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머리가 숨기고, 가슴이 막아놓은 옛 상처와 마주하는 세 작가의 이야기.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숨겨두고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상처가 여전히 아파서일 수도 있고, 내게 위로를 건네줄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 이유일 수도, 세상의 시선이 무서워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세 작가는 스스로 깊숙한 상처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스스로 묵혀둔 본인의 아픔을 조금씩 용기 있게 꺼내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이 지난한 사투 끝에 건져낸 결말은 무엇일까. 세 작가의 세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어리다고 내팽개쳐 두었던, 쉬쉬했던 상처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일깨워준다. 1. 구렁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성폭력’을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담당 기관의 업무 방식,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사실을 함구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수시로 떠오르는 이야기다. 2. 그 아이 유년시절 겪었던 가정불화의 끔찍했던 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사랑만 받기에도 부족한 유년시절. 작가가 감당해야 했던 아픔의 순간들을 그대로 표현했다. 3. 관계탐사일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과,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원을 거슬러 반추해보는 순례의 과정을 담아냈다. <추천평> 오래된 슬픔의 장소에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세 사람이 각자의 입구에서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다가 용기를 내어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글을 보면서 그 순간은 어디쯤이었을까 짐작하고 더듬었던 기억이 난다. 슬픔의 장소에서 그들은 모두 용감했고 진실했고 쉽게 도망치지 않았다. 한 번쯤 아니 두세 번쯤 뒷걸음질 치다가도, 암담해져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도 다시 돌아왔다. 그들이 돌아올 때마다 슬픔의 장소는 달라졌다. 달라진 건 또 있었지만 그건 글을 쓴 세 사람이 누리고 쓸 몫으로 남긴다. 슬픔 아래 다른 지층의 화석처럼 놓여 있던 두려움과 분노도 이제 그들을 어쩌질 못할 것이다. 마음으로 가능한 오래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결국 바꾸고야 말 다음 장소를 기대한다.- <감정 노트북> 저자 김지승 작가* 독립출판물 화제작을 이제 전자책으로 만나보세요. 북닻은 전자책 브랜드입니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워어매 세상 무시라. 거가 나가 자주 가는 목욕탕인디 내 몸짝도 찍힌 거 아닌가 몰러. 남사스럽게.” 형사는 이 상황이 멋쩍은 듯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주머니를 구석으로 데려가 한참을 얘기했다. “죄송합니다. 이곳이 저희가 식사하는 곳이라…, 양해 바랍니다.”“워매, 아가씨! 세상 험한 일 겪고 고생혔소, 기냥 시원허게 털어 벌이소잉.” 15p 밤길을 혼자 걸을 때 위험하니 이어폰을 꽂거나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누가 따라 오는지 두세 번 돌아봤어야 했는데 내가 조심성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사건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예민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귀가하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가 표적이 된 것일까. 24p하이얀 봄바람이 불어 기분이 붕 뜨던 날, 떠다니던 민들레 홀씨가 내 뺨을 스치고 바닥의 잔디가 작게 일렁여 단잠에 빠져들었다. 큰 무덤가 근처에 누워있던 나는 하이얀 홀씨가 되어 매끈한 등허리를 가진 작은 무덤에 내려앉았다. 29p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부모 뒤를 따랐다. 아이는 제발 오늘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52p아이는 어두운 큰길 한복판에서 옆집 아주머니 품에 안긴 채 울고 있었다. 한겨울 도랑에 빠졌다 건져진 강아지처럼 작은 몸을 떨고 있었다. 56p아빠는 멀리 떠났다는 어른들의 말이 아빠가 우리를 버리고 떠난 것으로 들렸다. 58p“엄만, 너 때문에 살아. 너 하나 보고 사는 거야. 너 잘못되면 엄마는 못 살아. 너 없으면 엄만 죽어, 알지?”“…응.”아이도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이는 숨을 죽였지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 없었다. 가슴이 너무 뜨겁고 답답했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화산이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제 가슴 속 화산을 짓눌렀다. 엄마를 위해 화산이 터지지 않게, 용암이 흘러나오지 않게 가슴을 잠그고 또 잠갔다. 그것이 제 할 일이라 믿었다. ‘착한 아들. 세상 착한 우리 아들. 엄마는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68p나는 평소 말이 적었다. 특히 남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짧은 인생 속 내 이야기를 꺼내자면 가족이 필연적으로 얽히게 되고, 난 그 이야기가 싫었다.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굳이 이야기하여 측은한 눈빛과 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해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것이 내 자존심이었던 것인지, 실은 용기 없는 나를 마주하기 싫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81p 아빠 엄마는 한 달에 하루 혹은 두 달에 하루를 쉬었다. 힘이 들어 영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날이 유일한 휴일이었다. 그런 아빠에게 어쩌면 술은 유일한 낙이자, 잠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작은 동굴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여행이 그런 것처럼. 84p 근데, 너는 무색무취의 사람 같아.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