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詩經
시경은 범인(凡人)들의 노래다. 여태껏 소개한 고전들(논어, 맹자, 장자, 순자 등)은 시대의 학자들이 바라본 세상과 그 세상을 이끄는 철학에 관한 것이었다. 지도자의 입장에서 혹은 지도층의 관점에서 우매한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가 주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허나 실제 '백성'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과연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존재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고상한 사상은 아니지만, 생의 터전에서 피어난 세상살이와 철학이 있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다.
수천 년 전, 삶의 노래에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소중한 가치들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절로 흥이 나고 때론 화도 나고 간혹 눈물도 흘리게 한다. 그래서 시경의 감동은 남다르다. 고매한 사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만 하다, 가슴을 다독이며 '감동'하는 고전 읽기가 가능한 것이 바로 이 시경이다. 동질감이 묻어난 '회한의 탄성' 말이다. 그들의 삶을 상상하며 우리네 삶을 돌이켜 보게 된다. 역사적 배경 지식을 보충해가며 읽어 본다면 좀 더 깊은 내면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나도 가끔 말도 안 되는 시를 쓰곤 하는데, 그 기록들은 우습지만 내 삶의 편린들이 오롯이 담긴 노래다. 감히 '시(時)'라고 한다면, 이 시들이 쌓이고 쌓여 몇 천년 이 지나면 몇 천년 후의 '시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디 내놓기는 대단히 부끄럽지만 종종 시를 써보자는 다짐도 해본다. 우리가 품은 감정과 정서를 그저 소박하게 표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시(詩)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시를 써보자. 그 어떤 구애도 받지 말고 그 어떤 체도 들이대지 말고 오롯이 이 마음 노래해보자. 그렇게 삶을 느끼고 삶을 개척하는 것도 시(詩) 쓰는 특권일 터이니.
2016.06.03
삶을 노래하면
그게 다 시(詩)다
1. 저자 소개
미상, 심영환 옮김
강원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 수료. 한림대 부설 태동고전연구소를 수료 후 현재 국사 편찬위원회 국내 초서과정 중.
2. 내용
옮긴이의 말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순수한 시의 경전 『시경』
국풍
주공이 남쪽에서 모은 노래
소공이 남쪽에서 모은 노래
패나라의 노래
용나라의 노래
위나라의 노래
왕나라의 노래
정나라의 노래
제나라의 노래
위나라의 노래
당나라의 노래
진나라의 노래
진나라의 노래
회나라의 노래
조나라의 노래
빈나라의 노래
아
소아
‘사슴’에서 ‘남해’까지
‘백화’에서 ‘촉촉히 내린 이슬’까지
‘붉은 활’에서 ‘학’까지
‘기보’에서 ‘비가 내리니’까지
‘하늘’에서 ‘사월’까지
‘북산’에서 ‘아름다운 꽃’까지
‘청작새’에서 ‘울창한 버드나무’까지
‘서울 사람’에서 ‘어느 풀인들 시들지 않으랴’까지
대아
‘문왕’에서 ‘문왕의 명성’까지
‘백성을 낳다’에서 ‘멀리하니’까지
‘위대한 상제’에서 ‘하늘이여’까지
송
주나라 종묘의 노래
‘청묘’에서 ‘후직’까지
‘신하들’에서 ‘무왕’까지
‘불쌍한 소자가’에서 ‘즐겁다네’까지
노나라 종묘의 노래
상나라 종묘의 노래
3. 공명 구절
P.26
<시경>의 시들은 주로 따스하고 부드러워 야박하지 않다. 또 함축성 있고 온건하다. 감정이 지나치게 강할 때에는 오히려 절제하여 드러내고, 자기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주위의 사물에 의탁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P.48 천둥 소리
우르릉 천둥 소리 남산 남쪽에서 울리네 그대는 이곳 떠나 돌아올 겨를 없나 보고 싶은 그대여 돌아오라 돌아오라
우르릉 천둥 소리 남산 곁에서 울리네 그대는 이곳 떠나 그리 쉴 틈 없으신가 보고 싶은 그대여 돌아오라 돌아오라
우르릉 천둥 소리 남산 밑에서 울리네 그대는 이곳 떠나 머무를 곳 없으신가 보고 싶은 그대여 돌아오라 돌아오라
P.59 남풍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대추나무 새싹을 어루만지네 대추나무 새싹이 아직 어려도 어머님 노고는 너무 크다네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대추나무 가지를 어루만지네 어머님 마음은 너무 착한데 우리는 착한 아들 되지 못했네
저기 저 준땅의 차가운 샘물 온 고을 골고루 적셔 주거늘 아들을 일곱이나 두었으면서 어머님 저리도 고생하시네
곱다고운 저 꾀고리 울어대며는 고운 소리 듣는 이를 즐겁게 하네 아들이 일곱이나 있으면서도 어머님 마음 하나 위로 못했네
P.70 두 아늘이 탄 배
두 아들이 배를 타고 가니 두둥실 떠가는 그림자 보이네 그대들 그리워 생각해보면 마음만 울렁거려 잡히질 않네
두 아들이 배를 타고 가니 두둥실 흘러서 멀어져 가네 그대들 그리워 생각해보면 어떤 해를 당하지나 않았는지요
P.79 깃대
우뚝 솟은 쇠꼬리 깃발이 준읍의 교외에서 펄럭이네 흰실로 짜서 매달고 좋은 말 네 필이 수레를 끄네 저 아름다운 사람에겐 무엇으로 보답하리
우뚝 솟은 새매그림 깃발이 준읍의 읍내에서 펄럭이네 흰실로 자서 매달고 좋은 말 다섯 필이 수레를 끄네 저 아름다운 사람에겐 무엇으로 드려야 할까
우뚝 솟은 꿩깃 깃발이 준읍의 성에서 펄럭이네 흰실로 짜서 매달고 좋은 말 여섯 필이 끄네 저 아름다운 사람에겐 무엇으로 고해야 할까
P.81 대나무
저 기수 물굽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 무성하구나 빛나는 군자여 자르는 듯 다듬는 듯 쪼아내듯 가는 듯 씩씩하고 꿋꿋하게 빛나고 드러나니 빛나는 군자를 끝내 잊을 수가 없네
저 기수 물굽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 우거졌구나 빛나는 군자여 귀막이는 옥돌로 하고 두건의 바느질은 별처럼 아름답네 씩씩하고 꿋꿋하게 빛나고 드러나니 빛나는 군자를 끝내 잊을 수가 없네
저 기수 물굽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 빽빽하구나 빛나는 군자여 황금인 듯 주석인 듯 규옥인 듯 벽옥인 듯 너그럽고 여유있게 수레 위에 기대셨네 농담조 잘 하시나 지나치진 않는다네
P.88 씩씩한 그대
그대는 씩씩하니 나라의 영걸이네 그대는 창을 잡고 임금 위해 앞장서네
그대가 동쪽으로 간 뒤 내 머리카락 나부끼는 쑥대같네 어찌 머리 감고 기름바르지 못하랴만 누구를 위해 꾸미겠는가
비올 듯 비올 듯 하더니만 해가 쨍쨍 내리쬐네 그대 생각 골몰하여 두통마저 견딘다네
어디서 원추리나 얻어 뒤뜰에다 심어나 볼까 그대 상각 골몰하여 마음마저 병이 드네
P.93 즐거운 그대
그대는 즐거워하며 왼손에는 생황 잡고 오른손은 방으로 나를 부르네 아아 즐겁기도 해라
그대는 즐거워하며 왼손에는 새깃 잡고 오른손은 춤판으로 나를 부르네 아나 즐겁기도 해라
P.107 수레를 함께 타고
여자와 함께 수레를 타니 아름다운 얼굴이 무궁화꽃 같네 이리 저리 수레를 몰고 갈 때에 허리엔 패옥으로 구슬을 찼네 저기 아름다운 맹씨댁 맏딸이여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구나
여자와 함께 수레를 타니 아름다운 얼굴이 무궁화꽃 같네 이러 저리 수레를 몰고 갈 때에 패옥 소리 쟁그랑 울리는구나 저기 아름다운 맹씨댁 맏딸이여 사람들 칭찬을 잊지 못하네
P.119 동도 트기 전에
아직 동도 트기 전인데 바지와 저고리를 바꿔 입었네 넘어지고 엎어지거늘 임금님이 불러서라네
아직 동도 트기 전인데 저고리와 바지를 바꿔 입었네 엎어지고 넘어지거늘 임금님이 불러서라네
버드나무 가지 꺾어 울타리쳐도 미친 사람 두려워서 안 들어가매 아침과 저녁도 구별 못 해서 이른 아침 아니면 늦저녁이네
P.138 너새
푸드득 너새가 날개치며 떡갈나무 덤불에 모여 앉네 나라 일에 쉴 틈이 없어 피와 기장도 심지 못하니 부모님은 무엇을 믿으실까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이여 언제나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푸드득 너새가 날개치며 가시나무 덤불에 모여 앉네 나라 일에 쉴 틈이 없어 기장과 피도 심지 못하니 부모님은 무엇을 드실까요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이여 언제나 이 어려움 그칠 수 있나
푸드득 너새가 날개치며 뽕나무 숲에 모여 앉네 나라 일에 쉴 틈이 없어 벼와 수수도 심지 못하니 부모님은 무엇을 맛보실까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이여 언제나 바로 돌아갈 수 있을까
P.151 처음처럼
일찍이 나에게 넓고도 큰 집에서 살게 하더니 지금은 밥먹을 때 남길 게 없네 아아 처음처럼 하지 못하네
일찍이 나에게 매일 진수성찬 차려 주더니 지금은 밥 먹어도 배 안부르네 아아 처음처럼 하지 못하네
P.165 길잡이
저 길잡이는 길고 짧은 창 들었고 저 사람은 붉은 옷 입은 이 삼 백명과 가네
어살에 있는 사다새는 날개조차 적시지 않네 저 사람은 그 옷이 어울리지 않네
어살에 있는 사다새는 부리조차 적시지 않네 저 사람은 그 은총이 어울리지 않네
울창하고 무성한 남산엔 아침 무지개가 예쁘고도 고운 어린 소녀 굶주리네
P.182 아가위나무
아가위나무 저 꽃은 꽃받침도 선명하네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 못하다네
죽을 고비 당할 때엔 형제만이 걱정하고 시신 쌓인 들판에선 형제만이 찾는다네
언덕 위에 할미새처럼 어려울 땐 형제라네 비록 친구 있다 해도 탄식만 할 뿐이네
집안에선 싸우다가 남의 모욕 함께 막네 비록 친구 있다 해도 도와줄 수 있겠는가
어려운 일 가라앉고 모든 일이 편안하면 비록 형제 있다 해도 친구만큼 안 여기네
좋은 음식 차려놓고 술 마시고 취한다네 형제 모두 모여야지 즐겁고도 애틋하네
처자식들 뜻이 맞아 거문고와 비파 같아도 형제들이 뜻 맞아야 오래오래 즐겁다네
집안이 화목하고 처자식들 잘 살려면 이것을 생각하오 참으로 그러하리
P.199 푸르른 지칭개
푸르른 지칭개가 언덕 위에 자랐다네 그대를 보고 나니 즐겁고도 예의 있네
푸르른 지칭개가 물가에 자랐다네 이미 그대 보고 나니 이내 마음 기쁘다네
푸르른 지칭개가 구릉 위에 자랐다네 이미 그대 보고 나니 내게 보물 주신 듯이
둥실 떠 있는 버드나무 배가 잠길락 말락 하네 이미 그대 보고 나니 이내 마음 편안하네
P.211 흰 망아지
희디흰 망아지가 우리 마당 싹을 먹는지라 묶어서 매어 놀고 오늘 아침 머물게 하여 저 어긴 그대를 여기서 노닐게 하리
희디흰 망아지가 우리 콩싹 먹는지라 묶어서 매어 놓고 오늘 저녁 머물게 하여 저 어진 그대를 여기서 노닐게 하리
희디흰 망아지가 빛나게 하고 오면 그대를 공후 삼아 즐거움 끝없게 하리 그대는 한가함을 좋아해서 숨어 살려 하지 말기를
희디흰 망아지가 빈 골짜기로 갔다네 생꼴 한 다발을 주니 그 사람 옥과 같네 옥 같은 그대 음성 나를 멀리하지 마오
P.258 쇠파리
윙윙대는 쇠파리가 울타리에 앉아 있네 즐거운 그대는 헐뜯는 말 믿지 마오
윙윙대는 쇠파리가 가시나무 앉아 있네 헐뜯는 이 끝이 없어 온 나라를 어지르네
윙윙대는 쇠파리가 개암나무 앉아 있네 헐뜯는 이 끝이 없어 우리 둘을 갈라 놓네
P.305 백성들이 수고하니
백성들이 수고하니 조금 쉬게 하였으면 (중략)
백성들이 수고하니 조금 편케 하였으면 (생략)
동양 고전을 읽다보면 시경에서 나온 문장을 종종 인용하곤 한다. 같은 고전에서 고전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공자는 자기 아들에게 시경을 읽으라고 강조한다. 왜 그랬을까? 시경의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 중국 고대 주나라의 노래모음집이다. 기원전 11세기부터 6세기까지 5백여년의 작품이다.
신영복의 강의 책에 소개된 시경을 보면 시경은 삶과 정서의 공감을 기초로 하는 진정성이 있으며, 시적 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데 유용하다고 한다. 시경을 읽어보면 당시에 살던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 사회상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노래가 우리의 삶을 반영하듯 고대 중국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의 심정부터 노역과 전쟁터에 끌려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청년, 연인사이의 만남과 사랑, 헤어진 연인을 원망하는 마음과,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심정, 나랏일이 너무 많아 가족도 돌볼 틈 없는 관리의 고달픔 등 모든 생활상이 있다. 또한 현명한 왕은 칭송하고 폭군은 조롱하고 욕한다. 노래로 민심을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궁중에서 잔치할 때 뿐 아니라 조회할 때 부르는 노래도 있고, 종묘에서 제사지내며 부르는 노래도 있다. 현대의 우리의 삶보다 더 격식이 있다.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표현을 한다. 직접 말을 하기도 하고 말하지 않으면 표정과 행동으로라도 호, 불호를 나타낸다. 시경 속 노래들은 이처럼 과거를 살다간 사람들의 말이고, 자기표현이다. 정치가 잘되고 평화로웠던 세상의 즐거움과 정치가 어지럽고 혼란기의 슬픔과 고달픔 등 노래를 불러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 역시 생활이 고달프고 힘든 일이 있으면 책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는다. 나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고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웃으면서 얘기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책을 통해 간접경험 한다. 공자가 아들에게 시경을 강조한 이유가 시경 속 생활상을 통해 아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공자 또한 시경을 편찬하며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위로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와 닿는 시경 속 노래가 다르다. 하지만 시경은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똑같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상은 변하지만 그 속의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 고전이기에 아직도 우리가 배우고 읽어야 할 책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