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가족이라는 환상이 환장할 가족을 만든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 책에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환장할 우리 가족>은 소설이 아닙니다. 지극히 사적인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비교적 평범한 가정에서 별다른 일탈 없이 성장했고, 조건에 맞는 남자를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했으나 2년차 무렵 남편의 암 선고로 위기를 겪게 됩니다.
국회에서 유능한 보좌진으로 일했던 저자는 남편의 투병 생활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고, 그토록 원했던 임신을 포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가족의 집단주의적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가족을 마지막 보루라고 여길까.
혹시 그런 믿음이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가족 탓이 아니라고 자신을 속이면서 가족의 민낯 보기를 외면하거나,
그저 꾹 참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족에 대한 한국인의 이런 통념과 태도가 전형적인 집단주의적 시각에서 기인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의 가족은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집단'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라는!" (6p)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저자 개인의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가족'을 탐구대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입니다.
몸이 아프면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듯이, 저자는 '비정상' 가족의 당사자가 됨으로써 한국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집단주의 행태를 발견했습니다.
남편의 투병 생활이 주위에 알려졌을 때, 주변인들은 이혼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권유는 이혼함으로써 위험 요인이 있는 가족 구성원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저자는 새로이 이룬 가족 공동체의 주체라는 생각이 크지 않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문득 반대의 경우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아픈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아내는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아픈 아내를 위해 희생하는 남편은 대단히 훌륭한 존재로 여긴다는 건 굳이 희생하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또한 살림에 대한 편견은 가족 안에서 엄마의 존재를 모순적으로 만듭니다. 성스러운 존재이자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죄의식이 드는 대상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떤 고결하고 거룩한 것으로 만들어 자기 죄책가과 공포를 승화하려는 심리가 있다고 합니다. 엄마를 성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마음도 살림 같은 하찮은 일을 엄마에게 미루면서 드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라는 저자의 생각에 한 표!
근래 읽은 스웨덴의 복지 정책을 보면, 아동 돌봄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면서 '집안일'은 부부 공동의 일이라는 관점에서 제도를 만들어 젠더 평등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에게만 의무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입니다. 스웨덴 복지의 핵심은 모든 인격체에 대한 존중과 평등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한국 사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로 상징된다는 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의 경험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한국에서 매우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저자는 '우리'라는 집단으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립한 '개인'으로서 가족구성원을 존중하는 개방적인 공동체로서의 가족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을 '우리'가 아니라 '너'와 '나'로 인식하고, '나' 스스로를 먼저 존중해야 합니다. 각자 온전한 '나'로 존재할 때 밝고 건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공동체와 연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
공동체 중에서도 가장 작은 단위라 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왜 가족때문에 환장할 것 같은지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었구요.
저도 집단주의 속에 있으면서 겪었던 어려움들로 인해 집단주의나 가족주의에 대해 막연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의 초반부터 '우리' 속의 '개인'을 강조하는 작가의 의견에 쉽게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답니다. 의견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할까요. 물론 개인적인 상황에 따른 감정적 결론이기 때문에, 100% 이해할 수 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만큼 제가 집단주의와 가족주의 문화에 익숙되어져 버렸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채사장 작가가 책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책을 읽으라고 하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꼭 다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며 읽어갔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공감되거나 배울 점이 많이 느껴졌던 책이었던 것인지 그 어떤 책보다도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 있더군요. 거의 각 챕터마다 포스트잇을 안 붙힌 곳이 없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완독을 하고 나니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 층 더 성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뷰를 하기 위해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던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니 한 구절 한 구절, 놓칠 구절들이 없더군요. 사회 현상과 문화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이 책은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집단 속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복지, 그리고 사회적 소통 등 다양한 방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복지 정책과 공동체, 연대에 관한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진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면 좋을지 말이죠.
사회복지에 나오는 주요 모델 중 하나가 임파워먼트, 바로 강점관점 모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 등의 복지 구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들의 강점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시작이 바로, 이들을 단순히 '배려하고 돌보아주어야 할 존재'로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한 '개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어쩌면 당연한 말일수도 있지만, 그동안 저 또한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게 그 대상들을 바라보았던터라, 이러한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복지를 거의 10년 정도 공부하고 있는 저인데도, 부끄럽게도 생각해보지 않은 개념이었거든요. 장애인과 노인, 아동은 그저 챙겨주고, 양보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그들에게도 또한 각자의 사회적 책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관점에서 정책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런 시스템만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연대와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고 말이지요.
연대와 공동체는 그저 집단 속 개별적 존재인 상태에서 이룰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협력한들 서로에 대한 의존만 견고해질 뿐이다. 연대는 자기 이익을 챙겨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개인의 것이다. (p.221)
문예 출판사, 홍주현 작가님의 <[eBook] [대여] 환장할 우리 가족 : 정상 가족 판타지를 벗어나 '나'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구매하여 읽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에 답답함을 느껴온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우리가 아닌 나와 너가 존중받는 가족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해줘서 좋았어요