사한 정책을 세우고 있음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TV 프로그램 알쓴신잡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이 용어, 혹은 현상(놀라운 일이었다. TV 예능에서 이 얘기를 심각하게 다루다니)에 대해 뉴욕에서의 예를 통해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1964년에야 등장한 용어다.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런던 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유입하면서 기존 거주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서 붙인 용어다. 젠트리, 즉 토지 귀족들의 사유지 확장 운동에 빗댄 용어다. 저자가 기록한 뉴욕에서 벌어진,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읽으면서 (다른 도시 이야기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의 도시 이야기가 우리의 도시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규모와 그 양상이 조금 다를 지라도 그들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대로 우리의 도시에서도 벌어지고, 그 모순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현상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비주류 문화를 가장 급진적이고 위험한 요소는 제거한 상태로 주류 문화에 수용되어 버리는 이 막강한 자본의 힘이다. 유시민과 다른 이들도 알쓴신잡에서 그랬다. 몇 가지 대안을 얘기했지만 결국은 별 수 없다는 거였다. 이 책에서도 이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 대부분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도시는 창의성의 공간이다(많이 모일수록 효율성은 증가하며 형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창조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분명한 연구 결과다). 그러나 그 도시가 악몽일 때가 많다. 악몽이 되지 않는 도시. 그걸 우리는 꿈꾼다. 어떻게 하면 될까? 미국의 도시 이야기를 읽으며 어쩔 수 없이 자꾸 내가 사는 이 나라의 도시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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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시의 계급적, 국가적 폭력성의 대안은 무엇일까? 평점9점 | m******1 | 2016.07.08 리뷰제목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세인트루이스, 앨커트래즈, 워싱턴 DC, 뉴욕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다룬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도시를 혁신과 투쟁의 공간, 인간과 상호 작용을 통해 항상 변화해가는 혁신의 공간으로 본 책이다. 혁신과 투쟁의 공간이라는 말이 제시되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며 투쟁, 정확하게는 폭력이 문제가 되는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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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세인트루이스, 앨커트래즈, 워싱턴 DC, 뉴욕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다룬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도시를 혁신과 투쟁의 공간, 인간과 상호 작용을 통해 항상 변화해가는 혁신의 공간으로 본 책이다. 혁신과 투쟁의 공간이라는 말이 제시되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며 투쟁, 정확하게는 폭력이 문제가 되는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박진빈 교수의 책은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저자는 20세기 초 미국 연방정부 임대 주택 정책의 역사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필로그에 소개된 바대로 미국의 주요 도시들은 개발을 위한 개발을 되풀이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지가 되었다. 뤼도빅 루블레르가 ‘달라이 라마와 히치하이킹을’에서 중국을 전역에 걸쳐 낙후된 지역을 일사불란하게 철거하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을 짓는 미친 속도의 나라라 정의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책을 좋아해 도서관을 자주 찾는 나는 도서관이 문화 컨텐츠의 관점이 아닌 토건(土建)적 관점에서 보아야 할 곳이란 말을 듣고 잠시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딱 적당한 만큼의 초록이라는 의미의 just green enough란 말이 있다. 중도란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첫 도시로 설정된 필라델피아는 상징적이다. 우애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는 그에 걸맞게 이질적인 이민자들로 홍역을 앓는 곳이 되었다. 균형을 잃은 결정이지만 국민 투표로 브렉시트를 감행하게 된 영국의 사례를 생각할 만한 부분이다.


필라델피아는 가장 부패한 자족적인 도시로 불렸다. 책은 필라델피아의 자구책을 보여준다. 저자는 필라델피아가 초기 이민자의 증가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많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1876년 100주년 기념 박람회를 통해 주변 도시의 급성장으로 인해 서서히 잃어가던 전국적 관심을 되찾아 역사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한 것에 그친 것을 작은 관심이 부족한 결과로 본다. 대도시의 우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다. 시카고 역시 갈등을 빼놓을 수 없다. 흑백갈등이다.


도시는 갈등과 투쟁, 문제해결의 반복으로 점철된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차 대전 특수(特需) 속에서 급성장한 애틀랜타도 문제의 도시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애틀랜타는 인종 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막을 수 없었던 백인들이 대도시 외곽에 대대적인 주거지 개발이라는 교외화(郊外化)로 맞섰다. 세인트루이스는 애틀랜타와 반대로 문제를 안았다. 팽창 도시로서 애틀랜타가 홍역을 치루었다면 세인트루이스는 공장이 버려지고 주택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현상 등으로 낙후(落後) 일로를 걸었다.


모든 도시가 팽창할 수 없음을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공동화(空洞化)가 현안(懸案)이 된 것이다. 물론 공동화의 대안은 재개발이다. 1970, 80대년 당시 세인트루이스는 전체 인구는 감소하는 가운데 흑인 인구는 증가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나쁜 것은 흑인 인구가 증가했음에도 흑인 분리가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지역에서 흑인이 얼마나 빠져나가야 정상적인 인구 분포 수준이 되는가, 란 지수가 설정된 결과이다.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미국 도시들에서 확인되는 인종 분리의 정도는 인종 분리가 완화되고 인종간 평등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란 세간의 믿음을 배반한다고.


“여전히 흑인 게토가 있고 백인들의 교외가 있으며 도심지 슬럼은 빈민 혹은 최하위 계층의 전유물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분리가 단지 인종과 인종을 구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영구화하는 일종의 사회 구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181 페이지) 미국의 역사는 정복(을 위한 학살)과 무단점거의 역사이다. 이는 이와사부로 코소의 관점으로 누구나 공감할 주지의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사부로의 주장이다. 그는 도시를 거리의 꿈틀거림, 웅성거림, 시끌벅적함을 통해 춤을 추는, 움직이는 신체 즉 유체(流體)로 본다.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용산 참사를 보며, 파괴적 결과라는 점에서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도시의 무분별한 상업화를 보며 죽어가는 도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나라에도 시사적인 책이다. 1964년 독일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런던 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기존 거주자들인 노동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 붙인 젠트리피케이션은 역사가 꽤 긴 이름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도시 공간이 계급적으로 독점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인류학자이자 지리학자인 닐 스미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하는 도시 정부의 특성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도시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하는데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하는 세력에 대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를 포함한 철저한 불관용 정책이다.


저자는 어디서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떠밀려 다니다가 결국 도시의 언저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저자가 진단했듯 상황은 대단히 어렵다. 인상적인 것은 마이클 카츠(Michael B. Katz)의 주장이다. ‘왜 미국 도시들은 불타지 않는가?’란 책에서 그는 그렇게 차별받고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20세기 내내 인종 분리가 진행된 결과 흑인들이 분노를 쏟아 부을 백인이 존재하지 않아 흑인들 서로 분노의 총구를 겨눈다는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주의가 맹신되는 탓에 사회 구조의 변화를 위한 투쟁에의 의지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카츠의 주장 중 하나이다. 군대화한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사소한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된 흑인을 대규모로 투옥하는 등의 이유로 불을 지를 만큼의 정치화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이클 카츠는 혹시 우리가 그동안 도시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데 너무 애쓴 것은 아닌지, 실패 담론에 가려진 성공한 공공 임대주택의 예들이나 연방의 결정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사적 재원을 구축해 도시 주택 문제에 접근한 예들을 언급한다. 저자의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신자유주의의 뿌리나 현재를 다룬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망의 증거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 이후 최신 흐름을 반영한 ‘도시로 보는 미국사’는 그 만큼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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