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책을 읽고 난 후 언제나 그 느낌이 비슷한 것은 아니어서 매번 처음인 양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책을 더 좋아하게 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각각의 책들이 다 다른 내용을 품고 있지만 같은 책을 연거푸 다시 읽어도 그 느낌이 매번 다르다는 건 다른 일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넌더리를 내거나 책만 보면 고개를 외로 트는 경우를 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의 단짝 친구가 쉰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유쾌한 농담을 할 줄 아는 친구였다. 일평생 사랑을 외친 남자. 매니의 말에 따르면, 친구는 쉰한 살에 죽어서는 안 되는 남자였다. 매니는 장례식에 참석했으나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자신의 몸이 마치 생명을 잃어버린 목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 메리에게 그동안 늘 얘기만 했던 아조레스로 돌아갈 때가 마침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p.229)
퓰리처상 수상자 다이애나 마컴의 자전적 에세이 <그 여름, 그 섬에서>는 읽을 때보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더 좋은 책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취재기자 다이애나 마컴은 어느 날 캘리포니아 외곽에 위치한 아조레스 이민자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취재가 목적이었지만 그들은 세대를 넘어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들이 정착한 새로운 땅에서 아조레스의 문화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살아가고 매년 여름이면 아조레스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대서양 한복판에 위치한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아홉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조레스 제도의 어떤 매력이 이주민들로 하여금 매년 그들을 불러들이는지... 저자는 그해 여름 자신들의 고향으로의 초대에 흔쾌히 응한다.
"9월이 왔다. 나는 식탁보 한가운데서 보았던 감자같이 생긴 테르세이라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타 있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그해 여름 아조레스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였고, 나는 그 비행기에서 딱 하나 남은 좌석을 차지했다." (p.53)
아조레스 제도는 투우와 축제, 연보랏빛 수국과 푸른 바다, 푸른 들판과 언덕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듯 행복의 이면에는 슬픔이 깃든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 풍광 뒤에는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아조레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항해 시대의 첫 번째 행선지였던 아조레스 섬은 독재와 냉전 시대를 겪어내기도 했고, 화산 폭발의 자연재해를 입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상실과 이별의 아픈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갖가지 사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하늘에는 설핏 가을빛이 돌았다. 내가 카르도주 부인을 처음 만났던 때에 비하면 150센티미터는 더 자란 옥수숫대 위로 노란 금빛이 반짝거렸다. 무지근한 통증이 퍼지는 걸 느끼며 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혹시 이게 사우다지의 초기증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p.174~p.175)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사우다지(saudade)'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자면 향수 또는 깊은 그리움에 가깝지만 포르투갈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 파두의 애절한 가락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물질적으로 부족한 게 없을지라도 디아스포라의 삶은 언제나 영혼 한구석에 남겨진 상처와 갈망, 좌절과 그리움이 혼재한다. 기자로서의 직업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아조레스 방문은 저자로 하여금 자기 안의 상실과 갈망을 마주하도록 했다. 오래전에 부모를 잃고 외딴섬에 남겨진 것처럼 느껴왔던 것도, 아르메니아인 일가와 가족같이 지내왔던 것도, 오랜 시간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이어가지 못했던 것도 가슴 깊이 묻어둔 상실감과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이 치유되지 않았던 까닭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늘 할 일을 내일 할 수 있다면 굳이 왜 오늘 해야 하느냐고 묻고, 당장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있지만 투우 관람이 더 중요하며,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믿는 등 시종일관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 아조레스 섬.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다른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천천히 깨달아가기 시작하는 저자는 자신이 찾던 진정한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된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열 번째 섬'을 찾는 끝없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떠나 있어도 마음은 머물게 되는 곳'이라는 의미의 '열 번째 섬'. 저자 자신의 경험담이자 아조레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책을 읽는 순간보다 책을 다 읽고 책의 내용을 되새김질하는 순간에 더 많은 의미를 깨닫게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삶이 경과하는 동안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도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처럼 이 책 역시 우리의 삶을 닮아 있기 때문일 터였다. 17호 태풍 타파가 지나가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며 남긴 상처는 작든 크든 시간이 흐르면 아물겠지만 우리들 각자가 만든 마음속 태풍은 언제쯤에나 잦아들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사우다지"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향수, 깊은 그리움 정도로 말할 수 있는 포르투갈어예요.
흐름출판에서 나온 에세이 <그 여름, 그 섬에서> 는 가슴 속 깊이
조국,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다른 곳에 있어도 늘 마음만은 그곳을 향해 그리움을 품고 사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민자들의 고향은 포르투갈령에 속한 아조레스 제도.
대서양에 둘러싸인 아홉 조각의 포르투갈 영토이자
모든 방향에서 최소한 1,4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군도입니다.
투우와 축제가 한여름에는 끊임없이 열리며
책의 표지에서처럼 연보랏빛 수국 덤불과 푸른 초원, 바다가 펼쳐진 그야말로 아름다운 섬이죠.
여유롭고 느긋한 아조레스 사람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저자 다이애나 마컴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자로서 이야기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캘리포니아 외곽에 모여 사는 아조레스 이민자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21세기에, 그것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아조레스 방식대로
소 두 마리를 몰며 밭을 가는 남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어요.
이 우연은 다이애나 마컴의 인생에 조용히, 하지만 큰 파동으로 다가오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조레스 이민자들을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만났고
그들의 초대로 실제 아조레스 제도, 테르세이라 섬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았던 얼마간을 보내고
다시 미국에 돌아온 저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이 아조레스 제도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속에서 새로운 "발견" 을 하기까지 7년을 보낸 후, 다시 아조레스 제도로 향했던 저자는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처음 이 책을 쓰고자 하는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죠.
기자로서 르포 스타일의 책을 쓰겠다는 처음 의도 "아조레스 디아스포라" 와는 달리
저널리즘과는 관련없는, 그야말로 다이애나 마컴 본인의 자전적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자신이 오랫동안 찾았던 진정한 사랑에 새로 눈을 뜨게 한 일이
바로 아조레스 제도에서의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저자에게는 더없이 의미있는 책으로 다가올 에세이이자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죠.
"디아스포라" 는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아조레스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예요.
보스턴과 캐나다를 포함한 전 디아스포라를 아우르는 말로
저자는 "열 번째 섬" 이라는 또 다른 말로 표현합니다.
열 번째 섬은 마음 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예요.
우리의 고향을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그 여름, 그 섬에서> 에 가지각색의 이야기들로 모여 있습니다.
아조레스 제도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 선정한 아름다운 섬 상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하다고 해요.
전통이 살아있고 지속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요.^^
마크 트웨인도 언급한 적 있는 아조레스 제도이더라구요.
포르투갈의 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1/3 가량 고향을 떠났던 이민자들의 마음속에는
슬픈 음조를 띠는 갈망의 노래, 포르투갈의 민요 "파두" 를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늘 마음과 현실 속에 공존합니다.
저자가 매력을 느꼈던 아조레스 방식은 이런 것이었어요.
이 지점은 제가 제주도에서 느꼈던 그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 역시 제주도가 너무나 그리워지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일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오늘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장소, 분리, 정체성,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서로를 엮어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는 저자 다이애나 마컴.
내 존재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무엇인가에 내가 지금 이순간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적이 있나요?
동시에 익숙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 같기도 한 순간은요?
우리는 늘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일이다.
자신의 고향은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서 그들만의 관습과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살아가는 유대인을 두고 시작된 말인데요.
요즘 "디아스포라" 와 관련된 책과 공연들도 적잖이 접하게 되면서
지금 현대인의 몸과 마음이 어떤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이미지와도
어찌 보면 좀 닮아있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읽다 보면 아조레스 사람들과 그곳에서 경험한 정말 사소한 이야기들과 생각 모음인데
그것들이 하나 둘 모여 있는 <그 여름, 그 섬에서> 책을 덮고 나면
잔잔하게 밀려드는 내 삶의 여정이 있었습니다.
2018년 1월, 2019년 2월, 그리고 다가오는 2020년의 겨울.
올해를 넘기자마자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쯤이면 저 역시 제주도에서 혼자
이곳 저곳을 눈에 담고 마음에 품고 올 날들을 갖게 될 듯 합니다.
몸은 육지에 있지만 마음은 늘 제주도를 떠나본 적 없는 아조레스 이민자들의 마음처럼,
제주도를 향한 그리움은 느끼지 못하는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수면 위로 올라와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느끼며 세번째 혼자 하는 제주도 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하루하루가 참 행복한 요즘입니다.
작가 개인의 자전적 에세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충분히
적용해봄직한 삶의 새로운 발견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여름은 끝났지만 <그 여름, 그 섬에서> 를 끝으로 2019년 여름을 정말 마무리하게 되는듯 해요.^^
저에게 제주도가 마음의 평온을 안겨주듯, 당신에게 그러한 곳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열 번째 섬은 무엇인가요?"
그리움이 시작되는 열 번 째 섬, 아조레스
이 책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취재기자이면서 퓰리처상 수상자 다이애나 마컴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아조레스 제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동료 사진기자가 책상에 올려놓은 한 장의 사진 속 남자를 보고 두 주 지난 뒤 인터뷰를 위해 남자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모라이스는 아만테와 브릴리안테라는 이름의 수소를 키우고 있는데 트랙터로 4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면적을 소 두 마리를 데리고 세 시간을 들여 작업을 하고 시원한 맥주 한 병을 홀짝이며 휴식을 취한다. 모라이스는 아조레스 고향에 대해 어찌나 애착이 강한지 여름이 끝나고 섬을 떠날 때가 되면 발걸음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아조레스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사우다지’라고 하는데 포르투갈 언어이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는 온전히 옮길수 없다.
아조레스 제도는 화산섬으로 자연재해를 겪어왔다. 아조레스 제도는 1300년대에 지도에 표기되었으나 정확하게 표기가 된 건 아니었다. 용과 바다 괴물이 출몰하는 신화 속 등장하는 섬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백 년이 흐르고 포르투갈에서 아조레스 제도를 발견하면서 대항해시대의 첫 번째 행선지가 되었다. 투우를 개최하는 마을에 초대장이 없는 손님은 허락을 구하는게섬의 관습이 될 정도로 투우 관람도 중요시 한다.
나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서 항구의 바위에 올라가 자리 잡고 앉아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반짝이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려도 걱정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자동차로 걸어갈 때마다 나쁜 사람이 나타나면 눈알을 도려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열쇠를 주머니 밖으로 꺼내 손에 들고 다녔다. 그것은 그저 일상적인 행동일 뿐이었다.p65
알베르트는 아조레스제도를 열 번째섬이라고 한다. 모든 게 떨어져 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우리들 같은 사람들은 열 번째 섬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우리 섬을 떠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민자 도표 공부를 하고 화산학이나 아조레스 사회구조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 언젠가 책을 쓰리라는 계획이 있었고 책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오디는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과잉보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자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통 할 줄 몰라. 여자들은 말랑말항하고 달콤한 말은 듣고 싶어 하잖아. 지구상의 여자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남자들은 보통 “나 좋아하니 물으면 그걸 말로 해야 아남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가?” 아르메니아 남자들의 장점을 물어보니 여름에 나오는 어떤 멜론처럼 특정한 멜론이 먹고 싶다고 하면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한밤중이라도 가서 구해 올 거야 가정에 아주 충실하기도 하다.
저자가 포르투갈계 미국인 교사 부부의 집에 얹혀 지내는데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책을 볼까 샤워를 해볼까 싶다가도 손님이 왔다는 신호인 “웃-우” 소리가 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웃-우” 이 우리나라 헛기침 정도로 이해하면 될거 같다. 프롤로그에도 나오는 머피는 저자와 같이 사는 개 이름이다. 머피와 함께 하는 인생은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곰과 한방을 쓰는 것 같다. 보이는 대로 먹어치우는 개다. 루이스는 미국에서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 인정 받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떠나지 않았다. 단짝 친구의 죽음 이후 아조레스로 돌아온 매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을 잊기 위해 투우사가 된 도널드, 미국에서의 삶이 더 익숙해졌지만 자기 안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로마나 여사 등 사람들의 이야기는 웃음과 애잔함을 자아낸다.
아조레스 사람들은 저자가 가족도 남편도 아무도 없다는 얘기까지 하니 혼자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저자는 아조레스에서 낯선 문화와 사람들 속에서 머물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이 책은 퓰리처상 수상자 다이애나 마컴의 자전적 에세이《그 여름, 그 섬에서》이다. 에세이라고 강조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이유는 사실 이 책의 제목과 표지만 보고 소설일 거라 짐작하고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삶이 더 소설같은 법이고, 어떤 때는 소설을 읽으며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이라 짐작하고 읽기 시작하든 상관없다. 기대 이상의 스토리를 들려주기 때문에 시선을 집중하며 읽게 될 것이다.
대서양 외딴 섬, 아조레스에서 보낸 세 번의 여름.
축제와 투우가 끝없이 열리는 이주민들의 고향,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에서 찾은 뜻밖의 사랑! (책 뒷표지 中)
이 책의 저자는 다이애나 마컴.《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취재기자다. 캘리포니아주 센트럴밸리의 가뭄으로 고통 받는 지역농부의 삶을 취재한 특집 기사로 2015년도 특집 기사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서양 한복판에 정말로 여름마다 황소가 중심가를 뛰어다니고 집집마다 캐릴포니아에서 방문하는 친척들이 있는 섬이 있습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개 머피는 정말로 음식들을 죄다 먹어치웁니다. 또 나의 친구 무디는 정말로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 식은땀을 흘립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조차 믿기 어렵지만 이 책에 담긴 화산, 역사, 사람들, 이야기, 자연 경관, 그리고 있음 직하지 않은 우연까지도 모두 사실입니다. (8쪽_작가의 말 中)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헛간에서 파티를, 최악의 날들, 대항해시대의 첫 번째 행선지, 열 번째 섬, 타-슈 타-슈 파도치는 밤, 밧줄 투우, 그날의 다이빙 보드 노트, 그러니 훨훨 날아가라, 사랑과 우정 사이, 이야기 꽃피는 구둣방, 여름철 날파리, 미스터리한 인생, 단순하지 않은 관계, 뛰어넘어요!, 예상치 못한 변화, 사라져버린 여름철 러브스토리, 섬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 그 사람을 찾아야겠어!, 모든 것을 위하여 등의 글이 담겨 있다.
그날 사진 한 장을 보기 전까지 '아조레스 제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진 속에는 소 두 마리를 몰며 밭을가는 남자의 모습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할 것이라 짐작된다. 두어 주쯤 지난 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진 속 남자의 집으로 차를 몰았고, 저자는 아조레스에서 세 번의 여름을 보냈으니 그야말로 이야깃거리는 차고 넘쳐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인 것이다. 나또한 아조레스에 대해 처음 접하기에 더욱 흥미로운 마음으로 그곳을 상상해본다.
아조레스에 대해 조사하던 중에《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섬 목록에서 아조레스가 굉장히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통이 살아 있고, 지속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했다. 심지어 고대에도 아조레스 제도는 좀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옛날 세계지도에는 표기됐던 것 같은데, 해무와 해류, 변덕스러운 바다에 가려 수백 년간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수세기 동안 아조레스를 두고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의 자취라는 둥, 술의 신 바쿠스의 아들 루수스가 발견한 루지아다스의 마지막 왕국이라는 둥 소문이 분분했다. (25쪽)
포르투갈 작가인 라울 브란당이 쓴 글 중에 아주 유명한 인용구가 하나 있다. "섬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건너편에 있는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늘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일이다. (308쪽)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나가는 것이 에세이다. 때로는 상세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지루해지며, 왜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인지 힘이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저자의 글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독자를 이끌고 가느냐에 달렸다. 이 책의 첫인상은 두툼했으나, 처음 들어보는 '아조레스 제도'라는 이름부터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어 궁금한 생각에 계속 읽어나가게 된다.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하고, 생판 모르는 낯선 섬에 가서 그곳을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더이상 저자는 타인이 아니라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어 이야기는 속도를 내며 풍성해진다. 멋진 여행을 한 기분이다. 그러면서 문득 마음에 드는 글귀 앞에서 한참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② 감상평과 느낀 점
그해, 그 여름.... 책 표지 자체로 끌림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이 아닌 사이판의 여유로움과 세부 주민들의 유쾌함을 느낀 내 감정과 이 기자가 느낀 감정과 비슷할 것 같다.
아조레스 섬을 취재하려 간 그녀,
아조레스는 아홉 개 화산섬으로 이루어졌다. 마컴 기자가 퇴직 후 홀로 떠난 섬, 그리고 재취업 후 휴직계를 내고 갈 만큼 무슨 끌림이 있었을까?
계획 있는 삶보다는 그때그때 삶은 즐기기를 추구하는 섬사람들이 추구하는 아조레스....
아조레스 섬은... 그리움의 대상, 이민자들이나 고향을 떠나온 자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닌가 싶다. 문명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지만, 옛 전통을 유지하고자 노력한 것이 인상 깊었다. 예전에 필리핀으로 놀려 갔을 때 시각장애인이 범고래 투어 당시 그분을 배척하기보다는 한 분을 위해 가이드를 비롯하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투어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도 다이애나 마컴 기자의 취재를 위해 기꺼이 동행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안위를 확인하는 그 모습이 시각장애인을 돕는 필리핀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들은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는 ‘친구’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도와주는 그들의 마음의 넉넉함을 엿볼 수 있었다.
누구나 아조레스 섬처럼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이다. 그곳이 실제로 살로 고향이던, 오래 기억하고픈 추억이든, 사람이든 마음의 고향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기에 힘든 순간이 와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③ 마음에 남는 글귀
p 107
당시에 우리가 나눴던 대화 내용이 굉장히 의외였다는 생각이 든다. 엘마노와 알베르티나 부부에게 확실한 계획이 없다.
p 125
이것저것 계획을 너무 세우려 하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모험을 할 때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되고, 들어야 할 이야기는 듣게 된다는 걸 믿으세요.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대해선 계획을 세울 수 없어요.”
p 221
회사에 1년 휴직계를 내고 아조레스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면, 나는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p 250
불현듯 간디의 말이 떠올랐다. 전에 무디가 사무실 자리의 칸막이에 붙여놓았던 인용구다. “당신이 하는 일 대부분이 별일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일을 꼭 해야만 한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도록 내 버려두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p 308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늘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