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로 일깨우는 자기 치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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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로 일깨우는 자기 치유의 힘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로 일깨우는 자기 치유의 힘

리뷰 총점 9.2 (45건)
분야
인문 > 심리/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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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로 일깨우는 자기 치유의 힘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s*****a | 2019.10.05 리뷰제목
이 책의 제목은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이다. '진료실'과 '붓다'의 연결고리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 책에서는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로 일깨우는 자기 치유의 힘을 들려준다고 한다.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진료실에서 만난 붓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마크 엡스타인.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다. 뉴욕에서 정신과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불교와
리뷰제목

이 책의 제목은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이다. '진료실'과 '붓다'의 연결고리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 책에서는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로 일깨우는 자기 치유의 힘을 들려준다고 한다.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진료실에서 만난 붓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마크 엡스타인.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다. 뉴욕에서 정신과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불교와 심리 치료에 관한 연구와 임상을 토대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교와 심리 치료를 비교하여 공통되는 태도를 식별해 낸 뒤, 그 공통점을 매개 삼아 팔정도의 가르침을 엮어 내는 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그런 만큼 불교와 심리 치료의 접점에 해당되는 그 태도를 이 책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강조한다. 두 전통이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그 태도란 바로 '현실의 직시'이다. (276쪽)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된다. 글을 시작하며 '자아라는 다루기 힘든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으로서의 팔정도', 1장 '올바른 견해, 2장 '올바른 의도', 3장 '올바른 말', 4장 '올바른 행동', 5장 '올바른 생활', 6장 '올바른 노력', 7장 '올바른 알아차림', 8장 '올바른 집중'으로 이어지며, 글을 맺으며 '삶이 무엇을 제공하든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훈련'으로 마무리 된다.


이 책의 핵심은 붓다의 팔정도이다. 팔정도는 붓다가 자신의 가르침을 조직한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그는 최초의 설법에서 이 팔정도에 대해 설했고 그 후에도 종종 되풀이해서 언급했다고 한다. 올바른 견해, 올바른 의도,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알아차림, 올바른 집중으로 구성되는 팔정도의 가르침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는 핵심 내용이다. 이 책은 붓다의 가르침 팔정도를 알기 쉽게 풀어서 들려주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의 언어에서 딱부러지게 규정짓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느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진행 중이고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인데, 명상이나 심리에 관해서 어찌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그런 면이 오히려 솔직해서 더욱 인간적으로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각 장에서는 팔정도를 구성하는 여덟 가지 측면들을 다룬다. 불교 이론을 서양 심리 치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책이다. 시각을 달리하니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불교의 팔정도를 이론적으로만 생각해왔다면 심리 치료와 현 생활과도 통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이 책을 읽으며 팔정도와 명상, 심리 치료의 연결 고리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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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평점9점 | s*******5 | 2019.10.09 리뷰제목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붓다가 들어간 제목을 보고 일단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불교 명상과 심리치료로 일깨우는 자기치유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병은 몸의 병도 많겠지만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병이 많은 것 같다.정신을 탄탄하게 해주는 자기만의 노하우,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기술그런 것들을 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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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붓다가 들어간 제목을 보고 일단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 명상과 심리치료로 일깨우는 자기치유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병은 몸의 병도 많겠지만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병이 많은 것 같다.

정신을 탄탄하게 해주는 자기만의 노하우,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기술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을까 하면서 이 책을 펼쳐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마음을 다독이고 보다 안정적인 나로 만들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술술 잘 읽혀지는 책은 아니고 하나하나 집중해서 읽어가다보면 그렇구나 ~ 맞다 하면서 읽게 되고

저자의 경험담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저자 마크 엡스타인은 정신과 전문의로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 학위를 받고 20대초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심리학과 명상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책 속의 많은 일화들이 기억에 남는데 특히나 나의 기억 속에는 은둔자를 향한 달라이 라마의 충고

"삶을 좀 즐기세요"  이다. 일상 속에서 도를 찾는 것, 그것이 최고인 것이다.


 전문가 행세를 안하고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도와주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저자는 솔직 담백하게 말하고 있다. 착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요즘 같이 물질을 가장 중시하는 때에 이렇게 귀한 가르침을 만날 수 있고

이런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한 번에 읽힌다기보다는 사색적이고 우리 삶의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고

불교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고

많은 고민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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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평]진료실에서 만난 붓다_마크 엡스타인 "팔정도의 지혜로 '나'를 돌보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n****n | 2019.11.04 리뷰제목
*추천합니다1.심리상담의 과정에서 발견한 통찰의 지혜를 삶으로 가져오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를 기대하는 분들께2.불교적 지혜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킨 심리학자의 경험담을 통해 더 나은 상담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상담자들께3.팔정도에 대한 서양 심리학자의 독창적 해석은 과연 어떨지 호기심을 갖고있는 분들께4.팔정도를 삶에 적용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기
리뷰제목

*추천합니다

1.심리상담의 과정에서 발견한 통찰의 지혜를 삶으로 가져오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2.불교적 지혜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킨 심리학자의 경험담을 통해 더 나은 상담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상담자들께

3.팔정도에 대한 서양 심리학자의 독창적 해석은 과연 어떨지 호기심을 갖고있는 분들께

4.팔정도를 삶에 적용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5.평소 스스로의 의지와 달리 불안이나 나쁜 습관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난 뒤 뒤늦게 후회하곤 하는 분들, 주체적 삶을 기대하는 분들께

1.나와 심리상담

24 명상의 요점은 그 태도를 일상의 삶 속으로 가져오는 데 있었다. 현재 순간을 더 충실히 살아내고, 자신을 해치는 짓을 중단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충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바쁘고 힘든 일상 한가운데서 더 관대하게 베푸는 태도를 취하는 것, 그것이 명상의 목적이었다. 나는 수년 간 정신과의사로 일하면서 심리 치료의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품게 되었다.

심리상담을 처음 시작한 것은 작년 봄이었다. 목표로 했던 일을 오래도록 이뤄내지 못하며 패배감과 좌절감은 누적되었고, 반복되는 자기비난과 자기비하속에서 그 무엇도 해내지 못 할 것만같은 무력감이 정점에 이를 즈음이다. 큰 기대를 갖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다만 병원에 가기는 겁이났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정보를 따라서 두려움 반 걱정 반, 그 틈새에 남겨진 아주 미미한 기대감을 부여잡고 상담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값진 기회였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긴 상담의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통찰들 중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이것을 고르겠다. "지금 내가 확고하게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맞다고, 옳다고, 타당하다고, 도덕적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은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곰곰이 차근차근 들여다본다면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합리적 신념'이다. 거창하게 적어놓았지만 일상에서 경험하는 아주 사소한 신념도 있다. 이를테면 '나는 길치다'라는 신념처럼 말이다.

나는 늘 길치였다. 어려서부터 낯선 장소에 방문한다는 것은 나에게 꽤나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길치라는 '믿음'+그렇기 때문에 길을 잘 찾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것이 반드시 두려워해야할만한 일은 아니다. 앞서의 두려움은 (1.나는 길치라는 믿음 2.거기에서 파생될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2번부터 살펴보자. 내가 길을 잘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두려운 일인가? 조금 헤멜수도 있고 실수할 수 있고 그래서 약속에 늦을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거기에서부터 적절하게 대처하면 된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일찍 출발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거나 스마트폰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된다. 결과에 대한 나의 주관적 두려움은 객관적 현실보다 꽤나 과장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1번이 남는다. 나는 길치인가? 명백하고도 지속적인 길치인가? 그 기준은 뭔가? 뭐 상대적으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가? 제대로 연습해보기는 했는가? 나는 길치라는 두려움 때문에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직접 맞닥뜨릴 기회를 회피함으로써 능력을 키울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앗아갔던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길치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지난 1년간 부지런히 많이 돌아다녔다. 고민하고 궁리하고 잘못가고 되돌아가다보니 나름의 감을 잡았다. 이제는 제법 길을 잘 찾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나의 선천적 무능함이 아닌, '회피'와 '두려움'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사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래도록 믿어왔던 확고한 신념에 의심을 품고, 곱씹어보고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과정이었다. 특히나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 모든 과정을 밟아가던 고비마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던 나의 '두려움'이었다. 내가 당연히 나라고 생각하는 나, 그것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냉정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불편한 작업이었다. 여기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기술이 바로 '마음챙김'이다. 지금 이 순간,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아차리며 수용하는 것. 그 자각의 눈과 함께함으로써 나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나를 관찰하며, 나를 수용하고, 나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단언컨대 마음챙김은, 나의 심리적 성장 과정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이자 보물이었다.

2.<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소개

22 불교와 서양의 심리 치료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들 전통은 자아의 미숙한 태도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고통을 극복하는 열쇠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런 의시것ㅇ이 없다면 우리는 온갖 충동에 휩쓸려 다니고 습관적 방어기제의 지배를 받는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불안과 욕망의 강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붓다와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우리 내면에서 해방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책임을 지는 태도는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서론이 길었다. 심리상담과 마음챙김이 얼마나 절묘한 케미를 이루는지, 심리적 성장을 위해 마음챙김이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는 불교명상과 심리치료를 결합한 책이다. 저자인 마크 엡스타인은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다. 그는 의대에 다니던 젊은시절부터 명상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고질적인 불안을 극복하고 내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본업인 심리치료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이 실천했던 불교적 지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그 철학을 상담에 암시적으로 녹여냈을지언정 내담자에게 명상 자체를 권한 적은 거의 없다. 그가 선호했던 것은 프로이트적인 분석적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명상에 대한 과장된 기대를 품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고민끝에 자신의 값진 체험을 심리치료에 직접 도입하기로 한다.

29 오래전 그때 내가 전문가 행세를 좀 덜 했더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설령 옳았다 하더라도, 이 직업에서는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리치료사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내 조언이 당시 그 상황에서처럼 역효과를 낳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옳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신념을 바탕으로, 불교적 지혜에 기반한 심리적 안정과 성장을 기대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진실된 제안이 담겨있다. 저자의 제안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팔정도를 삶으로 가져오는 것." 여기서 팔정도란 무엇인가? 붓다가 제안한 여덟가지 삶의 원칙이다. 기독교로 치면 10계명, 유교로 치면 오상(인, 의, 예, 지, 신)과 갖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팔정도는 다음과 같은 8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올바른 견해, 올바른 의도,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알아차림, 올바른 집중이 그것이다. 여기서 '올바른'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이를 반드시 준수해야 할 '규칙'으로 해석한다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하지만 팔정도는 '규칙'이라기보다는 '지혜'에 가깝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기에 올바르다는 것이다. 왜 지혜로운가? 팔정도를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자아와 맺는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습관적 행동이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완전히 살아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그 자체로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명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책은 그러기 위해 팔정도의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짚어나간다. 서론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팔정도의 총체적 방향성을 정리한 뒤 '1장-올바른 견해'에서부터 '8장-올바른 집중'까지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친절하게 팔정도를 풀어 나간다.

독특하면서 좋았던 것은 팔정도를 현대인의 삶으로 섬세하게 끌고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현대인의 언어로 친절하게 풀어냈다는 것, 심리학자의 관점으로 '마음'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현대인이 일상에서 팔정도를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전문가의 언어보다는 대중적인 표현으로 접근성과 이해력을 배려했다. 마지막으로 팔정도라는 거울을 이용하여 또렷이 빛을 한 곳에 모았다. 바로 '마음'이다. 수행자의 마음이다. 아무리 멋스럽고 훌륭한 규율도 지키는 이의 평온과 행복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자가 제안하는 팔정도는 그 지향점이 또렷하다. 언뜻 그렇지 않은 듯 보여도 천천히 따라 읽어가다보면, 곰곰이 궁리해나가다 보면 결국 한 곳을 가리키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팔정도를 실천하는 그 자신의 성장과 행복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만을 위하지 않으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하게 되는, 자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아를 돌보게 되는, 8가지 요소가 긴밀하고 미묘하게 서로를 연결짓고 지지하는 팔정도. 책을 읽는 과정 내내 그런 팔정도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되었다.

3. 가장 인상적이었던 팔정도의 구성요소, '올바른 의도'

64 우리는 너무 자주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내몰려 행동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곤 한다. 우리의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반응 패턴이 훈련되지 않은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다.

86 여기에는 갓 태어난 아기의 끊임없는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감과 부모의 이기적 동기를 인식하고 억제했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 모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가장 놀라운 점은, 위니캇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그 모든 것에 상처받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있다.

부모의 마음 상태에 대한 그의 묘사는 명상가의 마음 상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명상가의 마음이 반드시 백지이거나 텅 비어있을 필요는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부드러움도 있고 자기 비하가 뒤섞인 자기 연민도 있으며, 사랑이 마탕에 깔린 분노도 있고, 아기를 얄미워 하면서도 여전히 자장가를 불러 주고 요람을 흔들어주는 따뜻함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올바른 견해'의 가르침에 묘사된 분리와 변화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이 깔려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챕터는 '2장-올바른 의도'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팔정도로 치자면 '정사유'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팔정도의 첫번째는 흔히 '정견'이라 불리며 책에서는 이를 '올바른 견해'로 풀어냈다. 개인적으로 겉핥기식으로 불교를 공부했을 때 '정사유'를 '바른 견해'에 기반한 '바른 생각' 정도로 이해했었다. '바른 견해'에 기반한 '바른 생각'이 다시 자연스레 '바른 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이해했었다. 이 역시 틀린 접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적용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해석의 여지가 포괄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실천하기에는 난감함과 어려움을 느꼈다. 무엇이든 삶에 직접 적용하기 위해서는 간결하고 명료하며 구체적일수록 좋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올바른 의도'는 나에게,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를 향해 겨냥할 또렷하고 따뜻한 인식의 틀을 각인시켜 주었다. 바로 '헌신적인 어머니의 의도'다.

흔히 헌신적인 어머니라고 하면 '무조건적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저자의 관점에서도 아주 틀린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 오로지 '사랑'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짜증나과 화가나고 심지어 아이를 미워하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히 온다. 헌신적인 어머니는,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랑만 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끝내 사랑에 머무르는 존재다.

삶이라고 해서 다를바 없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데미안'이 '프란츠 크로머'를 보며 느꼈듯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 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거나 곤경에 처한 나를 외면함을 볼 때 사람을 향한 신뢰와 애정은 산산조각난다. 나 자신은 또 어떠한가? 마냥 소중하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나 자신이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껴질 때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심지어 자신의 일면에서 추악함과 역겨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도 있다. 이럴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자신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이다. 나쁜 감정을 회피하는 것이다. 언뜻 손쉽고 간편해 보이는 이 방법은 삶을 온전하지 못하게 만든다. 억압된 무의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존재를 표출하기 마련이다. 불안이나 신경증과 같은 형태로 경험과 행복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타인과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타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삶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을까? 책에 등장하는 사례자인 '클레어'에게는 욕구를 품을 권리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 욕구를 검열하고 회피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 무언가를 갈망할 권리조차 없다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네버.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회피하는 태도는 일종의 마비 상태를 유발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느낌들과의 접촉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감정이 차단되고 느낌이 거부되며 기쁨이 없는 사람, 겉보기에는 평온해보일지언정 결코 인간적일 수 없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따뜻한 행복감과는 괴리되어 있다. 흔히 명상가의 마음을 잔잔하고 평온한 호수와 같은 상태로 비유하곤 한다. 다만 저자가 제안하는 '마음의 호수'는 부정적 감정이라는 불순물을 완벽하게 제거한 1급수 맑은물의 청정호수와는 거리가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격동의 파도를 오롯이 끌어안는 드넓은 바다에 가깝다.

그러니 자신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두 번째 방법이 필요하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느낌을 가감없이 알아차리고 포용하는 것이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무엘 베케트는 말했다. "난 항상 우울할거야." 그러나 거기서 그친것이 아니다. "하지만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이제 이 어둠을 내 인격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어둠을 수용했으니, 그것은 이제 나를 위해 일하게 될 거야." 그렇게 베케트의 어둠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지금껏 외면해왔던 모든 어두움을 알아차리고 포용하기 시작할 때, 오히려 무의식의 언저리에서 나조차 모르게 삶을 훼방놓고 휘둘러온 그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발목을 잡고 휘두르기는 커녕 나와 삶의 안녕을 위해서 앞장서기 시작할 것이다. 회복과 성장을 위한 든든한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느낌에 머물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요즘이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갖고있는 나로서는 목표한 바가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을 때 급속히 불안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안이 불편하고 두렵다고 회피하다가는 삶을 온전하게 경험하며 즐길 수 없다. 불안의 근원이었던 완벽을 실현해내기는 커녕 오히려 능률과 성과를 더욱 떨어지게 만들 뿐이다. 삶과 도전으로부터 나 자신을 회피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변화는 알아차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불안을 인식하는 것 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반사적이고 즉각적인 회피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불안을 포착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 만으로도 불안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었다. 불안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잘 하지 못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크게 잘못되는 것이 아님을, 잘하지 못함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과장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잘 하기 위한 강박에 시달리는 나 자신을 친절과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나 자신을 위한 마음의 여유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빈 공간 안에서 나 자신을 돌봐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명상이 아닌, 삶을 이끌어가기 위한 명상을 연습해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4.인상적이었던 또 한 가지 팔정도의 구성요소, '올바른 말'

99 우리는 끊임없이 어어지는 생각의 고리를 포착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제어함으로써 제멋대로 쏟아져 내리는 내면의 폭포를 중단시킬 수 있다.

108 '올바른 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건, 그런 감정들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우리 스스로 그 감정들에 부여해 온 해석에 집착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결국 그 감정에 대해 습관적이고 자학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대신, 그 느낌을 편하게 대하면서 불쾌함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숨을 쉬고 그 감정에 대해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자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팔정도의 세번째 요소는 흔히 '정어'로 표현되는 '올바른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정견'에서 견해를 세우고, '정사유'를 통해 올바르게 생각하며, '정어'에 이르러 그것이 올바른 언어라는 형태로 입 밖으로 표현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독서를 통해서 팔정도에 대한 나의 이해체계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저자에 따르면 '정사유'는 '바른의도'로 해석된다. 의도라 함은 생각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지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른의도라는 지향점을 또렷이 밝힌 후에, 이에 기반한 바른 생각이 파생되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부족한 자신을 저주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과, 그런 자신이라도 사랑으로 감싸안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의도'를 가진 사람의 생각이 같게 흘러갈리 만무하다. 이렇듯 '의도'는 생각의 발현과 향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시작점이자 변곡점이다.

책은 2장에서 '올바른 의도'를 다룬 뒤 3장에서 '올바른 말'을 다룬다. 잠깐, 그럼 생각은? 생각이 곧 말이 될텐데, 생각을 건너뛰고 말부터 다룬다는 것은 뭔가 어설프고 이상하지 않은가? 걱정할 필요 없다. '올바른 말'에 생각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에게 건네는 말'을 통해서다. 팔장도를 통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이 책의 지향점이듯, 저자가 강조하는 '올바른 말'은 무심코 자신에게 건네는 습관적 언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에 따라서 나에게 건네는 말이 달라지며,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빈번하게 건네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변화할 수 있다. 말과 인식은 꼬리를 물고 순환하며 '내가 바라보는 나'의 형태를 조각해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본다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고 미래의 실패를 두려워하며 현재의 모습에 실망하고있는 그의 모습을 생생히 떠올려본다. 결코 한심해보이거나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친절과 연민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분주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려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를 향해서만큼은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사회통념상의 기준이나 내가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못미치는 결과를 내놓았을때면 혹독하게 스스로를 다그치고는 했다. 마치 나의 삶과 존재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도구라도 되는듯이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좋은 결과는 내 삶의 부산물일 뿐이다. 나는, 나의 삶은 도구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모든 경험의 과정 속에서 나의 삶은 의미가 있으며 그 가치는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름의 잣대로 가치를 평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혹독한 외부의 비난에도 스스로를 변호하고 위로하고 돌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할 기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타인과 세상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삶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게되지 않을까?

81 나는 이제 불편한 느낌들을 성가신 장애물로만 대하는 대신 그 느낌에 대해 탐색하고 숙고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건에 대한 누군가의 반응은, 사건 그 자체보다도 반응하는 이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화가 나쁜 것이 아니다. 모든 일어난 사건에는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이유가 있다. 화가 났다는 것은 그것을 촉발시킨 사건보다도 그러한 반응을 일으킨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것을 말해준다. 자신을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반가운 여정의 기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좌절도, 실패도, 짜증도, 분노도 마찬가지다. 흔히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나쁜 감정'들을 회피한다는 것은 깊은 곳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아보면 나는 회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회피했고, 새로운 시도를 회피했으며, 겁이 나면 일단 회피했고, 내면의 부정적 감정은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회피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많은 생생한 경험과 성장의 기회를 앗아갔는지 안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하는 길인지 알게 된 이상 태도와 행동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 다른 챕터에 담긴 '올바른 행동'을 통해서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지금 이 순간'에서 마주질 경험과 느낌들을 판단없이 포용하는 생기있는 삶을 기대해본다.

5. 끝으로

272 그렇지만 지금 내게는 불교와 심리 치료 덕분에, 삶이 무엇을 제공하든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수단이 갖추어져 있다.

272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자아의 불필요한 긴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라는 것이다. 팔정도의 모든 측면은 그와 같은 이기작 집착을 상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렇지만 불교적 의미의 구원을 성취하려먼 자아의 욕구나 필요를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들에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열린 마음으로 그 욕구들을 탐색하고 보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책은 마지막 9장에 해당하는 '글을 맺으며' 챕터를 통해 앞서의 내용을 총정리하는데, 이 항목의 부제가 바로 '삶이 무엇을 제공하든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훈련'이다. 즉 팔정도를 체화함으로써, 도전으로 가득한 일상의 순간속에서 마주칠 모든 미지의 변수들을, 두려움 없이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은 어떤 모습일까? 불안이 사라진 마음으로, 두려움 없는 자신으로 도달하게 될 삶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모른다. 팔정도가 가리키는 '올바른 길'은 정답이 정해진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이 정해진 이상적 자아가 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팔정도가 선물할 것은 오로지 '자유'다. 그 때 거기의 지금 여기에서부터 무엇을 시작할지 역시, 오로지 오롯이 우리의 자유다.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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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s********3 | 2019.10.28 리뷰제목
서양인들이 불교의 철학과 석가모니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교나 석가모니의 사상을 명상이나 심리 치료 분야에 많이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의 저자도 저명한 정신과 의사로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에 불교를 이용하고 있다. 불교의 수행법인 '팔정도'의 가르침을 서양 심리 치료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영적, 심리적 성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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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불교의 철학과 석가모니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교나 석가모니의 사상을 명상이나 심리 치료 분야에 많이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의 저자도 저명한 정신과 의사로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에 불교를 이용하고 있다. 불교의 수행법인 '팔정도'의 가르침을 서양 심리 치료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영적, 심리적 성장을 위한 방법으로 확장시킨다고 한다.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를 읽다보니 저자가 불교에 대한 많은 깨달음과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엿보이기도 한다.



'팔정도'는 불교에서 나오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자아와의 대결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길과 깨달음에서 나오는 길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길은 여덟 가지의 가르침으로 설명되는데 그것이 '팔정도'이다. 올바른 견해, 올바른 의도,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알아차림, 올바른 집중이 그 여덟 가지 팔정도이다. 명상을 하며 이 팔정도의 단계를 하나하나 대면하면 자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팔정도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조직한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는 서양의학을 공부한 저자이지만 서양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팔정도를 재해석해 동양과 서양의 불교가 합해져 내용이 더 풍부해졌다고 한다.



'팔정도'에 있어 제일 기본이 되는 것은 '올바른 견해(정견)'이라고 생각한다. 사물이나 사람, 모든 것 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 올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견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올바른 견해를 가지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다. 명상은 마음의 훈련이라고 하는데 마음이 제대로 올바르지 않는다면 명상도 크게 효과가 없게 된다. 심리 치료나 명상 훈련은 즉각적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도 하지만 그 효과를 누구보다 자기자신이 알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붓다의 '올바른 견해'는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측면에 대처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매순간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험의 본성을 관찰하고 불가피한 고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단다. 명상으로 자신이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며 일상에서 다시 만날 때 이겨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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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평점10점 | s******2 | 2019.10.23 리뷰제목
통찰력이 느껴지는 책이에요.현명하고 열린 마음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좋은 생각, 언어, 다정함, 강인함 등의 요소를 상기시켜줍니다.세상을 어떻게 봐야할지 보는 관점을 달리하며 그로 인해 삶이 변화하는 경험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저는 불교는 아니지만 두고두고 곱씹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다양한 우화랑 일화, 개인적인 경험담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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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이 느껴지는 책이에요.

현명하고 열린 마음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좋은 생각, 언어, 다정함, 강인함 등의 요소를 상기시켜줍니다.

세상을 어떻게 봐야할지 보는 관점을 달리하며 

그로 인해 삶이 변화하는 경험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저는 불교는 아니지만 두고두고 곱씹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다양한 우화랑 일화, 개인적인 경험담이 나와있거든요.

명상의 힘, 그리고 자가치유의 여덟가지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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