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도 니체와 장자는 그리 쉽지 않다고 합니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지은 <할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란에서는 화려한 무늬로 촘촘하게 짠 카펫에 일부러 흠을 하나 남겨놓는다고 한다. 이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부른다. 또한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완벽한 구슬들 틈에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 넣는다고 한다. 전혀 흠결이 없는 목걸이에는 영혼이 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돌담을 살펴보면, 돌과 돌 사이를 촘촘이 메우지 않고 일부러 엉성하게 빈틈을 둔채 그 틈새로 바람이 지나가게 한다. 겉으로는 금방 무너질 것 같지만 이 돌담은 여간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 이책, 87쪽 -
'니체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니힐리즘, 위버멘쉬(초인), 영원회귀이고, '장자 철학'은 무(無), 진인(眞人), 만물의 순환이다. 이 둘은 2000년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동서양이라는 '공간적' 제약까지 꿰뚫고서 서로 맞닿아 있다. 그러나 비슷한 듯 다르고, 안 닮은 듯 닮은 두 사람의 철학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머리만 아프다. 원래 철학이라는게 가볍게 지나갈 때는 '우와~'하며 탄복을 하게 되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잘 웃지 않는다. 특히나 서양철학자들은 말이다.
하지만 다른 철학에 비해서 '니체'와 '장자'는 읽기에 수월한 편이다. 철학의 정수까지는 잘 몰라도 '한편의 재미난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과 장자의 <장자>는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철학의 진수'를 담았기에 읽다가 보면 저절로 탄복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면 그게 뭔지 잘 몰라도 말이다. 그럴 땐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좋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니체와 장자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니체와 장자 철학의 밑바탕에는 '자기애(自己愛)'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흐믓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리고 어떤 문제든 '직시하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죽음'조차 '삶'이니 '죽음'을 회피하려는 자는 '자기 삶'에서 도망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왜냐면 누구나 죽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죽음 앞에 '마주서기'를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까닭은 '내일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죽음'을 망각하는 순간 자신을 함부로 하며 건강을 해치는 행동도 서슴없이 하다가 끝내 건강을 잃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빈틈을 매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법이라고 말한다. 니체의 '위버멘쉬'나 장자의 '진인'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초능력을 갖춘 완벽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흠결'이 있는 사람이 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다. 사실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모자란 구석이 있어야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하고, 간혹 실수도 해야 '정감'이 가는 법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철학은 '완벽'을 말한다. 이게 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때문인데, 그래서 플라톤이 재수탱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사람에게 <국가>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말이다. 또한 '공자'도 밥맛이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면서 자신은 칠순이 넘도록 살았다. 그러면서 정작 공자가 '노장사상'을 비판하는 대목을 들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현대인은 철학자들도 아닌데 너무나 '완벽한 삶'을 꿈꾸곤 한다. 10대에 완벽한 스펙을 쌓아 20대에 명문대에 입성하고 30대에 대기업에 안착해서 '고수익'의 안정적인 삶을 계획함 40대에 완벽한 가정을 꾸려 50대에 은퇴를 하고 60대 이후부터는 안락한 삶을 꿈꾸는 이상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20대에도 취직과 알바, 그 사이의 간극을 초월하기 위해 청춘을 허비하고 30대에 안정된 삶을 꾸려가려고 자신의 건강까지 해쳐가며 애쓴다. 40대가 되어선 파김치가 되어 건강마저 잃어버리고서는 50대가 되기도 전에 자녀들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으로 '노후대책'은 마련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60대에 손주들 뒤치닥거리나 하며 '빈곤한 노후'를 맞이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러고 사느냔 말이다. 결국 이러기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냔 말이다. 니체와 장자가 말한다. '완벽'하려 하지마!! 사람은 누구나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러니 '노력'은 하되 매달리지는 말란 말이야!!!! 그리고 그 '노력의 방향'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를 테면, '봉사하는 삶'은 어때? 세상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너만이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이 반드시 있을 거란 말이야~ ...이렇게 말이다.
철학은 절대로 '경전'을 달달 외우려 들 필요는 없다. 그저 읽고, 깨닫고, 실천하면 그뿐이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니체와 장자가 말한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라고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스트레스는 사라질 것이다. 부담을 덜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니체와 장자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2천 년의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도 변하지 않는 어떤 원리가 있지 않을까?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종교, 이데올로기, 규범들을 망치로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던 니체의 지극히 인간다움의 실체는 또다시 100년이 지난 현대에도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부족함과 바램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여섯 가지 행복한 삶의 방정식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되새김질할 삶의 이정표가 될 것 같다.
첫째, 지극히 인간다움이란 획일적인 세계관이나 가치관이란 없으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의 테두리 안에 타인을 가두어 두려고 하거나, 내가 바라보는 것이 전부인 양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속죄하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둘째, 첫 번째와 상대적으로 너무 자극에 민감한 반응은 삶을 갉아먹는다. 상대방의 비판에 대해 맞받아치거나, 무조건적 반사작용들은 서로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과거나 비판에 얽매이지 말고 숨 고르기와 내면 성찰에 집중하기가 필요하다.
셋째,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칭찬이나 비난에 얽매여 일희일비하는 삶은 불행하다. 니체의 말처럼 타인은 나를 비난하기 위해 나를 살려 둘뿐이다.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넷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거나 나이가 들어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답한다고 한다. 삶의 끝에서 내 인생을 뒤돌아 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섯째, 보편적 가치란 항상 존재하는가 의심해야 한다. '세상에는 진짜보다 우상이 훨씬 많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항상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지식과 지혜는 다툼의 도구'라는 장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과학, 보편성, 도덕성을 자기 시각으로 합리화하고 객관화하려고 한다. 보편적 가치나 정의를 스스로가 가지고 있으되, 다양한 이론과 의견, 상황들을 폭넓게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생각의 보폭을 넓혀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모순과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니체는 '가장 현명한 인간은 모순을 가장 풍부히 갖는 자'라고 했다. 상반된 유형의 혼합은 각종 문제를 해결한다. 모순은 극복해야 할 것이지 무시하거나 버릴 것이 아니다. 창의와 창조는 무질서와 모순에서 비롯됨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일체의 보편적 이념은 의심할 필요가 있다]
【 니체의 우상의 황혼 】
「 세상에는 진짜보다 우상들이 훨씬 더 많다. 이것이 이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사악한 시선이자, 나의 사악한 귀다. 나는 여기서 망치를 들고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
【 장자의 인간세 】
「 덕은 명성을 추구하다가 상실되고 지식과 지혜는 다툼에서 나오는 것이다. 명성이란 서로 다퉈 불화하게 만들고, 지식과 지혜는 다툼의 도구가 된다. 」
진짜 뛰어난 사람은 자신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지 않는 법이다. 의지와 힘이 부족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어떤 객관적인 사태에서 찾는다. 소설가의 꿈에 실패한 사람이 소설 평론가가 되고, 영화감독이 되려다 좌절한 사람이 영화평론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니체는 기존에 통용되던 모슨 가치관을 망치로 깡그리 부숴버린 뒤에야 사람들이 무엇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은 사적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세운다. 하지만 전체 세계를 조망하지도 못하면서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보편적 이념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폭력이다.
엔지니어들이 흔히 하는 똑똑한 폭력이 있다. 자신이 배운 얼마 안 되는 지식을 과신하여 단순한 방정식 몇 개로 어떤 논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기술은 더욱 복잡해지고 발전하고 있는데, 과거의 낡은 지식의 틀안에 불확실한 미래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마치 온 세상을 다 이해했다는 듯이 말이다.
인간적인 삶이란 지혜로움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이나 권력, 부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삶의 끝에서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미소를 지으려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한다. 니체가 인간의 삶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비유했듯이 말이다. 자연과 함께하고, 삶을 어린아이처럼 놀이로 여기는 여유롭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창의적인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고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