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 (중)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장편소설 / 열린책들
중권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그 중심에 스따브로긴과 뾰뜨르가 있지요.
하지만 중권, 2부의 내용을 이끌어 가는 것은 거의 뾰뜨르이지요.
신임 지사의 아내 렘쁘께 부인의 후원과 지지를 받는 뾰뜨르는 지사의 부인이 주관하는 축제가 준비하면서 계략을 꾸밉니다. 가진 것 하나없는 뾰뜨르는 말빨로 사람을 현혹하고 겁주기까지 합니다.
상권에 비하면 전개가 빨라 훨씬 잘 읽힙니다.
상권 1부 에서도 인물관계가 헷갈렸는데 인물관계도를 펼쳐 놓고 책을 읽으니 전보다 휠씬 이해가 쉬웠습니다. 결국 스따브로긴 주변의 뾰뜨르, 끼릴로프, 샤또프가 모두 정치적 모임으로 얽혀져 있는 관계더라구요. 그리고 여자들은 모두 스따브로긴과 관계되고요. 스따브로긴의 난봉꾼적인 모습이 여자들을 통해 보이더라구요.
2부의 주인공은 뾰뜨르였어요.
그의 계략에 많은 사람들이 끌려다녔으니까요. 특히 지사부인이 그랬죠. 지사부인의 말에 말댓구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사의 모습도 참 답답했답니다. 지사부인의 모습에서 허세와 명예욕만 보이고 비르긴스끼의 명명일을 빌미로 모여든 사람들의 대화는 정말 오합지졸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뾰뜨르 스제바노비치는 꽤 똑똑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유형스 페찌까가 정확하게 표현했듯이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다고 제멋대로 단정지어 놓고는 그걸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2권 253쪽 열린책들
개인은 전체에 속해 있고, 전체는 개인에 속해 있다. 모든 사람은 노예이며, 노예라는 점에서 평등하다. ... 중요한 것은 평등이다. 우선 할일은 교육과 학문, 재능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고도의 능력은 항상 권력을 장악하고 전제 군주가 되어왔다. ... 이익을 주기보다는 항상 더 많은 타락을 가져왔다.
2권 340쪽 열린책들
뾰뜨르는 철저히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가 말하는 이념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말하는 것 같은데 왠진 무섭게 느껴지네요. 하향평준화시키는 기분이 드네요. 대중을 무지하게 만들어 결국 소수의 권력자가 나타나 독재로 가는 것이 아닐가 싶어요.
친구, 참된 진실이란 항상 진실 같지 않아보인다네요. ... 진실이 보다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필히 그것에 거짓을 섞어야만하지.
2권 20쪽 열린책들.
정치이념을 다루었던 2권에서 이 글귀가 가장 남네요.
우리의 사상과 이념이 진실되 보이기 위해 거젓을 섞여져있는 것이 아닐까요?
못믿을게 정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네요.
<악령 상권>을 읽으면서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비해 가독성이 좋고 몰입도가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악령 중권>은 19세기 중후반 러시아를 뒤흔든 사상과 사조를 느낄 수 있었다. 인물들이 내뱉는 문장들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대두와 사회주의 사상이 민중에 스며드는 방식을 접했고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신앙과 위계(hierachy)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게 됐다. 게다가 글을 읽을수록 니체가 도스또예프스키를 찬미한 이유와 니체의 사상에 스며든 도스또예프스키의 흔적을 떠올리게 된다. 아래에 적을 몇개의 문장은 <악령 중권>에 쓰여진 많은 문장 가운데 내 뇌리를 명료하게 자극한 것들이다. 그리고 생각을,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들이다.
참된 진실이란 항상 진실 같지 않아 보인다네. 자네 그걸 알고 있나? 진실이 보다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필히 그것에 거짓을 섞어야만 하지.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행동해 왔네.
- 이 문장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보의 과잉과 조작이 용이한 시대라면 얼마든지 진실은 감춰지고 만들어지고 조작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얼마간의 진실을 첨가해 교묘하게 사람을 농락하는 거짓의 실체를 현재의 우리는 발견해 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남았다.
사상에 대하여 -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이네.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좋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에게 좋은 것이지만, 자기들에게 좋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들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네. 이것이 사상의 전부일세.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네.
- 어떤 사람에게 스며드는 사상은 그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을 도스또예프스키는 '좋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것도 누구를 따르는 것도 어떤 원칙을 지키는 것조차도 결국은 내 내면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함임을 안다. 선행을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선행이 주는 기쁨으로 나를 만족시키기 위함의 발로다.
조합의 회원 각자는 서로서로 지켜보고 밀고할 의무가 있다. 개인은 전체에 속해 있고, 전체는 개인에 속해 있다. 모든 사람은 노예이며, 노예라는 점에서 평등하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중상과 살인도 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평등이다. 우선 할 일은 교육과 학문, 재능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학문과 재능은 고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만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런 고도의 능력은 필요없다! 고도의 능력은 항상 권력을 장악하고 전제 군주가 되어 왔다. 고도의 능력은 전제 군주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익을 주기보다는 항상 더 많은 타락을 가져왔다. 그래서 그들은 쫓겨나거나 처형당한다....(중략) 노예는 평등해야 한다. 전제주의가 없는 곳에는 자유도 평등도 아직 없었지만, 가축 떼 속에는 틀림없이 평등이 있다.
사회주의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대사라 생각한다. 지배계급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고자 하지만 결국 도달한 곳은 소수의 지배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하향평준화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정말 감미로운 단어로 매혹하지만 실질적으로 선동당한 민중이 도달하는 곳은 가축 떼와 다름없는 하위의 자유와 평등이다. <악령 중권> 후반부에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모임은 어수선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 모임의 참석자였던 시갈료프의 말을 빌자면 많은 역사적 위인들의 업적을 토대로 현대를 대체할 미래사회를 구상했더니 무한한 자유로 시작했는데 무한한 전제주의에 도달했다. 이것은 초기 사회주의가 구상했던 인민의 해방이 되려 인민의 족쇄가 돼버리고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국가들의 참담한 실패를 예언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갈료프는 주장한다. 수많은 인민이 죽어야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대상은 자신들의 사상에 반대하거나 반대할 것 같거나 혹은 너무 똑똑한 자들이다. 계속해서 피를 흘리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가축의 세상을 이룰 수 있다.
<악령>을 읽노라면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 얻었던 혼란을 일소하고 도스또예프스키에 감탄하게 된다. 내용도 재밌지만 그 안에 담긴 다양한 군상의 대화가 생각을 하게 유도한다. 재밌는 책이다. 그리고 훌륭한 책이라 생각한다.
몇년전부터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전부 구매하고 있었습니다.제작년쯤 구매하려던중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이 많기도 하고 편하게 읽고자 전자책으로만 구매하고자 했으나 악령작품만 품절 되버린것을 확인하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번역자와의 계약때문인지 번역자가 바뀌어 재 출간된것을보고 바로 구매하였습니다. 기존 번역자의 작품을 보지는 않았지만 더 잘 되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도스또예프스끼작품은 인간의 깊은 내면들을 알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가볍지 않은 깊은 성찰. 읽고 있으면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깊은 여운을 줍니다. 이 맛에 고전을 찾는 것이죠. 러시아 작품이라 이름이 너무 길고 헷갈리지만 노력할 가치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