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반대여론이 전방위적으로 일고 있다.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다는 점에서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역사의 공정한 시각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교과서가 바르고 공정한 역사를 가르쳐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화 교과서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주도로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는 우리에게는 요원한 현실이다. 게다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정치이야기만 나왔다하면 종북빨갱이, 수구 꼴통으로 치닫는 정치문화에서 역사의 바른 관점과 시각은 중심추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대한민국史1》은 해방 직후부터 김두한까지 역사이야기다.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중요한 통과의례를 치르지 못한 채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런 모양새를 저자의 말에 의하면 ‘ 왕의 목을 치지 못하고 근대화'를 겪은 것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자주적인 근대화가 아닌 제국주의 세력에 휘둘려 근대화를 겪다보니 그 부작용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민혁명이 할 수 있는 농민혁명은 낡은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출발을 꾀하였던 것이 아니라 왕실에 충실한 근왕주의적 태도를 추구했다. 대표적으로 전봉준이 그랬고, 대부분의 의병장이 그러했다. 이어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은 그대로 근대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전 시대를 정리하지 못한 불행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건설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친일파를 척결하려던 반민특위가 친일경찰의 공격을 받아 해산당하고 친일잔재 청산을 부르짖던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투옥되었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다. 이 세가지 사건은 친일파 청산을 외치던 민족세력들이 오히려 친일파에 청산당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결여된 것은 시민혁명만이 아니었다. 전근대의 잔재를 청산하지 않고 무늬만 민주주의인 선거가 실시되고, 게다가 계급과 이념에 기초한 정당정치는 한국전쟁으로 말살되고 보니, 종친회, 화수회, 향우회, 동창회 등 혈연, 지연, 학연으로 똘똘 뭉친 조직들이 근대적 이익집단을 대신하여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근대적 시민의식의 함양없이 생산의 확대와 생산성 향상을 향해 줄달음치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의 시작점이다.
한 시대를 제대로 장송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새 시대로 들어가다보면,우리는 항생제의 남용이 병균의 내성만 키워주듯 전시대의 잔재가 새 시대의 화려한 옷 속에 반민주성을 감추고 돠리고 앉아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을 벗어나려면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미해결의 과제를 모조리 해결할 수는 없지만, 독재잔재만큼은 확실히 청산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p26
이 책을 통해 이승만의 계보를 처음으로 알았는데 이승만은 태종의 큰아들인 양녕대군의 후손이다. 이승만은 장자가 아닌 셋째 아들 세종의 후손이 대대로 왕 노릇하다가 급기야 나라가 망한 것을 못마땅히 여겨왔다고 한다. 이승만에게는 고종의 아들 영친왕인 이은을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왔었고, 이는 이승만이 민주공화제에 뜻이 없음을 시사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광복 70주년 기념식에서 박대통령이 ‘건국절’을 언급하자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절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광복절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 책에 의하면 1948년 수립된 단독정부로서의 대한민국 정부가 계승한 것은 임시 정부가 내걸었던 대한제국의 정통성이 아닌 임시정부를 철저히 부정했던 미군정이었으며 , 미군정은 일제의 조선총독부의 모든 법령과 인원을 접수하여 그대로 활용하였다. 결국 우리나라는 근대이후 한번도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불행을 그대로 답습한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건국절이 지닌 나라의 정체성은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진행형으로 남겨질 듯하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과거청산을 모범벅으로 행했다는 독일에서도 신나치가 생겨나는데, 단 한번도 과거청산을 하지 못하여 미청산된 과거의 만물상으로 불리는 우리 사회야 오죽하겠는가? 과거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해 현실로 이어진 과거사를 직시하고 그것과 싸우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친일잔재의 청산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 친일잔재는 군부독재권력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재생산되었다, 친일잔재의 청산은 어정쩡한 민주화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군부독재잔재의 청산으로 마무리돼야 한다.-p120
역사란 편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감성을 배제한 채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보고 올바른 관점과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머리말에 영화 <라쇼몽>이 보여주는 것처럼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자신의 관점과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 역사가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해 해석이 매번 달라진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에게 근현대사는 같은 의문을 준다. 왜곡되지 않고, 관점에 따라 바뀌지 않는 역사 교과서가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고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근대의 불행을 이제는 청산해야 할 때가 아닌가한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