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잡은지 두 시간만에 술술 다 읽어버렸습니다.
작가의 재미난 입담과 말랑한 문체가 만나 쉽게 읽히더군요. '장애'라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라는 소재로 풀어낸 것이 재밌었습니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장애 관련 문제를 담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평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장애차별적인 시각을 깨달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인 장애인에 대한 저의 무심했던 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변호사이지만, 혹시 어려울 수 있는 법률용어로 현학적인 느낌을 내지 않습니다. 친한 언니와 얘기를 나누듯, 엄마가 자기전에 동화책을 읽어주듯 아주 쉽게 글을 쓴 것도 읽는데 큰 재미가 있었습니다.
정말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거, 얼마나 슬픈 일인가!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동의하지만 막상 실전에 임했을 땐 다른 태도를 보이곤 한다. 나도 모르게 남과 나의 차이점에 목을 매고,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우열을, 틀림을 발견하려 애쓴다. 다수의 품에 안기면 덜 외로워서일까.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면 나 또한 그 무리의 일원이 돼 타인을 향해 비난의 말을 내뱉고는 한다. 인권.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릴 수 있으며, 또 누려야 하는 권리는 그리도 쉽게 무너지곤 한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접하라는 말도 그 순간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단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저자에게는 실례라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우러러보는 눈빛으로 그를 대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일단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 아무나 붙는 시험이 아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소위 ‘사’자 붙는 직업을 지닌 이들에게서 느끼는 거리감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지.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도 맞긴 하나, 내 경우에는 시험 합격이라는 성과를 위해 투자했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존경스럽다. 단지 이 자체만으로도 그러한데 저자는 조건이 그리 좋지 못했다. 사고로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고, 이제껏 한 쪽 눈으로만 세상을 대했다. 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물이 잘 안 보이는 것은 물론 거리감이 확연히 떨어진다. 어쩌면 공부를 함에 있어 남들보다 배로 피로감을 호소했을 수도 있다. 혹자는 이를 결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게도 딱히 강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마음으로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택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자는 공익 활동 전담 변호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여성, 아동, 장애인 인권 침해 사건이 그의 주 관심사다. 힘을 가진 이들이 큰 목소리를 낼 때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온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이들을 향해 다가서는 게 그의 일이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재미를 논하기에는 씁쓸했다. 각박한 현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고,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손으로는 그 무엇도 바꾸어 나가기가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제도가 그러하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게 법이라고 하지만, 법을 만드는 이들은 대개가 권력자다. 그들은 진정 약자의 입장을 이해치 못한다. 그 결과, 인간이 만든 제도가 인간을 기만하는 일이 숱하게 발생하고는 한다. 한동안 장애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아온 장애인 등급제. 많은 이들이 문제 제기를 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폐지로 가닥을 잡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교육이 좋다고 말은 하지만 사회는 아직 장애인을 품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물며 교사가 장애 아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시설 측면에서 비장애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턱이 장애인들에게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과연 내가 그릇된 법을 고치는데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장애인으로 아직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내가 사회의 어떤 요소가 장애인들의 삶을 옥죄는지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를 향한 그릇된 시선이 오해를 낳고 있다. 실제로는 아닌데, 영향력 있는 매스미디어에서 장애인을 그려낸 방식이 잘못된 나머지 다수가 잘못된 태도로 장애인을 대하기도 한다. 평소 장애인을 접하는 기회가 별로 없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릇된 시선으로 그려낸 장애인의 모습이 장애인에 관한 유일한 정보일 수도 있다.
아직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봉사는 신청해도 안 될 거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벌금을 대신하는 사회봉사마저도 장애인은 행할 자격이 없다니. 별 걸 권리라고 언급했네 싶을 수도 있으나 당사자에게는 실로 절실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꽃처럼 어여삐 여겨지는 사회라면, 장애를 지녔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존중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현실을 척박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꽃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활짝 꽃 피우고 서로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세상, 그런 생각이 왔으면 좋겠다.
장애 인권 전문 변호사 김예원 저자의 책이다. 한국사회가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장애 인권 관련해서는 나아져야 할 부분이 많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처럼 이쪽 분야에 무지한 - 나같은 - 독자를 위해서는 영화 이야기로 장애 인권을 풀 수 있는 입문서가 필요하겠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영화 '주토피아'에서 나무늘보가 등장하는 씬은, 작품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장치다. 그런데, 김예원 변호사는 장재인 노동에 관해 묻는다. 현실에서 과연 나무늘보와 같은 사람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을까, 구한다면 어느 정도 소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처음 알았는데, 장애인은 최저임금 대상이 아니라 한다. 그밖에 책에서는 탈시설, 장애 교육 등 현재 장애 인권과 관련한 현안을 영화 이야기와 병렬적으로 서술한다. 김예원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