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록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찬찬히 읽다보니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네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 같으면 물 흐르듯 가볍게 읽었을 것 같은 죽음에 대한 고찰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면서 읽게 됩니다. 뒤처지고 쇠퇴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벌써부터 영혼이 늙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수상록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자연스러운 수용과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는 활력을 찾은 듯해요. 가슴에 남았던 몇몇 문장은 따로 적어놓았다가 자주 읽어 봐야겠습니다.
"죽음이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곧 자유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이 말을 누가 했을까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쓴 서울대 김영민 교수님? 아닙니다. 몽테뉴가 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에. <수상록>이라는 책을 읽고 나면 독특하고, 지적이고, 따뜻하고 때로는 안쓰럽기까지 한 몽테뉴라는 사람에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프랑스 몽테뉴 지방 영주 가문 후손인 몽테뉴는 담석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요즘은 레이저로 쓸개 안에 있는 돌을 깨서 몸 밖으로 배출하면 되지만 500년 전에는 그저 고통을 견디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몽테뉴는 이 고통과 마주하며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합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고자 한 거죠. 그리고 그 과정을 수상록에 솔직하게 담았는데 그 결과물은 참 큰 울림을 줍니다. 육신을, 죽음을 초월한 듯한 표현들에서는 인간의 정신이 과연 어느 선까지 포용할 수 있는지, 진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나는 내가 실제로 겪는 수천 개의 격정과 정신의 동요가 더 두렵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는 자연적 쇠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인생이 참나무의 수명만큼 길고 강하지 않다고 해서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15세기, 그러니까 인간이 신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할 무렵 몽테뉴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돌아보고 또 돌아봤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몽테뉴를 자기 고백적 글쓰기의 조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상록 전반에 흐르는 몽테뉴의 철학 역시 성찰적인 글쓰기가 갖고 있는 전반적인 주제 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seize the day!란 태도 위에 자신의 바닥까지 내려가 진실한 자신을 발견하려는 태도 말이죠. 그래서 500년 전의 글을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인가 봅니다.
김영민 교수의 책을 재밌게 읽으신 분들, 나도 책 한 권 내고 싶은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에세이 쓰기 연습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분명 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책 입니다. 또 니체처럼 다소 어둡고 정색하는 류의 잠언과 좀 반대되는 색깔의 잠언집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도(그렇다고 무지개 컬러는 아닙니다;;)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