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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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을 쏘았다

리뷰 총점 8.8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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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세계각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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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점10점 | l****1 | 2020.07.02 리뷰제목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피터 박스올이 편집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권' 때문이었다. 제목도 특이해서 더욱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호레이스 맥코이. 미국 작가다. 책이 출간된 것은 1935년. 그러나 출간 당시 미국에선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1940년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한 작가에서 의해 재발견되어 오늘날 걸작 소설로 평가받게 된 것이라 한다. 작품
리뷰제목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피터 박스올이 편집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권' 때문이었다. 제목도 특이해서 더욱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호레이스 맥코이. 미국 작가다. 책이 출간된 것은 1935년. 그러나 출간 당시 미국에선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1940년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한 작가에서 의해 재발견되어 오늘날 걸작 소설로 평가받게 된 것이라 한다. 작품도 운이 그리 좋지 못했지만 작가도 불우했다. 책 날개에 작가 이력을 보면 원래 기자였던 작가는 상류층과 교류가 잦아서 그랬는지 낭비벽이 있어서 생전에 가산을 거의 탕진했다고 한다. 겨우 58세 나이에 죽었을 때는 아내가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그가 생전에 모은 책과 재즈 앨범을 다 팔아야했다고.


 이 책은 대공황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마라톤 댄스 대회를 소재로 하고 있다. 남녀가 커플이 되어 최종적으로 한 쌍이 남을 때까지 원형 경기장을 계속 맴돌며 춤을 추는 경기이다. '뭐, 이런 대회가 있었다고?'하는 생각부터 드는데, 대공황 시대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했으므로 이런 대회도 얼마든지 했을 것 같다. 작가는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일까지 하게 되었는 데 그 때 보고 겪었던 것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주인공 나는 헐리우드의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글로리아라는 여인을 만난다. 영화 감독이 되고 싶으나 연출부의 조수 노릇도 하기 힘들어서 늘 일없이 그 주변만 맴도는 처지의 나는 역시 영화 배우가 되고 싶어서 헐리우드로 왔으나 겨우 엑스트라만 네 번밖에 못해 본 글로리아에게 동병상련을 느낀다. 그러다 글로리아가 우승 상금이 1만 달러라는 마라톤 댄스 대회의 참가를 제의하고 공짜로 밥을 먹여준다는 것에 혹해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대회는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 태양이 떠 있는 동안 내내 1시간 50분 춤을 추고 10분 쉬는 걸 반복하며 오직 가장 오랜 시간 춤춘 커플이 우승한다는 간단한 규칙이지만, 내부와 외부 요인 때문에 지속한다는 게 어렵지 않다. 내부적인 요인은 글로리아다. 이미 세상의 쓴 맛을 볼대로 다 봤다고 생각하는 글로리아는 냉소에 찬 허무주의가 되어 사사건건 부정적인 말만 하고 다른 커플의 여자에 대해서도 왜 이런 세상에 애를 낳느냐는 등 참견을 하여 갈등을 빚는다. 그 어떤 희망도, 낙관도 없이 글로리아는 오직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시간을 다만 버틴다는 의미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그런 글로리아 앞에서 나 또한 예전에 가졌던 삶에 대한 낙관이 점점 비관으로 변해가는 걸 느낀다. 외부적인 요인은 여러가지다. 이미 처음 신청한 144 쌍 중 일주일 만에 61 쌍이 기권했지만 그것 말고도 온갖 이유로 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커플들이 탈락한다. 살인을 저지르고 추적을 피해 대회에 참여했다가 발각되어 탈락하는 이도 있고 가출한 소녀를 성인 여성으로 알고 파트너로 삼았다가 그 소녀의 어머니가 고소하는 바람에 탈락하는 이도 있다. 대회의 흥행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오랫동안 춤을 추려면 옷과 신발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공해 줄 후원자를 찾아야 한다거나 아무래도 남녀 커플이 주가 되는 대회인만큼 구경꾼들을 더 많이 끌어모으기 위해서 공개 결혼을 해야 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소설은 그런 과정을 하나 하나 보여준다.


 이런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는 이 마라톤 댄스 대회가 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회에 참여한 커플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본으로 교환 가능한 것이며 어떻게든 자본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루저로 전락하고 마니까.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여한 커플이 무조건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바라는 걸 강요 받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 또한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글로리아가 그토록 삶을 부정하는 건, 오히려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의 반전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마지막에서 내가 글로리아에게 한 행동은 그녀에게 구원을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분량이 결코 많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은 소재나 내용 또한 흥미롭게 때문에 소화하기가 한결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 대공황 시기에 나와서 그런가 오늘날에도 공감을 자아낼만한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나 차가운 비판도 스며들어 있기에 읽는 맛이 더욱 난다. 참고로 이 소설은 1969년에 시드니 폴락 감독이 영화로 만든 적이 있다. 개성 강한 여주인공 역할은 제인 폰다가 맡았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의 원래 제목은 'They Shoot Horses, Don't They?'이다. 이것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데 그 뜻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다 읽고나면 꽤 여운이 오래 남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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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영미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 / 호레이스 맥코이 평점10점 | h***m | 2020.07.13 리뷰제목
1시간 50분간 쉬지않고 움직여 춤을 춘다. 그리고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1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세계 마라톤 댄스 대회'의 룰이다. 화려한 별들이 모여 사는 곳,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에서 이 대회가 개최된다.멋진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지금은 단역 배우자리라도 찾고 싶은 로버트는 '아주 우스운 계기'로 글로리아를 만나고 마라톤 댄스에 참가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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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50분간 쉬지않고 움직여 춤을 춘다. 그리고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1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세계 마라톤 댄스 대회'의 룰이다. 화려한 별들이 모여 사는 곳,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에서 이 대회가 개최된다.


멋진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지금은 단역 배우자리라도 찾고 싶은 로버트는 '아주 우스운 계기'로 글로리아를 만나고 마라톤 댄스에 참가하게 된다. 돈 없는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20분, 30분 짜리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일단의 꿈이다.



해상 유원지 무도회장으로 쓰인 건물 안, 폭 9미터에 길이 60미터 쯤 되는 댄스 플로어. 여기서 수준 낮은 밴드의 연주, 혹은 라디오 음악을 타며 144쌍의 남녀가 멈추지 못한 채 춤을 춘다. 대회 주최측의 매니저, 사회자, 심판관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재촉한다.


불과 일주일 만에 61쌍을 기권하게 만드는 강행군 속에서 로버트와 글로리아는 이를 악물고 살아남으려 애쓴다. 짧은 휴식시간 동안 쪽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면서. 우연히 만나 커플로 대회에 참여한 이 두 사람의 대화의 결론은 글로리아에 의해 항상 하나로 이어진다. 죽고 싶은 것. 


"죽고 싶은 생각이 안 들게 할 만한 대화 주제는 없을까요?"

"없어요."


부모 몰래 참가한 미성년자, 돈을 위해 마라톤 댄스를 찾아다니는 임신한 부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던 지명수배자 등 댄스 플로어를 뛰고 있는 사람들의 우울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 둘 탈락자가 나오면서 대회 주최측은 점점 대회의 흥행과 수익에 열을 올린다. 헐리우드를 주름잡는 유명인이 관람하고, 여유있는 자들이 마음에 드는 커플을 골라 후원한다.


그 속에서 참가자들은 열심히 몸을 흔든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참가 커플의 가짜 결혼식까지 기획한 주최측에 글로리아는 치를 떨지만,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신부의 구두는 메인 스트리트 구두가게, 스타킹과 속치마는 폴리 달링 걸스 상점에서, 신부 머리는 퐁파두르 미용실, 신랑 의상은 타워 양복점에서, 장내 꽃들과 여성 참가자들의 의상은 시커모어리지 탁아소에서 협찬을 받으며.


대공황 시절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호레이스 맥코이의 시대를 보는 적나라한 표현이 꾸밈없이 독자에게 다가온다.


마라톤 댄스를 시작한 지 879시간이 흘러 이제 20쌍만이 플로어에 남은 시점, 가짜 결혼식이 진행돼야 했던 바로 그날 돌발상황이 발생하고 로버트와 글로리아의 운명은 여기서 엇갈린다.


"늘 내일이죠. 기회는 늘 내일에만 오네요."


소박한 꿈과 바로 앞의 내일을 향해 달리던 로버트와 글로리아는 '마라톤 댄스 대회'라는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이 벗겨진 채 세상에 서있다. 살기 위해 달리는 그들, 그들로 인해 돈을 버는 자들, 그리고 그 모두를 즐기는 자들로 구성된 세상. 그래서 그들은 말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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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그들은 말을 쏘았다] 대공황 시절 미국 소외계층의 비참하고 무모한 삶의 모습 평점9점 | 이달의 사락 c*****0 | 2020.07.11 리뷰제목
작가 호레이스 맥코이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 실제 체험한 경험적 사실을 모티브로 쓴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출간 초기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1940년대 중반 장 폴 사르트르,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 등 프랑스 작가들을 중심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유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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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호레이스 맥코이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 실제 체험한 경험적 사실을 모티브로 쓴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출간 초기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1940년대 중반 장 폴 사르트르,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 등 프랑스 작가들을 중심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유럽에서 맥코이는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작가로 주목받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무명 배우 글로리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만난 삶은 끝없이 견뎌야만 하는 악몽이었다. 마침내 그것이 자신의 삶에 내려진 형벌임을 깨달은 글로리아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삶의 의미와 공허함을 보여준다.

서정적이면서 음울한 이 소설은 섬세하고도 적나라하게 삶의 아이러니와 공포를 그려내 맥코이 작품 세계의 정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학적이리만치 적나라한 이 작품은 그 시절 사람들의 시대 인식이 진지하지 못했다는 오해를 바로잡아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처럼 구경하는 이 작품의 플롯은 토머스 홉스와 찰스 다윈의 머리에서 나왔을 법한 설정으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연상시키며, 맥코이는 여기에 살인, 성폭력, 낙태와 같은 주제를 과감히 덧붙인다.

인물들의 삶은 실로 끔찍하고 혹독하며 허무하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열정과 힘은 찬사받아 마땅하다. 이 소설은 작가가 샌타모니카에서 벌어진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1시간 50분 동안 춤을 추고 단 10분만 쉴 수 있는 마라톤 댄스가 실제로 있었던 행사라니 쉽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 TV 리얼리티 쇼처럼 PPL(영화나 드라마에서 특정 제품을 노출시켜 광고 효과를 노리는 간접광고)이 그때 이미 있었단 것도 흥미롭다. 당시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한 커플들이 후원사 이름이 크게 적힌 스웨터를 입고 춤을 췄다니 당시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미국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는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도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글로리아와의 인연은 조금 우습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때 그녀도 나처럼 어떻게든 영화판에 들어가려 애쓰는 신세였다. 그 만남이 아니었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그녀를 보러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혼과 근친 성폭력 등 비참한 삶을 살아온 글로리아. 우연히 놓친 버스의 정류장에서 로버트를 만나게 되고 둘의 운명은 시작된다.

대공황 시절이라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도 힘겨운 암울한 시기. 배경이 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삶의 단조로움과 무료함, 그리고 죽음뿐이다. 그곳에서 댄스 마라톤이라는 명목하에 참가자들이 수개월 동안 마지막 커플이 남을 때까지 원형 경기장을 끝없이 도는 행사가 열린다. 이 대회에 참가하면 숙식이 제공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한팀이 되어 출전할 것을 제안한다.





글로리아의 제안으로 로버트는 그녀와 함께 댄스 마라톤 대회에 커플로 참가하게 된다.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춤을 추고, 대회 중간중간 마라톤 경주도 한다. 남녀 한 조가 커플이 되어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춰야 한다.

잘 수도 없고, 쉴 수도 없고, 오로지 10분의 휴식 시간에 세면과 식사, 수면을 해결해야 하는 광란의 대회. 심신이 피폐해진 버려진 영혼 같은 젊은이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삶의 목적이나 꿈도 상실한 채 오로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그들을 이용하여 온갖 쇼와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흥행업자. 동물원처럼 우리에 갇힌 비참한 동물들을 구경하고 즐기기 위해 입장한 관객들.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총체적인 비극은 끝을 알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이 기괴한 댄스 마라톤 대회는 인생의 무작위와 불합리, 그리고 무의미를 완벽히 보여주는 삶의 축소판이다.

대회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글로리아는 끝없는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그런 그녀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로버트도 함께 절망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암울한 현실의 터널 끝에서 작고 소박했던 그들의 꿈은 점점 사치로 변질한다. 소망하는 작은 평범한 삶조차도 버거운 그들에게 희망이 피어날까? 아니 헛된 꿈이라도 품어 보기는 한 걸까?

“나는 가만히 바다를 내다보며 할리우드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그곳을 가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혹시 이 모든 게 꿈이어서, 곧 아칸소 집에서 깨어나 배달할 신문 더미를 안고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건 아닌가.”





대회가 진행될수록 극도의 피로감에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추악한 인간의 욕망이 치부를 드러내며 처절하게 이어지던 대회는 몇 발의 총성으로 또다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이 대회는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황망하게 끝이 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리의 삶처럼 이 대회는 막을 내리게 되고, 더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는 글로리아. 그녀는 로버트에게 총을 건네고 마지막 부탁을 한다.


판사가 내 앞에 앉아 안경 너머로 날 바라보며 뭔가를 말하고 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안경을 관통하는 그의 시선처럼, 그의 말도 나오는 족족 내 몸을 관통해버린다. 판사의 안경이 그의 시선을 잡아두지도 가둬두지도 못하는 것처럼, 내 귀와 머리는 그의 말을 좀처럼 담아두지 못한다. (p. 176)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바깥공기는 축축했지만 상쾌했다. 마치 내 폐가 맑고 묵직한 공기 덩어리를 한 입 베어 무는 느낌이 들었다. (p. 197)





마라톤 댄스 대회는 한때 해상 유원지의 무도회장으로 쓰인 대형 건물에서 열렸다. 바다에 말뚝을 박고 세운 다리 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건물 아래로는 파도가 밤낮으로 철썩였다.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의 두 발이 파도의 솟구침을 느낄 수 있었다. (p. 30)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고 손님들은 신이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라톤 댄스 대회에서는 언제라도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겨난다. 뭔가 일이 벌어지면 장내는 순식간에 들썩거린다. 이런 점에서 마라톤 댄스는 투우 경기와 비슷하다. (p. 51)


마리오가 살인죄로 체포되었을 때는 참 많이 놀랐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착한 사람이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게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나는 누구보다 글로리아에게 친절했다. 결국엔 그런 내가 총을 쏴 글로리아를 죽이고 말았지만. 그러니 착하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p. 58)





바닥에 드리운 삼각형의 햇살 조각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마침내 삼각형이 작은 덩어리로 뭉개져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내 몸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그 작은 덩어리가 턱까지 올라왔을 때, 나는 그것이 내 얼굴에 최대한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발뒤꿈치를 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창밖 태양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나도 눈부시지 않았다. 순식간에, 햇빛은 자취를 감췄다. (p. 64)


새로운 경험이란 건 없다. 어떤 일을 겪어본 적 없다거나 생전 처음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보거나 냄새를 맡고, 듣거나 느끼는 순간, 처음인 줄로만 알았던 그 경험을 과거에 이미 겪어보았음을 깨닫게 된다. (p. 80)





저자 : 호레이스 맥코이


미국 테네시주 인근의 가난한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주 방위 공군에 입대하여 프랑스에 파병되었다. 소설가가 되려고 신문사에 들어가 스포츠, 범죄 취재기자로 일했으나 부유층과 교류하면서 지나친 소비와 방탕한 삶을 보내며 가산을 거의 탕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맥코이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를 완성해 출간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유럽에서 맥코이는 포크너, 헤밍웨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작가로 주목받았다. 새 소설을 집필하던 중 1955년 12월 쉰여덟 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는 그가 모아둔 책과 재즈 앨범을 팔아 겨우 장례식을 치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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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아담과 이브의 새로운 에덴 평점9점 | z***a | 2020.07.02 리뷰제목
아담과 이브의 현대판 이야기 같다. 아담이 이브의 유혹 때문에 파멸하듯이, 로버트는 글로리아의 유혹 때문에 살인범이 된다. 구약에선 뱀이 이브를 유혹하고 이브가 아담을 유혹했지만, 이 소설에선 뱀의 역할이 빠져 있다(물론 뱀을 '할리우드식 자본주의'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 싶다). 그리고 뱀과 아담과 이브 모두 죄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 소설에선 로버트만이 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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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현대판 이야기 같다. 아담이 이브의 유혹 때문에 파멸하듯이, 로버트는 글로리아의 유혹 때문에 살인범이 된다. 구약에선 뱀이 이브를 유혹하고 이브가 아담을 유혹했지만, 이 소설에선 뱀의 역할이 빠져 있다(물론 뱀을 '할리우드식 자본주의'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 싶다). 그리고 뱀과 아담과 이브 모두 죄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 소설에선 로버트만이 벌을 받게 된다. 로버트는 그저 죽고 싶다는 글로리아의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연민과 동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 남은 소원이 그저 죽음뿐이던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마치 '다리가 부러진 암말' 넬리와도 같이 여겨진다. 할아버지가 넬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장총으로 쏘아 죽였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글로리아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 그녀가 건네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원서 제목인 "사람들은 말을 쏘잖아요…. 안 그래요?"는 로버트의 허술한 자기변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력자살과 타살의 경계선이 애매한 경우가 로버트의 케이스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이 소설을 '미국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로 평한 이유도 생존게임, 자살, '죄와 벌'의 테마를 부각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죄와 벌을 다룰 때 벌은 죄만큼 무거워야 한다. 그런데 간혹 죄보다 벌이 무거울 때도 있고 반대로 죄보다 벌이 가벼울 때도 있다. 


사족이지만, 아담과 이브의 신화에서 나는 뱀보다도 이브의 죄가 훨씬 크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뱀이 아담이 아니라 먼저 이브를 유혹한 것도 뱀의 교활한 지능을 대변한다. 왜냐하면 아담이라면 비록 이브의 꼬임에는 넘어갔어도 뱀의 꼬임에는 결코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짝궁 이브의 유혹이 있기 전, 아담은 그저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다. 아칸소 출신의 영화 감독을 꿈꾸는 로버트와 텍사스 출신의 단역배우 글로리아는 부부도 아니고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아니다. 그저 함께 할리우드식 쇼비즈니스와 다를 바 없는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한 22번째 참가자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댄스 마라톤 행사가 벌어지는 원형 경기장은 로버트와 글로리아가 재발견한 일종의 에덴 동산이다. 에덴에서 선악과 나무를 따먹지만 않으면 무탈했듯이, 댄스 마라톤 경기장에선 탈락만 하지 않으면 무탈하기 때문이다. 1시간 50분 동안 춤추고 10분 동안 쉬는 것이 대회의 규칙인데, 탈락하기 전까지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우승하면 상금까지 선사하기 때문에, 때가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댄스 마라톤 대회장은 자본주의가 마련한 일시적인 '뉴에덴'의 축제 공간이 아닐까 싶다. 


이 축제의 자리엔 대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사회자도 있고, 참가 커플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요원이 있으며, 축제를 한층 빛내줄 영화계 유명인사들을 비롯한 관객들도 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를 위한 후원 회사들도 빼놓을 수 없다. 가령 로버트와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레이든 부인의 호의로 맥주 회사인 조너선 비어의 후원을 받게 된다. 만약 글로리아의 부탁을 무시하고 들어주지 않았다면, 로버트는 맥주회사에 일자리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소원이던 영화감독으로 출세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엔 30년대 할리우드 유명 감독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음,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어떨까, 그런 반가운 호기심이 강하게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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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우스꽝스러운 세태와 허무를 그린 소설 - 그들은 말을 쏘았다 평점6점 | r****a | 2020.07.02 리뷰제목
‘호레이스 맥코이(Horace McCoy)’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They Shoot Horses, Don’t They?)’는 우스꽝 스러운 대회를 통해 삶의 허무를 그린 소설이다.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엔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기묘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소설의 소재인 ‘댄스 마라톤(Dance marathon)’도 그 하나다. 이 대회는 1시간 50분 동안 서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소위 ‘댄스’를 하
리뷰제목

‘호레이스 맥코이(Horace McCoy)’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They Shoot Horses, Don’t They?)’는 우스꽝 스러운 대회를 통해 삶의 허무를 그린 소설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엔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기묘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소설의 소재인 ‘댄스 마라톤(Dance marathon)’도 그 하나다. 이 대회는 1시간 50분 동안 서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소위 ‘댄스’를 하고, 그 후 주어지는 10분동안에 먹고 자고 싸면서 몸을 추스리는 일을 반복하는 일종의 인내 게임이다.

꼭 격하게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해서 쉬워 보일 것 같지만 잠깐의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전혀 쉴 수 없기 때문에 쓰러져버리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극한까지 사람을 몰아부치는 고문과 같은 대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뭘까. 수차례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재도전하고, 심지어 출산을 앞두고 있어 크게 부풀어오른 배를 감싸않은채로도 그러는 것은 그만큼 당시가 먹고 살기조차 막막했던 시기기 때문이다. 주최측에서는 대회 참가자들에게 우승상금 뿐 아니라 숙식도 제공했는데, 그게 사람들을 끌어들인거다.

큰 빈부격차 속에서 부자들의 유치를 위해 치러진 대회가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은 그저 댄스가 아닌 힘겨운 경주를 벌이는가 하면 볼거리 제공을 위해 결혼식까지 올리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거의 무작위로 벌어지기 때문에 소설은 끝까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꽤 좋아서 한번 읽으면 내리 읽어내려가게 한다. 사형죄의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간에 벌어진 일들을 회상하는 식으로 얘기하기 때문에 결말을 알고 보는 것에 가까운데도 앞서의 특징(종잡을 수 없다) 때문에 꽤나 흥미롭기도 하다.

이런 감상은 내가 미국의 당시를 잘 알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대회, 인간들의 이야기 역시 실제로는 암울하기 그지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일종의 소동극처럼 가볍게 보이기도 했다.

시대상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들이 당도하게 되는 우울과 허무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지막에서야 마침내 꺼내 보인 것에 가까워서 더 그렇다. 그래서 조금은 뜬금없다.

왜 그 얘기를 받아들였느냐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대사로도 나오는 제목의 문장(그들은 말을 쐈지, 안 그래?) 역시 별 공감대가 없다. 만약 이게 그들이 빠져있는 감정을 비꼬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대단히 성공적인 셈이다.

소설 속 인간들의 행태는 사회 비판적인 면이 많은데, 그건 지금에 대입해봐도 꽤나 유의미하다. 인간들은 여전히 그때와 별 다를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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