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이 단어. 하지만 해당 사건의 당사자 혹은 해당 사건으로 인해서 현실에서 공포를 겪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연쇄살인마라는 단어는 상당히 흥미로운 단어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그 연쇄살인마가 특정한 사연이 있고 배경이 있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오래 전에 나는 이런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범 시민>이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비극적 상황에 몰아 넣었던 공권력을 위협하기 위해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 그가 저지른 살인은 무척이나 잘못됐고, 끔찍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을 응원했다. 미국 드라마 <덱스터>는 더더욱 그렇다. 덱스터는 사이코패스 성질을 갖고 있으며, 이를 알아챈 덱스터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나중에 연쇄살인마가 될 것을 예측하고, 덱스터에서 ‘오직 범죄를 저지를 살인마들을 살해하라’고 이야기 했다. 덱스터의 살인은 무척이나 잘못된 것이지만, 공권력이 처리하지 못하는 악에 대한 응징을 덱스터가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한다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적지 않은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이 책 <남자 도살자: 벨 거너스>. 이 책의 주인공은 벨 거너스라는 여자다. 우리는 보통 여자가 연쇄살인마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어쩌면 여성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사회 구조 그리고 여성들 또한 하는 수 없이 이에 순응했기에 여성들이 무언가 나쁜 짓을 저지른 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여성들이 하는 나쁜 짓이라고 해봐야 남자문제로 다투는 것이나, 어쩌다 여왕이 된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정치정도가 대가 여성 비극 서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기 때문이 이 책이 더 특별한 게 아닐까 싶다.
벨 거너스. 그리고 무기력했던 남자들.
<어떤 살인>이란 영화가 있다. 나는 그 영화를 본 뒤에야 왜 토막살인이 일어나는지 알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을 공격하려던 남자를 죽임으로서 자신을 간신히 방어한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남성의 시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인은 무죄를 받기 상당히 어려운 범죄다. 아마 재벌의 아들이 아니라면 사면이나 무죄를 받기 상당히 힘들지도 모르겠다. 해당 영화에서 주인공이 택한 방법은, 남자를 냉장고 속에 숨기고 몰래 버리는 것 이었다. 솔직히 끔찍한 방법이었으나,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토막살인’이라고 하면 살인마가 유희의 목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적지 않게 실용적인 문제 또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벨 거너스는 완전히 달랐다. 남편인 피터를 벨 거너스는 보험금 때문에 죽었다. 심지어 벨은 피터의 아이를 뱃속에 베고 있었고, 다른 자식에게 피터를 죽이는 것을 보이기까지 했다. 뿐만인가. 피터는 적어도 장례를 치루기라도 했다. 시신훼손이 적은 상태에서 말이다. 하지만 벨의 집과 농장으로 들어온 남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책에서 보면 농장 어딘가에 묻히거나, 토막내져 돼지의 사료로 사용됐다고 했다. 아~~~ 이건 뭐.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나쁜 놈인 거다. 아 그렇다. 그녀는 나쁜년이다. 그런데 솔직히 남자까지만 했으면, 그냥 진짜 나쁜년이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만큼 남자들은 어느정도 여자들에게 “홀린다”라는 게 있기에. 아마 몇몇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은 벨을 보고 남성 살인에 대한 희열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들이 남성으로서 여성에게 얼마나 나쁜 인간이었는지를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보이고, 벨이 각종 방법으로 어떻게 남성을 죽였는지를 보여주면 그들은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피터의 딸까지 죽이고, 농장 아무데나 묻느냐 이것이다. 물론 내가 연쇄살인마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녀는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끔찍한 살인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마 벨 거너스가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제발 부탁이니 <암수살인>과 같은 버전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이코패스 열쇄살인마. 심지어 경찰관까지 이용하려는 살인마 말이다. 보통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영화의 경우 대개는 연쇄살인마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그들의 살해 행위를 어느정도 관객들이 수용하게 만드는데, 벨 거너스의 살인은 그녀가 여자라는 것 외에는 딱히 어느 각에서도 사람들을 설득할만한 여지가 없어 보인다. 즉, 벨이 만약 주인공으로 나온다면 그는 반드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역할로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게 돼야 할 것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살인마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휘져었던 것은 영화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의 추억을 상기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범인을 잡기 힘든다는 점. 그리고 낙후된 수사력. 지금은 아이에 연쇄살인 자체가 벌어지기 힘든 상황이 공권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과거는 달랐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 우리나라의 케이스를 잘 보여주듯, 얼마나 공동체 안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지더라도 얼마나 그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없는지 이 책이 잘 보여준다. 심지에 여성에 의한 것이었으니 더욱 그럴만하지만, 이와 같은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당시의 사회 구조가 이를 막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혜진을 못 잡은 것처럼, 벨 거너스 또한 당시에는 잡히지 않았다. 이제와서 이것이 밝혀지면 정말정말 극적이고 재미있을 것 같다.
소설이어도 끔찍할 이야기가 논픽션을 달고 있다. 타이틀은 너무나 픽션스러운 “지옥에서 온 여왕 : 남자 도살자, 벨 거너스”
도대체 이 여자 무슨 일을 벌인 것일까? 어느 정도의 스케일에, 얼마나 잔인하게? 등 논픽션이라고 해도 자극적인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살인자 벨 거너스 사건의 서술 부분인 첫 챕터가 싱겁도록 밋밋했다. 첫 두 번의 살인은 상황이라도 서술되어 있었지만, 나머지 살인들은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고, 사라지고의 반복이 연속되다가 급기야 첫 챕터의 끝에는 연쇄살인마인 벨 거너스도 죽.는.다. 이거 뭐야?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는 것을 네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을 모두 다 읽고서야 알 수 있었다. 첫 챕터는 사건 개요, 두 번째 챕터는 이 잔인한 사건을 재미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자극적인 언론의 기사, 세 번째 챕터는 법정 다툼. 마지막 챕터는 끝나지 않은 호기심과 후일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두 번째 챕터에서의 사람들의 반응이 많이 불편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의 나의 감정과 무엇이 다른가 싶어서 놀랐다. 사람이 죽었고, 누군가는 그래서 가족을 잃었는데 나는 무슨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까에만 관심을 두었으니 말이다. 책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자극에 살짝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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