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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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플라톤의 대화편

리뷰 총점 9.6 (321건)
분야
인문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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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Think 1.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z******8 | 2019.12.24 리뷰제목
각설하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믿지 말아야 할 신을 믿는다는 '불경죄'와 선량하고 건전한 그리스 청년들을 '선동'했다는 죄목에 대해서 '변론'을 적어놓은 글이다. 물론 아시다시피 소크라테스가 직접 글로 남긴 내용은 아니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적어놓은 내용이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하지도 않은 말을 적었다는 의심은 할 필요가 없다. 왜
리뷰제목

  각설하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믿지 말아야 할 신을 믿는다는 '불경죄'와 선량하고 건전한 그리스 청년들을 '선동'했다는 죄목에 대해서 '변론'을 적어놓은 글이다. 물론 아시다시피 소크라테스가 직접 글로 남긴 내용은 아니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적어놓은 내용이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하지도 않은 말을 적었다는 의심은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죄'를 위해서 변론을 했지 '변명'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느 날 자기 친구가 델포이 신전에서 받은 신탁의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 신탁이라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다"였단다. 델포이 신탁은 두루뭉술하고 애매해서 그 참뜻을 살피기 어렵다고 하는데,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롭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소크라테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나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밉보이고 말았기 때문에 '사형판결'까지 받은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지혜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바로 '산파법'이라는 대화술이다. 산파란 '출산에 임박한 산모가 건강한 아기를 적절한 방법으로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므로 소크라테스도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에게 '가장 참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공세를 펼치는 대화술을 써먹은 것이다. 이를 테면, 용감한 장수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퍼붓고, 엄청난 부자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또 묻고 다시 묻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나서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에 던지는 말은 늘 "그것 보십시요. 당신도 진정한 용기(행복)를 모르고 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나는 용기(행복) 따위는 잘 모르겠소'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당신은 그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오"라고 상대를 골리는 말로 끝맺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부아가 치민 상대가 "그럼 소크라테스 당신은 잘 알고 있다는 말이오?"라고 되물으면, 아주 얄밉게도 "나도 잘 몰라서 당신에게 물으러 왔습니다", "흥, 그렇다면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 서로 비긴 셈이구려", "그건 아니지요. 당신은 잘 모르면서 안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나는 애초부터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당신보다는 꼭 한 가지를 더 알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내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신탁은 맞는 셈이지요"라고 대답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책의 두 번째 내용인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친구 이름을 제목으로 적어놓았다. 끝내 재판에서 '사형판결'을 언도 받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간곡히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절친의 권유도 뿌리치며 '탈옥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한 까닭은 세 가지다. 첫째는 충분히 살릴 수도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를 죽게 둔다면 욕을 먹게 될 것이고, 둘째는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면 적들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셋째는 소크라테스가 죽게 된다면 이는 자식들에게 아비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반드시 탈옥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대중들이 뭐라고 생각하고 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탈옥 문제를 논하려면 그에 걸맞는 전문가나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성적인 논증을 거쳐야 하는데, 그 역시도 오직 '탈옥문제'에 대해서만 논해야하지 '다른 이유'를 들며 탈옥을 한다면 자신의 명예는 물론이려니와 정의롭지도 못하기 때문에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절친을 설득하는 내용이다.

 

  만약 내가 '크리톤'이었다면, 소크라테스의 싸다구를 날리면서 어설픈 혓바닥 놀리면서 개수작 떨지 말고 너보다 덜 떨어진 것들도 다 하는 탈옥이나 하라고 한 방 먹일 것이며, 기껏 간수까지 다 매수해가지고 친히 탈옥하라고 권하는 성의를 봐서라도 얼른 그 혓바닥보다 가벼운 궁둥이를 바짝 쳐들고 두 다리를 바삐 놀려서 감옥 담장이나 빨리 넘으라고 엉덩이를 쭈삐 차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극구 사양한다며 주둥이를 놀린다면 강냉이 세 개쯤 빠지도록 후드려 팬 다음에 뒷덜미를 질질 끌며 탈옥시킬 것이다. 뭐, 가끔은 말이 안 통하는 친구는 이렇게 맴매를 하면 말 잘 듣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소크라테스는 만만치 않다. 자기는 오래 전부터 '아테네의 법'에 복종하기로 한 사람이기 때문에 탈옥을 해서 어디를 가든 '법을 깨버린 사람'으로 욕을 먹을 것이고,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그런 취급을 받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며, 불의를 불의로 갚는다면 그거야 말로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를 두고 '박정희 독재정권'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교묘한 말로 자신들을 '정의로운 세력'으로 세탁하려고 하였다.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언어도단'이다. 분명 '아테네의 법'도 불의한 세력이고 '독재정권의 법'도 불의하다. 하지만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이는 정의로운 소크라테스가 할 말이지, 정의롭지 못한 '독재세력'이 자신들을 위해서 할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당한 권력이 부당한 방법으로 부당한 말을 갖다붙여서 저지른 불의한 짓은 정말이지 끔찍할 따름이다. 그러니 행여라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집권세력을 옹호할 요량이라면 당장 때려치라고 말하고 싶다. 저승에서 소크라테스도 깜짝 놀랄테니 말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파이돈>이다. 파이돈은 노예 출신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다. 이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서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한 유명한 이야기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탈옥도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비록 죽지만 '영혼은 불멸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혼이 불멸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 그 유명한 '이데아'가 등장한다. 플라톤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이데아' 말이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데아'를 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데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실재인 탓에 사멸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따라서 세상 모든 것은 사멸하지만 그 속에 있는 '이데아'는 사멸하지 않기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비록 현재의 소크라테스는 죽어서 저승의 문턱을 넘을 테지만 '소크라테스의 영혼'은 죽지 않고 저승을 넘어 다시 이승에 태어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윤회사상'인 셈이다. 다만 현실의 우리가 '저승의 기억'을 갖지 못한 까닭은 '레테(망각)의 강'을 건너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지만, 영원 불멸인 '이데아'를 기억해내는 순간 잊혀졌던 저승의 기억조차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내 몸이 죽는 것을 그리 애달프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사상'이란 헛된 육신이 느끼는 감정이나 감각 따위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순수한 사유와 변증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이데아, 즉 '참된 지혜'를 좇으라는 것이 핵심인 셈이다.

 

  마지막 이야기인 <향연>은 '에로스'에 대한 썰을 풀어내었다. 그래서 읽기에 따라서는 쬐끔 야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철학자의 야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정 근육'이 불끈거리거나 피가 쏠리는 현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길 바란다. 우리 말에 '사랑'에 해당하는 말을 그리스어로는 '세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단다. 바로 '필리아', '아가페', '에로스'인데, 필리아는 '친애하는', 아가페는 '경애하는', 에로스는 '욕망이 담긴 연애 감정'으로 해석할 수 있단다. 여기서 필리아와 아가페는 '욕망이 담겨 있지 않은 사랑'이지만, 에로스는 '매우 강렬한 욕망'을 담고 있는 사랑이기에 특별히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하고자 하는 '연애하는 욕망(에로스)'는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 우리는 흔히 '에로스'를 육체적인 열망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한 진정한 뜻은 '예찬'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그리스에는 '스승과 제자의 에로스'를 가장 이상(理想)적이고 이성(理性)적인 사랑으로 보았다. 이를 좀 더 분명히 말한다면 '노련한 스승과 어린(젊은) 제자의 에로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쉽게 말해 '동성애'를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사랑뿐 아니라 육체적인 사랑까지 '완벽'에 기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아무튼, 소크라테스는 스승이 제자를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치고 제자가 스승을 사랑과 존경으로 배우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먼 옛날에는 남자와 남자가 한 몸인 사람도 있었고, 여자와 여자가 한 몸인 사람도 있었지만, 남녀가 한 몸인 '남녀추니'도 있었는데, 이렇게 한 몸인 사람들이 가장 '완벽한 존재'였기 때문에 신의 능력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제우스는 이렇게 신에게 대드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완벽한 인간'을 해체하여 '부족한 인간'으로 영원히 분리시키려 했고, 이렇게 '부족한 인간'들은 서로의 짝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스승과 제자의 에로스'를 완벽한 인간으로 되돌아가려는 강렬한 욕망으로 그려놓았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삶을 가장 아름답게 본 셈이다. 그것이 '이데아'가 되었든, '에로스'가 되었든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상을 배우면서 '이데아'는 곧잘 배우지만 '에로스'는 좀처럼 배우지 않는 까닭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완벽한 에로스'라는 것은 불건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부로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그리스는 '인간의 몸'을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남자나 여자나 천쪼가리 하나에 의지해 홀딱 벗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기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천쪼가리' 하나만 걸치고 거리를 활보했다가는 철컹철컹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소크라테스가 <향연>에서 말하는 '에로스'를 곡해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0 댓글 8
종이책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New 소크라테스는 완전한 희망이다 평점10점 | h******o | 2019.12.07 리뷰제목
1.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 생각에는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지혜롭습니다.  그리고 신께서 우리에게 신탁을 주시는 이유도 인간의 지헤라는 것에는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께서 소크라테스라는 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를 하나의 본보기로 사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인간들
리뷰제목

1.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 생각에는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지혜롭습니다.  그리고 신께서 우리에게 신탁을 주시는 이유도 인간의 지헤라는 것에는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께서 소크라테스라는 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를 하나의 본보기로 사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인간들아, 소크라테스처럼 자기가 지혜에 관해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가 너희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다."

- p.23

 

 

 

 

 

강제적인 죽음 앞에서 삶의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억울하게 죽어가는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을 견디어 내고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성자가 아니라서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나의 모든 걸 걸었을 때는 특히.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위대한 사람일 것이다. 그가 신을 부정했든 안 했든, 그는 또다른 사회의  분란을 막기 위해 기꺼기 죽음을 택했다. 그가 덤덤히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라면, 그건 분명 자신만의 분명한 철학이 있었고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분명한 가치관을. 아무리 오랫동안 노력해도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 산 너머너머에 있는 그의와의 대화는 플라톤에 의해 쓰여졌고, 그도 소크라테스의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그래서 내가 쓴 "New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너머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직관적으로 짐작하고 쓴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소크라테스를 즐긴다. 그의 무대를 즐기고, 그의 대화를 즐기며,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끔 내 머리로 넘어오는 이해되는 말들을 즐긴다.

 

 

 

 

 

2.

그런데 만일 내가 죽음이나 그 밖의 다른 길이 두려워서 신께서 정해주신 천직을 버리고 이탈해버린다면, 그것은 정말 두렵고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죽음이 두려워 신탁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누군가가 그런 나를 , 신들을 믿지 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지혜를 뽐내는 자라고 고발하여 법정에  세운다면, 그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 될 것입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지헤로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혜롭지 못하며, 무엇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복 중에서 죽음이 최고의 복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의 재앙임이 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할 무지가 아닐까요?

- pp.35~36

 

 

 

 

 

나는 정말로 무지한 사람이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들에는 지식이란 게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이번 리뷰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이 책을 100프로 이해했다면, 나는 정말 리뷰를 이보다 100배는 더 잘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무지한 나를 좋아한다. 모르는 것을 어설프게 아는 척하기보다는 모르는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낼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느낀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은 그래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무지하기에 죽음 이후에 가는 천국이 행복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천국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가기에 나는 지금 행복할 수 있다면, 또 다른 궤변이 될까?

 

 

 

 

 

3.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 p.59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떠났다.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인 크리톤은 그를 탈옥시키고자 하나 소크라테스는 응하지 않는다.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

 

 

 

 

 

4.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유(소크라테스의 변명), 그리고 크리톤의 탈옥제안을 거절한 상황에서의 대화(크리톤), 그리고 사형당일날의 대화(파이돈), 아가톤이란 비극작가가 아테네의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베푼 연회에 참석했을 때의 대화 (향연)등 총 4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를 주도하는 인물은 역시 소크라테스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주변인물의 사상 등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사형이 선고된 당시 , 소크라테스의 심적 상태와 그가 왜 죽음을 택했는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서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기도 했다.

 

 

 

 

 

 

5

"그렇다면 동일성은 저 서로 동일한 사물들과 닮았을 수도 있고 닮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소.

"하지만 닮았든 닮지 않았든,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지. 자네가 어떤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보고 어떤 다른 것을 생각해냈다면, 이 둘이 닮았든 닮지 않았든, 필연적으로 그것은 기억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네."

- p.125

 

 

 

 


New 소크라테스 (22) 편안한 대화하기

 

 

카 : 우리 끝나고 대학로 가자
타 : 대학로?
카 : 사람 많은데 가고 싶어서
파 : 아 그래서?

당신은 신통한이기도 하고 이상한이기도 하신 분인가요?
나는 그들에게 또 말했다.
아니요.
그럼 누구신가요?
나는 그들에게 또 말했따.
나는 과연 누구일까요?
편안하지 않아요.
나는 그들에게 또 물었다.
편안함은 어떤 것인가요?

 

 

 


 

 

 

과연, 나의 "New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닮아 있는가? 닮든 닮지 않았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상관관계를 통해 나는 어떤 다른 것을 생각해낼 수 있을 거란 기대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높은 것도 아니요, 더 잘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사상이 아니다. 기존의 사상의 바탕 위에 새로운 것을  덧잎여  창조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철학도 사상도 즐기다. 그러다보면, 무언가를 만날 것이다. 거기는 고통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을 또 다진다. 리뷰도 독서도, 포스팅도 즐기면 그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천국에 닿아있겠지. 소크라스는 그렇게 희망을 주고 떠났다. NEW 소크라스테스는 고통이 아니라, 완전한 희망이다.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현대지성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댓글 8
종이책 [소크라테스의 변명]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c*****7 | 2019.12.04 리뷰제목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저술한 "대화" 편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어떤 저술도 남기지 않았기에 우리는 후대 사람들의 기록으로 그를 만나 볼 수 있다. 안타까우면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고발되어 자신을 변론하고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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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저술한 "대화" 편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어떤 저술도 남기지 않았기에 우리는 후대 사람들의 기록으로 그를 만나 볼 수 있다. 안타까우면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고발되어 자신을 변론하고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라던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향연은 사랑을 주제로 사랑의 본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혜와 진리를 사랑한 인류의 스승"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와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처음 고전을 접하거나 서양 철학으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곁눈으로 흘려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만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기존의 책들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이 어렵다거나 높은 사고를 요한다거나 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번역 자체가 중역인 경우가 많아 "말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난해하다는 것이다. 마치 몇 년전에 인터넷의 번역기를 통해 웹 사이트를 번역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피로함은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고 결국에 가서는 특히 고전과 서양 철학에 첫발을 떼는 사람들에는 상당한 어려움과 다음 발을 떼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때로는 전공 서적의 번역서보다 오히려 원서를 이해하는 것이 쉬워 번역서를 버리고 밤새 원서를 읽던 기억처럼 이러한 책들을 읽다 보면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배우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치솟는다.


그러던 중 그리스어 완전 완역본이 나왔다. 책의 첫 문장 첫 단어가 "아테나이'가 아니라 "아테네"로 되어있다. 완역본의 위엄이다. 물론 고대 그리스어를 그대로 번역하는 것도 의의가 있겠지만 책을 읽고 내용을 알고 거기로부터 사고를 펼쳐 나가는 데에는 가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은 누구나 편하게 소크라테스에 입문할 수 있을 만큼 번역이 잘 되어 있다. 마치 수년 전에 이무영 선생님께서 뉴턴의 "프린키피아"의 라틴어 직역본을 출간했을 때만큼이나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소크라테스로 입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으로 시작해 고전과 철학의 세계를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6 댓글 0
종이책 테스형, 나는 정말 알 수 있을까요?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m*******a | 2020.12.08 리뷰제목
사실 소크라테스는 너무 유명하다. 예수, 부처,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이기도 하고. 요즘은 이렇게 나훈아의 노래 가사가 되어 또 화자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사실 소크라테스만큼 이야기하기 어려운 철학자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면 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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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크라테스는 너무 유명하다. 예수, 부처,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이기도 하고. 요즘은 이렇게 나훈아의 노래 가사가 되어 또 화자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사실 소크라테스만큼 이야기하기 어려운 철학자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테스형을 어떻게 그렸을까? 주로 대화를 통해서였다. 그의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항상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사실 플라톤은 정말 재능이 많은데, 철학자로서도 대단하지만 작가로서도 위대하다 할 수 있다. 그의 대화와 묘사 속에서 소크라테스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니까. 아무튼 어찌됐건 소크라테스를 이해하려면 그의 말과 글이 필요하다.



이 중 가장 역사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는 플라톤의 저작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연설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주고받는 대화 형식은 아니며, 일종의 연설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이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고 독약을 마신 뒤 죽는다.






테스형의 변명



소크라테스는 고발당한다. 그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며 괴상하다. 그는 지하의 일이나 천상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친다."


일단 왜 소크라테스가 이런 고발을 당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적이 많았다. 첫 번째 적은 귀족들이었다. 그들의 아들들이 소크라테스를 추종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테스 형은 인기인이었다. 따라서 귀족들은 아들들이 하라는 공부나 정치는 하지 않고 테스 형만 좋아한다고 무척 싫어했다.


또한 그는 소피스트들에게도 반감을 샀다. 그들 중 일부는 변질되어, 사람들에게 궤변을 늘어놓거나, '돈을 받고' 말을 잘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 그리고 특히 플라톤은 '돈을 받고' 지식을 가르친다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소피스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적은 바로 소크라테스에게 거리에서 "넌 아는 게 없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충고를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하다. 이런 소리 듣고 좋아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테스 형은 사람들의 말꼬리를 잡으며 꼬치꼬치 질문하는 걸 좋아했고, 그의 치부를 들춰냈다. 논쟁하며 가식적인 면을 지적했다. 자신의 이런 면을 지적받고 깨닫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내가 고발은 당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난 고발장에 쓰인 대로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럼 그는 어떤 이야기로 자신을 변호했을까?






나는 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신은 인간에게 직접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 시대엔 사제가 신탁을 통해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신전 중 델포이 신전이 가장 유명했다. 그곳에서 테스 형은 신탁을 받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포클레스는 현명하다. 에우리피데스는 더욱 현명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만인 가운데서 가장 현명하다."


이런 내용이라니.. 소크라테스도 이런 신탁 내용을 전해 듣고 당황했다고 한다.

왜 내가 가장 현명한가?

신이 거짓말할 리가 없을 텐데?

그는 자신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기에, 신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테스 형은 이 문제를 두고 곰곰이 생각했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이 증거를 갖고 신에게 가면, 신이 자신의 신탁을 철회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현명하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는 현명하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이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렇다. 현명한 신은, 나에 대해서 말한 게 아니라 내 이름을 예로 든 것이다. 말하자면 신은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그의 지혜가 사실은 아무 가치도 없음을 알고 있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라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이렇게 현명한 테스 형은 사실 배심원들이 원하는 데로 고분고분하게 굴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그렇게 죽음을 구걸하진 않겠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까!


그는 말한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험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선한 일을 하느냐 악한 일을 하느냐이다. .. 누군가 자신의 뜻이든 운명이든 간에, 위험이 임박했을 때 그는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치욕 외에 다른 것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진실이다."



테스 형. 너무 당당한 거 아닌가. 단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다면 바지 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게 인간의 심정일 텐데. 소크라테스는 그런 죽음은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나는 당당하게 철학자로서 죽겠다!





소크라테스는 또 이렇게 말한다.


"혹시나 나를 살려주는 대신,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하지 말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나는 그리스인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보다는 신에게 복종할 것이며, 내게 생명과 힘이 있는 동안에는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가르치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평소 태도대로 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아. 테스 형은 정말 대쪽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보낸 일종의 등에다."


여기서 등에 난 파리와 비슷한,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곤충이다.


"이 나라는 각성이 필요하다.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붙여놓은 등 에이며, 따라서 하루 종일 어디서나 한결같이 여러분을 붙잡고 각성시키고 설득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나 같은 사람을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음. 이렇게 말하니 죽음을 당하지 싶긴 하다. 그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가치관을 따르다 그는 고귀하게 죽었다.






테스 형. 나는 정말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그가 한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델포이의 신전에 새겨져 있는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이 말이 테스 형이 했다고 소문난 것은, 그의 행동이 그 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너, 정말 알아?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확신할 수 있어?

네 생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유를 확실히 댈 수 있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해야 한다든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그런 것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인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하지만 세상엔 당연한 건 없다. 어쩌면 그건 나의 편견이거나, 습관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의심하고 생각하는 걸 피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데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테스 형한테 좀 혼나야 한다. 내가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뭔가를 확신하거나 결정하기 전에, 내가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실,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내 안에 다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우리는 올바르게 질문을 던지는 법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테스 형이 필요하다. 논리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산파, 소크라테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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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과 생각 평점8점 | a******k | 2021.03.05 리뷰제목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에게 지워진 죄목은 이러했다. 소크라테스는 하늘에 있는 것과 지하에 있는 것을 탐구하는 괴상망측한 사람이다. 악행을 일삼으며 악을 선처럼 보이게 하고 또한 남에게도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가르친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나라에서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신을 섬기는 악덕한 자이다 현대의 법으로 재판하자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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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에게 지워진 죄목은 이러했다.

소크라테스는 하늘에 있는 것과 지하에 있는 것을 탐구하는 괴상망측한 사람이다. 악행을 일삼으며 악을 선처럼 보이게 하고 또한 남에게도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가르친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나라에서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신을 섬기는 악덕한 자이다

현대의 법으로 재판하자면 이 고소장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평판에 따른 고발로서 기소 자체가 되지 않겠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런 죄목으로 사형판결을 받게된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변명한다. 즉 자신은 신탁을 받은바 있는데,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전혀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신이 이런 신탁을 내린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 신이 모순되는 신탁을 내리는 일은 없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보다 지혜로울 것이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해봄으로써 신탁이 틀렸음을 증명해보려 한다. 정치가, 예술가, 사상가 등등. 이들과 대화해보니 이들은 지혜가 없으면서 있는 체 하는 것도 모자라 지혜가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도 모르는 저들보다는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생각으로 무지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준다. 그 결과는? 수많은 적들을 양산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잘난 사람을 찾아가 못났다고 팩트 폭격을 하는데 누가 좋아라하겠는가? 사회생활을 이렇게 하다가는 입바른 소리만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패가망신할 뿐이다.

자, 그래서 이 입바른 철학자는 사형 당한다. 대신 그는 죽음을 삶보다 의미있는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당당하게 사형을 받아들인다. 신념에 따라 죽음을 택한 철학자는 인류문화유산이 되었고 시기심 또는 질투 때문에 무고한 자를 죽음으로 내몬 아테네 시민은 영원히 진리의 살인자가 되었다.

 

파이돈

파이돈은 포로였다가 해방된 후 소크라테스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 때 그 장소에 있었다(그 외에도 아폴로도로스, 크리토불로스, 크리톤, 헤르모게네스, 에피게네스, 아이스키네스, 안티스테네스, 크테시포스, 메네크세노스, 심미아스, 케베스, 파이돈데스, 에우클레이데스, 테르프시온 등. 플라톤은 병을 앓고 있어서 함께 있지 못했다). 스승이 비참한 죽음을 당한 이후 아테네를 떠나 고향으로 가던 도중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자인 에케크라테스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철학자에게 있어 육체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구속하는 불편한 존재이다. 육체는 먹고 마시는 쾌락뿐만 아니라 고통에 취약하기에 영혼은 육체의 신난산고에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영혼이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철학자는 그 방법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죽음. 그것이 영혼을 육체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또한 음양의 조화에 따라-물론 음양은 동양철학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지혜란 표현하는 수단(언어)만 달리할 뿐 그 뜻은 항상 통하는 법이다-죽음과 삶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죽음으로부터 삶이 나오고 삶으로부터 죽음이 발생한다. 따라서 영혼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것이기에 저승은 영혼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승에는 수많은 선대 현인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기에 그곳은 만남의 광장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지난한 삶으로부터 비로소 영혼이 해방되는 광복절이라며 기뻐한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하고자 한다. 만일 영혼이 육체보다 소중하거나 우월한 삶의 구성요소라면 신은 무엇 때문에 불필요한 육체를 만들었겠는가? 그냥 영혼만 만들면 되지. 그것은 영혼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혼은 물리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이동하거나 다른 사물에 작용을 할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영혼이라도 영혼만으로는 자유의지에 따라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영혼은 육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삶에 발현된다. 죽음에 의해 육체를 잃어버린 영혼은 다시 불구가 된다. 태평양 속에 갇힌 물방울 하나에 다름 없다. 그 물방울은 전체적인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릴뿐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없다. 따라서 육체적 삶을 소중히 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지, 있는지 없는지도 불명확한 영혼 나부랭이만 최고로 치고 육체를 소흘히 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다만 육체라는 것은 끊임없이 단도리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쾌락과 고통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제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중용의 도를 견지해야 한다.

 

크리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절친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당하기 약 하루 전 그는 친구를 찾아간다. 이 철학자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상상이 되는가? 죽기 하루 전날까지 소크라테스는 숙면하고 있었다.

크리톤은 이 천하태평인 철학자 친구에게 탈옥을 권유한다. 탈옥의 명분이란 이렇다. 국법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 만일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이 탈옥을 돕지 않는다면 대중으로부터 비겁하다는 평을 듣게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으니 아버지로서 그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논박한다. 국법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을지라도 나는 지금까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왔으니 국법을 파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대중이 항상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론에 휩쓸리기보다는 현명한 자의 지혜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거나 없거나 친구들은 내 자식들을 잘 돌보아줄 것이다. 이런 취지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논박에 대하여 이렇게 이의를 제기한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국가 자체의 보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소수 권력자가 국법을 악용해 선량한 자를 괴롭힌다면 부정한 권력에 맞서 싸워야 마땅하며, 권력자는 국가와 동격이 아니다.

나머지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향연

소크라테스 비극의 날로부터 한참 과거로 돌아가 유쾌한 만찬을 다루고 있다. 소위 지식인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날의 연설 주제는 '에로스'였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태초에 인간은 남성, 여성,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한 몸인 제3의 성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태초의 인간은 얼굴도 두 개, 팔 다리도 두 개, 성기도 두 개씩이었다. 이들은 또한 매우 교만하여 신의 권위에 도전하게 된다.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인간을 반으로 쪼개는 묘안을 생각해낸다. 반푼이가 되면 그 힘도 반으로 줄게 되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문제가 발생했다. 본시 한 몸이었다가 두 개로 쪼개지자 인간들은 서로의 반을 찾아 헤메다가 마침내 짝을 찾으면 서로 부둥켜 안고 있다가 굶어 죽어버린 것이다. 또한 남자-남자 또는 여자-여자 쌍이었다가 쪼개진 인간들은 동성애를 하게 되었고 남자-여자 쌍이었던 인간들은 색골이 되버렸다. 우리 말에 부부를 가리킬 때 남자 쪽을 남편, 여자 쪽을 여편이라 하는데, 아주 먼 과거에 우리 조상과 헬라스 조상들이 공통의 조상을 가졌었을까?

여러 사람들의 연설을 다 듣고 난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연설을 한다. 에로스는 사랑의 신인데 그 사랑은 지식, 지혜에 대한 결핍이 말미암은 사랑으로 결국 영혼이 순결해지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예상했던대로 교과서적인 마무리를 한다.

 

이 책을 이제야 읽은 것이 부끄럽다. 소크라테스라는 걸출한 철학가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눈이 부셔, 엄청 어려운 책이겠거니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우 평이한 문장으로 중학생 정도라도 읽을만 하다. 추상적 표현이 거의 없다.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 종국에는 그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주특기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이라는 거미줄에 걸리면 누구라도 무지한 먹잇감이 되고말 것이다. 그런데 이 철학자의 질문이 너무 교묘하여 바보가 되는 일이 즐거워 보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섣부리 흉내내려다간 동아리에서 왕따될 수 있으니 함부로 따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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