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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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고기를 굽기 전,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할 철학적 질문

리뷰 총점 8.9 (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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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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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아는 것과 실천의 불일치로 고민하는 그대에게 평점10점 | u*****6 | 2013.06.30 리뷰제목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이 버스를 탔다. 그녀가 탄 버스 역시 백인과 유색인 좌석이 분리되어 있었다. 로자는 유색인 좌석 맨 앞줄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인 좌석은 전부 찼고, 엠파이어 극장 정류소에 이르자 백인 몇 명이 더 탔다. 백인 두세 명이 서 있는 것을 본 운전기사가 유색인 좌석 표시를 로자가 앉은 자리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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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12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이 버스를 탔다. 그녀가 탄 버스 역시 백인과 유색인 좌석이 분리되어 있었다. 로자는 유색인 좌석 맨 앞줄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인 좌석은 전부 찼고, 엠파이어 극장 정류소에 이르자 백인 몇 명이 더 탔다. 백인 두세 명이 서 있는 것을 본 운전기사가 유색인 좌석 표시를 로자가 앉은 자리 뒤로 밀고 중간에 앉은 흑인 네 명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했다. 다른 세 사람은 일어나 뒤로 갔지만 로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왜 안 일어나는 거요?”운전기사가 소리쳤다.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로자는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에 신물이 났다. 게다가 그녀가 앉았던 자리는 원래 흑인 좌석이었다. 

 

“경찰을 부르겠소!” 

마음대로 하세요.”

 

로자는 몽고메리시 분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 작은 사건은 그녀의 일생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인권지형까지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흑인들은 이 사건에 항의하여 버스 안타기 운동을 벌임으로써 백인들을 놀라게 했다. '몽고메리 보이콧'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 운동은 흑인의 시민적 권리를 찾는 운동으로서 '흑백인의 평등과 통합'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워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인류보편의 가치가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꿈꾸기조차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했겠지만, 그 중에서도 시대적 변화에 강력한 도화선이 되어준 용기있는 소수의 역할은 결코 빠뜨릴 수 없다.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끈 로자 파크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흑백통합버스 제도가 시행된 첫날인 1956년 12월 21일, 버스 앞좌석에 앉은 로자 파크스. 

 

- 위 글의 원본 및 사진 출처: 유시민거꾸로 읽는 세계사>, 네이버 캐스트에 실린 박종대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에서 발췌 및 편집.   

 

 * * *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마틴 루터 킹, 말콤 X 등이 이끄는 흑인 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인종을 초월한 평등은 당연하고 보편적인 가치가 아닌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철폐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운동이 있는데, 바로 동물 권리 운동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개, 고양이는 반려동물의 대우를 받고 있지만,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이 사람과 같은 방에서 사는 건 한국 사회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서구에서 유입된 애완문화는 우리나라에 개, 고양이를 대량 번식시키는 지옥(개공장 또는 퍼피밀)과 이들을 판매하는 애견샵의 유통구조도 유입시켰다. 또한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동물을 살 수 있는 산업구조는 15년을 넘게 사는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의 충동 구매를 부추겨 하루 300마리 이상의 개, 고양이가 버려지는 현실을 낳고 있다.  

 

 

 

인간 사회의 동물에 대한 학대는 애완용으로 취해졌다가 버림받는 동물뿐만이 아니라, 식용동물, 모피동물, 오락동물, 실험동물 산업에서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최훈 교수의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이 중에서 식용 동물에 대해 생각해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도래와 함께 불과 50-60년 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육식이 흔해진 오늘날, 나의 밥상에서 나의 윤리를 찾을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종교나 건강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채식주의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할 것 같지만,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애정과 무관하게, 이성과 윤리에 기초하여 채식이 옳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개인의 동물 선호 여부와 무관하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성을 약간만 발휘하면 채식주의는 누구든지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며 심지어 '냉혈한'이라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동물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을 감상주의자로 치부하는 생각을 반박하면서, 개인이 어떠한 윤리적 판단을 하려면 감정이 아닌 이성이 필요하며, 사람들이 고통 받는 동물의 모습에 경악하면서도 여전히 고기를 먹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감성에 기대어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이성을 따르는 경우와 감성에 의존하는 경우 개인의 구체적인 실천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과 동물의 고통을 알고도 육식을 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감상적인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의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식탁 위의 고통'이라는 실존의 문제에 대한 채식주의의 철학적 이론을 제시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니다. 채식주의의 이론은 제레미 벤담, 피터 싱어, 톰 리건을 비롯한 사상가들이 정교한 논리 체계로 확립시켰고 이들의 철학을 반박하는데 성공한 학자는 지금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서구 사상에 의존하지 않고 저자 자신의 생각에 기초하여 채식이 윤리적인 이유를 철학 용어 없이 알기 쉽게 풀이했기 때문에 채식주의나 철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이 (책 제목에 '철학'이 들어있는 것과 달리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채식이 육식보다 윤리적인 이유로 동물의 고통 이외에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 오염, 3세계 기아 등의 전 지구적인 병폐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서적과 정보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내 자녀와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빌려 쓰는 지구'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육식이 초래하는 문제를 후손이 그대로 떠안게 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육식을 상당 부분 줄이는 것은 후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의무이기도 하다. 

 

 

 

집단주의가 강하고 튀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데 유용한 전략을 제시한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어떤 사람이 내게 권한 케이크에 계란과 우유가 들어있는지 노심초사하기 보다는, 또는 고기 굽는 냄새에 무너져 그 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에 집중하라"는 조언은 동물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의 실천적 전략으로 피터 싱어가동물 해방>을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제시한 바 있지만, 한국에서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한 채식 입문서가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실제로 나 자신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채식을 실천할 때 고민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고민에 많은 도움이 되는 훌륭한 길잡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부키 출판사가 비슷한 시기에 출판한 리어 키스의 <채식의 배신과 대조를 이룬다. <채식의 배신>을 쓴 리어 키스는 일체의 살생을 거부하는 극단적, 교조적인 채식주의의 딜레마에 빠져 20년 동안 고통 받다가, 결국 채식주의가 무지와 오해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며 지구를 구하기 위해 1) 자녀를 낳지 말자, 2) 자동차를 타지 말자, 3) 자급자족을 하자는 대안을 주장했다. 윤리적, 환경적, 영양학적 채식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동원하고 건강한 채식주의자들을 전부 투명인간 취급한 이 과감하고 용맹스러운 책이 채식주의와 동물권 운동의 본토에서 수많은 동물권 운동가와 영양학자의 조소를 받은 것은 필연적인 귀결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 운동으로서의 채식주의와 동물권의 개념이 생소한 우리 나라에서 <채식주의의 신화(The Vegetarian Myth)>라는 이 책의 원제를 채식의 배신>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출판하고 홍보하여,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오도하고 많은 이들의 육식을 위로하고 있는 부키 출판사의 책 선정 안목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채식의 배신한 권만 읽고 채식주의를 비판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리어 키스의 허수아비 공격에 농락당한 것이니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만이라도 읽어 본다면 <채식의 배신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채식의 배신에 대한 나의 서평과 반론은 블로그에 올려두었다. (서평 보기) 

 

 

 

채식의 배신의 저자가 저지른 오류와 관련하여 "채식주의자는 일체의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덧붙이면, 나는 일체의 살생을 하지 않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산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채식주의자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식물의 생명은 제쳐두고라도 식물에 붙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명을 죽이게 되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논리에 기대어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통해 하루 세 번 구할 수 있는 동물의 고통을 물타기하려는 시도가 종종 눈에 띄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도 먹고 살기 바쁜데 동물까지 챙길 여력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사람에게는 채식이 사치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또는 자신의 습관을 되돌아볼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이런 물음은 적절하지 않다. "사람도 살기 바쁜데 동물까지 챙길 여력이 어디 있냐?"는 물음에 대한 답도 이 책에 제시되어 있지만, 책 내용과 무관하게 한 마디 덧붙이면, 동물 학대는 인간 학대와 무관하지 않다. '고통'을 느끼는 대상을 향한 학대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아동 학대가 일어나는 집에서 동물 학대도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동물 학대가 종국에는 인간을 향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동물이 인간의 말을 못한다고 해서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취급하는 공장식 축산의 학대에 침묵하고 용인하는 사회를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 사회에 만연하는 부조리의 근본적인 원인은 윤리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머리 속의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력의 부족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고 "그래, 좋은 이야기지"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에 대한 저자의 글을 옮긴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나 한 명이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과연 동물들의 고통이 사라질까 회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나 한 사람 더 투표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는가?"라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분명히 나 한 명의 투표가 세상을 바꾼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1년에 얼마만큼의 고기를 먹을까? 쉽게 닭으로 계산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10.68kg의 닭고기를 먹는다고 한다(한국육류수출입협회통계). 치킨집에서 가장 많이 쓰는 11호 닭의 무게가 1.1kg이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닭을 10마리 정도 먹는 셈이다. 즉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면 1년에 닭 열 마리가 고통을 덜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축산업자가 즉시 그만큼의 생산량을 줄이지 않겠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늘면 늘수록 고통 받는 동물의 숫자도 줄어들 것이다."

 

 

채식은 자신의 부당한 처지를 고발할 수 없는 동물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꾸준한 문제제기와 항거를 통해 인종, 성, 계급을 초월한 만인 평등의 가치가 오늘날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되고 차별 철폐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듯이, 존중과 배려의 범위를 조금씩 넓히는 노력을 통한 인류 정신의 진보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실천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앎과 실천의 불일치로 고민하는 그대여, 오늘부터 당신의 실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뎌 보면 어떨까?    

 

 

참고할 만한 글과 영상:  

공장식 축산이란 무엇인가 (보러가기)  

공장식 축산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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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나는 채식주의를 지향한다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평점10점 | s*****a | 2013.03.23 리뷰제목
우리 사회에서 채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회식을 해도 주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거나 횟집이라도 가야 한다. 결국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며 둘 중 하나는 포기하고 물고기는 먹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종교적인 이유라든지 다른 명백한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군가 "그럼 식물은 고통을 받지 않겠어?"라는 질문을 하면 그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채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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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 채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회식을 해도 주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거나 횟집이라도 가야 한다. 결국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며 둘 중 하나는 포기하고 물고기는 먹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종교적인 이유라든지 다른 명백한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군가 "그럼 식물은 고통을 받지 않겠어?"라는 질문을 하면 그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채식을 하는 것도 내 취향, 다른 사람들이 육식을 하는 것도 그 사람들의 취향. 그저 그렇게 나 혼자 채식주의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보다가 우리 사회에서 순수채식만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쓴 글인데 완벽한 채식주의가 불가능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진보적 채식주의자로 살기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고기를 먹지 않으려 해도 동물성 식품이나 의약품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먹고 있는 대표적 동물성 식품으로는 약 캡슐이 있다. 캡슐은 젤라틴으로 만드는데, 이 젤라틴은 동물의 가죽ㆍ힘줄ㆍ연골 등에 들어 있는 천연 단백질인 콜라겐으로 만든다. 치즈를 만들 때 우유를 응고시킬 목적으로 넣는 것으로 레닛rennet이라는 효소가 있다. 이 레닛은 송아지의 제4위胃에서 나오는 단백질 분해효소로서 송아지를 도살할 때 부수적으로 얻는 동물성 식품이다. 그래서 우유를 먹는 채식주의자(락토-오보채식주의자) 중에는 레닛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치즈를 만들기도 한다. 딸기우유의 빨간색 색소도 동물성 염료인 코치닐로 만든다. 코치닐은 연지벌레를 건조한 다음 가루로 만든 것인데, 스타벅스가 딸기크림 프라푸치노의 빨간색을 이것으로 만든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벌레가 징그러워서, 또는 그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항의한 사람들도 있지만, 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했다. 인도의 맥도날드도 감자튀김을 만들 때 소기름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숨겼다가 인도 사람들의 항의 시위에 부딪힌 적이 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 사람들로서는 소기름으로 튀긴 감자튀김을 모르고 먹은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음식에 ‘쇠고기다시다’도 넣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토록 엄격한 채식주의자라 해도 동물성 식품이나 약품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레닛이나 코치닐이 들어간 음식은 그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캡슐로 된 약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中 279쪽) 

 얼마 전 잇몸이 부어서 치과 치료를 받은 후 캡슐약을 먹었다. 언젠가 씹었던 껌에도 젤라틴이 쓰이고, 여성들의 생리대에도 쓰인다고 한다. 치즈는 또 어떠한가. 레닛이라는 효소가 그렇게 얻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먹었다. 딸기우유의 빨간색 색소도 마찬가지. 외식을 하게 되면 국물을 어떻게 우려냈는지 알 수 없다. 고기를 사용했거나 멸치를 이용했거나 엄밀히 말하면 채식 식단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정말 외식 피하고 회식 피한다고 순수한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하는 일이다. 정말 완벽한 채식주의는 불가능하다.

 

 이 책을 읽은 목적은 그저 조금 더 논리적인 답변을 하기 위해서였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거나, 식물도 아픈데 어떻게 먹냐는 사람들에게 좀더 그럴듯한 답변을 하고자 이론적으로 무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목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인 면에서 채식에 관한 이야기다. 윤리는 취향과는 다른 문제이다. 나처럼 그냥 예전부터 안먹었고, 그래서 먹을 생각이 들지 않으며, 앞으로도 안먹을 것이라는 단순한 취향은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쓰기에 민망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저자는 원래부터 채식주의자는 아니었다. 고기를 아주 좋아하던 사람인데 고기를 안먹기로 결심한 이후 일상화된 고민으로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대신 '고민'이 차려졌다. 고기를 먹으면 문제될 것이 없는데 고기를 먹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그 고민이 공감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식탁 변천사에서 시작해서 채식주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들려준다. 육식은 사람과 환경 모두에게 문제를 야기한다. 아무래도 철학자의 글이어서 그런지 생각지도 못했던 고민과 현실을 줄줄 풀어나갔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저자의 논리에 따라 글을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책을 다 읽게 된다. 건강이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서 나만의 논리로 소신있게 채식주의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읽어보게 해야겠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서로 공감하며 소신껏 식생활을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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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평점7점 | s*********3 | 2013.02.12 리뷰제목
작가 최 훈은 교수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사회과학대학교 교양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고기를 먹던 작가가 반쪽짜리나마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철학자인 피터 싱어에 대한 책을 쓰면서였다고 한다. 출판사 김영사에서 사상가들을 두 명씩 묶어 비교하는 방식으로 사상을 소개하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기획
리뷰제목

작가 최 훈은 교수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사회과학대학교 교양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고기를 먹던 작가가 반쪽짜리나마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철학자인 피터 싱어에 대한 책을 쓰면서였다고 한다. 출판사 김영사에서 사상가들을 두 명씩 묶어 비교하는 방식으로 사상을 소개하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기획한 적이 있는데 [데카르트&버클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에 이어 [벤담&싱어: 매사에 공평하라]를 쓰게 되면서 공리주의 철학자인 두 사람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에 대한 윤리적 대우에 대해서도 쓸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고기 먹는 행위에 대해 심각하게 따져보게 됐다는 것이다. '습관을 따를 것인가, 앎을 따를 것인가' 고민하다 '앎을 따른 것'인 셈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단다. 의지와 실천이 없는 지식은 진짜 지식이 아니라고.

 

철학자인 작가는 이 책에서 채식주의 필요성을 오로지 윤리적 기준에서 풀어간다. 종교적 이유에서 채식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거나, 환경을 위해서 채식을 하거나, 고기가 입맛에 맞지 않아 채식을 하거나, 동물이 불쌍해서 하는 채식은 작가가 보기엔 '채식주의'가 아니다. 채식은 맞겠지만 '채식주의자'라고 보긴 어렵다는 거다. 윤리란 개인적인 믿음이나 취향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윤리적 당위성만 갖고 채식의 필요성을 풀어낸 책이라 자칫 재미없지 않을까? 딱딱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350쪽 좀 안 되는 책이 술술 넘어갈 만큼 쉽고, 재미있다. 채식주의자가 된 사연, 채식주의자로서 살면서 사회생활하며 부딪힐 수 있는 문제와 편견, 그에 대한 개인적 대처 방법을 비롯해 채식의 단계, 공장식 사육 방법에 대한 고발 등을 차례대로 읽을 수 있다. 책 뒤에는 작가가 참고한 문헌 목록도 실었으니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사람은 목록을 참고해 책을 읽어도 좋을 거 같다.

 

중간중간 '교수님, 이건 좀 무리에요'라는 부분도 살짝 있긴 하지만 채식주의자로서 이론적 토대를 갖추고 싶은 사람,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왜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 채식에 관심은 없지만 너무 어렵지 않은 사회과학 책을 읽고 싶은 사람 모두 읽기 무리 없는 책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윤리적일 수 없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될 순 없지만 이런 책을 통해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참, 책 표지 그림에 나온 사람은 작가의 모습을 딴 건데 책 앞날개에 있는 작가 사진이랑 너무 똑같아서 보고 웃음이 빵 터졌었다. 얼마나 닮았는지 궁금하신 분은 꼭 책의 앞날개를 펼쳐 앞표지의 그림과 비교해 보시길. 이렇게 닮기도 힘들 만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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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평점10점 | d***********2 | 2020.01.18 리뷰제목
어째서 ‘채식주의’는 윤리적인가!『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채식주의, 그 중에서도 채식의 윤리적 측면을 다룬 책이다. 저자의 체험을 토대로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이 왜 윤리적인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고기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해 갖은 핑계를 만들어 고기를 손에 대고, 채식 실천에 거의 성공했다 싶으면 다가오는 주변의 유혹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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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채식주의’는 윤리적인가!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채식주의, 그 중에서도 채식의 윤리적 측면을 다룬 책이다. 저자의 체험을 토대로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이 왜 윤리적인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고기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해 갖은 핑계를 만들어 고기를 손에 대고, 채식 실천에 거의 성공했다 싶으면 다가오는 주변의 유혹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통해 채식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고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솔직한 고백을 통해 채식이란, 그리고 윤리적 반성이란, 철학자만이 아니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볼 만한 문제임을 일깨운다.

이 책에서는 채식의 윤리적 근거들뿐 아니라 채식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질문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고통 없이 기른 동물의 고기라면 먹을 수 있는지, 동물들이 그토록 고통을 받고 있다면 차라리 일찍 죽이는 것이 좋은 것인지 등의 질문에 대하여 차근차근 반박해낸다. 또한 채식이 올바른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채식주의의 단계별로 하나하나 설명하여 안내하고 있다.

 

 

 

최훈

강원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양과정의 철학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냈고, 호주 멜버른대학교, 캐나다 위니펙대학교,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박사학위 주제였던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그 연구 성과를 논리적 사고와 오류 연구에 접목하고 있다. 그간 이론적 배경이 부족했던 이 분야에 학문적 토대를 쌓고 있다. 그 일환으로 나온 『논리는 나의 힘』은 논리학 교과서뿐만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

플라톤은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통치자가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저자는 온 국민이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좋은 나라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학술 연구 못지않게 대중에게 철학적 사고가 무엇인지 알리는 것을 철학 선생의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약간은 거창하지만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저술로써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데카르트와 버클리』, 『매사에 공평하라: 벤담과 싱어』는 그런 작업의 결과이다. 그 외 저서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데카르트&버클리』, 『매사에 공평하라: 벤담&싱어』,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 『변호사 논증법』, 『생각을 발견하는 철학 토론학교』(박의준과 공저),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윤리적 채식주의를 다룬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와 오류 이론을 주제로 한 『좋은 논증을 위한 오류 이론 연구』를 출간했다. 그리고 『플라톤과 인터넷』, 『철학: 가장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대답들』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채식이 윤리적인 이유 3
‘식물도 고통을 느끼지 않나?’라는 질문은 지겹다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지음, 부키)이라는 책이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채식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들어보고 이론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고 필요하면 수정할 수도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들의 관심도 꽤 받는 것 같은데,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채식이 여전히 낯선 우리나라에서 채식보다 채식의 배신이 더 주목 받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채식이라고 할 만한 게 있어야 채식의 ‘배신’이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필자는 한 때 정말 채식주의자였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채식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상한 주장을 채식주의로 생각하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하면 흔히 던져지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고 했다. 졸저인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에서 ‘육식주의자를 위한 Q&A’라는 제목으로 그런 대답을 했으므로, 여기서는 <채식의 배신>에서 여전히 줄기차게 제기되는 반박들 위주로 답변을 하겠다. 의도하지 않게 그 책에 대한 짤막한 서평이 돼버렸다.


+글.최훈(강원대 교수) +에디터.이향재
 


지난 두 호에 걸쳐서 윤리적 채식주의가 어떤 주장을 하고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근거들을 살펴보았다. 윤리적 채식주의의 중요한 이론가인 철학자 피터 싱어가 “이제껏 나는 논파하기 힘든 비판을 접해 보지 못하였으며, 이 책이 기초하고 있는 단순한 윤리적 논거의 견고함을 의심하게 만든 논변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 이론은 강력하다.

또 다른 철학자인 콜린 맥긴은 ‘이긴 논쟁’이라고까지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식의 평가를 받는 것은 윤리적 채식주의의 논증들이 워낙 탄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이 그리 많이 시도되지 않은 탓인 것도 같다.

윤리적 채식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육식주의자들(육식주의자라고 해서 육식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잡식주의자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지만 채식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육식주의라고 부르자)이 육식을 방해 받는 상황도 아니고 양심의 거리낌을 받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입증의 부담이 없어서 윤리적 채식주의에 대해 굳이 반박을 하지 않는다. 모든 이론이라는 것은 반박과 답변을 통해 강력한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인데, 그런 논의가 활성화되지 않는 현실은 윤리적 채식주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Q. 채식은 건강을 해치나?

윤리적 의무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부과된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고서 살 수 없다면 채식주의는 윤리적인 의무가 될 수 없다. <채식의 배신>의 저자 키스는 비건이 된 이후 퇴행성 관절 질환, 저혈당증, 구토증, 우울증 등에 시달린 경험담을 말한다. 그리고 책의 3분의 1을 할애해 채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연구들을 소개한다.

채식이라고 해서 채소만 먹는 것은 아니다. 베지닥터인 황성수 박사께서 강조하듯이 곡물, 채소, 과일을 골고루 먹는 것이 채식이다. 곡물만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채소만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며 과일만 많이 먹으면 당분 섭취가 많아진다. 자신의 몸에 맞게 적당히 먹어야 한다.

그런데 <채식의 배신>는 곡물, 특히 한해살이 곡물 식사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는 견과류도 먹고 채소도 먹고 버섯도 먹고 과일도 먹는다. 혹시 키스의 건강이 나빠진 것은 ‘편식’ 때문이 아닐까? 키스의 건강 악화의 원인이 무엇이든 자신의 사례를 드는 것은 채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전혀 입증하지 못한다.

채식을 해서 건강에 좋아지는 사례도 얼마든지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 몇 개 드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채식이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는 그런 한두 사례가 아니라 객관적인 과학적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나는 영양학자가 아니므로 채식이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키스가 채식이 건강에 나쁘다고 제시한 증거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연구가 채식은 건강에 좋고 육식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은 알고 있다. 영양학적 연구를 직접 수행할 수는 없어도 키스가 인용한 연구의 신뢰성을 검증하여 그의 주장이 합당한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채식의 배신>의 번역본에는 원서에는 있는 주석과 참고문헌이 몽땅 빠져버려 그런 판단을 할 수 없다. 이런 번역은 처음 봤는데, 의도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원서의 참고문헌은 신뢰성이 없다.

신뢰성 있는 문헌은 동료들의 심사를 받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참고문헌은 그것보다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정보들이 더 많다. 특히 글쓰기 수업 때 학생들에게 절대 인용하지 말라고 말하는 위키피디아도 여럿이고 우리나라의 지식인 답변 같은 것도 있다. 같은 문헌을 10번에서 30번씩 연속해서 인용하는 것도 공정한 글쓰기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채식과 건강의 관련에 대해서는 굳이 그런 연구를 검증할 능력이 없어도 좋다. 지구 상에서 채식을 하면서도 건강하고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아주 훌륭하게 일반화하여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힌두교도들과 불교의 스님들 그리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들이 성급하지 않은 그런 사례들이다. 물론 그들이 건강한 데는 채식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도 한 몫을 했을 것이지만, 채식이 건강에 좋지 않은데 신앙의 힘만으로 이겨냈겠는가?

Q. 동물들은 서로 잡아먹는데 사람은 왜 동물을 먹으면 안 되나?

키스는 채식주의자의 무지를 채식주의를 포기한 계기로 들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이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는 채식을 한다고 우기고,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사자와 같은 맹수는 영양이나 얼룩말과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한단다. 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은 자연이 본질적으로 사악하다는 것을 모른단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채식주의자 또 동물 권리 옹호론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적어도 윤리적 채식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은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반성할 수 있고 위에서 말했듯이 고기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은 그런 윤리적 반성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육식 동물들은 고기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든 안 잡아먹든 그것은 사람이 고기를 먹으면 되는지 안 되는지 논의할 때 전혀 상관이 없다.

윤리적 채식주의자는 이렇게 윤리적인 규범을 논의할 때 자연적인 사실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사실에 개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육식 동물의 본성에 어긋나게 채식을 강요하는 윤리적 채식주의자는 전혀 없다. 키스는 윤리적 채식주의와 전혀 상관없는 특이한 채식’주의’자들을 윤리적 채식주의자로 간주하고 비판하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Q. 인간은 지금까지 동물을 먹어왔지 않나?

키스는 또 우리 인간이 고기를 먹어온 오랜 역사를 이야기한다. 여러 고고학적 증거가 인간은 육식을 했음을 보여주며 현재의 인간을 만든 것은 육식이라는 것이다. 일단 그가 인용한 영양학적 연구처럼 이 고고학적 증거라는 것 역시 신뢰성이 의심스럽다. 그러나 맞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위에서 말했듯이 그런 역사적인 ‘사실’이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규범’을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 인간이 오랫동안 노예제를 운영해왔다고 해서 노예제가 정당화되지 않듯이, 인간의 조상이 육식을 했든 안 했든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육식의 윤리성을 논의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오랫동안 고기를 먹어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과 같은 육식을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 과거의 동물은 지금과 같은 공장식 사육으로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Q. 식물도 고통을 느끼지 않나?

키스는 ‘동물은 안 되고 식물은 된다?’라는 제목으로 상당히 길게 왜 동물은 먹어서는 안 되고 식물은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식물도 감각이 있고 생명활동을 하며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채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친절하게 대답해야겠지만, 한때 채식주의자였던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좀 지겹다.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식물이 고통을 느끼는가?

스스로 움직이는 식물도 있고 화학 물질을 교환하기도 하고 방어에 필요한 물질을 분비하는 식물도 있지만 그것이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가 되는가? 모든 생명이 상호 의존적이라는 것이 왜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가 되는가?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무를 꺾으면 ‘아프다’고 말하는 유아적인 사고이거나 사이비 과학일 뿐이다.

Q. 농업은 파괴적이지 않은가?

키스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동물들을 죽게 만든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쟁기질을 하다 보면 미생물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동물들은 식물들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함을 과학자들의 연구는 보여준다. 그리고 고통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고기를 먹기 위해 일부러 동물을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며 윤리적인 농부들은 눈에 보이는 동물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키스는 일년생 초본 중심의 농업이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채식 식단에 일년생 초본밖에 없는 것처럼 그것 이야기만 줄기차게 한다.) 그런데 그는 왜 옥수수와 밀이 대량으로 사육되는지 진정 몰라서 그런 주장을 할까? 그 많은 곡물들은 인간의 입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입에 들어갈 동물을 먹이기 위해 재배된다는 것은 상식인데 말이다.

물론 인간의 농업 행위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인구의 증가는 농지를 늘려가게 하고 숲을 파괴한다. 그리고 키스의 주장대로 쟁기질을 하는 것이 표토를 파괴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현상이 왜 육식을 옹호하는 이유가 되는가? 그것은 환경을 보호하는 지속 가능한 농업 정책을 세워야 할 이유는 될지 몰라도 육식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냥과 채집을 하던 시대가 가장 환경 친화적이고, 그는 실제로 그런 시대를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육식은 그런 사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육식을 옹호하기 위해 이 책을 꺼내든 사람은 번지수가 한참 잘못되었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한때 채식을 하다가 그만 두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물고기를 요리하는 것을 봤는데 물고기 뱃속에 또 다른 물고기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동물들도 서로 잡아먹는데 우리가 고기를 못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 이유에 대한 대답은 위에서 했다. 그런데 프랭클린은 물고기가 요리되는 맛있는 냄새가 났을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피터 싱어는 이런 프랭클린을 솔직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고기 맛이 ‘당겨서’ 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채식을 ‘끊었지만’ 키스는 솔직하지 못하다. 육식을 해도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지만 어느 하나 그럴듯하지 않다.

그냥 고기가 먹고 싶어서 고기를 먹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20년만에 처음으로 통조림에 든 참치를 먹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글자 그대로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오, 주여! 이게 바로 살아 있는 느낌이구나”라고까지 외친다. 호들갑은.

*다음 호에서는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에서 '외계인과의 대화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하도록 하겠다. 

최훈 강원대학교 교수. 철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실생활에 유익한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관심을 가지고 대중 눈높이에 맞는 철학서를 꾸준하게 쓰고 있다. <논리는 나의 힘>, <생각을 발견하는 토론학교> 등이 있으며, 새 책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에서는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우월하다는 전제를 내세우며 스스로 동물 냉혈한이라 ‘자백’ 하면서도 윤리적 채식주의를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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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평점10점 | y*******a | 2019.12.03 리뷰제목
강원대학교 최훈 교수님의 신작, [동물윤리 대논쟁]도 읽어야겠지만 나는 몇 년 만에 다시 2012년 저작인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로 돌아갔다. 최훈 교수 역시 서울대학교 철학과 전공 교과였던 '현대 윤리학' 에서 [실천 윤리학](피터 싱어)를 통해 처음으로 "채식주의"를 들어본 이후, 대학원진학, 논문집필, 대학강의 등의 과정과정에서 [실천 윤리학]을 20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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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최훈 교수님의 신작, [동물윤리 대논쟁] 읽어야겠지만 나는   만에 다시 2012 저작인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돌아갔다최훈 교수 역시 서울대학교 철학과 전공 교과였던 '현대 윤리학' 에서 [실천 윤리학](피터 싱어)를 통해 처음으로 "채식주의"를 들어본 이후, 대학원진학, 논문집필, 대학강의 등의 과정과정에서 [실천 윤리학]을 20여년 동안 여러번 다시 읽었다고 한다. 이론과 실천은 별개라고, 책은 열심히 읽었으나 삼계탕 잡뼈까지 쪽쪽 발라먹을 정도로 고기 잘 드시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붉은 고기와 빠이한다. 이후, 닭고기(하얀 고기)까지 빠이하면서 스스로 "반쪽짜리 채식주의자"라 하는데, 그에 따르면 "채식한다"와 "채식을 지향한다"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채식을 지향"하는 쪽에 해당할텐데, 최훈 교수와 같은 윤리적 채식주의자 근처에도 못 가는, 그냥 취향에 따른 채식 지향자일뿐이다. 아래의 인용을 읽어보면 그가 채식주의자를 동기에 따라 범주화하는 데 있어 '일반화 가능성'이 얼마나 중요한 항목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자이나교도나 프루테리언은 윤리적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종교적이거나 정서적 취향에 의거해 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이런 사람들을 채식주의자인 것처럼 소개하는 [고기 없인  살아! 정말  살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채식주의자는 보통 사람들이   없는 괴팍한 짓이나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있기 때문이다 (305)."

 

윤리적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그는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일종의 "종차별주의(speciesism Richard Ryder 1970)"라면서 외계인 에일리언이 인류를 식육하는 에피소드에 비유했다. 놀랍게도 호주에서는 문어, 낙지를 기절 시킨 후에 끓는 물에 넣는 것을 법제화했다고 하는데 검색어를 잘못 잡아서 인지, 실제 법안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또한 EU에서 2013년부터 시행한다는 Sow Stoll Ban이 실제 어느 수준으로 준수되고 있는지도 온라인 상의 자료만 확인해서는 궁금증이 다 풀리지 않는다. 부제 "철학, 채식을 말하다"인만큼 철학, 특히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 이론과 톰 리건의 권리이론을 바탕으로 윤리적 채식의 당위와 나아갈 행동강령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다. 최훈 교수도 현장의 목소리를 살리지 못하고 문헌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는 시간적, 인맥적(예를 들어 도축장에는 대통령도 발을 들이기 어렵다하는데?) 제한으로 인한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실제 사람들이 어떤 동기에서 채식을 (지향)하고, 채식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한 계단 내려와서 살펴보고 싶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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