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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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기회주의적 반공군사독재의 기원을 찾아서

리뷰 총점 9.6 (5건)
분야
사회 정치 > 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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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기회주의자 히틀러의 재등장을 심히 경계함!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c | 2019.05.09 리뷰제목
박형규 작가는 왜 아돌프 히틀러에 주목했을까? 그 이유는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다. 작가에 의하면 트럼프가 미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여온 행태는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인간 트럼프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히틀러를 지금, 다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트럼프는 2015년 6월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라
리뷰제목

 

박형규 작가는 왜 아돌프 히틀러에 주목했을까? 그 이유는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다. 작가에 의하면 트럼프가 미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여온 행태는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인간 트럼프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히틀러를 지금, 다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20156월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라고 묘사하는가 하면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 분자로 규정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의 축재를 독일 대중이 겪는 가난의 원인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는 멕시코를 비롯한 이민자들은 미국 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무슬림들은 미국 안보를 해치는 세력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또한 트럼프는 이민자를 막는 국경 장벽 구축과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와 불법 체류자 추방을 주장해왔다. 히틀러는 유대인과 집시들을 대량 추방하거나 600여만 명을 학살했다.

그보다 중요한 유사점은 두 사람의 기반이 대중의 사회경제적 불만이고, 지지층이 중하류층이라는 점이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에 따른 과도한 배상으로 인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1930년대 전후의 대공황으로 침몰하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경제를, 트럼프는 세계화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커져가는 미국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정치적 기반으로 했다.

히틀러는 대공황 때 긴축으로 일관한 바이마르공화국 정부의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농민, 퇴역군인 중하류층 등을 향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트럼프는 세계화 등으로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미국 중하류 백인층을 겨냥했다. 게다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히틀러가 바이마르공화국의 폭력 타도를 표방했듯이 트럼프는 각종 집회에서 지지층들의 폭력을 선동했다. 트럼프는 세계경제 이탈, 무역적자의 상대국에 대한 공격, 극단적인 자유우대정책의 강행을 통해 히틀러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 물건을 사라고 말한 뒤 전개한 미국 내 일자리 우선 정책은 히틀러가 1933년 총리에 오른 뒤 오타키(Autarky, 폐쇄적 자립경제)’ 정책과 일자리 우선의 완전고용 정책을 펼치고 국제연맹 탈퇴,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 수입 통제로 국내 산업 보호 정책을 편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히틀러가 노동조합 해산과 파업 등을 통해 기업인들에게 더 많은 재량을 주고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건설, 올림픽경기장 등 대형 공공건물 건립 등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재무장을 위한 군비 확장 정책을 실시해 군수산업을 팽창시킨 것도 트럼프의 정책들과 유사했다. 그 결과 집권 당시 30%대였던 실업률은 1939년에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바뀌는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저자의 견해는 언뜻 1940년대 후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버트럼 그로스의 친절한 파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그로스는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의 출현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대 기업과 거대정부의 연합이 나치의 강압적 파시즘과 달리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중의 생각을 교묘히 관리하는 방식으로 억압적인 지배 세력을 형성하는 신파시즘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2016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1984, 멋진 신세계,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같은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 작품은 연극,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되거나 패러디되었다.

특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원제 It Can‘t Happen Here)(우리나라에는 20181월 번역)는 미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가 193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1936년 대선에서 승리한 버즈 윈드립이 군사법을 제정해 언론과 대학을 장악한 후 의회와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등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는 내용이다. 루이스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재혼한 아내 도로시 톰슨에게서 받은 영감 덕분이었다. 아내는 1931년 히틀러를 인터뷰했고, 1934년 미국 언론인으로선 처음으로 나치에 의해 추방되기도 했다. 루이스 역시 히틀러의 틍장을 통해 암울한 미래를 엿보았음에 틀림없다.

박형규 작가에 따르면 트럼프와 히틀러 두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어떤 정견이나 이념, 원칙이나 주의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며, 둘다 태어나면서부터 기회주의자다.

저자는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기회를 틈타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1920~1930년대 유럽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프랑코, 그리고 일본에서 우익들이 권력을 잡고 세계 대전을 일으켰듯이 지금 21세기 초반에도 그런 자들이 정권을 쥐면 제3차 세계대전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과 좌우 갈등은 자칫 또 다른 화약고가 될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는 히틀러에게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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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기회주의자, 세상을 손에 넣다 평점8점 | q*****2 | 2019.07.15 리뷰제목
침체된 경기가 좀체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른바 고통분담. 월급을 동결하는 수준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더 나아가 퇴직 종용, 해고도 잦은 요즘이다. 각박한 현실의 원인으로 언급되는 것들 중 하나로 외국인 노동자를 꼽을 수 있다. 제3 세계 출신인 그들은 우리 청년들의 취업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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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경기가 좀체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른바 고통분담. 월급을 동결하는 수준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더 나아가 퇴직 종용, 해고도 잦은 요즘이다. 각박한 현실의 원인으로 언급되는 것들 중 하나로 외국인 노동자를 꼽을 수 있다. 제3 세계 출신인 그들은 우리 청년들의 취업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라는 비난을 받고는 한다. 너무도 열악해서 한국인 누구도 가려 들지 않는 직종에 그들이 종사 중이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제2 차 세계 대전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경기 침체다. 자못 날카로워진 사람들은 폭력도 마다 않고 행하면서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다. 적절한 방법이 아니므로 당연히 효과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마법에라도 걸린 양 한동안은 이를 추종한다. 희대의 살인마 즈음으로 여겨지곤 하는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도 그랬다. 그는 시대와 사회가 딱 변화를 요하는 그 시점에 등장했으며,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 들었다. 머리가 좋았던 걸까. 한 때 미술학도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가 유대인 대학살의 선봉에 서게 된 까닭이 무언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가 주목한 건 기회주의였다. 한 때 미술학도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쌓인 좌절감이 오늘날의 히틀러를 만들었다는 식의 설명을 들은 적은 있으나 기회주의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정말 히틀러는 기회주의자였을까.

히틀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 될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아니 한 시절, 독일 전역은 혼란 그 자체였다. 바이마르공화국 정부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 나약한 정권에 반하는 움직임 중 하나로 소련식 볼셰비즘 정권의 수립 시도가 행해졌는데, 이후 공산주의자 타도를 부르짖은 히틀러 또한 이 조직의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저자는 그의 이와 같은 행보의 원인으로 ‘가능한 한 군대에 오래 남고 있다는 이유’를 꼽았다. 딱히 직업이란 걸 가지지 못한 히틀러로서는 생계 해결을 할 수 있는 군대에 오래도록 몸 담는 게 생존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후 히틀러는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군인의 정치 활동은 금지였지만, 히틀러에게 그것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언제까지 군인일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어가 됐건 시도해 보는 게 히틀러에겐 필요했다. 이 당은 후에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즉 나치당(NSDAP)이 됐다.

나치당이 내세운 25개조 강령이 어떠한 심오한 철학도 지니지 못했음을 저자는 간파했다. 그럼에도 히틀러와 나치당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할 수 있었던 데엔 히틀러의 어마어마하게 짙은 호소력이 한 몫 했다. 혼탁한 사회에서 영웅이라도 된 것 마냥 탁월한 연설 능력을 선보인 히틀러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히틀러의 대중적 인기는 감옥에 갇힌 그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가장 기회주의적으로 여겨진 대목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었다. 이미 유대인 박해는 진행 중이었지만 독일 사회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 유대인 인구에게 닥친 비극을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히틀러는 한 편에서는 교묘하게 반유대주의를 자행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올림픽에서의 영광을 위해 유대인 선수들도 독일 선수단에 합류시켰다. 한 얼굴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책을 선보이는, 히틀러는 올림픽을 자신을 영광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기회 즈음으로 해석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기회주의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완용은 친러, 친미, 친일 등 상황에 맞추어 옷을 갈아 입는 재주(?)을 선보이며 끝끝내 살아남았다. 여전히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반공 군사독재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기 이전 행보가 수상쩍다. 어떠한 정치적 비전도 없이 오로지 권력만을 노려온 기회주의자들이 우리 사회의 권력을 독식해 왔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과연 그들에게 아돌프 히틀러는 어떠한 존재라는 평을 받을까. 설마 자신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이므로 존경받아 마땅하다고는 하지 않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간 온몸 가득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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