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칸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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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칸트인가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리뷰 총점 9.1 (84건)
분야
인문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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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차 리뷰) 왜 칸트인가,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 김상환 저 평점8점 | k*****7 | 2019.07.09 리뷰제목
서평기한이 넘을 것 같아 1차 리뷰를 쓴다.  칸트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입문서로 좋을 것 같아 선택했는데 어휘도 그렇고 문장이 그렇고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읽는데 고전 중이다!! 고전에 접근하기 위한 책에 고전중이라니 이런~ 정신을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계속 앞쪽을 뒤적거리게 되고, 쉬었다가 읽으면 이미 읽었던 내용인데도 읽은 것 같지 않은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
리뷰제목

서평기한이 넘을 것 같아 1차 리뷰를 쓴다.

 

칸트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입문서로 좋을 것 같아 선택했는데 어휘도 그렇고 문장이 그렇고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읽는데 고전 중이다!! 고전에 접근하기 위한 책에 고전중이라니 이런~

 

정신을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계속 앞쪽을 뒤적거리게 되고, 쉬었다가 읽으면 이미 읽었던 내용인데도 읽은 것 같지 않은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입문서에 진입하는 것도 이렇게나 어렵다니, 그렇다면 칸트의 저작을 읽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쉬운 문장에 익숙해졌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꼭 책이 쉬워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어려운 책은 어려운 대로 읽는 맛이 있다는 생각에 계속 읽고 있는데, 리뷰를 쓰려면 한 2주는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남기는 1차 리뷰, 칸트를 제대로 탐험하려면 얼마나 걸리려는지, 50쪽 정도(4분의 1정도) 읽었는데 공책에 적은 내용만 해도 4페이지가 넘어간다.

 

거의 처음 본 듯한 어휘가 많이 나오는데, 정초하다는 말은 웬지 멋있다. 뿌리, 기초, 터전같이

 

"정초하다" 어떤 하나의 사실에 대해 그것이 보편성을 주장할 권리를 입증해 준다는 것을 말한다. 크게 보면 칸트의 비판철학 Criticde Philosphy 은 이런 권리증명으로써의 정초작업에 해당한다

 

칸트적인 의미의 '비판'이란 정론이고 정초이고 정초란 특정사실에 대해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한 범위를 설정해주는 일이다. 이는 영토를 제공한다는 것과 같다. 그 분야의 고유한 영토를 보장하는 것과 같다. 칸트는 세 비판서를 통해 근대과학, 근대윤리, 근대예술을 정초했다. 그리고 이후 도래할 유기체적 자연관을 정초했다

 

초월론적 차원은 들뢰즈가 계승을 했고 무의식 차원은 라캉이 계승 발전시켰다.

 

칸트는 진리를 다루는 이론철학을 제1철학, 선의 문제를 다루는 실천철학을 제2철학, 미의 문제를 다루는 예술철학을 제3의 철학으로 정리하는데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이루어낸 불멸의 업적 초월론적 차원의 발견 및 규명, 대상중심의 인식론을 주체 중심으로 인식론으로 바꾸어 놓았다.

 

데카르트와 칸트 이전에는 대상(사물자체)이 인식의 출발점이자 중심이고 그 둘레를 주체가 행성처럼 회전한다. 칸트 이후 서양철학사의 주류가 된 독일관념론, 현상학, 실존주의 같은 철학에서는 반대로 , 주체가 항성으로 자리잡고 대상이 행성이 되어 그 둘레를 회전한다.

 

과거에 진리란 대상과의 일치여부 즉 정확성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활력이다. 표상을 생산하고 대상을 구상하는 인식능력들의 원활한 기능과 자유로운 유희가능성에 진리가 진리일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이 있는 것이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마음에 구비된 인식능력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 능력들 각각의 기능은 무엇이며 어떻게 조화를 이루면서 표상을 생산해내는가? 인식론의 근간은 인식의 매카니즘을 통해 세상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을 기술하는 데 있다.

 

우리의 마음은 감성, 상상, 지성, 이성 등 4가지로 나눈다.

 

감성은 직관의 능력이다. 물자체로부터 영향을 받아 다양한 내용의 자극을 수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안다는 것은 감성과 지성의 협동작업이다. 감성은 자극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지성은 감성을 통해 주어진 잡다한 내용을 능동적으로 종합하는 능력이다.

 

(칸트 - 순수이성비판)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감성이 물자체와 접촉하여 그 자극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형식이 시간과 공간이라면 지성이 잡다한 감성적 내용을 조직하는 형식은 12가지 범주다. 양, 질, 관계, 양태 등 4개의 상위범주에 각 3개의 하위카테고리를 뒀다. 지성은 판단형식에 해당하는 12개의 범주를 통해 감성적인 내용을 규정한다.

 

감성과 지성은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상극이다. 배타적인 능력을 화해시키는 것이 상상력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상상력에 대해 두가지 방향에서 이야기한다.

 

상상력이 감성에서 출발해서 그 직관의 내용을 지성에 전달해줄 때 하는 일을 '종합 synthesis' 이라고 하고 반대로 지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서 감성적 직관의 내용을 그것에 부합해주도록 가공해 줄 때 이 경우 상상력이 하는 일을 '도식화 schematize' 라고 한다.

 

'종합과 도식'에 대한 칸트의 서술을 대단히 독창적이고 심오해서 '순수이성비판'을 깊이 알고 있는 지의 여부는 이 부분에 대한 이해의 정도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다.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개념에 부합하는 도식을 효율적으로 그려낸다는 것과 같다. 거꾸로 효율적인 도식을 그려낼 줄 알아야 그만큼 추상적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다. 자유로운 개념사용의 조건은 도식을 그려내는 능력, 상상력에 있다.

 

한참을 읽어야 할 책, 몇번을 읽어야 할 책 같다.

칸트 때부터 상상력, 창의성이 강조되었구나..

우리는 아직도 남과 똑같이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고유의 독창성으로 나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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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왜 칸트인가 - 칸트 철학 입문서로 좋은 책 평점10점 | a*******5 | 2019.07.09 리뷰제목
그동안 인문학과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만난 철학 사상 중에 내게 배우고 싶은 철학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칸트 철학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칸트의 도덕철학은 내게 무한한 감동을 준 바 있다. 하지만 어렵다는 선입견과 바탕 지식의 부족으로 앎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서가명강 시리즈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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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문학과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만난 철학 사상 중에 내게 배우고 싶은 철학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칸트 철학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칸트의 도덕철학은 내게 무한한 감동을 준 바 있다. 하지만 어렵다는 선입견과 바탕 지식의 부족으로 앎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서가명강 시리즈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칸트 사상의 근간을 소개하되 그가 서양 사상사에 가져온 혁명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철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는 칸트 철학의 의의는 "고대적인 지혜와 현대적인 사유를 중간에서 연결해주""오늘날까지 철학사를 수놓은 많은 사상들, 의미 있는 철학 사조는 대부분 칸트가 발견한 대지 위에서 전개되었다"는 데 있다.

 

 칸트 철학은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라는 3대 비판서를 기본 골격으로 한다. 여기에서 알아둘 점은 '비판'의 의미다. "칸트적인 의미의 '비판'이란 정초이고, 정초란 특정 사실에 대해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할 범위를 설정해주는 일이다. 이는 영토를 제공한다는 것과 같다." 칸트는 세 비판서를 통해 근대 과학, 근대 윤리, 근대 예술을 정초했으며, 이후 유기체적 자연관을 정초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마음을 해부하면서 대상 중심의 인식론을 주체 중심의 인식론으로 바꾸었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의식의 형식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며, 경험 이전에 내재하는 '선험적 형식'이다. 주체로서는 알 수 없는 '물자체'와 주체에게 경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계' 사이를 나누면서 이어주는 '제3의 차원'이 의식의 선험적 원리들이 자리하는 영역으로 '초월론적' 차원이라 부른다. 그리고 경험의 선험적 원리들을 탐구하는 철학을 '초월론적 철학'이라 명명한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우리의 마음은 감성, 상상, 지성, 이성 등의 4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감성은 수동적으로 내용을 받아들이는 직관의 능력이고, 지성은 그 내용에 능동적으로 형식을 부여하는 종합의 능력이다. 상상력은 감성과 지성이라는 배타적인 두 능력의 매개자로서 '종합'과 '도식화'의 작업을 수행한다. 이성은 생산된 지식을 총체적으로 체계화하는 능력으로 "칸트 철학에서 이성이 지식을 체계화하는 원리는 '이념idea'이라 불린다." 칸트에 따르면, 경험적인 차원의 지식들은 저마다 일정한 경향의 선을 형성하고 영혼, 우주, 신이라는 이념으로 수렴한다.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칸트는 고대의 덕 윤리를 도시적인 삶에 부합하는 의무의 윤리로 전환해 선 중심의 윤리학을 법 중심의 윤리학으로 전도시켰다. 그럼으로써 칸트 이후 궁극적 물음의 대상은 이상적 인간이 아니라 이상적인 법칙이 된다. 칸트에 의하면 이상적인 법칙은 "개인에게는 자유를, 사회에는 정의를 허락하는 법칙이다." 칸트 윤리학에서 도덕법칙과 자유는 동전의 양면으로 일체를 이루며 '인격성'을 만드는 것으로, "그 인격성 안에서 인간은 비로소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존엄성을 얻는다." 칸트 철학에서 "도덕법칙에 의해 개시되는 자유는 윤리학의 중심이면서 순수이성체계 전체의 중심이며, 도덕법칙과 자유를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칸트는 이론적 판단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판단도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간주한다. 실천의 세계에서 이성이 정언명법이라는 선험적 규칙을 제공하며, 정언명법은 경험의 세계에 있는 의지의 내용과 결합돼 선험적 종합판단이 된다. 칸트가 말하는 의지는 욕망의 일종이며 욕망은 실천의 세계를 여는 상위의 능력이다. "의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규칙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이성에 의해 자극되는 욕망이며, 이런 욕망을 일컬어 '선의지'라 한다." 칸트는 "오로지 선의지만이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한다. 또한 칸트는 존경을 도덕적 판단의 원동력으로, 자율을 적극적 의미의 자유로, 정언명법을 보편적 입법의 형식으로 보았다.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그 준칙을 통해 동시에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윤리형이상학 정초> 전집4권 421쪽-

개인은 저마다 다른 삶의 준칙이 있는데, 칸트의 "정언명법은 이런 특수한 내용의 방침이 모든 이성적 인간에게 인정될 수 있는 원칙인지 따져보라고 명령한다.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만 그 준칙을 실천적 법칙으로 채택하라는 것이다."  

 

  칸트 철학은 근대 미학의 출발점으로 간주되는데, 칸트가 '반성적 판단'이라는 개념을 통해 심미적 체험의 독특성을 포착하고, 보편적 타당성을 정당화하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우연한 사실로부터 새로운 보편자로 나아가는 판단을 '반성적 판단'이라 하고, 보편적 개념에서 출발해 특수한 사실로 나아가는 판단을 '규정적 판단'이라 한다. 칸트는 <판단력비판> 전반부에서 심미적 판단을 다루고 후반부에서 목적론적 판단을 다룬다. 둘의 공통점은 살아있는 사태와 관계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심미적 판단이 살아있는 마음의 상태에서 출발하는 반면, 목적론적 판단은 살아있는 유기체에 고유한 논리를 모색한다. 심미적 판단이 주관 내부의 생동감과 관계하고, 목적론적 판단은 외부 자연의 생명체와 관계한다.

 

 칸트는 예술을 통해 상상력의 자유와 의지의 자유가 구조적으로 동일한 방식임을 보여주고자 하며 미와 숭고의 세계가 최고 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증거임을 말하고자 한다. 또 목적론적 판단을 통해 근대 과학에 의해 증발해버린 가치의 차원을 복구하고자 한다. 그것은 기계론에 의해 말살된 생명체의 의미를 되살리면서, 한편으론 역사철학의 기초를 놓는 작업으로 완성된다. 칸트의 <영구 평화를 위하여>는 역사 진보의 마지막 단계로서 세계적 단위의 영구 평화를 위한 조건으로 국제법과 세계 법정의 수립을 논한다. 오늘날 UN은 칸트의 이런 생각이 모태가 되었다 한다.

 

 이 책은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중심으로 칸트 철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책이다. 읽고 나니 그동안 어렵게만 여겨진 칸트 철학이 한결 친근해진 느낌이다. 이 책을 몇 차례 더 읽은 후 본격적으로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읽어보길 꿈꾸고 있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0 댓글 7
종이책 왜 칸트인가 - 김상환 평점10점 | g*******7 | 2019.07.09 리뷰제목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큰 호수로 들어오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칸트에서 시작된 물줄기다 - p. 16 中에서 - 항상 정확한 시간에 마을을 산책하는 칸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볼 필요가 없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칸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그간 그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과 더불어 서양철학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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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큰 호수로 들어오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칸트에서 시작된 물줄기다

 - p. 16 中에서 -

 항상 정확한 시간에 마을을 산책하는 칸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볼 필요가 없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칸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그간 그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과 더불어 서양철학사의 5대 천왕으로 칸트를 꼽는 저자의 글을 보니 그러한 무지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 [왜 칸트인가]는 제목과 같이 이 시점에서 왜 칸트를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하여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서양철학사에서 칸트가 차지하는 비중과 업적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이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다. 이전의 시리즈에서는 누구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었지만, 칸트에 대해서는 정작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기에 그를 다루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꽤 어려운 모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 저자는 이 책에서 칸트가 쓴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통하여 인지, 윤리, 미학에 대하여 차근차근 그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을 통하여 칸트의 철학이 고대적인 지혜와 현대적인 사유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초반에 언급한 칸트에 대한 평가를 감안한다면 결국 서양철학은 그에 의하여 재정의되어 오늘날 철학의 형태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학사적인 그의 업적과 평가를 일반인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저자가 인용한 것은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이다. 코페르니쿠스가 누구인가? 지구가 중심에 위치하고 그 주위를 태양을 비롯한 다른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다는 천동설에 반하여 그 중심에 태양이 위치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과학은 물론 다양한 사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코페르니쿠스를 왜 저자는 칸트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 소환한 것일까? 지금에서야 지동설이 맞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철학과 과학은 물론 창조론에 입각한 종교적인 신념이 결합된 천동설은 당시 사람들에게 확고한 진리처럼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종교재판을 통한 처벌을 받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그 누구도 천동설에 대하여 되짚어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단순히 지구와 태양의 중심 위치를 바꾸어 놓은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바꾸는 것 자체가 대단한 변혁이자 전회였던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하여 칸트의 철학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해하는 입장에서도 그러한 시도는 탁월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설명을 통한 인지 혁명을 설명하는 부분에 대한 위의 그림을 참고 한다면 왜 저자가 코페르니쿠스의 전회를 인용하고 있는지 이내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칸트 이전의 고대 철학에서는 정해진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칸트는 오히려 그러한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칸트 이전에는 그저 주체는 대상에 대한 거울 역할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정해진 대상의 모습 또는 진리에 일치할수록 참된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거울 역할이 아닌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칸트에게 마음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니라 어떤 기능들의 집합체다. 마음은 감성, 상상, 기억, 지성, 이성과 같은 여러 인식능력들로 이루어진 어떤 장치물과 같다.

 - p. 30 中에서

 

칸트의 윤리 혁명을 그의 [실천이성비판]을 통하여 설명하는 부분 역시 위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로 시작된다. 이 부분은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선(善)을 기반으로 법(法)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칸트의 철학은 사실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칸트는 절대적인 진리라 여겨지던 선(善)마저도 예지계에서 일어나는 선험적인 판단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이 이성이 정언명법이라는 선험적 규칙을 제공하고 있음을 설명함으로써 선(善)과 법(法)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재정립을 논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아래와 같이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개인은 저마다 다른 삶의 준칙이 있다. 학교는 저마다 특정한 교육 방침을, 기업은 저마다 다른 경영 방침을 가진다. 정언명법은 이런 특수한 내용의 방침이 모든 이성적 인간에게 인정될 수 있는 원칙인지 따져보라고 명령한다.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마 그 준칙을 실전적 법칙으로 채택하라는 것이다.

 - p. 133 中에서 -

 

 보편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특수한 사실로 나아가는 규정적 판단을 우연한 사실로부터 새로운 보편자로 나아가는 반성적 판단[판단력 비판]으로 설명한 대목 역시 앞서 언급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반성적인 판단을 심미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철학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여 판사의 예를 통하여 설명하는 부분은 칸트가 말하는 반성적 판단을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정해진 법과 다양한 판례라는 개념을 통하여 사건이라는 사실을 판단하는 판사에게 개념에서 다루지 않는 새로운 사건을 마주하였을 때, 그가 마주하는 당황스러움은 규정적 판단의 한계와 더불어 반성적 판단의 필요성을 십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이 책에서 말하는 칸트의 미학 혁명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칸트가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 중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변증론'이라 할 수 있다. 훗날 헤겔의 '변증법'도 바로 칸트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여지는데, 칸트는 '변증론'을 통하여 과거의 주요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면서 자신의 철학에 대한 논리적인 타당성을 확보한다. 그의 저서에 '비판'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실천이성비판]의 마지막 부분에서 '변증론'을 통하여 에피쿠로스주의와 스토아주의가 구장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인 관계임을 지적하면서 고대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이들 학파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해체된 그들의 쾌락과 덕성을 발판삼아 그가 말하는 최고선에 대하여 설명하는 부분은 그로 인하여 고대 서양철학의 재정립을 통하여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인용된 위의 세 가지의 그림만 놓고보면 칸트의 철학이 바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본주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주체(인간)가 아니라 주체에 의하여 다시금 인식되고 판단되는 대상의 구조라든지 진리로서 정해진 선(善)이 아니라 그것마저 인간의 예지계에 의하여 선험적인 규칙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부분은 철학의 중심에 인간이 위치함을 느끼게 된다. 판단의 방법적인 변화 역시 그러한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칸트가 활동한 시기는 시민의식과 정치적인 혁명으로 사회 곳곳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이전에 예술에서 인본주의가 등장하였던 것처럼 이제는 종교와 계급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철학 역시 인간 자체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함을 감안한다면 칸트의 철학은 당장 그 세세한 부분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인본주의 철학으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생각된다. 그랬기에 그로 인하여 과거로부터 이어지던 서양철학이 관점의 변화를 통하여 새롭게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왜 칸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단 한 번의 읽기를 통하여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 중 칸트의 최고선과 관련하여 선진국이란 도덕성의 추구가 행복의 추구로 이어지는 사회이고, 역사적 진보란 도덕성과 행복의 거리가 점점 더 좁혀지는 과정이라 말하는 부분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을 칸트의 철학을 통하여 재정의한 선진국과 역사적 진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한 생각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현재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현재의 세계가 그가 말하는 사상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기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칸트를 떠올리며 그의 철학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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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한 권으로 요약한 칸트철학의 핵심 평점10점 | y*****2 | 2019.10.16 리뷰제목
도서관에서 <왜 칸트인가>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최근에 발트연안국가를 여행하는 길에 들른 칼리닌그라드에서 칸트의 무덤과 동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면서도 근대 서양철학의 중요한 저서들을 아직 읽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김상환교수님께서 쓰신 <왜 칸트인가>에는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리뷰제목

도서관에서 <왜 칸트인가>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최근에 발트연안국가를 여행하는 길에 들른 칼리닌그라드에서 칸트의 무덤과 동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면서도 근대 서양철학의 중요한 저서들을 아직 읽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김상환교수님께서 쓰신 <왜 칸트인가>에는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부제가 붙어있었습니다.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서양철학에서 차지하는 칸트의 위상에 관한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큰 호수로 들어오고,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은 칸트에서 시작된 물줄기다’라는 호수비유도 수긍이 간다하겠습니다. 이밖에도 칸트를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철학의 콜럼부스’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칸트의 철학은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등 3대 비판서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데, 이 저작들을 통하여 인식론, 윤리학, 미학, 자연관 등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천문학 분야에서 코페르니쿠스가 가져온 혁명에 비유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칸트의 3대 비판서의 핵심내용을 요약하여 칸트가 근대철학에서 일으킨 혁명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깔끔하게 정리해냈습니다.

1부에서는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이 인지혁명으로 마음 모델을 혁신했다고 보았고, 2부에서는 <실천이성비판>의 내용이 윤리혁명으로 덕 윤리에서 의무의 윤리로 전환하는 전기가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3부는 <판단력비판>의 전반부는 미학 혁명으로 근대예술을 정초했다고 평가했으며, 4부에서는 <판단력비판>의 후반부에 대하여 생태 혁명으로 기계론에서 유기체론으로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평가입니다.

각 부의 말미에는 칸트에 관한 궁금증에 대한 설명을 더해두었습니다. 칸트가 3대 비판서를 집필한 이유를 정리한 대목이 있습니다. 칸트가 살던 18세기 후반은 노동 및 사회, 학문 및 가치의 분화가 활발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철학에서도 고유한 위상과 정체성의 확립이 요구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하여 “칸트는 3대 비판서를 통해 이론적 지식의 객관성을 따질 때의 기준, 실천적 행동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때의 근거, 예술적 창작의 심미적 가치를 판정할 때의 원리를 차례대로 해명하고자 했다(153쪽)”는 것입니다.

저자는 칸트의 3대 비판서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다양한 저서들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판단력 비판>의 초반에서 다루는 심미적 체험에 대한 취미판단에 관하여 칸트는 그 질적 특징을 ‘무관심한 만족감’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우리는 만족감을 누리되 그 만족감은 무관심한 만족감이라는 것인데, 이때 만족감이란 쾌감, 기쁨, 즐거움을 말한답니다. 그런데 저자는 칸트의 ‘무관심한 만족감’을 공자의 ‘사무사(思無邪)’와 견주었습니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시경(詩經)>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경 삼백 편을 한 마디로 줄여 말하면, 그 핵심은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데 있다.(詩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 (193쪽)” 이 구절에 대하여 저자는 ‘사특함이란 어떤 사적인 관심에 의해 관심에 의해 구부러진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사무사‘란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 비뚤어진 데가 없는 곧은 마음, 사특한 의도에서 해방된 순진한 마음을 가리킨다’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 눈길이 오래 머문 이유는 최근에 우리나라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분들이 모두 새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이번 기회에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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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Think 1. 칸트철학에 대한 쉬운 개념서인줄 알았더만...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z******8 | 2019.07.10 리뷰제목
[서가명강]이 하도 입소문을 끌길래 몹시 궁금해했더랬다. 뜻을 짐작하기로는 '책꽂이에서 잠들고 있는 고전책들을 다시 꺼내 읽도록 해주는 명강의'라고 떠올렸었는데,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였다니...완전 속았다. 책내용 또한 '서울대 강의'만큼이나 어렵디 어려웠다. 내가 서울대를 못간 이유가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과연 서울대생은 이런 강의를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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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명강]이 하도 입소문을 끌길래 몹시 궁금해했더랬다. 뜻을 짐작하기로는 '책꽂이에서 잠들고 있는 고전책들을 다시 꺼내 읽도록 해주는 명강의'라고 떠올렸었는데,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였다니...완전 속았다. 책내용 또한 '서울대 강의'만큼이나 어렵디 어려웠다. 내가 서울대를 못간 이유가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과연 서울대생은 이런 강의를 단박에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싶어서 우울해져 버리고 말았다.

 

  독일철학은 '관념철학'의 계보를 따르고 있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철학'이라고들 한다. 뭐, 철학 가운데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철학이 없기에 하나마나 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독일철학의 대표격인 '칸트'와 '헤겔'을 살짝만 들여다보아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만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딴에는 이 책 <왜 칸트인가>가 좀더 쉬운 '개념서'이길 바랐는데, '서울대 강의'라니...암튼, 책 내용을 찌끄려봐야 나도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쉽게 설명할 재주는 원래부터 없다. 그래서 내가 읽고 느낀 '칸트'를 느낀만큼만 소개하려고 한다. 믿어도 좋다. 절대 어려운 얘기는 안 할 예정이니까.

 

  칸트는 3개의 대표작을 썼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란 제목으로 각각 썼다. 제목에 공통적으로 '비판'이라는 내용이 들어갔는데, 철학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비판이란 '사물의 의미를 밝혀 그 존재의 까닭을 이론적 기초로 판단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 여기서 더 가깝다고 표현한 까닭은 내가 무식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일 것 같다'는 뜻이므로 크게 의미를 부여할 바가 못됨을 먼저 밝혀두는 바이다. 행여 진짜 전문가가 이 글을 읽고 '문외한이 아는 척 한다'고 고깝게 볼까 무섭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밝혀두지만, 난 무식하다.

 

  여튼, <순수이성비판>이란 '생각하고 인식하는 모든 정신적 고찰 과정인 [이성(理性)]의 존재의 까닭을 이론적 기초로 판단해본다'는 내용으로 암축해볼 수 있겠다. 특히, 이 책 <왜 칸트인가>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적 이성 철학'에 반하여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거친 '근대 철학' 아니, 감히 '칸트 철학'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만큼 칸트의 '이성'은 발상의 차원이 다르다는 부연설명인데, 난 이게 당췌 뭔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 속에서 비유적인 설명을 하면 할수록 이해가 더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할 지경이었다.

 

  다음은 <실천이성비판>이다. 이 책의 골자는 한마디로 '도덕'이다. 기독교적인 도덕이기에 '신앙'으로 보아도 무방하고 말이다. 암튼 칸트가 말하는 도덕은 '절대선'에 가깝다. 궁극적으로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실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이 쉽지 실천하기 정말로 어려운 것이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칸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기에 '생각하는 바대로 실천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를 동양식으로 말하면, 사람이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짐승처럼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하는 것처럼 칸트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채찍질을 해서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이 <판단력비판>이다. 칸트는 이 책에서 '근대 예술'과 '근대 과학'에 대한 새로운 정립을 내세운다. 고전적 예술관에서는 '본질' 자체에 우위를 두었다. 중세적 예술관은 '신앙'에 우위를 두었고 말이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예술은 일대 변혁을 맞이한다. '인본주의'라고 일컫으며 신앙에 치우쳤던 예술의 혼을 다시 '사람' 중심으로 재탄생한 예술을 칸트는 예술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감상자'가 아름답게 느꼈느냐로 중심을 옮겨버렸다. 즉, 칸트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자체를 '대상'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성)'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재정립해버린 것이다.

 

  한편, '근대 과학'에서는 망가진 것을 (과학적 기술로) 새로 만들어서 끼우면 애초의 새것처럼 '원상복구'가 가능한 [기계적인 자연(생물)]에서 한 번 망가지면 새로 만들어 끼운다해도 애초의 것으로 '원상복구'가 불가능하고 다시금 새로운 유기체가 되는 [유기체적인 자연(생물)]로 '과학의 인식'을 재정립하였다. 따라서 칸트 이전의 과학은 '기계론적 과학'이라고 일컬으며 신이 만든 자연과 사람이 만든 자연을 동일시하였으나, '유기체론적 과학'은 하나의 생명처럼 죽이거나 파괴하면 다시는 되살릴 수 없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어쩔 수 없는 과학적 인식을 일깨운 것이다.

 

  이는 칸트가 신앙의 독실함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으나, 17~18세기에 '과학만능주의'가 팽배해지는 것에 대한 반감내지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기계론적인 과학'에 근거해서 불치병과 난치병까지도 고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하나의 생명체'를 사람의 손에 의한 인공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었을 때 사회윤리적 질서가 어지러워질 것을 경고하는 경우도 종종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냉동인간' 기술이 발전하여 수명이 200세가 넘는 인간이 생존해 있다면 과연 150여 년이란 세월을 건너 뛰어서도 잘 적응하며 살 수 있겠는가? '유전공학'이 발달하며 사람의 수명이 거의 모두 200세가 가까이 된다고 했을 때 20살 수능성적으로 결정이 되어버린 '삶의 질과 계층'을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새로운 사회질서를 정립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는 문제들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 <왜 칸트인가>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의 일부분이다. 물론 책의 내용에 근거하고 있으나 책속의 비유를 서술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함'이 산적하기에 부득이 '나만의 이해 방식'대로 주절댄 부분도 많음을 밝히는 바다. 이 글을 읽고 이 책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이 책은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독자가 형편 없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묘사할 수 없었노라고 변명을 해보려 한다.

 

  각설하고,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한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을 배울 때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등 오래된 옛날 사람들의 '철학'을 공부하고 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엣 철학자들의 사상을 살펴보고 분석하고 곱씹어보면서 그 의미를 풀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라톤이 살던 시대와 21세기 현재인 '오늘'의 차이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더구나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20세기도 아닌 19세기 철학자들의 '썰'을 풀고만 있다는 사실은 깊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과연 현재에 걸맞은 철학은 없단 말인가?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현재를 분석한 철학'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무식한 나의 고민은 아니다. 어느 책에서 읽어본 풍월을 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곱씹어볼 문제점인지라 무식한 와중에도 나름 깊이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나서야 <왜 칸트인가>라는 제목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철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홀연히 나타난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은 '과거의 집대성'이란 과정을 거치고 거쳐서 태어나는 학문이다. 이 책에서 '칸트'가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대변환을 완성했다고 지적한 것처럼 21세기에 어울릴만한 '인식의 대변환'도 일어날 게 분명하다. 칸트도 인공지능(AI)를 마주한 시대에 살았다면 '또 다른 철학'을 내놓았을 것이다. 우리가 '칸트철학'을 곱씹으며 21세기에 어울릴만한 철학을 고심해보아야 할 '목적'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 이 책이 읽히고 싶은 목적이 바로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의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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