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단편 가운데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을 재밌게 읽었는데 그 작품에 영감을 준 책이 이 책,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활자문화>라고 해서 기대를 품고 읽게 됐습니다. 책에 테드 창 소설에 등장하는 부족의 사례가 그대로 등장해서 어찌나 놀랐던지...(그렇지만 테드 창 소설은 이 책과 사례, 큰 주제 의식만 같을 뿐 또 다른? 얘기들도 함께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을 검색해 리뷰를 읽어보실 정도의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테드 창 소설도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은 매체가 암기, 암송 위주의 구술 매체에서 활자, 인쇄 위주의 문자 매체로 넘어가게 되면서 인간의 의식 구조와 지성사, 더 넓게는 인간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기억력을 통해 인간의 문화가 대를 거듭하며 이어져 전수된다는 것, 활자 없이 생각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지... 이미 활자문화의 영향력 아래 평생을 살아온 저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2천 년 전의 의사소통 방식이 지금과 사뭇 달랐다는 점을 알고, 당시 사람들이 소통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지적으로 큰 자극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류가 구술성을 잃어버린 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구술성과 활자성을 동시에 발전시켜 왔다면 우리가 열심히 쓰고, 읽고, 생각하는 방식 말고 또 다른 기억 및 학습 방식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어떤 사람은 연회 도중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났는데도 사고 전 어느 자리에 누가 앉아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냈다고 합니다. 2천년전 인류의 그 기억력이 부러워집니다. 동시에 쓰기에 비해 찬밥신세로 전락한 ‘말하기’가 안쓰러워집니다. ‘2차 구술성 시대’를 맞아 ‘말하기’의 복권을 위해 인류가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라톤 서설>을 쓴 ‘존 하틀리‘가 이 책의 해제를 시도했는데 본문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비평사나 미디어사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학술 용어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면서 읽어내야 합니다. 전체 내용은 집중해서 읽을 경우 큰 지적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테드 창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거의 다 좋아하실 내용이고, 앞으로 우리 미디어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그 힌트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이 책에 관해서는 어떤 식으로도 소개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억은 항상 틀리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책을 구경하다 눈에 들어왔고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었지만 어쩐지 내용이 어려울 것 같아 미루다가 이제야 읽게 됐다. 항상 그렇듯 뒤늦게 읽어 후회하면서.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서 이제야 알게 된 것에 아쉬울 정도였다. 더 일찍 읽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제목부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바로 그런 걸 다루고 있는 ‘구술... 문자...’는 가볍게 넘길 수 있고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있을까? 라는 의문도 할 수 있는 “언어를 목소리로 구술하는 것(orality)과 문자로 쓰거나 인쇄하는 것(literacy)이 인간의 의식 및 사고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서 무척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음성언어에 바탕을 둔 구술문화와 쓰기 및 인쇄에 토대를 둔 문자문화가 인류의 표현양식과 매체의 변천과 더불어 어떻게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명징한 논리와 풍부한 예증을 통해 검증해”내고 있는 이 책은 특정 학문 영역을 넘어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고 이 빼어난 책이 비교적 덜 알려진 것에 안타까움도 느끼게 된다. 아니, 이런 게 있었는지도 몰랐던 내 무지에 한탄하게 된다.
그저 말하기와 쓰기의 차이만이 아닌 우리들 생각이 그리고 인식구조가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있으며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반박도 있다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이 워낙 인상적이라 다툼의 여지는 있어도 어떤 식으로든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고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생소한 분야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 않게 해주고 있고 저자의 시각이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아 말하기와 쓰기로 다양한 분야를 그리고 방대하게 확장시켜 생각해보도록 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을 나눌 있길 바란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소통을 말이나 글로 한다.
문어체와 구어체가 있다.
말할때와 글을 쓸때의 언어는 분명 같은 언어지만 조금 다르다.
말하듯이 글을 쓰거나,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들로 대화 하는건 어쩐지 이상하고 어색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상에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약 5만년전이다.
또 우리가 아는 최초의 기록물은 기원전 3천5백년 경에 나타났다고 한다.
구술이 50살을 살아낸 어른이라고 하면 문자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3살 아기이다.
"구술문화에서의 생각은 일단 끝까지 진행되고 나면, 쓰기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재현할 때만큼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생각은 지속적인 지식이 되지 못하며, 비록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순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p77)
텍스트가 없던 시절에는 기록으로 남길수가 없으니 모두 기억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구술문화에서는 말을 기억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반면에 요즘은 초등학생도 휴대폰을 갖고 다닌다. 편하고 익숙한 디지털기기를 휴대한 뒤로 뭔가를 기억하는 능력은 분명 퇴화된거 같다.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손 안에 인터넷 덕분에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전화번호도 복잡한 공식이나 계산식도, 기억해야할 중요한 일정도 어딘가에 메모를 해두면 된다. 기억보다 어디에 저장해뒀는지 보관 공간을 찾는게 중요하게 되었다.
"어느 중앙 아프리카 사람에게 마을 학교의 새로운 교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춤추는 것을 좀 지켜봐야죠." 라고 대답한 사례도 있다. 구술적인 민족은 지적 능력을
일부러 꾸며낸 텍스트 퀴즈로 추론하여 평가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평가한다." (p106)
어느 학교 출신인지, 배움이 얼마나 길었는지, 경쟁자끼리 서로 비교하여 유리한 스펙을 가진 사람을 합격시키는 게 지금 세상의 규칙이다. 문자문화가 덜 발달된 시절에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준도 재밌는 방법이 동원된다. 이 기준은 그때 그때 다르다고 하니 면접을 봐야하는 사람은 사전에 뭘 준비해 가야했을까. 자신의 어떤 장점을 어필했을까.
"구술표현은 꼭 쓰기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존재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구술 표현은
쓰기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쓰기는 구술성 없이는 존재 불가능한 것이다." (p38)
"(...) 쓰기는 세 가지 기술 중 어떤 면에서는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쇄술과 컴퓨터는 쓰기에서 시작된 것을 계속해나가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끊임없이 움직이는 소리를 정지된 공간으로 환원하고, 소리로 된 말만이 존재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현재로부터 그 말을 분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p143)
문자, 쓰기, 인쇄술은 모두 구술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시대에 쓰기가 없는 일상은 상상이 어렵지만,
쓰기가 생겨나던 초기에는 불청객 취급을 받았다. 문자보다 말을 더 신뢰했다.
위조 문서가 많기도 했고, 원본 문서에 대한 상호 약속된 규칙도 없었다.
어떤 문서는 원본임을 입증하기 위해 칼을 달아두기도 했다.
지식인이라 불릴만한 사람들도 모두 부정적인 말들로 쓰기를 거부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건 어느 시대든 진리인가보다.
쓰기는 처음 그렇게 구박을 받고 보조적인 역할만 하다, 성서나 코란 등 종교를 중심으로 쓰기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어갔다.
문자가 없었다면, 쓰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나 인터넷은 꿈도 꾸지 못할 것들이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 디지털이 없는 세상을 이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가스렌지 이런게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찌될까. 모두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자는 구술과 문자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그둘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는지가 궁금했나보다. 수사학을 연구하면서 언어의 구술성과 문자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타계하기 전까지 긴 시간 연구를 이어갔다고 한다.
구술과 문자.
나는 딱히 궁금하거나 호기심이 생기진 않지만 강제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 꾸역꾸역 읽었다.
책 뒷 커버에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 나는 동의하기 좀 어려웠다.
"이 책은 어느 한 전공분야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인문.사회 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교양서다."
교양서라기 보다는 전공분야를 위한 교과서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독자라면 다르려나.
내겐 거리가 너무 먼 주제여서 어렵게 느껴진 책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읽어낸 책이라 리뷰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독에 대한 증명이자 버틴 시간에 대한 결과물이 있었으면 했다. 1월은 다시 뭔가를 실천하기에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