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하나 고백해둔다. 이 책은 제목과 함께 '시험 문제는 척척 푸는데 말은 어렵니?' 라는 카피가 있는데, 나는 말도 어렵지만 시험 문제도 잘 풀지 못한다. 이상.
나는 영어를 잘 못하고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늘 느끼면서도 어려워서, 귀찮아서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도 리뷰어 클럽에서 영어 공부 관련 도서만 보면 늘 관심을 가지고 신청한다. 그만큼 영어는 현대인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영어 관련 첫 이벤트 도서로서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기대하고 읽었다.
전체 소감부터 말하자면, 내 기대와는 다른 방향의 책이였다. 물론 내 기대와 달랐단 말이지, 책의 내용에 불만을 가지거나 실망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대로 흥미롭게 읽었다. 책은 영국, 미국, 폴란드에서 수년간 생활했단 저자가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학습 방법을 소개한다. 책은 4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4장의 내용 대부분이 '왜 한국 사람들이 특히 영어를 공부하기 힘든지', '영어 문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다른 나라(폴란드)는 어떻게 영어를 교육하는지' 등을 이야기하고, 영어 공부법은 부록에서 소개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어 공부법'이 아닌 '영어 공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뻔한 내용이거나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재차 강조한 것이겠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눈으로만 공부할게 아니라 듣고 말하기가 중요하다, 영어는 어순이 중요하다, 수능 영어는 영어를 말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등)이 많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말 따위를 자주 인용하는 것은 신뢰성이 가기도 했지만 오히려 너무 자주 나와 아쉽기도 했다.
책 내용이 흥미로웠다고 해놓고 아쉬웠던 점만 나열한 것 같아서,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들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ㅡㅡㅡ
FSI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필요한 학습 시간을 측정해서 다양한 외국어를 난이도에 따라 4가지 범주로 나누었다.(레벨 1, 1.5, 2, 3) 한국어는 영어와 가장 거리가 먼 범주인 레벨 3에 속해 있으며, 레벨 2와도 학습 시간에서 무려 2배 차이가 나는 2,200시간을 학습해야 한다. 영어를 쓰는 이들에게 한국어는 어떤 외국어보다도 극단적으로 어려운 언어로 꼽힌다.
ㅡㅡㅡ
마투라 시험은 폴란드 고등학교 졸업 시험이면서 동시에 대학교에 진학할 때 쓰이는 평가 자료이다. 마투라 영어 시험에는 읽기와 듣기는 물론 쓰기까지 포함되고, 말하기 시험은 개인별로 다른 날에 진행된다.
2019년 마투라 영어 기본형 - 쓰기 영역
Q. 장학금을 받아 스코틀랜드로 갔다. 최근에 방을 빌렸는데 런던 출신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 이메일을 쓰라.
- 이 아파트를 어떻게 구했는지
- 이 아파트로 결정한 이유
- 당신의 과실로 생긴 아파트의 손상
- 집주인의 반응에 대해 염려되는 바를 설명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라
ㅡㅡㅡ
이 책을 읽으면서 원래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빼고 가장 크게 드는 생각이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새삼스래 얼마나 일본어가 우리에게 배우기 편한 언어인지. 영어를 공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인 어순, 발음(한 음절씩 끊어있는 것이 아닌, '소리 파도'를 타는 것), 문화적 차이(눈치를 많이 보는 한국 / 일단 말하고 보는 미국) 들이 일본어에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공부해도 발전이 없어 보이는 영어보다는 공부할수록 성과가 보이는 일본어 공부로 편식(?)하곤 했는데, 영어가 훨씬 중요한 기술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두번째는 폴란드의 마투라와 공교육. 폴란드의 교육은 저자가 4장에서 따로 설명했을 정도로 강조했는데, 왜 폴란드의 영어 수준이 높은지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위에 예시로 보여준 문제만 보아도 수능 영어와 공부했을 때 어디가 실전 영어에 도움이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책에서도 말했듯, 우리나라 영어 시험에는 '생산'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등학교의 시험도 벼락치기가 큰 효과를 보는 중간, 기말로 나뉜 우리나라의 시험과 달리 짧게, 자주 치는 시험과 숙제로 꾸준한 공부를 유도하는 것이 좋았다. 폴란드 학생들은 77% 정도가 공교육만 받는다고 한다. 수능 영어에 목매달고, 영어 사교육에 돈을 퍼붓는 우리나라가 안타깝기만 하다.
이것 뿐 만 아니라 영어를 '잘한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목표마다 각자 다 달라야하므로 영어를 배우는 목적과 배경이 다른 남과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 영어 공부의 목표는 남의 눈으로 바라본 전시용 목표가 아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꿈, 설렘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이 마음에 들었다.
부록에는 써니윤 '1일 1생영어' 공부 Tip 세 가지와 원어민이 가장 많이 쓰는 영단어 1,000개가 실려있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Tip 중 하나인 EMR 방법만 소개한다.
Ear 글 없이 소리만 듣고
Mouth '소리 파도'를 살려 내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Recall 글을 보지 않고 떠올려 말하기
이 연습이 반복된다면 그 영어가 체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계속 강조되는 것이지만 눈으로 읽고, 글로 쓰는 공부법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어민 발음을 듣고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것이 궁금하다. 저자는 원어민 발음을 들을 수 있게 글을 소리로 변환해주는 무료 웹사이트 세 군데를 소개한다.(구글 번역기, 리드 스피커, 네추럴 리더)
미리 말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받았을 때 조그만 노트가 두 권이 따라와서 뭔가 했다. 하나는 '매일 10분 필사 노트의 기적'이라는 타이틀로 첫 페이지에 문장 필사 방법과 노트 활용 방법이 적혀 있고, 뒤에는 정말 노트다. 더 작은 하나는 격자가 있는 포켓 노트. 책에서 말한 Tip과 필사노트를 착실히 활용한다면 정말 영어 실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와서 생각이 드는게, 책에서 영어 공부법을 소개하는 부분이 적은게 맞는 것 같다. 250페이지에 공부 팁만 적혀있는 것도 이상하고, 실제로 250페이지만큼 공부 팁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공부라는 것이 실천적 영역이니까, 이 정도의 Tip이라도 잘 지키는게 더 중요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정말 좋은 책인지는, 꾸준히 실천을 해야하는 나에게 달렸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